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 저항' 통한 이-팔 분쟁 해결 6%에서 36%로
"새로운 세대, 절대 잊지 못할 점령의 참상 목도"
미국 호감, 10·7 전후 40%서 10%…바이든 더 참담
이스라엘과 '우호' 사우디·UAE 급락…이란은 급등
"팔레스타인의 대의(大義)는 아랍 세계에선 목숨처럼 중요하며, 이스라엘은 그것을 폭탄으로 제압하려 해선 안 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 국가가 없는 한 이웃 나라들과 평화롭게 지낼 수 없다. 아랍 전역에 걸쳐 대중들이 이것 외에 그렇게 개인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느끼는 이슈는 없다." 비당파적 리서치 네크워크인 '아랍 바로미터'(Arab Barometer) 연구팀은 '가자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아랍의 시각을 어떻게 바꿨나'란 14일 자 <포린 어페어즈> 기고문에서 "이스라엘 정치인들은 이 전쟁이 그들을 안전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안보가 강화되진 않을 것"이라면서 이렇게 충고했다. '아랍 바로미터'는 미국 프린스턴대의 아마네이 자말 교수(정치·국제관계학)와 미시간대의 마크 테슬러 교수(정치학)가 2006년 공동 창업해 아랍·북아프리카(MENA) 지역 여론조사를 해오고 있다.
이번 여론조사는 튀니지 국민 2406명을 상대로 일대일 인터뷰를 통해 이뤄졌다. 공동 연구책임자는 자말, 테슬러 교수와 아랍 바로미터의 마이클 로빈스 국장이다. 인터뷰는 10·7 하마스 공격 사건 이전 3주, 이후 10월 27일까지 3주 각각 진행했으며 그 결과를 토대로 아랍 대중의 민심 변화를 분석했다. 튀니지 민심을 아랍 민심으로 확장해석을 해도 되는지와 관련해 연구팀은 튀니지 국민은 서방과 비서방 모두에 '개방적'이고 지리적으로 떨어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직접적 연관이 없을뿐더러, 과거 여러 차례 조사들을 통해 대다수 아랍국 주민의 평균적 시각과 거의 유사한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봤다.
10·7과 이스라엘 보복 공격 최대 피해자 바이든
미국 호감도, 40%에서 10%…바이든은 더 참담
10·7 하마스 공격과 뒤이은 이스라엘의 보복 군사작전이 아랍인들의 시각을 어떻게 바꿨을까. 그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요약하면 미국과 '두 국가 해법'과 같은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지지는 하락하고, 이란과 무력 저항(armed resistance)에 대한 지지는 상승했다. 이스라엘과 우호적 관계인 나라들의 호감도는 모두 예외 없이 하락했고, 그중 미국이 가장 가팔랐다. 대미 인식 변화가 가장 두드러졌다. 미국에 대한 호감 대 비호감은 10·7 이전에 40% 대 56%이었으나 이후에는 10% 대 87%로 급변했다. 미국과의 긴밀한 경제 관계 희망도 56%에서 34%로 떨어졌다. 이스라엘 무조건 지지를 선언했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은 더 참담했다. 29%에서 6%로 추락했다. MENA(중동과 북아프리) 주민으로서 가장 중요한 미국의 정책을 묻자, '이-팔 분쟁 해결'이 10·7 이전에 24%였다가 이후 59%로 급등했다. 반면에 '경제 발전'은 20%에서 4%로 급락했다. 자말-테슬러-로빈스 연구팀은 "10·7 사건에 대한 무릎반사(무조건반사) 흔적은 없었다. 날마다 조금씩 꾸준히 바뀌면서 3주 후엔 엄청난 변화를 보였다. 튀니지인의 시각 변화는 하마스 공격이 아니라, 뒤이은 이스라엘의 가자 군사작전에 따른 민간인 희생 증가 때문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진단했다.
이-팔 전쟁에 '중립'을 유지한 국가들의 지지율은 큰 변동이 없었다. 조사가 끝난 10월 27일 현재까진 미국의 호감도 추락이 상대적으로 중립을 지켰던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호감으로 그대로 옮겨가진 않았다. 중국의 호감도는 70%에서 75%로 다소 올랐고. 긴밀한 경제관계 희망은 80%에서 78%로 오히려 떨어졌다. 러시아의 호감도는 56%에서 53%. 긴밀한 경제 관계 희망은 72%에서 75%로 조금 올랐다. 그러나, 중국이 득을 본 측면은 분명히 있다. '중-미 중 누구의 이-팔 분쟁 정책이 더 나은가'란 질문에 중국 선택은 10·7 이전에 33%이던 것이 50%로 대폭 올랐고, 미국 선택은 13%에서 14%로 조금 올랐다. '아랍 지역 안보 유지 정책'에 대해선, 중국은 31%에서 50%로 올랐고, 미국은 19%에서 12%로 떨어졌다.
이스라엘과 '우호' 사우디·UAE 급락…이란은 급등
이스라엘 호감 '제로'…관계정상화 12%서 1%로
역내 지역 강국들에 대한 인식도 크게 바뀌었다. 주로 이스라엘을 어떻게 대우하느냐를 두고 엇갈렸다. 먼저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했거나 추진 중이었던 중동 지역의 미국 동맹국들의 지지율이 하락했다. 10·7 사건 직전까지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미국과 협상했던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지지율은 72%에서 59%, 긴밀한 경제 관계 희망은 71%에서 61%로 각각 떨어졌다. 최근 외교 전성기를 구가하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 대한 지지율도 55%에서 40%로 급락했다. 2020년 9월 이스라엘과 아브라함 협정을 맺은 아랍에미리트(UAE)의 외교정책에 대한 지지율도 49%에서 33%로 하락했다.
튀르키예는 그동안 '팔레스타인의 고난'을 누구보다 강조해왔으나 각 68%로 10·7 사건 전후가 똑같았다. 최대 수혜자는 이스라엘에 극렬하게 반대한 이란이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외교정책 지지율은 29%에서 41%로 올랐다. 10월 17일 하메네이가 이스라엘에 가자 폭격 중단을 요구하고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보복 공격을 "제노사이드"(집단 학살)라고 비난한 이후 그 변화가 두드러졌다. 그 결과, 하메네이의 지지율은 사우디의 빈 살만이나 UAE의 셰이크 모하메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대통령의 그것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앞서게 됐다.
이스라엘에 대한 인식은 10·7 사태 이전에도 5%로 극히 비호감이었지만, 그 이후에는 바닥인 '사실상 제로'로 나타났다.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 지지는 12%였다가 1%로. 완전히 소멸됐다. 자말-테슬러-로빈스는 "이런 시각 변화는 아랍은 물론 세계의 정치 구도를 바꿔놓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들은 "미국과 역내 동맹국은 아브라함 협정 확장에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워싱턴은 또한 부상하는 중국이나 소생하는 러시아와의 경쟁에서 이점을 잃고, 심지어 사우디나 UAE 등 오랜 동맹국이 아랍 내 지지율 하락을 막고자 미국에는 덜 친절하고, 중·러 등 경쟁국은 더 잘 받아주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무력 저항' 통한 이-팔 분쟁 해결 6%에서 36%로
"새로운 세대, 절대 잊지 못할 점령의 참상 목도"
10·7 이전과 이후를 비교할 때 진짜 충격적인 것은 지금은 훨씬 더 많은 튀니지인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해 평화적 해결 보단 무력을 통한 해결을 원한다는 점이다. 이-팔 분쟁 해결 방안을 물은 결과, 10·7 이전과 이후가 각각 △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전의 국경을 기준으로 한 '두 국가 해법'은 66%에서 50%로 △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지닌 단일 국가 또는 연방 등 대안적 외교 방안은 18%에서 11%로 줄어든 데 반해 △ 기타는 6%에서 36%로 급등했다. '기타'의 거의 대부분은 이스라엘 국가의 제거를 포함한 점령에 대한 무력 저항에 대한 지지 응답이었다. 자말-테슬러-로빈스는 "무력 저항 지지의 증가는 위험한 결과 낳을 수 있고, 현재 진행 중인 침공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거나 미래의 충돌에 문을 열어줄 수 있다"며 "지역 안정을 위해 이스라엘과 동맹국들은 가자 전쟁을 종식하는 길을 찾고 신속히 이-팔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전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구팀은 "가자에 대한 폭격이 지속되면서 이런 리스크는 더 커질 것이며. 전투가 끝난 뒤조차도 이 지역은 더욱 위태로울 것"이라고 걱정했다.
아랍 바로미터 연구팀은 이어 "새로운 세대는 지금 TV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주검들과 비통에 찬 가족들의 비극적 모습 등 절대 잊지 못할 점령의 참상을 목도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이스라엘의 존재와 싸우는 무장 단체들에 돈을 대고, 동참하며, 도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10월 27일 자 데이터에 따르면,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이 극심한 경제난에도 튀니지인들이 '팔레스타인 대의에 대한 국제적 관여'와 '경제 발전' 중 어느 것이 시급하냐는 질문에 59%가 팔 문제를 선택해 4%의 '경제 발전'을 압도한 대목이다. 연구팀은 "이스라엘과 미국은 일부 억압 체제들과의 '콜드 피스'(긴장 속 평화)가 아니라 아랍 세계 전반과 진정한 평화를 추구한다면 정책을 바꿔야 한다"며 "모두가 팔 인민의 공정하고 존엄한 미래를 위해, 특히 두 국가 해법을 향해 부지런히 협력해야 한다. 그것이 이스라엘이 이웃 나라 주민들의 가슴과 마음을 열고 지난 세기 중동에 만연했던 폭력의 악순환을 끝내는 유일한 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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