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수출통제 구멍 뚫렸나 의심

초미세 공정 장비 반입 막았는데도

최신형 스마트폰에 7나노 칩 탑재

대중 기술 규제 강화 빌미 가능성

한국 반도체기업 피해 커질 수도

화웨이가 최근 공개한 최신형 스마트폰이 반도체 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미국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을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대표 정보기술(IT) 기업인 화웨이가 고사양 칩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SK하이닉스가 만든 메모리 반도체가 이 스마트폰에 탑재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국내 반도체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이를 빌미로 반도체 기술규제 수위를 높이면 중국 내 생산과 대중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반도체업체들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음 달 미국 정부의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유예 조치의 연장 여부가 결정되는 것도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한국 기업에 대해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를 1년간 유예했다.

 

중국 화웨이가 출시한 신형 스마트폰 '메이트 60프로' 연합뉴스
중국 화웨이가 출시한 신형 스마트폰 '메이트 60프로' 연합뉴스

블룸버그통신은 반도체 컨설팅업체 테크인사이츠가 화웨이의 최신형 스마트폰인 ‘메이트 60프로’를 해체해보니 SK하이닉스의 스마트폰용 D램인 ‘LPDDR5’와 낸드플래시가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SK하이닉스는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 조치 이후 화웨이와 거래하지 않고 있으며 현재 경위 파악을 위한 조사에 들어갔다”고 해명했다. 또 “화웨이 스마트폰에 SK하이닉스 메모리 칩이 쓰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2020년 5월부터 자국 기업뿐 아니라 외국 기업도 미국 기술이 적용된 반도체를 화웨이에 공급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제재 대상인 화웨이와 그 계열사를 미국 상무부 거래 제한 명단에 올렸다.

미국 정부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메이트 60프로’가 초미세 공정 기술을 적용한 7나노 반도체 칩을 탑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크인사이츠는 이 반도체가 중국 반도체 업체인 SMIC가 개발한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기린9000s’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SMIC는 지난해 7나노 공정 기반 제품을 개발해 중국 가상화폐 채굴장비업체에 납품했다고 밝힌 바 있다.

초미세 반도체 칩을 제조하려면 EUV(극자외선) 노광장비가 있어야 한다. 이 장비는 네덜란드 ASML이 독점 생산한다. 미국의 수출통제로 중국 기업은 EUV 장비를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SMIC가 구형 장비를 이용해 7나노 칩을 개발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첨단 장비를 사용할 때에 비해 효율이 떨어진다. 중국 정부가 체제 선전용으로 '메이트 60프로’를 발표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는 현재 3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SMIC가 첨단 장비 없이 선두 기업들을 추격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7일(현지시간) 인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이동하는 도중 에어포스원에서 개최한 기내 브리핑에서 “미국은 이 사안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으며 그것에 맞게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마이클 매콜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도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를 위반한 것이 확실해 보인다”며 조사를 촉구했다. 그는 또 “중국이 저사양 반도체 칩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기술 제재 대상을 확대할 필요성도 시사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4월 24일 백악관 언론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4.24. AP 연합뉴스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4월 24일 백악관 언론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4.24. AP 연합뉴스 

테크인사이츠는 “7나노 공정 칩 개발은 중국의 자국 내 반도체 생태계 구축 노력이 어느 정도 진전을 보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미국의) 뺨을 때린 것과 같다”고 논평했다. 이에 앞서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화웨이의 5세대 스마트폰은 미국의 제재가 중국의 기술개발 노력을 오히려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정부와 언론의 이런 분위기는 한국 반도체 업계에 악재가 될 수 있다. 화웨이를 비롯한 많은 중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은 한국 반도체를 사용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반도체 매출에서 중국은 여전히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메모리반도체의 40%가량을 한국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 내 반도체 유통채널이 다양한 것도 한국 기업이 통제할 수 없는 위험 요인이다. SK하이닉스가 화웨이에 직접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하지 않았다면 화웨이가 대리점이나 영업점 등 다른 채널을 통해 해당 제품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부는 대중국 수출통제가 뚫렸다고 판단하면 구형 반도체 장비까지 제재 대상에 포함하는 등 기술 규제 수위를 높일 수 있다. 한국 반도체업체로서는 반갑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중 수출이 급감하고 중국 내 생산 여건이 악화하고 있는데 운신의 폭이 더 좁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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