충남도의회 가결 이어 서울시의회 밀어붙이기

교육감들 “학생 인권 후퇴·민주주의 퇴보” 반발

대책위 무효소송·집행정지신청에 '일단멈춤'

학생들 “당사자 의견 반영도 없이 결정” 비판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2일 서울 마포구 공덕역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2023.12.22. 서울시교육청 제공.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2일 서울 마포구 공덕역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2023.12.22. 서울시교육청 제공.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둘러싼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당초 국민의힘이 다수를 차지한 서울시의회에서 22일 본회의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의결할 계획이었지만 법원에 제동이 걸리면서 ‘일단 멈춤’ 상태가 됐다.

학생인권조례는 학교가 학생을 훈육의 대상, 교육의 객체로만 인식하면서 정작 학생이 인권과 기본권의 주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생겨났다. 지난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서울, 충남, 인천, 제주 등 7개 시도에 마련돼 있다.

그런데 올해 들어 학생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이 나타났다.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 이후 학생 인권 강화 분위기가 교권 침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문제 제기가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나오면서 일어났다. 실제 충남도의회는 전국 최초로 지난 15일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의결했다.

서울의 경우 지난 3월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이 주민 조례 청구를 받아들여 발의했는데 국민의힘이 다수인 서울시의회는 당초 19일 폐지안을 교육위에 상정한 뒤 22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계획이었다. 그런데 시민사회 단체 중심으로 구성한 ‘서울학생인권조례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제동을 걸었다. 공대위는 조례 폐지안 무효소송을 냈고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의 수리 및 발의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도 냈다.

서울행정법원이 19일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면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 무효소송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폐지 조례안에 대한 입법 절차가 정지됐다.

그러나 집행정지 신청은 기존의 주민 조례 청구를 바탕으로 김 의장이 발의한 폐지 조례안에 국한된다. 만약 다른 서울시의원이 새로운 폐지 조례안을 발의한다면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 이미 이상욱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은 지난 8월 “교사의 정당한 방어권을 확보하고자 학생의 권리만을 부각하고 책임을 외면한 현재 학생인권조례를 개정하고자 한다”면서 학생인권조례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다만 이 의원의 발의안은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아닌 ‘개정안’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의원은 최근에 '서울특별시교육청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안'도 발의했지만 학생인권조례 폐지 내용은 빠졌다.

만약 광역자치단체 의회가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의결한다면 이를 견제할 다른 수단으로 교육감의 ‘재의요구권’이 거론된다. 대통령의 거부권과 유사한 교육감의 재의요구권은 교육 관련 의회의 의결에 대해 행사될 수 있다. 만약 교육감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면 시도의회가 재의결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이 경우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중 3분의 2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가결될 수 있다.

충남도의회의 경우 폐지안 의결 당시 찬성 31명, 반대 13명이어서 재의결 시에도 가결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서울시의회에서 본회의 통과 후 재의결이 실시된다면 국민의힘 75명, 더불어민주당 35명으로 재의결 시에도 가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최교진 세종시 교육감 등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하는 전국 시도 교육감 8명은 지난 19일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보수 교육감으로 분류되는 제주 교육감이 동참한 점이 눈에 띈다. 이들은 “학생인권조레는 학교 현장의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다”면서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체벌이 사라졌고 복장과 두발 등 학생 생활규칙에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게 했다”고 밝혔다. 이어 “어떤 이유로도 학생을 차별할 수 없도록 하면서 학생 인권을 신장시켰다”고 밝혔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최교진 세종시교육감이 19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서울시의회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논의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이정선 광주시교육감, 천창수 울산시교육감, 최교진 세종시교육감, 김지철 충청남도교육감, 박종훈 경상남도 교육감, 김광수 제주시교육감 등 8명의 교육감은 이날 입장문에서 서울시의회가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시도하는 것과 관련해 "시대착오적이며 차별적인 폐지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2023.12.19. 연합뉴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최교진 세종시교육감이 19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서울시의회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논의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이정선 광주시교육감, 천창수 울산시교육감, 최교진 세종시교육감, 김지철 충청남도교육감, 박종훈 경상남도 교육감, 김광수 제주시교육감 등 8명의 교육감은 이날 입장문에서 서울시의회가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시도하는 것과 관련해 "시대착오적이며 차별적인 폐지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2023.12.19. 연합뉴스

이들은 또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학생 인권의 후퇴이자 민주주의의 퇴보”라면서 “서울시의회는 시대착오적이며 차별적인 조례 폐지를 중단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는 홍범도 장군 동상처럼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면서 “학생인권조례는 도입 이후로 학생 인권 보장 등 조례적 차원에서 인권 선진국으로 성장했다는 상징적인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화 이후 후세대는 (민주주의를) 당연한 산소나 공기처럼 여겼다”면서 “(조례 폐지로) 권위주의 시대로 돌아간다면 산소가 없어지는 것과 같아 많은 학생들도 고통스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 전병주 서울시의원은 “학생인권조례가 2011년 제정된 이후 헌법재판소, 서울행정법원, 서울고등법원에서 위헌성, 위법성 논란이 해소됐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청구했다”면서 “주민조례발안법에 의거해 청구 자체의 적법성 검토가 필수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서이초 사건과 학생인권조례의 상관관계다. 서이초 사건 등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교권 침해는 주로 학부모로부터 발생하고 있다. 학부모들의 무분별한 ‘갑질’ 행위를 이유로 교육의 주체인 학생의 인권이 왜 영향을 받아야 하는지 명확한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성 소수자 관련 내용도 논란이 되고 있다. 충남도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발의한 국민의힘 박정식 의원은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 임신 또는 출산 등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차별 금지 조항은 어린아이들에게는 부적절한 내용”이라고 밝혔다.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지난 1월 유엔 인권이사회는 한국 정부에 이와 관련된 서한을 보냈다. 이사회는 서한을 통해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해 국제인권기준, 특히 차별 금지 원칙에 반해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때문에 겪는 차별에 대한 보호를 축소하려는 시도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학생인권조례 도입 이후 체벌이 줄어들고 있다는 실증 통계도 있다. 서울시교육청 발표에 따르면 학생인권조례 도입 이후 ‘체벌을 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이 2015년 18.9%에서 2019년 6.1%로 감소했다.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체벌 감소 등 실질적 효과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2호에 의하면 ‘학생 인권’은 ‘대한민국 헌법’ 및 법률에서 보장하거나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등 대한민국이 가입·비준한 국제인권조약 및 국제관습법에서 인정하는 권리 중 학생에게 적용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말한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재확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의 당사자인 학생의 의견이 논의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 제기도 나오고 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충남 학생인권조례’ 논의를 참관하기 위해 충남도의회를 찾아 방청한 한 고교생은 “인권을 모르는 이가 학생인권조례를 살릴지 말지 좌우하는 현실이 어이없었다”면서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대상은 학생인데, 학생의 발언권은 하나 없는 자리에서 조례 폐지가 결정되는 것은 모순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도의회는 조례 폐지 과정에서 학생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있다”면서 “‘어른들이 해결할 거니까 학생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식의 태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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