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지킴이, 유엔 총장 '비상대권' 발동도 무시
팔 대사 "이중기준, 인종주의, 이스라엘 예외주의"
중 "인권 보호 외치며 전투 용인 미국 위선적"
러 "미·영,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대학살 공범"
요르단 "이스라엘에 대량 학살 면허증 주는 것"
"두 달의 대량 학살과 잔혹 행위에도 전쟁 범죄자들은 그들의 범죄를 계속 저지를 시간을 얻게 됐다." 리야드 만수르 주유엔 팔레스타인 대사는 지난 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특별 회의에서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즉각적 휴전 촉구 결의안이 부결되자 "내일까지 실수가 아니라 설계에 의해 어린이를 포함해 수백 명이 살해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23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은 목숨으로 이중기준과 편견, 인종주의, 이스라엘 예외주의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인도주의적 재앙은 더 심화된 무서운 단계로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만수르는 이스라엘의 목표는 "가자의 인종청소와 팔레스타인인 강제 추방"이라며 "휴전 요구 거부는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 제노사이드(집단학살) 중단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가자 휴전 결의안 또 '비토'…'공범' 자초
유엔 안보리 공식 브리핑에 따르면, 급속히 악화하는 가자의 인도주의 위기를 막고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비상대권'인 유엔 헌장 99조를 이례적으로 발동해가면서까지 소집했지만, 이날 안보리 특별 회의에서 아랍에미리트(UAE)가 제출한 즉각적 휴전 촉구 결의안은 상임이사국인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또다시 좌절됐다. 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서방의 일원인 프랑스와 일본을 포함해 13개국이 찬성했지만, 미국이 유일하게 반대하고 영국은 기권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공공의 적' '이스라엘 전쟁범죄의 공범'으로 낙인찍히는 순간이었다. 결의안이 통과하려면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고 5개 상임이사국 중 어느 한 나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안 된다. UAE는 결의안을 6일 발의했으나 24시간 만에 아랍·이슬람권 등 약 100개국의 지지를 얻어냈다. 표결에 앞서 구테흐스 총장은 "10월 7일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잔혹한 공격은 어떤 식으로도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차별적인 보복도 옳지 않다"면서 즉각적인 인도주의적 휴전을 촉구했다.
"무조건적 휴전, 또 다른 전쟁의 씨앗 뿌릴 것"
녹음테이프를 틀 듯 미국의 반대 논리는 똑같았다. 현 상황에서의 휴전은 하마스에 이로울 뿐이라는 것이다. 로버트 A. 우드 주유엔 차석대사는 "결의안에 담긴 무조건적 휴전 요구는 비현실적이고 위험하다. 하마스를 그냥 놔둠으로써 재조직해서 10·7 사태를 반복하게 만들 수 있다"며 "하마스가 파괴의 이념에 매달리는 한 휴전은 기껏해야 일시적"이라고 말했다. 우드는 "미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평화와 안보 속에 살 수 있는 지속적인 평화를 강력히 지지하지만, 즉각적 휴전은 지지하지 않는다"며 "하마스는 지속적인 평화와 두 국가 해법을 볼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오직 또다른 전쟁의 씨앗을 뿌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UAE 결의안에 "하마스 테러리스트" 비난과 국제법에 따른 이스라엘의 자위권에 관한 내용이 없는 점들을 거부권 행사의 또 다른 이유로 들었다. 그리고 최근 양측이 휴전 연장에 합의하지 못한 것은 하마스가 여성 인질을 석방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제안 발언에서 이스라엘의 가자 폭격 중단을 촉구하면서 결의안 채택을 호소했던 UAE의 무함마드 아부샤합 차석대사는 끝내 결의안이 미국의 반대로 부결되자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극단적 참사를 마주한 안보리가 휴전을 촉구할 수 없다"며 깊은 실망을 표시했다. 그는 안보리가 국제사회에서 더 고립되고 유엔 헌장이 부여한 국제 평화와 안보 유지 책임에서 동떨어지고 있다면서 사실상 미국을 겨냥했다. 아부샤합은 "우리가 단합할 수 없다면 팔레스타인인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비슷한 상황의 전 세계 민간인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앞서 제안 연설에서 그는 가자 전쟁 63일 만에 1만8000명 이상이 살해된 현 인도주의 위기 상황을 감안할 때 일시 휴전을 촉구한 안보리 결의안 2712호(11월 15일)로는 충분치 못하다면서 "지금 당장은 그 어떤 다른 고려도 즉각적 휴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 "인권 보호 외치며 전투 용인은 미국 위선적"
러 "미·영,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대학살 공범"
중국과 러시아도 미국의 거부권 행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중국의 장쥔 주유엔 대사는 미국의 거부권 행사에 먼저 "깊은 실망"을 표시했다. 그는 "가자 주민의 생명과 안전에 신경 쓴다고 주장하면서 전투 지속을 용인하는 것은 자기 모순이다. 분쟁의 확산 효과를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전투 지속을 용인하는 것은 자기 기만이다. 여인과 소녀, 그리고 인권의 보호를 거론하면서 전투 지속을 용인하는 것은 위선적이다. 그것은 이중기준이다"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러시아는 더욱 날을 세웠다. 드미트리 폴랸스키 주유엔 차석대사는 "오늘은 중동에서 가장 어두운 날 중 하나가 될 것"이라며 "냉소적으로 다시 한번 휴전 촉구를 봉쇄함으로써 미국은 우리가 보는 앞에서 추가로 수만 명은 아니어도 수천 명의 민간인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고 비난했다. 폴랸스키는 거부권을 행사한 미국과 기권한 영국을 지목한 뒤 "두 안보리 이사국이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대학살에 공범이 되는 걸 선택했다"며 "이번 투표 결과는 미국과 영국의 일반 시민의 마음에 고통스럽게 울릴 것"이라고 말했다. 표결에 앞선 발언에서 폴랸스키는 "동맹국(이스라엘) 보호를 위해 모든 걸 다하는 미국의 냉정하고 이기적이며 파괴적인 태도로 인해 안보리가 제 기능을 다 못했다"며 "미국의 조용한 외교의 결말은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의 무덤"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자비한" 이스라엘의 폭격과 터널에 바닷물 주입 계획을 언급하면서 "미국 외교는 (가자 지구의) 초토화와 파괴를 남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표결에선 일본이 평소 공동보조를 맞췄던 미·영과 달리 찬성표를 던져 눈길을 끌었다. 이시카네 키미히로 주유엔 대사는 결의안 부결에 유감을 표시한 뒤 "팔레스타인인이건 이스라엘인이건 모든 민간인의 인명 손실은 비극적"이라고 말했다.
요르단 "이스라엘에 대량 학살 면허증 주는 것"
AP통신과 알자지라 등 외신에 따르면, 워싱턴을 방문한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외무장관은 이날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휴전 촉구 결의안이 무산된 데 대해 "가자의 팔레스타인인들을 계속 대량 학살하도록 이스라엘에 면허증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파디 장관은 "우리가 더욱 노력을 해도 이스라엘은 학살을 계속하고 있다"며 "전투가 계속되는 한 미국의 전후 계획을 돕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아라비아 외무장관도 미국을 상대로 휴전을 추진하는 데 있어 어떤 입장이었는지에 대해 질문받자 "우리의 입장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무고한 어린이들이 죽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하마스 고위 간부 에자트 알 라시크는 "미국이 휴전 결의안 채택을 막는 것은 우리 국민을 죽이고 더 많은 학살과 인종청소를 저지르는 데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구테흐스 총장은 6일 유엔 헌장 99조의 발동 결정을 담은 공식 서한을 유엔 안보리 의장에게 보냈다. 서한에서 그는 "우리는 인도주의 시스템의 심각한 붕괴 위험에 직면해 있다. 상황은 빠르게 악화하면서 잠재적으로 모든 팔레스타인인과 역내의 평화와 안보에 되돌릴 수 없는 영향을 줄 재앙으로 가고 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런 결과는 막아야 한다"면서 이스라엘을 상대로 즉각적 휴전 촉구와 같은 안보리의 압박을 주문했다. 유엔 헌장 제15장(사무국) 99조는 "유엔 사무총장은 본인이 국제 평화와 안보 유지에 위협이 된다고 보는 어떤 문제든 안보리의 주의를 환기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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