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의 나라 ⑤] 모든 관심은 오로지 승진, 승진뿐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가장 공적이어야 하나 '가장 사적인 존재'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이 땅 젊은이들이 꿈꾸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공무원시험 경쟁률은 수백 대 일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 공무원에 대한 인기는 식어가고 있다. 그토록 어렵사리 공직에 진입한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바라고 선망했던 공무원을 그만 두고 다른 직업을 구하는 현상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공무원을 포기하고 현대자동차 생산직에 취업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더구나 젊은 공무원들이 스스로 소중한 목숨을 끊는 일조차 이어지고 있다. 잘 나간다는 공직 사회에서 왜 이러한 비극들이 발생하는 것일까?

여러 요인이 존재할 것이다. “대기업과 비교해 월급이 적어서”라는 시중의 시각이 있다. 물론 그러한 요인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보다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무엇보다도 바로 이 장에서 설명할 ‘군대식의 폐쇄형 계급제’에 있다고 판단한다.

 

오송 참사 점검 나선 원희룡 국토부 장관을 웃으며 반기는 충북도청 공무원(왼쪽). 노컷브이 캡처
오송 참사 점검 나선 원희룡 국토부 장관을 웃으며 반기는 충북도청 공무원(왼쪽). 노컷브이 캡처

이런 폐쇄형 군대식 관료 계급제, 한국 외에 없다

한마디로 이러한 비극의 근원은 우리나라 관료 사회가 창의성과 자율은 철저하게 부정된 채 오로지 겉치레의 형식주의로 만연된 ‘건수주의’가 지배하고 ‘줄서기’와 ‘충성과 아부 경쟁’, 상명하달의 봉건적 군대식 문화만이 철저하게 관철되는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계급 사회에 있다. 공직 사회의 이러한 풍토에서 ‘일에 대한 성취감’ 같은 것은 처음부터 아예 설 땅이 없다. ‘주류’ 공직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눈 밖에 나면 그야말로 ‘왕따’가 된다. 철저한 ‘집단 따돌림’ 속에서 대화에도 낄 수 없고, 언제나 ‘혼밥’을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정상적인 근무를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우리 공직 사회는 사실상 군대 조직과도 같은 철저한 계급 사회이다. 언제나 평등과 자유 그리고 공정을 주창하고 있는 현대 사회지만, 우리나라 공직 사회의 계급성은 불변의 원칙이다. 이렇듯 견디기 힘든 공직 사회의 분위기로 인하여 공무원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청년들이 끝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극까지 빈발하는 상황이다.

미국 공무원 사회는 분위기가 우리와 완전히 상이하다. 예를 들어, 국장이나 과장, 계장과 같은 계급이나 직함의 명칭으로 상대방을 부르지 않는다. 상대방의 이름만을 사용할 뿐이다. 최고위층 외에는 개인 비서도 없다. 부서장도 부서의 공식 라인을 통해 모든 의전이 진행된다. 커피 심부름도 없고, 회식 문화도 없다. 우리와 전혀 다르다.

우리 공무원 시스템과 같은 이러한 폐쇄형 계급제도 시스템은 세계적으로도 거의 발견할 수 없다. 계급제란 전체 공무원이 포함되는 체계적인 계급구조를 고급, 중급, 하급 등 계층화하고 이를 다시 계급으로 세분화하여 이를 엄격히 관리함으로써 계급과 계층 간의 역할분담을 분명히 하고 그 역할에 따라서 소속 공무원의 자질과 능력을 다르게 설정하고 있는 제도이다. 계급제에서 채용, 승진, 전보 등과 같은 임용관리는 폐쇄적으로 운영되며, 수평적 외부임용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신규 채용은 계급구조상 최하위 계급에 해당하는 자만을 선발하고, 상위 계급은 내부 승진으로 충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계급제와 대비되는 제도는 곧 직위분류제이다. 직위분류제는 사람이 하는 일을 대상으로 그 일이 무엇이며 그에 따르는 책임이 어느 정도인가를 분류하는 것이다. 직위분류제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의 공무원들은 자신의 직업에 대하여 공무원이라고 답하기보다는 업무적인 전문성을 나타내는 직업명 즉 변호사, 회계사, 복지사, 의사, 엔지니어 등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공무원을 9개 계급으로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단 한 나라도 없다. 단지 직무의 성격이나 책임도, 직책 등에 따라서 3-4 계층으로 구별할 뿐이다. 우리나라 관료 시스템은 일제 강점기에 이식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계속하여 일본 시스템을 벤치마킹해왔다. 그런데 일본의 관료 시스템보다 오히려 더 폐쇄적이고 경직성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우리 공무원 시스템은 일반직의 54%가 행정직군으로서 일반 행정직의 비대화와 이들에 의한 상위직 독점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행정기관들이 일반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공직자 중심의 인사 및 조직운영으로 인하여 공직자의 전문성에 기초한 운영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적 지적을 받고 있다. 즉, 일반행정 직렬로 채용되는 공무원들이 주류집단화되어 일반행정직 위주의 인사운영으로 결과될 뿐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사운영의 내적 형평성을 저해함으로써 다른 직렬에 소속된 공무원들로 하여금 상대적 박탈감을 조성하게 된다.

반면, 미국은 세분된 하나하나의 직위별로 그 업무 전문가를 임명하는 엄격한 직위분류제이다. 우리나라는 경리계에 근무하던 사람이 감사계에 근무할 수도 있고 인사계에 근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일반 행정직에 해당하는 직렬이 100개 이상으로서 직렬 단위로 공무원 경력을 관리하며 직렬 간 이동은 거의 없다. 그래서 미국의 경우에는 경리업무를 맡은 사람은 경리직으로 분류되어 경리업무만 맡을 수 있다.

승진만이 유일한 꿈인 이 나라 공직 사회, 이순신과 정약용이 나올 수 없는 이유

미국은 1993년 정부혁신처(NPR: National Performance Review)가 들어서면서 과거 일괄적으로 적용되었던 인사지침서(FPM: Federal Personnel Manual)가 1994년 폐지되고 인사관리의 분권화(decentralization)와 권한 위임(delegation)이 시작되었다. 즉, 각 연방기관이 자율적으로 인사관리 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거의 모든 경쟁직 공무원은 각 부처가 채용 권한을 가지며, 부처의 자체 실정에 맞게 채용을 실시하고 있다. 이렇듯 직위분류제에 입각한 공무원 제도를 실시하고 있어 기관 내 공무원이 그 업무에 가장 전문성을 지니고 있으며, 대부분 공석 발생 시 기관 내에서 충원된다. 다만 기관 내에 적격자가 없거나 공석의 업무 성격상 외부 전문가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기관 외부에서 충원한다.

영국의 지방공무원은 Principle Officer, Senior Officer, 기타 직원 등 3개 계층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것도 우리나라의 9계급제와 달리 담당 업무의 성격에 따른 계층 구분에 불과하다. 독일의 경우도 고위직, 상급직, 중급직 및 단순노무직 등 4개 계급으로 구분하고 있으나, 이 역시 우리나라의 9계급제와는 달리 담당 업무의 성격에 따른 계층 구분에 불과하다.

일본의 경우는 우리와 유사한 계급제를 근간으로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주사 - 주임 - 계장 - 계장보 - 과장 - 참사 - 차장 - 부장 등 직무와 관련하여 계층을 구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와 달리 각 직위 단계마다 몇 개의 등급이 있어 직원 3개, 계장 3개, 과장 보좌 3개, 과장 2개 합하여 모두 11개의 등급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직위는 계장으로서 동일하지만 그 안에서 3개의 다른 등급이 있고, 이 등급을 모두 거쳐서 한 등급이 더 올라가야 과장 보좌의 직위에 오르게 된다. 우리가 1직위 1계급 원칙이라면 일본은 1직위 다수 등급의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들의 삶에서 성취감이란 가장 중요하다. 그것은 곧 삶의 원천이다. 그런데 우리 공직 사회는 업무 전문성을 지향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성취감은 업무 수행이 아니라 오로지 승진으로부터 온다. 그리하여 우리 공직 사회에서 공무원의 꿈은 자나깨나 승진이다.

본디 인사(人事)란 반드시 역량, 직위(직무), 성과(실적)를 균형 있는 고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의 관료 시스템에서는 사회 신분 및 연공서열을 중심으로 인사관리를 하고 있다. 특히 일반행정가 중심의 경력관리가 보직 및 승진의 핵심요소로 작동하고 있으므로 승진을 향한 잦은 순환보직을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공무원 시스템에서는 어떤 사람을 어느 자리에 앉혀 놔도 모두 판에 박힌, 거의 똑같은 업무와 일과의 연속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무원 사회에 창의성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능력을 인정하고 평가하는 분위기도 아예 조성될 수 없다. 당연히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현실이 되고, 근본적으로 이 나라 공직사회에서는 이순신이나 정약용과 같은 인물이 결코 나올 수 없다.

왜 고위 관료들은 권력에 아부할까? 그들의 삶의 가치는 무엇일까?

그래서 오늘 이 나라의 극단적인 군대식 폐쇄형 관료 조직은 역설적이게도 국가와 국민에 대한 봉사와 헌신이라는 본연의 임무는 안중에도 없다. 자기 개인의 승진을 위해서라면 영혼도 팔아넘기는, 오로지 승진이 최고의 가치인 조직이다. 항상 “인사 적체가 심각하다”라는 탐욕에 가득한 아우성으로 요란하다. 그 속에서 줄서기와 아부 풍조 그리고 패거리 문화만이 넘쳐난다. 결국 공무원들의 모든 활동은 승진을 위한 활동으로 귀결된다.

필자는 자타공인 진보진영 인사이자 상당 기간 고위직으로 일했던 어떤 후배로부터 “선배님, 4급 이상 공무원들은 모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라며 고위직 공무원을 높이 평가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필자는 그 ‘대단하다’라는 용어가 아부 능력 혹은 승진이나 패거리 인간관계를 위한 특별한 음주 능력 정도에서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면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맡은 바 직책과 국리민복의 측면에서 ‘대단한’ 공무원은 유감스럽게도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 이 말을 했던 그 후배는 훗날 수뢰죄로 구속되었다.

일제 강제동원 문제에서 ‘배상금 공탁’을 법원이 불수리 결정하자 외교부가 이례적으로 과격한 표현을 동원하고 나서는가 하면, 국토부는 ‘양평 고속도로 논란’에서 한사코 권력의 편에 선다. 물론 대부분의 관료들에게 “권력에 알아서 기는” 행태가 본능적으로 작동되지만, 동시에 이토록 권력에 경쟁적으로 충성하는 배경에는 기본적으로 특정 고위직 관료집단의 승진을 향한 욕망이 깊이 내재되어 있다(물론 뛰어난 능력과 바람직한 자세를 지닌 극소수의 예외적인 경우도 존재한다).

오로지 승진만이 지상 목표인 승진 지상주의의 공직 사회는 본말전도의 비정상적 시스템일 수밖에 없다. 유능하고 똑똑한 젊은이들도 이러한 관료 조직에 3, 4년 근무하게 되면 모두 초록은 동색으로 온통 판박이 잣대의 관행과 의식으로 너무도 자연스럽게 무장하게 된다. 나이는 어리지만 하는 짓은 이미 충분히 연로(年老)하다. 그렇지 않은 소수자는 조직 구성원 전체로부터 철저히 집단 따돌림, 즉 ‘왕따’로 되어 결국 스스로 사표를 쓰거나 평생을 ‘비정상인’으로 조롱과 모욕을 받으며 쓸쓸하게 한직으로 떠돌아야 한다.

이렇게 하여 국가와 사회 그리고 국민을 위하여 봉사하는 공직자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공‘(公)’의 개념은 사라졌고, 오로지 개인적인 승진과 이익을 추구하는 ‘사(私)’만이 남게 되었다. 가장 공적이어야 할 존재가 가장 사적인 존재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관료들은 국민과 국가에 대한 봉사를 위하여 자신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자신들의 '철밥통'과 좋은 보직 그리고 승진을 위하여 국가와 국민이 존재하는 것인 양 착각하게 된다. 주객이 전도된 오늘 공직 사회의 단면이다. 폭우 참사 현장에서 웃던 어떤 고위 공무원의 모습은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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