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카터가 중재한 아랍-이스라엘 평화방식?
한미일 공동행동 '캠프 데이비드 원칙' 발표 예정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한미일 3국 동맹의 제도화"
다음 한국 대선 결과와 상관 없는 유착 구조 만들기
정치적 봉합만으론 문제 더 꼬인다는 1978년 교훈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조 바이든은 왜 일본과 한국 정상들을 캠프 데이비드에 초빙하려 하는가. 그것은 미국이 아시아의 두 핵심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제도화하기 위해서다.”
오는 18일 워싱턴 근교 캠프 데이비드 대통령 별장에서 열릴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바로 이것이라고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10일 보도했다. 기사의 제목부터 그렇게 돼 있다.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
기사는 캠프 데이비드가 미국 외교 역사에서 차지하는 특별한 위치에 대해 언급하면서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윈스턴 처칠이 2차 세계대전 때 이곳에서 만난 얘기와, 역시 그곳에서 미국의 중재로 열린 이스라엘과 아랍 정상들의 평화회담을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이번 회담이 쓰라린 과거사로 종종 분열됐던 미국의 두 핵심 동맹국인 한일과 미국이 결속해서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관리들이 바라고 있다고 썼다.
이스라엘과 아랍 정상들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회동했다는 것은 아마도 1978년에 이곳에서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중재로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가 만나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맺은 일을 두고 한 얘기일 것이다. 사다트 대통령과 베긴 총리는 그 다음해에 워싱턴에서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까지 체결했고 그 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캠프 데이비드 협정’에 평화조약까지 체결하고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그 획기적인 일련의 ‘성과’들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아랍 문제가 그 이후 뜻한 대로 잘 풀렸다고 보긴 어렵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가자지구에 갇힌 200여만 명, 요르단강 서안에 둘러쳐진 높은 콘크리트 담장 안에 고립돼 지독한 차별 속에 살고 있는 300여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의 처지와 시시때때로 터져 나오는 그들의 항쟁과 양쪽 무장세력간의 유혈충돌이 계속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사다트는 1981년 친서방으로 기운 그를 비판하는 이슬람 근본주의 과격파 세력의 손에 암살당했다. 과격파는 사다트의 해결방식이 동족 팔레스타인인들을 팔아 이스라엘과 미국만 이롭게 한 배신으로 간주했을 것이다.
캠프 데이비드 원칙, 그리고 공동성명
같은 날 <아사히신문>은 18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에서 3국 정상들이 정상회담을 정례화하고 3국의 공동행동과 포괄적 전략을 담은 문서 ‘캠프 데이비드 원칙’과 ‘공동성명’을 발표할 것이라고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 대사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3자 간의 이 ‘캠프 데이비드 원칙’과 미국의 중재 아래 사다트-베긴이 체결한 ‘캠프 데이비드 협정’은 양자간의 다른 현실이나 다른 역사적 맥락 만큼이나 전혀 다른 것이지만 닮은 점도 있다.
윤석열 정부 이후 달라진 것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는 이번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에서는 3국간에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더 깊은 군사 및 경제 안보 문제들이 다뤄질 것이라면서, 이 새로운 3국 관계가 “공식적인 3자 동맹은 아니지만 인도태평양의 전략적 변화를 예고”한다고 했다. 그 하나의 예로 윤 대통령의 “좌익(left-wing)” 전임자인 문재인 정권 때 일본과 한국이 일제 식민지배 시절의 잔혹행위에 대해 논쟁을 벌이면서 안보협력이 정체되고 군사정보 공유도 파탄나, 중국과 북한이 아주 좋아했다고 썼다. 문 전 대통령을 '좌익'이라 지칭한 것은 '우익(right-wing)' 편향이 극심한 한국 주류 미디어들의 뒤틀린 어법을 흉내낸 것이겠지만, 어쨌거나 윤 정권 출범 뒤 상황은 바뀌었고 일본총리가 10여년 만에 서울을 공식 방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미일 3국의 군대가 다시 힘을 합치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기로 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배상판결에 화가 난 아베 신조 정권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로 중단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복구 얘기다. 지난해 말 3국 정상이 ‘프놈펜 선언’에서 밝힌 인도태평양전략은 역대 한국정부가 거부해 온 미일동맹의 미사일방어(MD)체제에도 한국이 사실상 가담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미국 인도태평양전략의 핵심 국가 한국
그리고 윤 정부 출범 직후부터 문재인 정부 때 중단됐던 한미, 한미일 합동 군사연습들이 재개됐다. 욱일기를 단 일본 군함이 한국 항구에 들어오고, 태극기를 단 한국 군함이 일본의 관함식에 참여해 욱일기를 단 함정에 예를 표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두고 “과거사 문제보다 현재의 안보 문제를 우선한다는 신호”로 읽었다.
그리고 또 주목할 것은 3국간 논의가 이들 나라 차원을 넘어서는 더 넓은 범위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크리스토퍼 존스톤은 “그들은 단지 한반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태평양에 대해” 얘기해 왔다며, 한국을 미일동맹의 동남아시아 전략상의 핵심 국가로 보고 있다고 했다. 미일동맹의 동남아시아 전략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중국이다.
바이든이 베트남에 가는 이유
같은 날 <포린 폴리시>의 기사(‘나토가 인도태평양에서 뒷걸음질치고 있다’ NATO Is on the Back Foot in the Indo-Pacific)를 보면, 2023년에 ‘유소프 이삭’ 연구소가 동남아시아에서 실시한 조사 얘기가 나온다. 조사에서 이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나라를 중국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약 60%, 미국은 10.5%였다. 가장 정치적 전략적 영향력이 큰 나라를 지목하는 항목에서도 중국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41.5%, 미국은 31.9%였다.
바이든 대통령이 조만간 베트남을 방문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런 동남아의 지정학적 정세 추이를 바꾸기 위해서다. 미국 주도로 추진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동남아시아는 한미일과 함께 중요한 축을 구성한다. 동남아는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중국의 공세적인 강권정책 때문에 심리적 문화적으로는 친미국적 성향이 더 큰 것으로 조사 결과가 나오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훨씬 더 강하게 얽혀 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을 수행하기 위해 한미일 공조(동맹)와 나토의 인도태평양으로의 확장을 시도하고, 동남아를 중국 의존에서 떼어내 우군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여전히 취약한 한일유착과 한미일 준동맹
바이든 정부 또는 미일동맹이 이런 인도태평양 전략 구상을 본격화할 수 있게 해 준 핵심 고리 가운데 하나가 한국과 일본의 접근(유착)이다.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호주, 영국과 앵글로색슨 안보협의체인 오커스를 결성하고, 미국 일본 호주에 인도까지 끌어들인 쿼드를 만들었다. 여기에 한미일의 군사안보경제 준동맹이 핵심적이며 필수적인 장치다.
이 한미일 준동맹에 불가결한 고리가 한일 유착이다. 그런데 미국의 강력한 압박과 종용으로 일단 성립된 한일 유착은 여전히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다. 자민당 등 일본의 지배적인 보수우익 주류세력은 과거사 문제를 제대로 풀 의지도 능력도 없다. 그런 토대 위에서 감행된 한국의 일방적 양보와 굴복에 토대를 둔 한일 유착에 대한 대다수 한국민의 정서와 민족 감정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때문에 한미일 3국이 가까워지는 데는 한계가 있고, 한일 간의 상호 의구심은 여전히 깊어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파탄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3국의 국내 정치는 외교적 진전을 무산시킬 위험이 있다. 다수의 한국인들은 일본과의 관계가 개선돼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윤 씨가 일본의 과거사 범죄를 (제대로 해결한 게 아니라 그냥) 덮어버렸다고 생각한다.” 윤 정부가 강행한 강제동원 배상문제 해법인 ‘제3자 변제’는 지금 3월의 발표 당시보다도 인기가 없다. 그렇다고 민족주의적인 보수우익에 에워싸여 있는 기시다 후미오 정부가 한국에 양보할 가능성도 없다.
내년 대선 결과에 따라 물거품 될수도
이런 상황에서 <이코노미스트>는 “2027년 대선에서 일본에 대해 이념적으로 호의적이지 않은 문 씨의 당 후보가 당선된다면 윤 씨의 일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면서 “미국에서 동맹을 경멸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유사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속화 구조 만들기
따라서 “다가오는 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최근 몇 개월의 성과들을 굳히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한다. 한미일 관계를 “제도화”해서 차기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후임자가 누가 되든 “쉽게 해체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3국 정상회담의 정례화, 정상들간의 공식적인 핫라인 개설이 될 수도 있다. 존스톤은 그것을 캠프 데이비드라는 무대에서 발표하는 것이 특히 “장래 후임자들이 그 구조에서 벗어나기 더 힘들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최근 몇 개월의 성과들”이란 아마도 지난 3월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으로 ‘3자 변제’안을 들고 일본을 찾아간 이후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을 가리키는 듯하나, 실은 윤 정부 출범 이후 1년여 기간 그런 ‘성과’들은 쉴새없이 누적돼 왔다.
그리고 1978년에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 체결되고 당사자들이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듯이, 이번 3국 정상회담에서 ‘캠프 데이비드 원칙’에 합의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한일관계의 정상화와 한미일 3국공조(동맹)의 영구화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물론 한일관계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와 다르니 단순비교는 무리겠으나,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없는 정치적 봉합만으로는 해결은커녕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걸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은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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