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양 한복판 요충지…모리셔스에 반환 철회 움직임

배후에는 이라크 출격, 중국봉쇄 군기지로 임대한 미국

"식민지 불법 점령‧조기 반환" 유엔총회‧ICJ 결정 무시

중 관영지 "앵글로색슨 제국, 인권‧국제법 유린" 반발

1960년대 영국 군사기지 조성 때 원주민 2000명 추방

미국 해·공군 기지로 '불침 항모'로 불리는 인도양의 디에고가르시아섬을 비롯한 차고스제도의 주권을 둘러싼 영국과 모리셔스의 분쟁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1965년 '영국령인도양식민지'(BIOT)에 편입된 차고스제도는 영국의 마지막 아프리카 식민지다. 그동안 차고스제도 점령은 불법이며 조기에 반환하라는 유엔 총회 결의안과 국제사법재판소(ICJ) 결정, 유엔국제해양법재판소 명령을 묵살해온 영국은 결국 국제사회 압력에 밀려 작년 11월 모리셔스와 '영토 주권' 협상을 개시하는 데 동의했지만, 최근 반환을 못 하겠다며 철회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 뒤 제럴드 포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등 2척의 항공모함을 이스라엘 인근 지중해 동부연한에 파견했다. 사진은 10월 28일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하고 있는 항모 아이젠하워. 2023.10.28. AFP 연합뉴스
미국은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 뒤 제럴드 포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등 2척의 항공모함을 이스라엘 인근 지중해 동부연한에 파견했다. 사진은 10월 28일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하고 있는 항모 아이젠하워. 2023.10.28. AFP 연합뉴스

'불침 항모' 디에고가르시아 반환 무산 위기

영국 텔레그래프와 유럽 외교안보 매체인 모던디플로머시에 따르면, 영국의 리시 수낵 정부는 지난 8월 입각한 그랜트 샵스 국방장관이 제시한 새로운 안보 전략에 따라 차고스제도 반환 계획을 철회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최근 샵스 국방장관과 올리버 다우든 부총리는 데이비드 캐머런 외무장관을 찾아가 차고스제도의 반환 계획 폐기를 촉구했다. 특히 이들 세 장관은 차고스제도를 '중국과 가까운' 모리셔스에 넘긴다는 것은 "영‧미 특수관계"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영국의 안보 이익을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한다. 한 영국 정부 소식통은 "샵스는 그 제도를 모리셔스에 반환하는 것에 극렬하게 반대한다"며 "그는 캐머런과 함께 들어오면서 '도대체 여기서 뭔 일이 벌이지는거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영국이 버젓이 반환 협상의 일방 파기를 추진하는 배후에 미국이 있음은 물론이다. 중국을 봉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관철하는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 섬의 군사 전략적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동쪽 인도양 남서부 차고스제도의 주도(主島)로 면적이 390㎢인 디에고가르시아는 인도양 한복판에 있는 군사 전략적 요충지다. 미국은 현재 이 섬에 대규모 해‧공군 기지와 비밀 군사시설을 운영하면서 중동과 서남아시아 지역에 전력을 투사하고 있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2003년 이라크 폭격 때 디에고가르시아를 전진 기지로 활용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또한 미 해군은 작년부터 중국군의 잠수함, 군함 감시와 중국 인터넷 정보 감청을 위한 '빅 웨이브 작전'을 통해 디에고가르시아에 해저 광케이블을 깔았다.

 

인도양 중앙에 위치한 미군의 군사요충지인 디에고가르시아 섬. [구글 지도 갈무리]
인도양 중앙에 위치한 미군의 군사요충지인 디에고가르시아 섬. [구글 지도 갈무리]

영, 군사 기지 조성하며 원주민 2000명 강제 추방

그동안 차고스제도의 '주인'은 여러 차례 뒤바뀌었다. 18세기 이후 모리셔스의 영토였다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됐고,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이 1814년 프랑스로부터 넘겨받아 식민지 경영을 하다가 1965년 '영국령인도양식민지'에 편입시켰다. 그리곤 이듬해 차고스제도의 가장 큰 섬인 디에고가르시아를 미국에 50년간 임대했다. 2016년 계약 기간이 만료됐지만, 영국은 2036년까지 20년을 연장해 줬다. 1968년 영국에서 독립한 모리셔스는 영국이 독립 이전에 식민지 분할을 금지한 유엔 결의안 1524호를 위반했다며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당시 영국은 군사적 필요성이 없어지면 돌려주겠다고 말해 사실상 영구 점령의 뜻을 내비쳤다.

디에고가르시아 군사 기지 조성 과정에서 '인종 청소'에 버금가는 인권 유린도 자행됐다. 영국은 1967~73년 기간에 이곳에 살던 아프리카계 원주민 2,000명을 수천 마일 떨어진 모리셔스와 인근 세이셸로 강제 이주시켰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당시 영국 당국은 식량 선적 선박의 접안 금지를 통해 물과 식량 공급을 차단해 인위적인 기근을 조장했으며 그 과정에서 상당수 원주민이 자살하기도 했다. 보상 없이 쫓겨난 원주민들은 2000년에야 영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영국 법원은 강제 이주가 불법이라며 보상하라고 판결했다. 영국 정부는 2016년 디에고가르시아 임대 계약 연장의 대가로 차고스제도 원주민들에게 10년간 400만 파운드(약 60억 원)를 지원하기로 했지만, 주민의 고향 복귀에는 눈을 감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5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회의를 열고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교전 중지와 무조건적 인질 석방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2023. 11. 15. [유엔 안보리 제공]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5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회의를 열고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교전 중지와 무조건적 인질 석방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2023. 11. 15. [유엔 안보리 제공]

유엔 "식민지 불법 점령‧조기 반환"…영국 "못 한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영국과 모리셔스 간 '영토 주권' 분쟁에서 모리셔스의 손을 들어줬다. 가장 대표적 사례는 2017년 6월의 유엔 총회 결의안이다. 모리셔스는 유엔 총회에 영국이 모리셔스에서 차고스제도를 '떼어간' 조치에 관해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의 권고의견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제출했고, 결의안은 찬성 94표, 반대 15표로 채택됐다. 심사 결과 국제사법재판소는 2019년 2월 영국의 차고스제도 분리는 "불법 행위"이며 "가급적 빨리 반환하라"고 결정했다. ICJ는 결정문에서 "모리셔스에서 분리할 당시 차고스제도는 분명히 영토의 한 구성 부분"이라며 "차고스제도 분리는 자유롭고 진정한 주민의 의지 표현에 바탕을 둔 게 아니었다"고 밝혔다. ICJ는 "1968년 독립할 때 모리셔스의 탈식민 과정이 합법적으로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분리 조치는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ICJ는 "영국의 지속적인 차고스제도 관리는 국제적 책임을 수반하는 불법 행위"라면서 "모든 유엔 회원국은 모리셔스의 탈식민 과정을 완성하는데 유엔과 협력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식민지를 반환하란 얘기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ICJ가 관할권이 없다면서 반환 결정을 거부했다. 그러자 다시 유엔 총회는 2019년 5월 차고스제도는 "모리셔스 영토의 한 구성 부분을 이룬다"고 확인한 뒤 "영국은 최대 6개월 안에 무조건 식민당국을 철수하라"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찬성 116표, 반대 5표였다. 반대에는 앵글로색슨 동맹 '오커스'의 멤버인 미국, 영국, 호주가 포함됐다. 그뿐이 아니다. 2021년 1월에는 유엔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가 특별재판을 열어 ICJ의 결정을 재확인하고 모리셔스에 차고스제도를 넘기라고 영국에 명령했다. 이런 흐름을 타고 모리스셔스 정부는 차고스제도의 산호섬인 페르스 반호스에 대표단을 파견해 국기를 게양하기도 했다.

 

미국을 방문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왼쪽)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7일(현지시간) 국무부에서 회담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12.07. [AFP=연합뉴스]
미국을 방문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왼쪽)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7일(현지시간) 국무부에서 회담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12.07. [AFP=연합뉴스]

블링컨 "영국 주권 인정"…유엔총회‧ICJ 결정 무시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방미 중인 캐머런 외무장관과 7일 워싱턴D.C에서 회담하고 디에고가르시아에 있는 미국과 영국의 "필수적인" 기지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캐머런은 이 자리에서 영국 정부의 최근 반환 불가 움직임을 전했고, 블링컨 장관은 "그것은 우리의 지역 안정을 뒷받침하고 신속한 위기 대응 능력을 부여하며 우리가 직면한 가장 도전적인 위협들에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며 디에고가르시아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블링컨은 "우리는 '영국령인도양식민지'에 대한 영국의 주권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 섬을 포함한 차고스제도의 반환에 미국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다.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유엔 총회와 국제사법재판소, 국제해양법재판소의 등 국제사회의 '결정'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9일 자 사설을 통해 차고스제도의 주권과 관련해 영국과 미국이 과거에도 지금도 '거래'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 거래들은 극도로 추잡하고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비난했다. 사설은 이어 "차고스제도 문제에서 영국과 미국은 그들이 늘 얘기하는 인권과 국제 규범, 도덕성, 국제법을 짓밟아 왔다"며 "이들 신‧구 앵글로색슨 제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국제 규범이라고 여기면서 2023년에도 여전히 많은 국제 문제에서 제국주의적 행태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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