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방 중 국내 현안 관련 대통령에 질문 취재했나
핵오염수·양평고속도로·명품쇼핑·폭우재난 터져도
동행취재진은 현지 '받아쓰기' '화보찍기' 보도만
윤대통령 부부 '참관순방'에 기자들도 '구경순방'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6박8일간 해외 순방을 마치고 17일 새벽 귀국했다. 윤 대통령 부부는 리투아니아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참관국 자격으로 참석하고 이어 폴란드를 방문했고, ‘예고 없이’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이번 해외 순방의 특징은 방문국 현지에서 ‘굵직한 외교 현안이 없었다’는 점이다. 국익을 위한 국가간 협약이나 비즈니스 외교, 국격을 높여줄 공식 이벤트 따위가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 세금으로 ‘참관 순방’ ‘구경 순방’ 다녀온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굵직한 현안’은 오히려 국내에서 터졌다. 지난주 내내 김건희 일가의 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이 양평뿐 아니라 전국을 뒤흔들었다. 이 정부 출범 이후 계속 불거져나온 윤석열-김건희 부부와 친인척이 관련된 숱한 비리 의혹에 더해 터져나온 메가톤급 정권 게이트 의혹이다. 김건희씨가 리투아니아 현지에서 십수 명의 경호원·수행원을 데리고 다니면서 명품 쇼핑을 즐긴 사실이 현지 언론에서 보도되면서 국내에서 분노와 조롱의 여론이 들끓었다.
일본 핵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국내 민심도 계속 됐다. 야당 의원, 시민단체는 물론 일반 국민들도 단식, 집회, 공연, 전시, SNS 항의 등이 이어졌지만 윤 대통령은 이번 출장 중에 태연히 기시다 일본 총리를 만나 오염수 방류 ‘공인인증서’를 써주고 왔다. 주말 휴일 내내 쏟아진 폭우로 40명 넘는 국민이 목숨을 잃었고 헤아릴 수 없는 재산피해를 입는 재난도 발생했다.
이번 순방에도 많은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이 윤-김씨와 함께 전용기를 함께 타고 순방을 다녀왔다. 지난번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철없는 ‘셀카놀이’는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역시 기자들이 도대체 왜 비싼 돈을 들여 순방 동행취재에 나섰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같은 전용기를 타고 가는 동안 기자들은 윤 대통령·김건희씨와 전용기 안에서 얼마든지 묻고 답할 기회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대통령 부부의 공간과 기자들이 탑승한 공간 사이에는 커튼 하나밖에 없다. 만약 윤 대통령과 김건희씨가 기자들과 대면 접촉을 피했다면, 함께 탑승한 홍보수석이나 여러 수행 비서관들을 통해 윤 대통령과 김건희씨의 대답을 달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현지에서 취재하는 동안, 호텔에 묵는 동안, 그리고 행사를 마친 뒤에도 질문 기회는 있었을 것이다.
김건희 씨 일가 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을 더욱 짙게 해주는 새로운 증거들이 국내에서 계속 드러나고 있는데, 의혹의 당사자인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씨는 일언반구 설명도 없다. 대통령실은 ‘국토부가 알아서 한 일’이라는 말로 끝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이 대통령과 김건희 씨에게 물어봐야 한다. 이 의혹이 사실인지 아닌지, 사실이라면 어떤 경위가 있었는지, 사실이 아니라면 무슨 오해가 있었는지 등등 질문거리가 수도 없이 많다.
일본 핵 오염수 방류 문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은 지금까지 이 문제에 관해 단 한 번도 국민 앞에서 공식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국민들은 왜 한국 대통령이, 중국과 여러 태평양 도서국가들도 반대하는 일본 핵 오염수 방류에 대해 한 번도 우려나 경고 발언을 내놓지 않았는지 궁금해한다. IAEA의 부실한 조사보고서를 앞세워 앞으로 30년간 핵 오염수를 우리 인근 바다에 내다버리겠다는데 임기 5년 대통령이 책임질 수 있냐고 왜 물어보지 않는가?
지난 13일부터 이미 국내에는 ‘극한 호우’ 예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폴란드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14일에는 국내 곳곳에서 폭우로 정전, 교통두절, 축대붕괴, 산사태가 벌어져 주민들이 대피하는 긴박한 재난상황이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으로부터 어떤 재난대응 메시지도 듣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간 김건희씨가 해외에서 수행원을 데리고 다니면서 명품 쇼핑을 했다는데, 왜 우리 국민들은 이런 사실을 리투아니아 현지 언론을 통해 전해들어야 했을까? 동행한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은 다른 취재로 너무 바빠서였을까? 윤 대통령 부부의 갑작스런 우크라이나 방문에 동행하지 못했던 하루이틀, 기자들은 호텔에서 무엇을 했을까?
순방 동행 기간동안 국내에 보도된 윤 대통령·김건희 씨 관련 기사는 거의 현지 공식 행사 내용을 전하는 뉴스뿐이었다. 대통령실이 전하는 내용을 ‘받아쓴’ 기사다. 김건희 씨 ‘화보사진’도 빠뜨리지 않았다. 대통령 부부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무슨 ‘첩보작전을 방불케 한’(조선일보 등) 영웅담 혹은 미담처럼 포장할 뿐, 그 실속과 파장에 대해서는 일부 매체를 제외하고는 다루지 않았다.
기자들이 모처럼 전용기를 타고 오가는 동안, 그리고 해외 현지에 머무는 동안 윤 대통령 부부와 기자들의 물리적 거리는 다른 때보다 훨씬 가까웠을 것이다. 기자들이 속한 언론사들은 그런 기회에 질문을 하라고 베테랑 기자를 뽑아 대통령실 출입을 맡겼을 것이다. 광고로 힘들게 번 돈으로 비싼 해외출장비까지 부담하며 순방 동행취재를 보내줬을 것이다.
만약 대통령이나 김건희씨는 물론이고, 대통령실 그 누구도 동행취재 기자들에게 질문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그래서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질문과 답변을 기사로 쓰지 못했다면, 그 애절한 아쉬움을 담은 원고지 5매짜리 기자칼럼이라도 기대해보겠다. 기자들까지 ‘참관 출장’ ‘구경 출장’이란 조롱을 듣는 게 시민들로서는 몹시 부끄러운 일이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