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의 나라 ④ ] 대통령 직속 '비독립'…정치적 중립 '허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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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의 ‘비독립’ 감사원,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최근 언론에 감사원 관련 보도들이 줄을 잇는다. 그런데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감사원이 하는 일이란 정부의 입맛에 맞춘 감사가 대부분이다. 과연 이러한 감사원의 일들이 본래 감사원이 수행해야 할 임무와 부합되는 것일까?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감사원을 ‘감사원’이라 부르기 어렵다. 본래 ‘감사원’이 지녀야 할 위상 및 직무와 거리가 멀다. 우리나라 감사원에 해당하는 미국 기관은 회계감사원(GAO: 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이다. 그런데 이 회계감사원은 우리 감사원과 달리 의회 소속기관이며, 그 주요 기능은 국책 사업에 대한 평가에 있다. 우리나라 감사원처럼 개별 공무원에 대한 징계 요구를 하는 일도 없으며 비위 공무원을 적발하는 직무 감찰도 하지 않는다. 독일이나 프랑스의 감사원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기관이다.
‘권력에 대항해 진실을 말할 의무를 가진 독립기관’으로서의 감사원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감사제도는 과연 어떠한 내용과 형식을 지니고 있는 것인가? 여기에서 독일을 비롯하여 프랑스 그리고 미국 감사 시스템을 살펴보도록 한다.
독일 검사원, 모든 감사보고서 일반에 공개
독일의 연방회계검사원은 헌법기관으로서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등 어느 부에도 소속되어 있지 아니하다. 독일의 연방회계검사원은 1948년 제정된 독일연방기본법 제114조 제2항에 의하여 헌법상 최고기관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연방회계검사원 원장은 임기가 12년이고 단임제이다. 연방정부의 제청으로 연방의회에서 비밀투표로 선출하고 연방의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표를 득표한 자가 선출되고, 대통령은 선출된 자를 반드시 임명해야 한다.
공공기관 감사에 있어 연방회계검사원 및 그 직원의 임무 수행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문건은 요구일로부터 일정한 기한 내에 반드시 제출되어야 한다. 이때 자료제출 의무는 문서가 현존하지 않지만 정상적인 행정에 있어 기본이 되는 경우 그 문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즉, 감사 대상기관은 요청한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료의 제출을 단순히 거부할 수 없고 반드시 이를 작성하여 제출하여야 한다.
만약 감사 직원의 정보요청 요구에도 불구하고 감사 대상기관이 이를 무시하고 제출하지 않을 경우 감사 직원은 즉시 이를 상부에 보고하여 직원회에서 조치를 결정한다. 감사 기준은 적법성, 경제적 효율성 그리고 능률성이다.
감사보고서는 모두 일반에게 공개된다. 이로써 일반 국민들의 감시가 활성화될 수 있고, 감사 직원에 대한 로비활동도 제한할 수 있다. 또한 감사기관에 대한 개선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프랑스 감사원, 모든 공공기관이 지출계산서와 증빙서류 제출, 전수 감사 효과
프랑스 감사원 역시 입법, 행정, 사법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기관으로 존재한다. 프랑스 감사원의 감사는 행정 각부 기관으로부터 모든 지출계산서 및 증빙서류 원본을 제출받아 실시한다. 원칙적으로 3~5년 동안의 회계집행 사항을 전수 감사하도록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인력 및 시간적 제약으로 전체의 1/4 정도를 표본 추출하여 감사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계산서 및 증빙서류를 제출받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전수 감사를 받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프랑스 감사원의 구성원은 판사와 동등한 신분 보장을 받으며 봉급도 일반 공무원의 두 배 정도를 받는다. 이들은 권력이나 감사대상 기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오직 감사 업무의 성과에 의해서 자신의 고과(考課)가 평가된다. 자크 시라크와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도 일찍이 재무감사 직군으로 활동하여 명성을 떨쳤으며, 이는 권력이나 감사대상 기관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 것이 사회적인 입신양명의 지름길로 인식되는 프랑스의 풍토를 그대로 반영하는 현상이기도 하였다.
공공예산을 사용하는 모든 기관의 사업을 평가하는 미국 회계감사원
미국 회계감사원의 경우, 1921년 제정된 예산회계법 제7장에 의하여 회계감사원이 “권력에 대항하여 진실을 말할 의무를 가진 독립된 기관”으로 규정되어 설치되었다. 당시 의회지도자들은 예산 감시기관이 행정부의 외부에 설치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여 원래 재무부 관할하에 있었던 회계 감사 기능을 의회에 이전시켰다. 회계감사원장은 상하 양원 각각 5명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에서 3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상원의 인준 동의를 거쳐 임명하며 임기는 15년 단임이다. 대통령은 추가 후보를 추천할 권한이 없다.
이 회계감사원, GAO의 명칭은 회계감사원<the General Accounting Office>이었으나, GAO의 권한과 기능의 발전에 따라 2004년 인적자원개혁법에 의해 정부책임처<the 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로 변경되었다. 이러한 명칭의 변경은 GAO의 역할이 연방 자금이 적절하게 쓰이고 있는지에 대한 회계감사의 차원을 넘어 연방 사업이나 정책이 그 목적이나 사회의 수요를 충족시키는지에 대한 평가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미국 회계감사원은 연방정부의 예산 지출과 운영에 대한 감사를 임무로 하며, 연방 정부의 예산을 사용하는 모든 사업과 활동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회계감사원 업무의 10%가 회계 감사이고 나머지 90%는 사업 평가가 차지하고 있다. 회계감사원의 감사결과는 수시로 모든 상하원 의원과 행정부에 제출된다. 그러므로 미국 의원들은 우리처럼 매년 국정감사를 하지 않아도 이 감사보고를 통해 각 부처의 운영상황을 손금 보듯 파악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의정활동을 펼친다.
GAO는 자료 접근권을 보유하고 있고, 이를 거부할 경우에는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GAO 권고는 4년 내 70%가 받아들여져 집행되고 있을 정도로 커다란 권위를 지니고 있다.
미국 회계감사원은 국고가 투입되는 모든 공적 기관과 공적 정책에 대한 전문적이고도 공정하며 정확한 평가를 수행한다. 그리고 그 평가에 따라 공적 자금의 운용과 정책 내용이 수정된다. GAO는 행정부의 예산 낭비를 정확히 분석, 지적하기 때문에 ‘납세자의 가장 좋은 친구(taxpayer’s best friend)’로 칭해진다. GAO는 직원 수가 3350명, 한 해 예산이 5억 5700만 달러에 이른다. 하지만 GAO의 1달러 지출에 무려 87달러의 국가 예산이 절약되는 것으로 정평이 있다.
GAO의 2019년 회계연도 성과 발표는 “우리는 납세자들의 세금 2147억 달러를 절약했다”며 “의회에서 받은 예산 1달러 당 338달러의 수익을 낸 셈”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연히 회계감사원 활동에 의한 예산절감, 비용절약, 지출연기, 수입증대 등 재정적 이익은 엄청난 수준이다. 예를 들어, 1998년 한 해만 해도 그 재정적 이익은 197억 달러에 이르렀다.
사법처리 만능의 관행, 회계감사원의 전문적 평가시스템으로 전환될 때
현재 우리 사회는 공적 자금이 투여되는 공공기관의 운영이나 각종 국책 사업을 체계적으로 평가하고 시정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 적지 않은 경우, 행정기관의 독단이나 혹은 주먹구구식의 관행에 의해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는 이 나라가 근본적으로 현대 국가로서의 기본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여실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공적 자금이 투입된 공공 기관의 운영과 국가의 각종 국가 정책 및 사업에 대한 체계적인 평가 시스템이야말로 명실상부 현대 국가로서 당연하게 갖춰야 할 필수불가결한 핵심 조건이다. 미국이나 독일과 같이 ‘독립적인’ 회계검사원에 의한 국책 사업에 대한 전문적이고 합리적인 평가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이다.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 공공기관이나 정책에 대한 사건은 합리적이고 전문적인 시스템에 의한 평가가 아니라 대부분 공공기관의 부패 사건으로 인한 범죄 및 형사사건의 사법 처리 대상으로 간주될 뿐이다. 검찰 권력이 오늘날처럼 과도하게 남용되고 초특권 권력기관으로 군림하게 된 것도 이러한 풍토로부터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법치주의의 기치 아래 인신 구속 위주의 오늘의 현실은 인권과 민주주의 차원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박정희, 감사원을 허울 좋은 헌법기관으로 격상시키다
본래 우리나라도 제헌헌법 제정 당시 감사원 설치에 있어 미국 방식을 검토하였다. 미국 방식이란 의회에 감사원을 설치하고 감사원이 ‘국정감사’를 1년 내내 상시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권위주의 체제인 한국의 특성으로 결국 미국 방식을 도입하지 않고 감사원(심계원)을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하였다. 당시 수사와 감사를 수행하는 미국 의회처럼 한국 의회도 국정조사와 국정감사 두 가지를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대통령 감사’인 감사원과 의회 감사인 국정감사로 나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대통령이 감사원을 가져가면서, 세계 유일한 ‘기형적’ 국정감사가 출현하게 되었다(우리나라의 국정감사 제도는 제헌헌법 제정 당시 국정조사를 착각, 혼동한 데서 비롯되었다. 사실 국정감사와 국정조사는 상이한 개념이다. 국정감사가 아닌 국정조사 제도는 영국 의회에서 1689년 아일랜드 전쟁의 실패 원인을 조사하고 그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조사 활동을 전개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세계적으로 국정조사권은 인정되고 있지만, 국정감사 제도란 다른 나라 의회에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박정희 군사정부 시기에 대통령 직속의 이 감사원은 무려 헌법기관으로 격상된다. 군사쿠데타 직후인 1962년 박정희는 감사원을 허울 좋게 헌법기관으로 규정한 것이다.
흔히 감사원은 당연히 독립기관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된다. 그러나 우리의 헌법은 감사원이 독립기관이 아니라 대통령 소속 기관이라는 사실을 지엄하고도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감사원은 헌법 규정에 따라 대통령 직속 기관일 수밖에 없게 되고, 현실적으로 감사원이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명령을 거역하기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감사원장 스스로 감사원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원기관”이라고 고백하는 장면은 역설적으로 필연적이다. 이러한 위상의 감사원이라면 굳이 헌법에 규정되는 헌법기관일 필요가 전혀 없다.
지금과 같은 감사원이라면 행정부 소속의 작은 기구로 족하다
오늘날 이 나라 감사원처럼 대통령 직속으로서 수행하는 많은 일들이 정권의 요구에 부응하는 그러한 감사원은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일을 하려면 감사원이라는 명칭은 너무 과분하다. 직무에 걸맞는 다른 이름으로 행정부에 소속하는 조그만 기관으로 충분하다. 당연히 거창하게 헌법기관일 필요는 더더욱 없을 일이다. 미국은 행정부 산하에 정부윤리처(Office of Government Ethics)와 법무부 감찰국을 두고 있다. 정부윤리처의 정원은 7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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