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조사 부족…피해자들 보상 못받고 방치 상태

유 씨, 피해자보다 '범죄가담 문체부 직원들 걱정'

블랙리스트 부인하며 '약간의 대립'으로 탄압 축소도

홍태림 미술비평가·문화연대 집행위원
홍태림 미술비평가·문화연대 집행위원

박근혜 정부의 국가범죄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위헌 판결과 대법원 판결 그리고 민사소송에 따른 일부 피해자들의 국가배상이 이뤄지고 있지만, 고등학생의 ‘윤석열차’를 탄압한 문체부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윤석열 정부에서 문화·예술 검열은 계속되고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라는 이름의 국가폭력을 당한 대다수의 피해자들은 지금까지도 사회적 방치 사태에 놓여있으며 피해자의 수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유인촌 씨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사실 이제 이런 인사가 황당하지도 않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대학로에서 청년 예술인들을 만나 “코미디, 기득권자 풍자해야 박수 받아”라고 말한 바 있는데 ‘윤석열차’ 사건을 기점으로 앞선 발언이 국민을 속이기 위한 선거용 거짓말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유인촌 씨는 이명박 정부 시절 문체부 장관을 지내며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의 가치가 너무나 무색하게도 1인 시위 중인 시민에게 ‘세뇌를 당했다’는 발언을 함은 물론이고 국민을 대표하는 공간인 국회에서 욕설을 남발했던 분이다. 또한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와 국정원의 주도로 기획되고 실행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탄압을 당할 때 문체부 장관을 지냈던 분이다. 이런 전력을 가진 유인촌 씨가 이명박 정부에서 문체부 장관으로 임명된 지 무려 15년이 지난 현시점에 다시 문체부 장관으로 지명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다수의 국민은 물론이고 야당뿐 아니라 여당에서도 개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과거의 유인촌 씨와 현재의 유인촌 씨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가? 유인촌 씨의 복귀가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국가범죄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복귀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대선후보 시절 30대 장관이 많이 배출될 것이란 호언장담은 기억이나 하는가? 사실 이런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기는 하다. 이런 질문에 상식적인 답을 낼 수 있는 분이라면 윤 대통령이 유인촌 씨를 장관으로 지명했겠는가.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9월1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유인촌 문체부 장관 임명을 반대하는 긴급 기자회견과 집회를 열고 있다. 문화연대 제공.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9월1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유인촌 문체부 장관 임명을 반대하는 긴급 기자회견과 집회를 열고 있다. 문화연대 제공.

최근 유인촌 씨가 청문회 준비를 위한 사무실로 첫 출근을 하는 길에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을 살피면서도 그가 문체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다시 되뇌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유인촌 씨는 블랙리스트 피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블랙리스트 작성에 가담한 문체부 공무원들 및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 직원들이 겪은 피해와 트라우마를 걱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블랙리스트 범죄에 가담한 문체부 공무원,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 직원들 때문에 생긴 8932명의 피해자는 안중에도 없는 2차 가해성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가 조사한 사건은 145건에 그쳐서 여전히 제대로 된 진상규명 절차도 진행하지 못했으며 블랙리스트 피해자 대부분은 국가로부터의 개별적 사과, 심리치료, 피해보상, 명예회복 등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었다. 따라서 유인촌 씨의 앞선 발언은 이러한 피해자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자 지워버린 것과 다름이 없다.

유인촌 씨는 이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두고 "장관 재직 시절 정부와 문화계 사이에 약간의 대립은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이명박 정부에서 문체부 장관으로 있던 3년 동안 청와대와 국정원은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 문건과 ‘문화·연예계 정부 비판 세력’ 문건을 만들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에 정리되어 있듯이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 문건에서 직접 이름이 거론된 문화예술단체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과 문화연대이며 문화·예술인으로는 명계남, 문성근, 이창동이 있다. 또한 ‘문화연예계 정부 비판 세력’ 문건의 경우에는 82명의 문화계, 배우, 영화감독, 방송인, 가수 등에 대한 블랙리스트 명단이 포함되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9.14. 연합뉴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9.14.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와 국정원이 생산한 이 문건들은 ‘좌파집단에 대한 인적 청산’ 전략 그 자체였으며 이에 따라서 유인촌 씨가 장관으로 있던 시기의 문체부 산하 기관장들이 부당한 이유로 직권 면직 또는 해임된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유인촌 씨가 이명박 정부에서 문체부 장관을 할 때 문화예술계와 약간의 대립이 있었다고 말한 것은 앞선 두 문건에 따른 문화예술인 및 단체들에 대한 탄압을 의미한다. 어떻게 앞서 언급한 이명박 정부에서의 국가범죄가 ‘약간의 대립’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이 발언은 바꿔 말하면 자신의 기준에서는 ‘문화·예술인 및 단체들을 탄압하는 강도가 너무 약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유인촌 씨는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터졌을 때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문체부 장관으로 있을 때 블랙리스트는 없었으며 이명박 정부는 그런 차별을 한 적이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이명박 정부시기의 청와대와 국정원이 생산한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 ‘문화・연예계 정부 비판 세력’ 문건이 버젓이 존재하며 이에 따른 피해자들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거짓을 당당하게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발언 역시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성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인식을 가진 이가 어떻게 다시 문체부 장관을 맡아 국무위원으로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 수 있다는 말인가.

윤 대통령은 유인촌 씨에 대한 문체부 장관 지명을 당장 철회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국격과 인격이 어우러지지 못하는 내각의 수장인 윤 대통령은 그런 결정을 절대 못 내릴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윤 대통령의 유인촌 씨를 장관으로 지명한 건은 과거 검찰총장 시절에 선택적 정의를 외치며 집권당을 비판했던 자신을 부정함과 동시에 자유의 가치를 선택적으로 빌어오는 자신의 낮은 수준을 다시 증명함과 같다. 두고 보자. 이번 인사로 국민들은 조만간, 반드시 윤석열 정부에 엄중한 심판을 더욱 무겁게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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