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도서국의 '핵오염수 성명서' 왜 미지근했나

나라마다 '독자적 주권 있다'며 어정쩡한 태도 보여

'일본의 방류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회원국은'?

10일 태평양 섬나라 정상들이 쿡제도에서 개최한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정상회의에서 일본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투기에 ‘강한 우려’를 표명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PIF 홈페이지
10일 태평양 섬나라 정상들이 쿡제도에서 개최한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정상회의에서 일본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투기에 ‘강한 우려’를 표명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PIF 홈페이지

태평양 섬나라 정상들이 일본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투기에 ‘강한 우려’를 표명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공동성명은 쿡제도에서 개최한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정상회의에 참석한 회원국 정상들이 회의 마지막 날인 지난 10일(현지시간) 나왔다.

11일 교도통신 기사를 인용한 국내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성명에는 “정상들이 태평양에서 잠재적인 핵 오염 위협의 중대성에 강한 우려를 갖고 있음에 유의한다”는 입장이 담겨 있다. 교도통신은 성명에 “일본의 방류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회원국을 배려하는 문구도 들어있다”고 분석했다. 바로 “정상들이 각각 독자적인 입장을 결정할 주권이 있다”는 부분이다. 한 목소리를 내도 시원찮을 판에 ‘뜨뜻미지근한’ 모습이다.

이유가 뭘까? ‘일본의 방류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회원국들’은 도대체 어떤 나라일까? 국내 일부 언론은 ‘일본 정부의 외교 노력’을 이유로 든다. 참으로 단순하고 표피적인 분석이다.

태평양 도서국 일부는 ‘친일본’ 뿌리

‘정상들이 각각 독자적인 입장을 결정할 주권이 있다’고 주장하는 나라들이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러나 미크로네시아 3국(미크로네시아연방, 마셜제도, 팔라우)일 가능성이 높다. 세 나라는 전통적으로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도서국들과 태평양을 공유하는 일본에게 “태평양 도서국은 친일 국가군(群)이자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다양한 노력에 대한 강력한 지지 모체이며, 일본 외교에 매우 중요한 나라들”이다. 일본 외무성이 발행한 <일본의 국가별 개발지원 데이터북>(2013년)에 나오는 말이다. 이런 일본의 강한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역사적 배경이 있다.

일본은 1919년부터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령으로 미크로네시아 3국을 통치한 역사가 있다.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인구의 약 20%가 일본계다. 일본계는 3국의 정·재계는 물론 사회 각분야를 장악하고 있다. 구조적으로 친일본의 토양이 굳건하다.

게다가 일본은 1980년대 후반부터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태평양 도서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1997년부터는 3년에 한 번 태평양 도서국 정상들을 일본에 초청, 태평양 섬나라 정상회의(Pacific Islands Leaders Meeting, PALM)를 개최해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다.

 

비키니섬의 핵폭발…1946년 7월 1일 09시 00분 1초, 미국의 두번째 핵실험이자 세계 최초의 수중 핵폭발 실험 장면이다.
비키니섬의 핵폭발…1946년 7월 1일 09시 00분 1초, 미국의 두번째 핵실험이자 세계 최초의 수중 핵폭발 실험 장면이다.

‘일본계’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나라들

나라 별로 보자.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초대 대통령은 일본인 아버지와 원주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일본인 2세 토시오 나카야마였다. 그의 형은 주일본 미크로네시아대사관의 대사를 지냈다. 일본에 대한 반감이 거의 없다. 일본의 ‘말빨’이 먹힐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점령지였던 팔라우는 20세기 말까지 ‘세계 최후의 신탁통치령’이었다. 그러다 1994년 10월 1일 독립국의 지위를 획득했다. 일본인 2세 대통령인 나카무라 쿠니오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남양군도에서 복무했던 일본군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원주민 부족장의 딸이었다. 1938년의 한 통계에 따르면 당시 일본인은 1만 5669명, 원주민은 6377명으로 2배 이상 많았다. 일본인 중 약 7500명은 오키나와 출신이었다. 팔라우는 일본어를 공용어로 지정한 유일한 비일본 국가이기도 하다.

미국은 1946년 신탁통치령이던 마셜 제도의 비키니 환초에서 핵실험을 실시한 뒤로 1958년까지 수폭실험까지 모두 23회의 핵실험을 실시했다. 그래서 마셜 제도 주민들은 핵에 대한 ‘원초적 공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친일본 성향은 매한가지다. 초대 대통령이 일본계 아마타 카부아이고, 현 대통령 데이비드는 그의 아들이다.

 

미크로네시아 연방 지도. 나무위키
미크로네시아 연방 지도. 나무위키

일본의 군사, 재해구호 지원도 영향

산케이신문은 지난 3월 26일 “태평양 도서국 가운데 해양경비대만 보유한 국가도 일본 자위대의 지원 활동 대상에 포함할 방침을 굳혔다”고 보도했다. 군대가 없는 태평양 섬나라와 안보협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태평양 섬나라 14곳 가운데 군대 보유국은 파푸아뉴기니, 피지, 통가 등 3개국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 일본 정부는 안보 관련 3개 문서에 ‘도서국에 대한 지원 확충’ 등을 명시한 바도 있다.

태평양의 섬나라들은 광대한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어업자원을 지키기 위한 해양감시와 화산폭발 등 자연재해에 맞설 수 있는 재해구호 능력 등도 미약한 편이다. 현실적으로 태평양 도서국들 중에는 외국의 원조나 지원 없이는 어려운 나라들이 많다. 태평양의 섬나라들이 ‘친일본 정책’을 버릴 수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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