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 참사를 시민단체 공격 기회로 삼아
사회 위기를 정치적 이용…무능 넘어 위험
미 뉴올리언스 카트리나참변 활용론 모방?
윤석열 대통령이 수해 복구와 피해 보전을 얘기하면서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에 대한 보조금을 전부 폐지하고 그 재원으로 재정을 투입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18일 국무회의에서 “국민 혈세는 재난으로 인한 국민 눈물을 닦아드리는 데 적극적으로 사용돼야 한다”면서 이렇게 얘기했다고 하는데, 그의 발언은 두 가지를 분명히 확인시켜 준다.
정확히 말하면 이미 여러 차례 보여온 것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낸 것인데, 첫째, 그는 대통령의 일이 무엇인지를 거의 - ‘전혀’라고 해도 될 것이다 -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알려고 노력하나 못 미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알려고 하는 생각조차 해 보지 않은 듯하다.
두 번째는 어떤 사안이든 간에 이를 철저하게 자신의 '정치적 기회'로 활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사안이든 간에 다른 데서 원인과 책임을 찾으려는 태도와 연결되는데, 이번에는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빗나간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대한 호전성을 드러내는 정도로까지 나타나고 있다.
한편의 무능, 한편의 '탁월함'
첫 번째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무능을 보여준다면 두 번째는 정치책략, ‘정치영업’적인 면에서의 ‘탁월함’이다. 바꿔 말해 정치를 책략적인 계산이나 득실 저울질의 영업으로 여기는 면에서의 탁월함이기도 하다. 국민적 재난 앞에서, 한편으로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는 것'을 헌법적 책무로 부여받는 대통령의 일에 대한 전적인 무능과 무지를,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들이 대거 생명을 잃은 사회적 재난과 비극마저 정치적 유불리 계산으로 판단하려는 '영업사원'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재난조차 그에겐 한편으론 '선용'할 만한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 점에서 그의 정치공학과 책략에서의 탁월함은 곧 무지와 몰양식에서의 탁월함에 다름아니며, 결국 무능하며 무책임하다는 면에서의 탁월함이다.
대통령으로서 그의 입에서 나왔어야 할 말, 수해에 대한 정부의 사과와 책임에 대한 통감의 표명은 전혀 없었다. 대신 난데없이 '이권 부패 카르텔에 대한 보조금'을 과녁으로 삼고 나섰다. 윤 대통령은 '이권·부패 카르텔'이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간 그가 했던 말들을 거슬러 보면 어디를 겨냥했는지가 나온다. 여당인 국민의힘 부대변인이 곧바로 <특정 이념 카르텔들의 근거 없는 무분별한 보조금 수령, 반드시 타파해야 한다>는 논평을 낸 것이 그에 대한 부연 설명인 셈이다.
“평화, 통일, 장애를 명분으로 지원받고선 정치투쟁 깃발을 드는 비영리 민간단체에 보조금이 지급되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이끄는 중앙정부와 자신과 소속을 같이할 뿐만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 충성파'로 분류되는 인물이 책임자인 지방정부에 의한 인재(人災)로 희생당한 국민들에 대해 애도를 보내야 할 상황에서 애도 대신 다른 국민들에 대해 싸움을 걸고 나선 셈이다. 윤 대통령의 발언과 국힘당의 지원사격은 이번 수해를 시민단체를 적대시하고 공격함으로써, 시민사회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재편하려는 작업에 활용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것을 시민사회 '개혁'이라고 얘기한다면 그 개혁은 무모한 개혁이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특히 '제물'을 찾는 방식으로 자신의 곤경을 벗어나려 하고 있는 점에서 무모할 뿐만 아니라 수해와 시민단체 지원금이라는, 서로 관련 없는 사항을 결부지으려는 점에서 그 이상의 위험을 보여주고 있다.
재난에 대한 정부의 책임 의식 부재는 이태원 참사를 비롯해, 또 지난해 이맘때의 수해 피해 때 거듭 보여준 것이어서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러나 재난의 기회 활용이라는 점은 단지 책임의식의 부재와 무지를 넘어서 위험한 책략의 발상을 드러낸다.
이는 그가 ‘스승’으로 삼고 있는 듯한 밀턴 프리드먼으로부터 배운 것일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이 '법전 외에 유일하게 읽은 것으로 추정되는' 책인 『선택할 자유』의 저자인 프리드먼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제방이 붕괴돼 온 도시가 물에 잠긴 미국 루이지애나 참변 때 월스트리트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뉴올리언스의 학교 대부분은 폐허가 되었다. 이제 아이들은 여기저기 흩어지게 되었다. 비극이라 하겠다. 그러나 한편으론 교육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바꿀 기회이기도 하다.” 수십만 명의 이재민들이 가족과 집을 잃고 비탄과 실의에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그는 재난을 기회로 활용하자고 공개적으로 ‘설파’했다.
그의 가르침에서 영향을 받은 공화당원들이나 프리드먼 성향의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ion) 등이 “루이지애나의 교육개혁가들이 수년 동안 못했던 것을 카트리나가 단 하루 만에 해냈다”거나 “뉴올리온스의 공공구역을 깨끗이 정화했다. 우리가 못해냈던 일을 신이 해내셨다”고 감격해한 것도 그때 벌어진 일들이다.(나오민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에서 인용)
1970년대에 칠레 독재자 피노체트의 자문을 맡았던 프리드먼은 대규모 충격이나 위기를 이용하는 방법을 그때의 경험으로부터 배웠다. 세금감면, 자유무역, 서비스 민영화(사영화), 사회지출 삭감, 탈규제화 등을 밀어붙일 적기는 재난과 위기 상황 때라는 것을 피노체트하 칠레에 대한 실험을 통해 확신하게 됐다.
검사 시절부터 프리드먼의 책을 서랍 안에 넣어두고 틈날 때마다 꺼내 펼쳤다는 윤 대통령은 그로부터 배운 '쇼크 독트린'을 실행할 기회를 이번 수해 재난에서 찾은 것인가. 단지 이번의 수해 재난과 시민단체 보조금 결부뿐만 아니라 한반도 내부와 주변의 긴장 고조와 전쟁 위험의 증대를 의도하는 듯한 윤 대통령의 일관된 행태는 그의 '기회로서의 재난'의 위험한 발상이 확고한 기조로서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과도한 의혹이라고 배척할 수만은 없게 한다.
한국사회 재난대처력 급격히 떨어뜨릴 것
헌법은 국민의 가장 큰 권리이자 가장 우선적인 국가의 의무로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10조)”고 선언하면서 이를 위한 의무의 하나로 ‘재해 예방 및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 보호’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재해와 관련된 대통령의 책무 태만과 위배가 그같은 '재난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위험한 인식에까지 이르른다면 윤석열 정부 들어 가뜩이나 약해진 한국 사회의 재난 대비력은 더욱, 그것도 급격하게 취약해지게 될 것이다.
재난은 어떤 사회에든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사회에 닥칠 수 있지만 그 재난의 피해를 결정 짓는 것은 재난 자체보다는 그 사회의 '대처능력'에 있다.
“갑작스런 기근이 발생한다고 해서 모든 사회에 아사자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는 곳에서는 기아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 아르마티아 센의 말처럼 재난의 대비는 재난 취약 현장의 정비태세에 머무르지 않는다. 사회 총체적인 재난 대비 시스템, 무엇보다 민주주의적 국가 및 사회 운영시스템의 수준이 재난에 따른 피해의 크기를 결정 짓는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지금 한두 군데 특정한 곳이 아닌 나라 전체가 재난 취약 사회가 돼가고 있다. 이번의 오송 참변이 보여준 것은 오송 도로 현장에서의 수해 이상의 '사회적 재난'이었다. 자국민들이 수장돼 가는 동안 우크라이나에서 '사즉생 생즉사'를 외치는 대통령의 모습이나, 수해 상황을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올릴 기회로 삼으려는 발언은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재난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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