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참사 책임에 이번에도 지자체·경찰 탓만
'무한책임' 져야 할 대통령에 책임 안묻는 언론
언론 '정쟁' 타령말고 '컨트롤타워 공백' 비판해야
참사 반복엔 '진짜 책임' 덮는 언론도 책임 있어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지난주 내린 집중 호우로 인한 참사를 놓고 언론이 책임 소재 규명에 들어갔다. 40명 넘는 국민이 목숨을 잃고 1만 명 이상의 수재민이 발생한 주말·휴일 동안 피해 현장과 현황을 집중 보도하던 언론은 18일부터 이번 폭우가 참사 수준의 재해로 커진 이유와 책임을 따지기 시작했다.
언론의 당연한 역할이다. 재난 발생시 언론은 국민의 피해가 최소화하도록 신속·정확한 보도를 통해 상황을 알릴 뿐 아니라 피해 수습·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도록 ‘책임있는’ 당국을 압박하고 도와야 한다.
매번 그랬던 것처럼, 이번 폭우 재난의 경우에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온다. 예방조치 미흡과 부실 대응이 피해를 키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책임있는’ 당국의 수습 재발 방지 대책을 말하면서 이번 ‘인재’의 가장 큰 책임이 누구에게 혹은 무엇에게 있었는지 밝혀내야 한다. 그래야 다음번 ‘인재’를 막고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주요 언론들은 이번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누구에게, 무엇에게 묻고 있나? 우선, 현장 공무원의 실수나 태만·무능·무책임, 그리고 관련 제도의 미비와 부실에 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신고를 접수받고 2시간이 지난 뒤 현장에 도착해 교통통제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경찰, 현장에 출동하고도 돌아간 소방당국, 위험 신고를 받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청주시와 충북, 제방 공사를 부실하게 한 행복청 등 지자체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지역 관리당국의 부실한 산사태 점검, 낡은 재난 대응 매뉴얼 등도 지적됐다. 몇몇 언론에서는 정부 부처의 이기주의로 서로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타당한 지적이다. 지자체와 재난 대응 기관이 사전에 관련 제도와 매뉴얼을 잘 다듬었다면, 긴박했던 위기의 순간에 현장에서 교통통제와 사고예방 노력을 좀더 신속하고 제대로 했다면 피해를 모면하거나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찰, 소방당국, 지자체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더 근원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빼놓고 있다. 국가 재난 대응 ‘컨트롤 타워’ 문제다. 재난 상황에서 경찰, 사고 대응 기관, 자자체, 중앙정부가 유기적이고도 적절하게 소통하며 일사불란하게 대응할 재난 컨트롤 타워가 작동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그 컨트롤 타워는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언론은 그것을 따져야 한다.
정부의 재난 컨트롤 타워는 무엇인가? 국무총리 혹은 행안부 장관이 주관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있다. 지난주부터 ‘극한 호우’가 예고되었을 때 총리 주재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열리긴 했다. 그러나 제대로 작동되었는지 의문이다. 위기 상황에서 정부 부처와 지자체, 경찰, 소방당국이 정보를 공유하고, 현장을 점검하고, 위기관리를 독려하는 체계적이고 총괄적인 ‘컨트롤’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었다면 이번처럼 어처구니없는 인명과 재산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컨트롤 타워의 최고, 최종 책임자는 누구인가? 대통령이다. 국가 재난 피해에 대한 최종적이고 무한대의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과 재산을 잘 지켜달라고 국민이 뽑은 것이다. 경찰, 소방당국, 재난 대응 부처, 중앙부처를 지휘하는 최고, 최종의 권한과 권력도 대통령에게 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다 내 책임인 것 같았다”고 했다. 노 대통령의 이 말이 갑자기 인터넷과 SNS에서 퍼지고 있다. 윤 대통령 스스로도 “재난의 컨트롤 타워, 안전의 컨트롤 타워는 대통령”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그런데 국가 재난에 대응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사고 방식과 조치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을 대통령이 다른 나라 전쟁터에 가서 다른 나라 걱정을 하면서 폭우 재난에 대해 ‘서울에 뛰어가도 할 일이 없다’고 했다. 대통령이 할 말인가?
윤 대통령은 1년 전 여름에도 폭우로 인한 침수피해 지역에 가서 “어제 퇴근하면서 보니 벌써 침수가 시작되더라”는 무책임한 어록을 남겼다. “비 온다고 대통령이 퇴근 안하냐”라고 했던 대통령 참모들과 똑같은 수준이다. 이번에는 산사태 현장에 가서 “어이가 없다”라고 했다고도 한다. 국민들이야말로 어이가 없다. 이런 사고방식과 사고수준을 갖고 있는 대통령과 참모들이 재난 컨트롤 타워 운영에 관심이나 의지가 있었는지도 의심스럽다.
언론이 이번 참사와 재난피해의 책임을 묻는다면 대통령의 이런 무책임한 행태이어야 한다. 그런데 주요 언론들은 이상하게도 대통령은 쏙 빼고 경찰, 소방당국, 지자체만 언급하며 비판하고 있다. 경찰, 소방당국, 지자체 공무원들의 무책임과 책임 떠넘기기가 이번 참사의 진짜 원인인 것처럼 말한다(동아일보, 매일경제신문, 중앙일보). 어떤 매체는 대통령의 무책임을 비판하는 것을 ‘정쟁’ '선동'이라고 몰아세우고 있다(조선일보, 한국경제신문). 대통령의 책임을 덮으려는 정치적 술수이지 언론의 자세는 아니다. 또 어떤 언론들은 대통령 책임을 묻기는커녕, 자기 책임을 남 얘기하듯 하는 대통령의 현장시찰 사진 홍보에 바쁘다. 대통령 화보가 재난수습과 재발방지에 도움이 되는가?
인재로 인한 인명 참사는 윤석열 정권 출범한 지 1년여 동안 벌써 세번째다. 지난해 8월 서울 수도권 집중 호우로 10여 명이 죽고 재난영화를 방불케 하는 재산피해가 났을 때, 언론은 ‘윤석열 정부가 재난대응의 시험대에 올랐다’고 했다. 집에서 재난 상황을 보고 받고 끝낸 대통령에게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았다.
300여 명이 숨진 지난해 11월 이태원 참사 때도 언론은 책임을 경찰과 구청 공무원들에게 돌렸다. 이태원 참사 책임자로 기소된 공무원들은 모두 풀려났다.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것이다. 이러니 ‘각자도생’이란 말이 나온다. 자연 재해가 아닌, 인재가 거듭되지 않게 하려면 책임소재를 정확히 찾아내는 것이 우선이고 중요한 일이다. 참사가 거듭되는 데에는, 책임져야 할 사람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언론의 무책임’도 한몫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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