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5천억 원대의 가리비 중국·홍콩 수출
일본 산 수산물 전체로는 1조 4천억원대
핵오염수 투기 뒤 중국 금수로 가격 급락
가리비 중간 가공처도 중국에서 동남아로
일본 지원에 적극적인 미국의 패권전략
가리비 1인당 연간 5개만 먹자!
미야시타 이치로 일본 농림수산대신이 29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호소했다. 그때 그가 손에 들고 있던 팻말(피켓)에 적힌 문구는 “막고 말거야, 닛뽄(일본)!”
일본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에 반발한 중국이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한 8월 24일 이후, 홋카이도에서 생산돼 주로 중국에 수출돼 온 가리비 냉동제품이 창고에서 천정에 닿을 정도로 산처럼 쌓여가고 있다.
“먹고 말거야, 닛뽄!” 가리비 소비 캠페인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일본산 가리비는 중국과 홍콩에 연간 17만 9천t(2022년)이 수출됐다. 껍질이 붙은 가리비 1개의 무게는 200~250g. 따라서 일본국민 한 사람당 연간 5~7개만 먹어 주면, 갈 곳 잃은 가리비 수출분의 대부분을 소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출이 아니라 일본 국내에서 소비되는 가리비는 연간 22만t. 따라서 이것까지 포함해서 일본국민 한 사람당 연간 10여 개만 먹어 준다면, 중국의 전면금수로 수출길이 막혀 낭패가 난 가리비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먹고 말거야, 닛뽄!” 팻말을 든 미야시타 농림수산상은 “(한 사람이) 매월 한 개씩 1년 동안 12개를 먹으면 되는데, 한 개씩 먹기는 좀 문제가 있으니까 몇 개씩 들어간 가리비 요리를 연간 두 번 정도 먹어서 응원해 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그는 “대량으로 수출하던 것을 무리없이 국내에 유통할 수 있을지가 문제다. 식당까지 안정적으로 공급하지 못하면 메뉴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유통체제 강화에도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중국 홍콩 수출 일본산 수산물 매년 1조 4634억 원, 가리비 5463억 원
2022년의 일본산 수산물 수출액은 3873억 엔(약 3조 4857억 원). 그 중 871억 엔(약 7839억 원)을 기록한 중국이 일본산 수산물 최대 수입국이고, 중국 수출액 가운데 467억 엔(약 4203억 원)을 가리비 수출이 차지했다. 중국에 이어 2위인 홍콩으로의 일본산 수산물 수출액은 755억 엔(약 6795억 원)이며, 그 중 약 140억 엔(약 1260억 원)이 가리비 수출액이었다. (<아사히신문> 9월 30일)
따라서 지난해 일본산 수산물의 중국과 홍콩 수출총액은 1626억 엔(약 1조 4634억 원)이고, 그 가운데서 가리비 수출총액은 607억 엔(약 5463억 원)이 된다.
지금 중국은 일본산 수산물뿐 아니라 식료품 전체로 금수 대상을 확대하고 있고, 홍콩은 전면금수는 아니지만 일본산 수입 수산물 세관 통관절차를 시간이 많이 걸리는 전수검사로 바꿔 사실상 수입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다. 9월 이후는 거의 수출 제로상태가 된다.
일본 수산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그러잖아도 신통찮은 기시다 후미오 정권과 자민당 지지율에 빨간 불이 켜질지도 모른다. 중국의 금수 조치로 손해를 보는 어민들과 유통업체들에는 여러 명목으로 보조금을 뿌리겠지만, 장기화할 경우 대처하기 어렵다. 중국은 그런 일본의 약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선 적어도 당분간 상황이 개선될 기미가 없어 보인다.
가리비 중간 가공처도 중국에서 동남아로
일본에서는 중국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수조치를 취한 지 한달이 지나면서 새로운 판로 개척과 수출 다변화 노력들이 경주되고 있다. 중국을 중간 가공처로 삼아 유럽이나 미국으로 수출하던 최대 단일품목 가리비는 중국 수출길이 막히면서 중간 가공처를 베트남이나 타이 등 동남아시아로 대체하려 하고 있다.
미국도 나서서 이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런 미국의 움직임을 보면 아주 특별한 미일 간의 특수관계를 떠올리게 되고, 이런 문제까지 중국 견제(봉쇄) 차원에서 매우 중시하고 있는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전략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중국이 일본산 수산물에 전면 금수조치를 취한 것은, 핵오염수의 해양 투기 자체의 위험성 외에 중국정부의 거듭된 해양 투기 반대에도 일본이 이를 강행한 데에 대한 반감, 대중국 견제전략 차원에서 일본의 해양 투기를 지지하는 미국정부의 패권전략에 대한 거부감 등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 금수로 가리비 가격 급락
‘점보 가리비’로 불리는 크고 맛 좋은 가리비 산지로 알려진 홋카이도 동부 베쓰카이 쵸(町)의 수산물가공회사 ‘마루이 사토 해산(海産)’에서는 7월 이후 냉동품인 조개 관자의 주요 판매처였던 중국으로부터 주문이 끊겨 재고가 늘고 있다. 이세 다케시 사장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고 했다.
일본 수산청 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금수조치 뒤 홋카이도 등 4개 도현(道縣)의 가리비 가격은 11~27% 내려갔다. 도쿄의 수산물상사 ‘도요이즈미’의 고모리 겐 사장은 외국 상사들이 문의는 해 오는데 “말도 안 되는 싼 값”을 부를 때도 있다고 한다. “눈앞이 캄캄하다”고 그는 말했다. (<아사히> 9월 24일)
영향은 일본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일본에서 중국으로 수출한 껍데기 붙은 가리비는 현지에서 가공돼 해마다 3만~4만t이 미국으로 수출된다. 일본농업연구소 가와하라 쇼이치로 이사(해양법제학)에 따르면, 원래 중국에서는 다롄 앞바다에서 잡히던 가리비를 가공했으나 2010년 이후 남획과 기록적인 이상 냉수 영향으로 ‘절멸’ 상태가 됐다. 그 대체물이 일본산 가리비였다.
2009년에 약 7억 엔이었던 일본산 가리비의 중국 수출액은 2022년에는 약 467억 엔으로 급등했다. 홋카이도의 산지는 호황으로 들끓었고 해변에는 ‘가리비 저택’이 들어섰다. 중국으로의 수출 확대에 따라 도쿄 중앙도매시장의 냉동 가리비 평균가격도 2009년에 1㎏ 당 992엔(8928원), 2022년에는 2991엔(2만 6919원)까지 치솟았다.
북미로 수출되던 가공용 주력품종인 ‘새우 가리비’의 중국 중간 가공 생산량이 예전상태로 회복되지 못하자 구미의 바이어들 사이에서는 “일본산이 중국에 들어가지 못하면 북미 수출용 가리비 공급이 곤란해진다”며 불안해 하는 소리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고모리 사장은 “북미와 EU(유럽연합) 수출 가리비 가공에 대응할 수 있는 나라로 수출과 일본 국내 소비용 판로 개척을 모색하려 한다. 과도한 가격 하락으로 어민들이 의욕을 잃지 않도록 매출을 받쳐 줘야 한다”고 했다.
미국정부의 지원
중국에서의 가공을 포기하고 베트남이나 태국으로 가공처를 바꾸려는 움직임도 있다. 미국은 수출가공식품에 대해 독자적인 안전위생기준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주일 미국대사관(대사 람 이매뉴얼)은 대만과 태국, 베트남 등에서 미국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가공시설을 일본 수산 관계자들에게 소개해 동남아시아를 경유한 가리비 수출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정부에 동조하고 있는 한국정부가 손놓고 있을 리 없다. 한국정부가 벌이고 있는 수산물 소비 촉진정책이 가리비를 비롯한 일본산 수산물의 한국수입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한국에도 불똥이 튈 것이다.
일본정부의 지원
일본정부는 수산업 지원책으로 가리비 껍데기를 벗기는 기계 도입비용의 3분의 2를 보조하기로 했다. 하지만 도입 자체가 간단하지 않다.
홋카이도 구시로 시의 식품기계 제조 전문회사 닛코는 가리비에서 자동으로 관자를 도려내는 기계를 만든다. 1대로 11인 분의 작업량을 대체할 수 있다. 가격은 1대당 약 1억 엔(약 9억원)으로, 정부 보조가 있다 하더라도 업자 부담이 3천만 엔이 넘는다. 게다가 수주 생산이 기본이어서 주문에서 완성까지 1년이 걸린다. 정부가 지원책을 발표한 뒤에도 “문의는 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어민들이 살펴볼 수 있도록 보조금의 지원조건 등을 정리한 요강을 농림수산성이 작성하고 있다.
일손 부족과 풍평(소문)피해
일할 사람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홋카이도의 한 수산가공회사 사장은 “홋카이도 내의 가공시설은 만성적으로 일손 부족이어서 외국인 기능실습생에 의존하고 있다. 보조금을 쓰더라도 언제까지 보조가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쉽게 사람을 늘릴 수도, 시급을 올릴 수도 없다”고 했다.
풍평(소문) 피해에 대한 도쿄전력의 배상은 10월 2일부터 신고를 받아서 시작한다. 배상금 지급이 시작되는 것은 내년 봄 무렵으로 예상된다. 도쿄도의 한 수산물상사 임원은 “우리회사의 풍평피해를 확정하려면, 지금 안고 있는 재고를 매각해서 수면 아래의 손해를 겉으로 드러내야 한다. 싼값에라도 신속히 처분해서 배상금을 빨리 받아야 할지, 가격이 내려갈 때까지 계속 지켜봐야 할지 올해 안에 대응책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타이밍을 잘못 맞추면 회사의 존속이 어려울 수도 있다. 판단하기 어렵다”고 속내를 털어 놨다.
‘뼈없는 생선’ 중간 가공처도 중국
‘뼈없는 생선’ ‘뼈 발라낸 생선’이라 불리는 고등어와 연어 가공품은 일본에서 잡힌 고등어와 연어 등을 중국에서 뼈를 발라낸 뒤 일본으로 다시 들여 와 병원이나 고령자 시설의 의료식용이나 돌봄식용으로 유통되고 있다. 조사회사 ‘후지쓰 게이자이(경제)’에 따르면, 시설 납품용 냉동 뼈없는 생선의 시장규모는 2019년에 약 358억 엔(약 3222억 원)이었고, 이후 매년 4%씩 성장하고 있다.
1998년에 업계 최초로 ‘뼈없는 생선’을 개발한 다이레이는 연어와 고등어 등 3, 4종류를 일본에서 중국으로 싣고 가 뼈를 발라내 가공한 뒤 다시 일본에 들여 와 판매해 왔다. 이번 중국의 금수조치에 대해 이 회사는 “당분간 원료는 냉동품 재고가 있지만, 노르웨이산이나 러시아산 등으로 바꿔 중국으로 직송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이 분야 최대업체인 교쿠요는 “중국만이 아니라 태국, 베트남 등에서도 뼈를 발라내는 가공을 하고 있어서 특별히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에서 가공하면서도 ‘원산지 일본’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도쿄의 중소 수산회사는 “제휴처의 공장에서는 원료를 구미산으로 바꾸게 했는데, ‘일본산’이라 표시할 수 없게 돼 아쉽다. ‘일본산’ 표시를 계속 할 수 있도록 베트남에서의 생산도 고려해 보겠다”고 밝혔다. (<아사히>)
관련기사
- 해양투기 뒤 중국어선 조업 비웃는 일본의 자가당착
- 일본산 수산물 중국 수출, 9월 이후 제로
- "핵 오염수 방류 중지" 1600km 한일 대장정
- ‘괴담’으로 과학을 욕 보이지 말라
- 핵오염수에 대처하는 한국의 '개념 연예인'들…일본은?
- 국민 불안 해소책 없이 수산물 더 사 먹으라는 정부
- 중-일 '핵오염수' 격돌예고…아세안은 누구 손 들까
- 핵오염수 투기 '일본문제'보다 '파장'에 눈길 둔 서방
- '해산물' 기업 급식 이어 학교 급식까지?…엄마들 시름
- 대통령실의 핵오염수 첫 액션은? 구내식당 해물 메뉴
- 강경한 중국, 공명당 대표 방중 거부…총리 회담도 무망
- 미국과 서방, 일본 핵오염수 해양투기 왜 용인할까?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