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국제유가 들썩

고유가는 고금리·고환율·고물가로 이어져

이자 부담 커지고 무역수지에도 악영향

고유가 충격 흡수할 재정 정책 절실한데

부자 감세로 세수 부족해 대응 여력 줄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다시 들썩이고 있다. 지난 9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 인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장보다 3.59달러(4.33%) 급등하며 배럴당 86.38달러를 기록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원유 생산국이 아니라 유가 상승이 일시적 현상에 그칠 수 있다. 하지만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유가의 변동성이 커질 것만은 분명하다. 이번 전쟁이 이란 등 다른 국가로 확전되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공습으로 가자지구 내 건물이 붕괴한 모습. 이스라엘을 겨냥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과 이에 맞선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지금까지 양측에서 1천100명 이상이 사망했다. 2023.10.09.  EPA 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공습으로 가자지구 내 건물이 붕괴한 모습. 이스라엘을 겨냥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과 이에 맞선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지금까지 양측에서 1천100명 이상이 사망했다. 2023.10.09.  EPA 연합뉴스

고유가는 고금리와 고환율, 고물가로 이어져 한국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준다는 점에서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수출이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입액이 다시 증가하면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진다. 고금리로 기업과 가계는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투자와 소비가 감소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정부는 반도체 경기 회복과 수출 감소세 둔화를 내세우며 여전히 ‘상저하고(하반기 경기 반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중동발 고유가가 현실이 되면 내년에도 경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

문제는 정부가 대응할 카드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세수 부족으로 재정 정책의 운신 폭이 좁아진 데다 원 달러 환율이 뛰고 있어 금리 인하는커녕 금리 동결을 유지하기도 힘들다. 재정과 통화 정책의 손발이 모두 꽁꽁 묶여 있는 형국이다.

현 시점에서 국제 유가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유가 상승을 부추길 것이라는 의견과 단기적이고 제한적일 것이란 주장이 팽팽하다. 비관론의 근거는 전쟁이 미국 대 이란의 대리전으로 확전되면서 장기화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서방 언론들은 이란 배후설을 제기하고 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 무장단체들이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란 정부는 이를 공개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이를 빌미로 이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면 그 불똥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이란의 석유 수출 물량이 줄면 국제 유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반론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원유 생산지가 아니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지정학적 리스크로 일시적으로 유가가 급등했을 뿐 원유 공급과 수요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모건스탠리는 “이번 충돌이 다른 국가로 확산할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 만큼 원유 가격에 미칠 장기적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이후 국제유가 추이.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이후 국제유가 추이. 연합뉴스

지난 5월과 6월 안정세를 보였던 유가는 8월부터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물가 안정에 도움을 주었던 석유류 가격도 뛰기 시작했다. 지난달 석유류값 하락 폭은 전년 동월 대비 4.9%에 불과했다. 지난 7월과 8월 하락 폭은 각각 25.9%와 11.0%에 달했다. 석유류값 하락 폭이 둔화하며 지난달 소비자 물가는 전달보다 0.3%포인트 오른 3.7%로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이가 2%포인트까지 벌어지며 원 달러 환율이 상승하고 있는 것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고유가와 고환율이 겹치면 수입 물가를 밀어 올리는 압력은 더 세진다. 지난 6월부터 4개월째 흑자를 이어가고 있는 무역수지에도 빨간불이 켜진다. 지난달 수입액은 전년 대비 16.5% 감소했는데 가스와 석탄 등 3대 에너지 수입액이 36% 이상 줄었던 요인이 컸다.

농산물과 외식 등 생활물가가 급등한 상황에서 고유가는 인플레이션을 더 자극할 게 분명하다. 물가를 잡으려면 고금리 정책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명분으로 대출 규제를 푼 탓에 가계부채는 크게 늘었다. 가계부채 못지 않게 기업부채도 심각한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를 넘어섰다. 부채가 급증한 만큼 이자 부담이 커질 것이고 이는 소비와 투자 감소로 이어질 게 뻔하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일 긴급 금융시장·실물경제 점검 회의에서 “향후 사태 전개에 따라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만큼 실물경제 동향 점검을 강화하고 내수·투자 활성화 노력도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고유가 충격을 흡수할 재정 여력이 많지 않다는 게 문제다. 세수 부족이 심각한 상황에서 유류세 인하 등을 장기간 유지하기도 어렵다.

지금은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매우 중요한 시기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우는 법인세와 부동산세 완화 등 부자 감세는 재정 기반을 무너뜨리는 정책이다.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증세를 포함해 쓸 수 있는 카드를 모두 동원해 재정 여력을 확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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