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S "중국, 동남아서 지배적 정치‧경제 강대국"
'간절한 쪽'은 미국…동남아 공략 교두보 베트남
베트남, 중국과 당 관계 강력…반중 정서 깊어
베트남 교역 규모, 중국이 미국에 상당히 앞서
CSIS "소프트파워와 인기는 미국이 중국 압도"
오커스‧쿼드와 한‧미‧일 결속 이후 베트남 공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조만간 베트남을 방문할 예정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8일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서 열린 대선 자금 모금 행사에서 "베트남이 미국과의 관계 변화를 원하고, 미국의 주요 파트너가 되길 원한다"며 "곧 베트남을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메인주의 프리포트에서 진행한 대선 자금 모금 행사에서 9월 9~10일 뉴델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거론한 뒤 "베트남 수반이 전화를 걸어와 간절하게(desperatley) G20에서 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우리를 러시아, 중국과 마찬가지로 주요 파트너로 격상하길 원한다"고도 했다.
앞서 지난 4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그리고 지난달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하노이를 찾았다.
바이든의 말과는 달리 실제로 '간절한' 쪽은 미국이다.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번영과 안정'이란 구호를 내걸고 경제협력에 매진해온 중국은 그 경제적 영향력에서 미국을 압도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중국의 정치적, 전략적 위상도 높아졌다.
'간절한 쪽'은 바이든…동남아 공략 교두보 베트남
뉴욕 소재 비영리단체인 아시아 소사이어티(Asia Society)가 1일 공개한 '미국의 대중 정책에서 동남아를 우선으로 삼아야'란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은 2020년 전 세계에서 중국의 제1 교역국이 됐고 중국은 2009년부터 아세안의 제1 교역국이 됐다.
2022년도 기준 중국-아세안 교역 규모는 연간 9750억 달러로 1조 달러 시대를 앞두고 있다. 2010~2022년 사이에 교역은 4배로 올랐으며,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도 그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여기엔 2010년 발효된 중국-아세안 자유무역협정(CAFTA)이 촉진제가 됐다. CAFTA는 버전 3.0으로 업그레이드 중이며 관세 추가 인하 등으로 교역은 더 확대될 전망이다.
"동남아시아에서 중국의 발자취는 폭넓고, 깊고, 다면적이며, 그리고 많은 동남아인 삶의 영역에서 아주 뚜렷한 일부분이 되어 있다. 미국의 그것보다는 훨씬 더 잘 알려져 있다"는 보고서의 진단이 동남아에서 중국의 위상이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커질수록 동남아의 우려와 경계심도 커지는 게 미국으로선 '희망적인' 대목이다. 그래서 전통적 동맹인 필리핀과 태국을 제외하고 바이든이 제일 먼저 선택한 곳이 인구 1억 명의 베트남이다.
베트남, 중국과 당 관계 강력…반중 정서 깊어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7일 공개한 '동남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은 사회주의권이면서도 반중 정서가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데다,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분쟁 중이며 중국의 해안경비대와 해양민병대에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하노이가 최근 미국과 안보협력을 지속해서 강화하는 것도 그래서다.
2017년 봄 퓨리서치가 조사한 글로벌 애티듀드 서베이에서 베트남은 동남아 국가 중 중국을 "글로벌 최대 위협"으로 꼽은 유일한 나라이기도다.
베트남은 또한 첨단 제조업의 허브로 부상하면서 중국 의존을 줄이려는 외국기업들의 매력적 이전처가 되고 있으며, 미국 주도의 반중 경제포위망인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포함한 이 지역의 각종 경제기구에서도 점점 더 핵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CSIS 보고서는 "베트남은 (공산)당 차원에서 중국과 강력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역사적인 반감과 현재의 긴장들로 인해 하노이에 대한 베이징의 영향력은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양국 관계의 이 같은 취약한 고리를 공략해야 한다는 게 보고서의 조언이다.
베트남 교역 규모, 중국이 미국에 상당히 앞서
베트남과의 교역을 보면 중국과 미국 모두 크게 늘고 있지만, 아직은 중국이 미국에 훨씬 앞서 있다. 미국은 △ 2019년 758억 달러 △ 2020년 908억 달러 △ 2021년 1115억 달러를 각각 기록했다. 2021년 교역 규모는 베트남 전체 교역의 약 17% 수준이다.
반면 중국은 △ 2019년 1170억 달러 △ 2020년 1330억 달러 △ 2021년 1658억 달러 등이었다. 2021년 교역 규모는 베트남 전체 교역의 약 25%에 육박한다.
베트남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의 경우 2015~2021년 기간에 미국은 8억9600만 달러를 지출했고 110억 달러 공여를 약속한 반면, 중국은 23억7000만 달러를 지출했고 72억9000만 달러 공여를 약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CSIS 보고서는 2023년 베트남인들에 상대로 시행한 ISEAS의 여론조사를 소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5.2%가 동남아에서 '지배적인 정치적, 전략적 강대국'으로 중국을 꼽았다. 2002년의 52.8%에서 늘었다. 반면, 미국은 전년의 32.6%에서 하락한 27.2%에 그쳤다.
CSIS "중국, 동남아서 지배적 정치‧경제 강대국"
'지배적인 경제적 강대국' 문항에선, 중국을 꼽은 응답자는 전년의 71.5%에서 다소 하락한 69%였던 반면, 미국은 전년의 16.7%에서 상당히 하락한 9.6%에 불과했다.
위의 두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베트남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지속해서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이 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 판단했음 직하다. 바이든이 '간절하게' 베트남을 방문하는 배경이다.
추세 반전을 노리는 미국에게 반가운 소식도 있다. 중국이 글로벌 평화와 안보, 번영, 거버넌스에 기여하고자 "올바른 일"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78.7%가 거의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반면, 미국의 경우 그 수치는 19.8%에 불과해 호감도에선 미국이 중국을 압도했다. 경제 분야를 위시해 중국의 압도적 힘에 대한 중압감이 베트남에도 폭넓게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
CSIS 보고서는 "동남아 대부분에서 미국은 소프트 파워와 인기 측면에서 중국보다 우위에 있다"면서 "그러나 현실은 대부분 경우 중국이 (미국과) 경제적 영향력 격차를 벌려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고서는 "동남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인도네시아, 특히 필리핀과 베트남은 중국보다 미국을 선호한다"면서 "그러나 소프트 파워와 인기도 중요하지만, 하드 파워란 인식과 구체적 혜택을 제공할 능력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CSIS "소프트파워와 인기에서 미국이 중국 압도"
바이든의 이번 방문을 통해 워싱턴은 지난 10년간 "포괄적 파트너"였던 베트남과의 관계를 "전략적 파트너"로 격상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은 베트남과의 군사협력을 확대하고 미국산 무기 제공도 약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로이터는 내다봤다. 베트남에 대한 최대 무기 공급국은 전통적 우방국인 러시아였으나 최근 수입선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이 그동안 구축한 중국 포위망은 아주 촘촘하다. 앵글로색슨 동맹인 오커스(미국‧영국‧호주)를 중심으로 삼고, 미국‧일본‧인도‧호주 4자 안보 협의체인 쿼드가 가세하고 있다.
미‧중 사이에서 모호한 스탠스를 취했던 인도의 경우도 지난 6월 미국 국빈 방문 때 나렌드라 모디 총리에게 경제적, 군사적 '선물 보따리'를 챙겨주면서 어느 정도 마음을 사는데 성공했다.
그 뿐이 아니다. 한‧미‧일 군사협력도 군사동맹을 향해 '폭주'하고 있다. 오는 18일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한‧미‧일 3국 정상회의는 하나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일각에선 유사시 한‧일 간 상호 안보 협의를 의무화하는 일종의 '준 군사동맹' 합의 가능성도 흘러 나올 정도다.
미국, 오커스‧쿼드와 한‧미‧일 결속 후 베트남 공략
바이든의 베트남 방문은 이런 지정학적 환경에서 추진되는 것이다. 중국 포위를 위해 다른 곳들을 모두 다져놓은 다음,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압도적인데다 '아세안 중심성'을 내세우며 미‧중 어느 쪽 편도 들기를 거부하는 동남아를 본격적으로 공략하겠다는 수순으로 읽힌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심장부'인 동남아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고 다시 주도권을 잡고자 그 핵심 교두보로 베트남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베트남은 사회주의권에 속하면서도, 참혹한 전쟁을 치렀던 미국과 2007년 국교를 정상화한 뒤 꾸준히 관계를 개선해왔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베트남을 환율관찰대상국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중국도 베트남에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3연임이 확정된 직후인 작년 10월 31일 베트남 권력 서열 1위인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 지난 6월 27일 팜 민 찐 베트남 총리를 베이징으로 초대해 각각 만났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최후의 전장'인 동남아, 또한 미국이 공략의 교두보로 선택한 베트남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다들 긴장 속에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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