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언 못할 절망 속에서 길어올린 진주 같은 언어

‘깊은 절망’을 ‘더 높은 희망’으로 승화시킨 독백

나는 정경심 교수가 너무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다

행복한 자유인으로, 영혼을 고양시키는 시인으로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강미숙/시민소셜칼럼니스트
강미숙/시민소셜칼럼니스트

<나 혼자 슬퍼하겠습니다>, 정경심, 보리

한 가족을 어둠의 터널 속에 가두었던 이들의 킬킬거림은 얼마나 비열한가. 뻔히 알고도 짐짓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는 이들의 악마 같은 웃음은, 모두가 하는 일이 오직 그들에게만은 허용되지 않은 특권이라며 오라를 묶었던 이들의 세상은 얼마나 저급하고 치졸한가.

진주는 모래알을 품은 조개가 수없는 날들을 살이 에이고 찢기는 고통을 이겨낸 산물이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절망 속에서 길어올린 그의 언어 곳곳에 핏빛이 배어나오는 것도 진주를 키워낸 조개의 아픔을 닮았다. 살은 찢기고 녹아내렸지만 먼 길을 돌아온, 언 땅을 뚫고 피어나는 봄꽃처럼 감히 폄훼할 수 없는 정신의 고갱이를 시집으로 묶어 그동안 지켜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슬퍼하던 이들에게 오히려 고마웠다고 인사를 전한다.

간담이 다 녹을 정도의 ‘깊은 절망’을 ‘더 높은 희망’으로 승화시킨 그녀의 독백을 들을 수 있어 반갑고, 좋아하는 출판사 ‘보리’에서 출간되어 더 기뻤다. 주문 첫날 주문서를 넣고 길 떠나는 전날 받아들어 절반쯤 읽었을까, 먹먹한 마음으로 예정돼 있던 여행을 다녀와 보니 예의 정갈하면서도 활달한 필체의 사인본이 당도해 있었다. 불편한 몸으로 한 권 한 권 사인했을 모습이 그려져 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강미숙 시민소셜칼럼니스트 제공
강미숙 시민소셜칼럼니스트 제공

그녀가 영어의 몸이었던 때 기대하지도 않았던 답장을 받은 적이 있다. 그녀를 사적으로 아는 이들은 한결같이 그녀가 유쾌하고 활달한 사람이라 했는데 과연 그러했다. 정경심 교수는 초등학교 3학년 2학기에 서울로 이사하기 전까지 거진, 가평을 거쳐 원주 일산동에서 초등 저학년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동네 논두렁에서 썰매를 제치고 메뚜기를 잡던 그때가 가장 행복한 학창 시절이었다고 추억했다.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힘이 세다. 단아한 필체와 활달한 문장에서 느껴지는 다정함과 강인함은 그녀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금세 알아차리게 한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걱정’보다는 ‘응원’을 하게 된 게 말이다. 그러나 그땐 깊은 절망의 먼 길을 이미 반절 이상 지나온, 신영복 선생님의 말대로 겨울 나이테를 여러 번 두른 후였다.

그녀의 책을 보면 3년 2개월, 1152일, 정경심이 아니라 수인번호 443번으로 경기도 의왕 청계산 아래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모래알을 품고 보낸 인고의 시간들이 보인다. 더러 죽음 문턱까지 갈 만큼 절망하고 더러 원망과 억울함으로 이를 앙다물기도 하고 더러 절대자에게 절규도 하였으리라. 그러나 오랜 인고의 세월 끝에 그가 비로소 맞이한 평온과 평화, 성찰의 읊조림은 우리에게 더없는 위로와 용기를 준다.

문을 열어도 허락된 금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이에게 창살은 제일 먼저 마음에 둘러쳐지는 법이다. “‘왜 하필 내가 도대체 왜 내가?’/예기치 않은 불행 앞에서/모든 것을 부정하며 부르짖던 마음”이 경계 너머의 다른 세상, 변두리의 세계를 바라본 끝에 “반드시 나여야 합니다/하필 나여야 합니다”(p.237 「해답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강을 건너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역모죄가 아닌 바에야 위리안치된 형조판서의 아내를 그토록 오래 옥살이를 시킨 역사가 있기는 했던가.

‘요점은 내 팔자가 더럽다는 것/남편도 아이들도 나 때문에/지옥으로 떨어졌잖아/조용히도 아니고 천천히도 아니고/정말이지 요란하게 떨어져 버렸어’(p.100 「운명의 바퀴여 제발」) 이 글에서 ‘나’가 아닌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회한이 전해져 함께 울었다. 자식을 향한 어미의 상식적인 정성이 ‘천하의 몹쓸 짓’으로 매도당했으니, 그것이 3심을 거치면서도 4년을 살만큼 중대범죄라는데, 게다가 아들의 쪽지시험 조력이 징역 1년감이라는데 어찌 대한민국 법의 칼날은 그들 가족에게만 그다지도 살벌한 것인지 나조차 이해가 안 되는 걸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살 찢김이, 얼마나 뜨거운 피의 솟구침이 있었을 것인가.

 

강미숙 시민소셜칼럼니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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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모든 것은 돌고 도는 법이니 ‘공포를 향해 온몸을 던지는 마음/두렵지만 멈출 수 없는 마음’(p.121 「용기」)만 있다면 “‘망연자실할 필요 없어요,/뿌리가 깊으면 문제 될 게 없어요’/칼날의 무자비함을 비웃고 있습니다.”(p.202 「뿌리 깊은 들풀」)라는 말에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는다. 초봄, 아니 새봄에 꽃을 피우는 것들은 꽃눈을 달고 겨울을 난다. 그 보드라운 솜털의 꽃눈을 차디찬 바람과 폭설에 내어주고 무거운 춘설까지 견디고 나서 비로소 꽃눈을 열어 꽃을 피워 올리는 것이다. 그러니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너무 늦게 알지 말’ 일이다.

겨울 찬바람에 헐벗은 나무는

일월부터 새봄을 준비했다

세상에 등장하는 디데이는

봄꽃이 피어나는 날

그러나 그의 준비는 겨울의 한가운데였으니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너무 늦게 알지 말라

새봄의 찬가는 가장 어려운 시기 한겨울에

묵묵히 준비했던 정신에게 걸맞은 것이니

그대 그 결실을 그 꽃을 찬양하더라도

잉태의 인고를 잊지 말지니.

p.136 「나무」

 

강미숙 시민소셜칼럼니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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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극한의 통증을 견디며 웅크리고 엉거주춤거리며 가까스로 통증이 적은 자세를 찾아 써내려간 글귀들은 A4 용지 4분의 1만한 크기의 구치소 보고전 용지라고 한다. 책에 부록으로 함께 전해온 그림엽서가 딱 그만한 크기인 것 같다. 척추질환으로 응급수술했던 나는 극한의 허리 통증을 떠올리며 보고전 크기 비슷하게 종이를 잘라 엎디어 시편을 따라 써보았다. 시편마다 반점도 온점도 없이 마침표 하나만 오직 마지막 행에 두는 일관됨까지도. 현대 영미시인 T.S. 엘리엇 연구자인 그녀의 글들은 처연하고 아름다웠다. 아마도 젊은 날 시인 L과 P의 시 앞에서 주눅 들고 절망하기도 했었나 본데 내게 감히 시를 평할 능력은 없지만 그녀는 이미 빛깔이 분명한 시인이다. 비록 타의라 할지라도 벼랑 끝까지 몰려 인간의 바닥을 직면하며 가슴이 바짝 타들어 갈 정도로 모든 욕망과 기대를 비워낸 이가 얼마나 있으려고. 그녀는 정교하지 못한 거친 단어라 했으나 오히려 그 생생한 날것이 고통 속에 던져진 인간의 가장 진솔하고 내밀한 언어가 아닐는지.

그러나 나는 다시 펜을 들어 본다

시인이 뭐 대수겠는가

시는 뭐 명품이 따로 있는가

주눅과 절망은 그냥 놔두고

마음을 벼리는 시를 쓰겠다고 나는 작정했지

p.161 「시인이 된다는 것」

그의 시는 나약한 개인으로서 고통의 근원을 묻고 절대자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과 자연을 통해 배우는 깨달음을 담고 있다. 어미로서의 미안함과 동시에 단단하게 자라 어느새 기대도 될 것만 같은 아이들에 대한 뿌듯함과 자랑스러움, 이보다 더 애틋한 사부곡이 또 있을까 싶게 길 없는 길을 걷겠다는 남편 조국을 무한히 사랑하고 신뢰하는 마음이 절절하다. 또 만나보지 못했던 경계 너머의 다양한 삶에 대한 조용한 존경과 애정에서 진심이 읽힌다. 코로나로 격리되었던 방이 오랜 단식 끝에 조용히 삶을 마감한 이의 방이었음을 알고 ‘울어주는 이 하나 없어 그 밤 내가 울었다’, ‘그 밤 삼배하고 좋은 곳에 가시라고/내가 울었다’(p.102 「잊히는 죽음」)며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닌 이들의 고통에 연민한다. 아니, 절망하고 또 절망하며 그녀 자신이 그들과 동일시되었으니 연민이 아니라 동병상련이려나.

그리고 이 책을 굳이 출간한 이유라고 밝힌,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버티고 견디게 해준 일면식도 없는 수많은 이들에 대한 감사가 곳곳에 배어있다. 친구들의 성화에 감옥 생활 2년 만에 영치금 계좌를 공개했는데 알지 못하는 이들의 영치금이 당도하고 심지어 계좌한도액의 빈자리를 찾아 3원을 입금한 입금표를 들고 목놓아 울었다는 그녀는 기꺼이 그 마음들을 헤아려 수술하고 돌아가는 길에 극세사 이불도 사고 선크림도 사고 처음으로 영양크림도 사고 탈모약도 사고 과일과 초콜릿도 사서 뿌듯하게 쟁여 두었노라며 ‘힘을 내서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지키겠노라’ (p.258 「나를 울린 영치금」) 전했다. 그 다짐은 신기하게도 무언 무형의 에너지로 다 전해졌음이다.

‘죽음의 길을 가지 않은 것은/사람 때문이다... 우리를 지탱시킨 것은 우리를 살린 것은/결국, 사람이다’(p.78 「결국 사람이다」) 한 것처럼, ‘흐르는 시간에 맑은 눈을 씻고/앞으로 나아가는 힘/어떠한 시련도 막을 수 없는 힘/나는 내 아이에게서 배웠다//그것은 긍정의 관점/그것은 꺾이지 않는 정신/그것은 찰나를 정복하는 의지/나는 오늘을 사는 힘을/ 진정한 낭만주의를/내 아이에게서 배웠다/그리고 또한 배웠다/무한히 감사하는 법을.’(p.218 「진정한 낭만주의」) 한 것처럼 결국 우리가 기댈 것은 시대를 함께 건너가는 동료들이며 아이들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낭만이라는 것을 그녀를 통해, 그리고 나도 그녀의 딸을 통해 배운다.

 

강미숙 시민소셜칼럼니스트 제공
강미숙 시민소셜칼럼니스트 제공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형법학자와 살면서도 형벌권의 남용이라는 쓰디쓴 고통 속에 있었던 정경심 교수를 생각할 때마다 떠올리게 되는 「주홍글씨」의 주인공 헤스터 프린. 그녀는 신대륙으로 이주하기로 하고 먼저 건너갔으나 남편이 오지 않아 다른 남자와 사랑했고 딸을 낳아 그 이름을 펄(진주)이라 했다. 남편 아닌 남자를 사랑한 벌로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긴 헤스터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대가를 담담히 받아들이며 강인한 여성으로 살아간다. 평생 자유사상과 고통받는 약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았던 그녀의 가슴에 새겨진 주홍글씨 A(Adultery)는 차츰 Angel의 의미로 승화한다. 오직 사랑, 그것은 어떤 고통도 이겨내게 만드는 힘이다. 딸에게 선사한 이름 펄은 그녀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

나는 정경심 교수가 너무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 형기를 마치지도, 아들 입시 건과 관련해 재판 중이기도 하지만 설령 모든 것이 다 끝나고 진실로 자유로운 몸이 된다 해도 말이다. 이제 더 이상 출구를 찾아 헤매지 말고 멋지게 비행기를 타고 여행(p.146「여행」)도 하고 얼굴에 영양크림과 선크림도 듬뿍 바르고 유년 시절의 추억이 깃든 소똥을 찾아 시골길도 걷고 일산동 골목도 걸으며 자유인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학자로서나 학생들의 인생에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교육자로서의 공적 책임감에서 벗어나 햇볕을 즐기고 영혼을 고양시키는 시인으로서 만나고 싶다. 우리는 그저 ‘그 가족의 모습을/오래 그리워하며 오래 고대하며/지켜볼 밖에.’(p.142 「‘안녕’을 고하는 법」) 그것이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태도일 것이므로.

나는 보수주의자

나는 집 바꾸는 것을 싫어하고

나는 차 바꾸는 것도 싫어하고

나는 사람 바꾸는 것도 싫어하는

나는 보수주의자

나는 화장도 싫어하고

나는 성형을 싫어하고

나는 염색도 싫어하는

나는 보수주의자

나는 사랑을 믿고

나는 결혼을 믿고

나는 아이를 믿는

나는 보수주의자

그러나 나는 역사를 믿고

그러나 나는 진보를 믿고

그러나 나는 인간의 이성을 믿는

나는 진정한 보수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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