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한국은 소멸하고 있나?” 경고장
흑사병 때보다 인구감소 심각…2060년 3500만 이하
지옥 같은 입시경쟁, 누구 좋으라고 애 키우나?
다자녀 대학 수업료 면제? 기득권층에 득될 뿐
계급 재생산 구조 깨버려야…기본소득이 한 해법
“일본, 한국, 대만 3자 합동대책반을 만들자.” 사쿠라 오사무 도쿄대 대학원교수(과학기술사회론, 동물행동학, 진화생물학)가 이런 제안을 했다. 극도의 출산율 저하를 막기 위한 대책반인데, 그는 이 문제가 동아시아 전체의 문제라며 일국 차원에서는 해결될 수 없으니 다자 합동대책반을 만들자고 했다.
10일 <아사히신문>에 소개된 지난 2일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칼럼 내용을 보고 그는 그런 제안을 했다.
“한국은 소멸하고 있나?”
“한국은 소멸하고 있나?”(Is South Korea Disappearing?)라는 제목의 그 <뉴욕타임스> 칼럼은 한국의 합계출산율(이하 출산율로 약칭)이 2018년에 1.0 아래로 내려가더니 코로나 팬데믹 뒤 0.8로, 그리고 올해 2, 3분기 잠정 추정치가 0.7까지 떨어졌다면서, 매우 도발적인 화두를 던졌다. 이렇게 가다가는 군대를 유지하기도 어려워 “북한이 치고 내려올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이었다.
일본, 3자녀 이상 세대 대학 수업료 면제
사쿠라 교수에 따르면, 대만 출산율도 2022년에 0.87로 한국과 대차 없다. 일본이 1.26으로 조금 높긴 하나 급격한 인구감소를 피할 순 없다. 이미 매년 80만여 명의 인구가 줄고 있다. 이 때문에 여러차례 저출산 대책을 내 놓으면서 수십조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온 일본정부는 지난 7일, 이번에는 자녀 3명 이상을 둔 세대에게 2025년부터 아이들 대학교 수업료를 면제해 주기로 방침을 정했다.
지금까지도 일본정부는 연간 수입이 380만 엔(약 3420만 원) 미만의 세대에는 대학 수업료 감면 또는 장학금 지급 등의 지원책을 시행해 왔다. 하지만 별로 효과가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올해 봄에는 2024년부터 연수 600만 엔(약 5400만 원) 이하 중산층 다자녀 세대에게로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그런데 그마저 별로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자 아예 연수입 고하와 상관 없이 3자녀 이상 세대 모두로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3조 5천억 엔의 지원확보 방안까지 마련했다.
동아시아만의 문제도 아니다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의 출산율은 일본보다 더 낮다. 2022년 기준으로 0.87의 대만 외에 중국 또한 1.09로 별로 다를 게 없고, 홍콩은 한국과 거의 같은 0.701이며, 싱가포르도 1.05다.
그러니 급격한 출산율 저하가 ‘동아시아의 문제’라고 한 그의 지적은 옳다. 하지만 그것이 ‘동아시아만의 문제’는 아니다.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칼럼니스트 로스 다우타트가 지적했듯이 미국도 출산율이 1.7이고, 좀 개선되고 있다는 프랑스도 1.8이며, 이탈리아는 1.3, 캐나다 1.4로 동아시아보다는 약간 나아 보이지만, 이대로 가면 이들 나라도 감소 속도에 차이가 있겠지만 모두 인구가 줄어든다.
흑사병 재난 때보다 심한 인구감소
로스 다우타트의 단순 산술적 계산에 따르면, 인구를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출산율이 2.0이 돼야 한다. 남녀 한 쌍이 아이 둘은 낳아야 한 세대 뒤에도 지금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한국처럼 출산율이 0.7일 경우, 예컨대 한 세대 200명인 인구는 다음 세대는 70명으로 줄어든다.
다우타트는 이 정도면 14세기에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흑사병) 재난 때의 인구감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인구가 줄어든다며, 그 다음 세대는 25명 미만이 된다고 했다. 다른 변수 없이 출산율 0.7을 계속 적용하면 또 그 다음 세대는 17명이 될 것이고 그 다음 세대는 11명쯤 될 것이다. 이를 그대로 적용하면,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을 경우, 30년 뒤 한국 인구는 2500만 명 이하로 줄어들고, 60년 뒤에는 1750만 명 이하가 된다.
이쯤 되면 스티븐 킹의 소설 <스탠드>(The Stand)에 나오는 초강력 인플루엔자가 야기한 인구 붕괴에 가까운 상황이 될 것이라고 그는 썼다. <스탠드>에서는 미국의 생물학무기 연구소에서 발생한 사고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를 통해 세상에 퍼져 나간 초강력 인플루엔자로 인류의 99.4%가 죽고 그 인플루엔자에 내성을 지닌 0.6%만이 살아 남는다.
물론 한국의 인구가 불과 몇 세대 뒤에 수백만명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다우타트도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데 능한 생명체여서 어떤 식으로든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다. 다우타트는 그러나 2060년대 후반에 한국 인구가 3500만 명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은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면서, 이 정도 속도로 인구가 줄어도 한국사회는 위기를 맞게 될 것으로 본다.
북한군 대남 침공 가능성
그 정도 감소 속도로도 인구 피라미드가 급속히 역삼각형으로 뒤집히면서 다수의 고령층 인구를 소수의 저연령 노동층이 부양해야 하는 경제 붕괴상태를 감수하거나, 지금의 서유럽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는 외부 인구의 유입(이민) 정도보다 더 많은 이민을 더 급격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내몰릴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얘기 끝에 그가 꺼낸 것이 북한의 대남 침공 가능성이다.
생산성 등을 감안한 종합적인 국력 비교는 차치하고라도, 합계출산율 1.8인 북한 역시 지금의 인구수준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처지에 과연 남쪽을 침공할 수 있겠느냐는 걸 따지는 건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의 출산율 저하와 인구감소 속도가 그만큼 충격적이라는 사실일 테니까.
야만적인 학력경쟁 ‘지옥’ 등 한국적 특성들
다우타트는 한국의 출산율 저하 양태는 대체로 나라가 부유해지면 출산율이 내려가는 일반적인 경향보다 속도가 더 빠르고 정도도 더 심하다면서, 여기에는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 패턴들이 작용하고 있다며 몇 가지를 거론한다.
그 하나가 잔인한 학력경쟁의 학벌사회 문화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정규교육에 학원수업의 사교육이 더해져 “부모의 불안과 아이들의 불행을 조장하고 가정생활을 지옥으로 만들어, 노력할 의욕조차 잃어버리게 만드는 야만적인 학력경쟁 문화”다.
또 하나는 문화적 보수주의와 사회 경제적 근대화의 독특한 상호작용이다. 전통적 사회도덕관 때문에 성혁명이 억제돼, 예컨대 혼외자(사생아) 비율이 매우 낮았다. 그러나 결국 보수적인 사회적 기대에 대한 페미니스트 반란이 일어나고, 이에 대한 남성들의 안티 페미니스트적 반동이 교차하면서 양성간의 경직된 양극화, 그로 인한 정치지형의 변화 등으로 혼인율 자체가 기록적으로 낮아졌다.
그리고 한국의 보수주의가 역사적으로 종교적(기독교적) 특성이 강한 서양과는 달리 유교적이고 가족적인 특성이 강한 점도 가족 형성에는 불리하다고 본다. 강한 종교적 신념이 가족형성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또 좀 엉뚱해 보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활성화된 인터넷 게임 문화도 젊은 남성들을 장시간 가상세계에 몰입케 함으로써 이성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했다.
학벌사회, 기득권 유지 계급 재생산 구조
다우타트가 한국사회의 잔인한 학력경쟁의 학벌사회 문화를 가장 먼저 저출산 요인으로 꼽은 것은 그것이 서구 등 다른 사회와 비교해서 유독 두드러진 특징으로 비쳤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회들에도 학벌과 학력경쟁은 존재하지만, 한국은 차원이 다르며, 그것이 유난스런 한국 저출산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그는 봤을 것이다.
과도한 학벌과 학력경쟁 문화는 부정적인 면이든 긍정적인 면이든 다각도로 살펴 봐야 할 매우 복합적인 문제이지만, 사회계층 이동을 막고 기득권의 특권을 확대재생산하는 구조를 고착시킨다는 점에서 결국 사회를 퇴행과 붕괴로 몰아간다. 점수따기 경쟁을 통해 등수를 매기고 상응한 상벌을 주는 학벌사회 문화는 설사 그 시초는 객관적이고 공정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강자들, 가진 자들이 경쟁에서 유리해지는 구조가 고착되면서 기득권을 옹호 유지하고 그들의 특권적 지위의 영속화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점수따기 경쟁은 결국 무슨 수를 써서든 높은 점수를 딴 자들의 전횡과 특권에 대한 낮은 점수 취득자들의 불만과 저항을 효과적으로 잠재우는 계급 재생산 통로로 변질된다.
점수 경쟁체제는 기득권자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영속화하기 위한 장치이며, 서열화돼 기록된 점수는 인생의 어느 특정 시기에 점수따기 경쟁에서 지거나 그것을 거부한 이들의 이의제기나 도전을 영원히 묵살하는 '객관적' 증표로 동원된다. 다수의 '루저'들은 그런 메커니즘을 통해 패배를 내면화하면서 자책하고 침묵하고 굴종한다. 학력경쟁 학벌사회 문화가 기득권을 안전하게 재생산하는 마법이다.
3자녀 이상 세대 지원의 역효과
이렇게 보면, 3자녀 이상의 세대에 대학교 수업료를 면제해 주겠다는 일본정부의 저출산 대책도 기득권에 유리한 계급 재생산 구조를 그대로 두고 도전 기회를 좀 더 넓혀 주겠다는 것이어서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니시다 료스케 도쿄공대 리버럴 아트연구교육원 교수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최근 자녀 수가 많은 세대일수록 연간수입도 많고 대우가 좋은 대기업 근무자 비율도 더 높다. 따라서 다자녀 세대에 대학 수업료 면제라는 특혜를 줄 경우 양극화가 오히려 더욱 확대될 우려가 있다. 그럴 경우 수입이 적어 자녀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의 기회는 더욱 줄어들고 그래서 지원도 못 받고 자녀를 키울 수 없는 악순환이 심화될 수 있다.
이는 저출산 대책에서 경제적 지원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고, 오히려 양극화를 더 심화시켜 출산율을 끌어내리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중요한 것은 기득권 재생산구조 혁파
중요한 것은 기득권자들에게 유리한 계급 재생산구조를 혁파해서 기득권층을 축소하고 그들의 특권을 줄이거나 없애는 것이다. 그래야 사회 전체가 살아나고 저출산 문제도 해결의 길이 열리게 된다.
해법은 기본소득제?
경제적 지원 중에서 극도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유력한 방안의 하나가 ‘기본소득제’일 수 있다. 나라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차별없이 최소한의 기본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정한 소득을 보장해 주는 기본소득제는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는 끝없는 생존 불안, 배제와 우열에 대한 불안을 없애거나 완화시킴으로써 파괴적인 경쟁을 막고 기득권 계급 재생산 구조를 해체시킬 수 있다.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들어갈 비용은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팽배한 부작용과 사회적 비용보다 적을 것이며, 경쟁 완화로 인한 협력의 증대는 사회적 생산성과 행복도를 높일 수 있다.
글로벌 차원의 사고와 대책 필요
다우타트는 서구에도 피폐한 실력주의(meritocracy)가 있고, Z세대에서 남녀 간에 이데올로기적 분열이 심화되고 있으며, 세속화와 반자유적(anti-liberal)이지만 반드시 경건하지도 않은, 정신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우경화의 문화적 보수주의가 형성되고 있다고 얘기한다. 또 마찬가지로 가상세계의 유혹과 병리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한국의 지금 추세는 암울한 놀라움을 안겨 줄 뿐만 아니라 서구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경고라고 했다.
서구도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다우타트의 이런 얘기는 저출산 문제를 전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도 한다.
저출산을 막는 것만이 유일하고 올바른 해법일까? 인구를 계속 늘려가는 것이 인류 전체와 지구 생태계에 유리한 것인가? 그것이 과연 행복으로 가는 길인가. 왜 각 국가들은 인구 늘리기 정책에 저토록 경쟁적으로 골몰하는가.
이런 문제는 개인들 간의 무한 학력경쟁만큼이나 잔혹한 국가 간, 지역 간의 생존경쟁, 패권경쟁과 얽혀 있는 문제다. 저출산 문제가 일국 차원의 대책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임이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일본, 대만 3자 합동대책반을 만들자는 사쿠라 교수의 제안은 타당할 수 있다. 하지만 3국 또는 동아시아 차원만의 문제도 아니어서 글로벌 차원의 사고와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유엔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세계정부 같은 새로운 차원의 조직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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