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일본은행 눈덩이 국채 이자, 출구전략 불가
1% 인상 때 29조, 2%=53조, 5%=108조 엔 추가
엔 약세 배경에 미-일 금리 격차와 무역 적자
올해 안 1달러=155엔까지 떨어질 가능성도
일본 엔화의 시세가 3일 밤 외환시장에서 한때 1달러당 150엔대로 치솟았다. 이는 지난해 10월 이후 약 1년만의 일이다. 엔 시세는 그 직후 1달러당 147엔대 전반까지 일거에 3엔 가까이 떨어졌다. 상승 직후의 이런 급락에 대해, 엔 시세에 영향을 줄만한 별다른 재료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 재무성과 일본은행이 엔화를 사들이는 외환시장 개입에 나섰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으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엔 약세, 미일 간의 금리 격차가 배경
엔 약세의 주요 원인으로는 미국과 일본의 금리 격차로 대표되는 양국간 금융정책의 차이다. 지난 주말 우려됐던 미국 의회의 예산 지출 승인 거부로 인한 정부기관 폐쇄(셧다운) 문제가 해소되고, 2, 3일 잇따라 발표된 경제통계로 미국 경기 전망이 나쁘지 않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엔을 팔고 달러를 사는 움직임이 강해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달 20일 올해 말까지 연간 5%가 넘는 정책금리를 계속 유지할 뜻을 밝혔다. 이와 달리 일본은행은 지난달 22일 초저금리의 금융완화 정책을 계속하겠다고 밝혀 우에노 가즈오 신임 일본은행 총재 취임 이후 계속돼 온 완화정책 조기 수정 전망과 기대는 일단 무너졌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외환시장에서는 이날 밤 11시 지나 1달러=150엔이라는 심리적 상한선을 넘어서 정부가 환율개입에 나설 것이라는 경계감이 시장에서 커진 상황에서 갑자기 엔 시세가 급등했다. 정부가 개입에 나섰을 것이라는 관측을 낳은 이유다.
일본 재무성과 일본은행은 지난해 9월 22일 1달러당 145엔대 후반까지 엔 시세가 떨어지자 24년만에 엔을 사고 달러를 파는 환율개입에 나섰다.
금리인상 출구전략을 쓸 수 없는 이유
일부에서는 이와 같은 엔 약세가 미일 간의 금리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약화가 그 배경에 있다며, 올해 안에 1달러당 155엔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점치고 있다.
또 금리를 올릴 경우 10여년 간의 초저금리 금융완화정책 지속에 따라 일본은행이 떠안게 된 580조 엔에 달하는 장기국채 이자를 감당할 수 없는 한계 때문에 앞으로도 금리인상을 통한 출구전략을 쓸 수 없어 엔 약세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은 지금 도쿄 금융시장에서 엔 시세뿐만 아니라 주식과 국채 가격도 떨어지는 ‘트리플 약세’ 현상을 보이고 있다.
경제 기초 약화, 무역적자가 주요 원인
가라카마 다이스케 미즈호은행 칩 마켓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가을 1달러당 150엔대까지 하락한 뒤 1년만에 다시 150엔대까지 내려간 엔 약세가 33년만에 이런 수준을 넘어 최저치를 갱신할 상황이 임박했다면서 일본경제 자체의 약화를 그 배경으로 지적했다.
가라카마 분석가는 미일 간의 금리차만으로는 이런 엔 약세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엔 약세는 세계적으로도 “독보적”이라며 이는 “일본의 펀더멘털(경제의 기초적 조건)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3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예컨대 일본의 무역적자 수준이 전례없이 커진 것이 주요 이유라며, 무역적자 확대로 수입에 필요한 달러 수요가 늘어난 것이 엔 약세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엔 약세가 되기 쉬운 구조는 무역적자가 눈에 띄기 시작한 10년 전부터 자리잡았다. 지난해는 무역적자가 사상 최대인 약 20조 엔(약 180조 원)에 달한데다 자원가격(수입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것도 엔 취약성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올해는 8월까지 누적 적자가 8조 엔(약 72조 원)이다. 일시적으로 원유가격이 내려가 엔 약세가 멈추기도 했으나 다시 원유 강세 엔 약세가 진행되고 중국에 대한 수출도 줄고 있다. 앞으로도 무역적자는 확대될 것으로 본다.”
미국경제 감속 기다리는 것 외에 달리 수가 없다
가라카마는 “미국경제가 감속하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 엔 약세를 저지할 본질적인 수단이 일본에는 없다는 것이 현실”이라며 “예전에는 세계경제가 감속하면 엔을 안전자산으로 사들였지만 엔의 그런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게다가 엔 약세가 진행되면서 달러 등 외국통화로 예금하거나 투자하는 움직임도 엔 약세를 더 부추긴다. “일본 개인 금융자산의 95% 이상이 엔화와 엮인 자산이고, 50% 이상은 현금이나 예금이다. 가계부문에서 엔을 팔고 외국돈을 사면 상당한 규모로 엔 약세가 진행되는 요인이 된다.”
1달러-155엔도 가능
따라서 무역적자가 계속되고 미국은 금리를 내리지 않는데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초저금리 정책을 계속하면 엔 약세가 멈출 까닭이 없다며 “올해 안에 1달러당 155엔 정도까지 엔 약세가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미국이 금리를 내리더라도 엔 시세가 지난해 1월의 1달러당 113엔까지 회복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일본이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무역적자가 계속된다면 미국이 금리를 내리더라도 1달러당 130엔 정도 이상으로 올라가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더 문제는 정부와 일본은행의 눈덩이 국채 이자
약 10년간의 초저금리 금융완화정책을 기조로 한 ‘아베노믹스’를 뒷받침해 온 구로다 하루히코의 뒤를 이어 지난 4월 일본은행 수장자리에 앉은 우에다 가즈오 총재의 금융정책이 예상 또는 기대와는 달리 구로다 전 총재의 그것을 닮아가는 것도 불안재료가 되고 있다. 신임 총재가 아베노믹스 초저금리 정책에서 금리를 올리는 ‘출구전략’를 쓸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가면서, 그 배경에 우에다 총재로서도 어찌 할 수 없는 일본정부의 엄청난 재정적자, 그 대부분을 국채매입으로 떠안고 있는 일본은행의 국채이자 부담이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9월 22일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우에다 총재 등 9인 멤버는 마이너스 금리정책과 장기금리를 0%로 억누르는 정책(YCC)을 유지하는 등 지금의 초저금리 금융완화정책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두고 아사히는 10년 간 계속해 온 초저금리정책의 한계를 극복하고 출구전략을 취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취임한 우에다 총재가 전임 구로다 총재와 마찬가지로 ‘영구 완화정책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며 “의외”라고 썼다.
아베노믹스가 목표로 삼았던 인플레율 2%는 목표치를 넘어 이미 3%를 넘어섰지만 우에다 총재는 이것이 안정적이지 않으며, 인플레가 임금상승 및 소비증가가 서로 상생하는 호순환을 이루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기존정책 지속의 이유로 들고 있다. 한마디로 금리를 올리면 경기회복 기조가 무너질 것이라는 걱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출구전략을 쓸 수 없는 또 다른 이유, 어쩌면 더 결정적인 이유로 일본은행이 떠안고 있는 약 580조 엔(약 5520조 원)이나 되는 장기국채 이자 추가부담 걱정을 드는 사람들도 있다.
이자 1% 인상 때 29조, 2%=53조, 5%=108조 엔 추가부담
지난해 말 일본은행이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설명한 자체 시산(試算)에 따르면, 일본은행 보유 국채가 금리 인상으로 추가부담해야 할 예상손실액이 장기금리가 1% 올라갈 때 약 29조 엔(약 261조 원), 2% 상승 때는 약 53조 엔(약 477조 원), 5% 상승하면 약 108조 엔(약 972조 원)에 이른다.
일본국채보다 훨씬 신용평가가 더 높은 미국국채의 장기금리가 지금 4%대 중반인 점에 비춰보면 일본의 장기금리가 5%로 올라가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라고 아사히는 지적했다. 그럴 경우 연간 108조 엔에 이르는 국채이자 추가부담을 일본은행, 아니 일본국가가 감당할 수 있을까.
일본은행의 자기자본은 준비금과 평가충당금을 합해도 11조 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금리를 올리면 실질 채무초과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금리를 올리면 금융기관들로부터 예탁받은 일본은행의 당좌예금이 약 550조 엔(약4950조 원)인데, 그 이자도 올려줘야 한다. 그것을 1%만 올려도 일본은행은 연간 5조 엔이 넘는 이자를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일본은행이 보유한 580조 엔의 국채 금리수입은 연간 1조 2천억 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래저래 감당할 능력이 없다.
일본정부가 발행한 국채 잔고 총액은 1천조 엔(약 9천조 원)이 넘는다. 장기금리가 1% 올라가면 그 절반 이상을 떠안고 있는 일본은행을 빼고라도, 일본정부가 지금 지불하고 있는 연간 8조 엔(약 72조 원)의 이자는 몇 년 안에 몇 조엔이 더 불어날 것이다.
일본이 미국과의 금리차가 저토록 벌어지고, 그로 인한 부작용과 손실이 엄청난데도 초저금리 완화정책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의 상당부분이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자를 올릴 경우 입게 될 손실이 초저금리 유지 비용(부작용으로 인한 손실)보다 훨씬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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