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휴머니즘 관점으로 본 핵폐수 해양 투기

정현주 문화연구가
정현주 문화연구가

일본의 후쿠시마 핵폐수 해양투기에 관해 국제원자력기구 IAEA가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한다고 발표한 보고서는 거짓과 기만으로 얼룩져 있다. 그들은 오만하게도 핵폐수 해양투기에 어떠한 책임도 없다고 덧붙였다. 일본이 핵폐수 해양투기를 실행한다면 인간의 능력으로 방사능 물질을 통제할 수 있는 책임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레거시 미디어들은 이 중대한 뉴스에 대해 침묵하거나 심지어 수구언론들은 거짓뉴스라고 치부하고 있다. 하지만 거짓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내부고발자의 진술이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하다.

우리는 과학이 진리탐구의 영역이라고 교육받아 왔다. 하지만 이제는 과학이 진리탐구의 영역이라고 믿는다면 바보인증이거나 순진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정하고 싶지만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자본에 종속된 과학이 진리 탐구는커녕 이해관계에 얽혀 뇌물을 받고 특정 집단을 위해 정보를 조작하는 비윤리적 범죄 행위가 만연한 현실을 자각하게 될 뿐이다.

이보다 더 최악일 수는 없다. 우리나라 국민 85%와 모든 나라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한국 정부만 후쿠시마 핵폐수 해양투기를 찬성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IAEA의 보고서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리투아니아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환하게 웃으며 상당히 흡족한 표정으로 악수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그들의 표정은 보고서가 조작됐든 말든 국제법을 위반하든 말든 누가 책임을 지든 말든 핵폐수 해양투기에 성공만 할 수 있다면 다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2011년 5월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후쿠시마 인근 바닷물을 채취해 방사능 오염 정도를 측정하고 있다. 그린피스
2011년 5월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후쿠시마 인근 바닷물을 채취해 방사능 오염 정도를 측정하고 있다. 그린피스

핵은 인류가 품고 사는 죽음의 씨앗

일본 후쿠시마 핵폐수 해양투기가 기정사실화된 듯한 이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시점에서 몇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된 핵무기와 핵발전소에서 산업용으로 이용하는 핵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러니까 안전성에 어떤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핵탄두 보유와 실전 사용은 정치‧군사적 영역이며 치명적으로 위험한 대량살상무기로 인식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평화적 이용’ 목적으로 핵발전소에서 산업용으로 쓰이는 핵물질은 안전하다고 인식하려는 경향성이 강한 것 같다. 이를 원전신화라고 한다. 국제적으로는 IAEA가, 한국에서는 원자력 발전소가 핵물질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원전신화를 만들기 위해 꽤 많은 예산을 들여 오랫동안 안전하다는 홍보를 지속적으로 해 온 성과인지도 모른다.

인류가 핵물질을 어떠한 목적으로 이용하든 상시적으로 위험하다는 사실은 이미 입증됐다. 아무리 핵물질을 군사적 이용 목적과 평화적 이용 목적이라고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 짓더라도 그 경계는 원전 추진세력들이 만든 허상이고 관념일 뿐이다. 안전성에서 만큼은 더 이상 구별될 수 없을뿐더러 아무런 차이도 없다. 오히려 상시적‧평화적으로 이용하는 산업적 핵물질이 더 위험하다는 것이 3‧11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붕괴 사례로 판명됐다.

핵물질의 위험성과 파괴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강력해졌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위력에 대한 충격과 피해는, 3‧11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어난 ‘멜트다운(여러 가지 사유로 원자로의 노심이 녹아내리는 현상)’에 비하면 그야말로 ‘리틀 보이 little boy’에 지나지 않을 만큼 미미한 것이었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으로 9초 만에 20만 명이 사망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25년 동안 20만 명이 사망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누출된 방사선물질의 양은 히로시마 원폭의 168배에 달한다.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비교했을 때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백만 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66년의 시차를 두고 다시 한번 일본의 후쿠시마가 핵물질에 노출된 이 대재앙은 디스토피아로 인류의 미래에 닥쳐올 어두운 그림자를 암시해 준다.

즉각적 단기적으로는 대량살상 무기, 장기적으로는 내부피폭

1945년 미국이 사용한 원자폭탄은 군사적 목적인 전쟁용으로 개발된 대량살상무기였다. 원폭투하 당시 많은 일본인들이 직접적인 공격에 노출돼 죽었다. 핵무기는 전쟁에서 사용하는 그 시점에서 즉각적으로 파괴적인 대량살상 무기가 된다. 앞서 말했지만 히로시마에서 원폭으로 9초 만에 20만 명이 사망했다. 원폭으로 즉사하는 경우 대량의 외부피폭이 원인이다.

불행하게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원폭투하 이후 며칠의 시간이 지난 후에 히로시마로 들어간 사람들은 외‧내부피폭을 당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원폭 후유증으로 본인은 원인도 모른 채 고통을 겪으며 죽어갔다. 여전히 생존자들은 피폭된 몸으로 현재까지도 고통 받고 있다고 한다. 원폭투하 직후 폐허가 된 상황에서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는 방사성 물질을 일본인들이 인지할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내부피폭’이라는 인식도 없었다. 의사들은 1980년대 들어서야 내부피폭의 메커니즘을 인지하게 됐다. 일부 일본 사람들은 ‘내부피폭’이란 용어를 2011년 이후에 알게 됐다고 한다. 내부피폭을 당한 사람들은 자신이 자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서서히 신체기능이 손상되면서 활동력이 저하돼 쇠약해진다. 차츰 무기력해지면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 지는 것이다. 무기력증은 생명력을 저하시켜 인간의 행위와 활동 능력을 박탈한다. 무기력에 빠진 사람은 게으르다는 평가를 받고 사회적으로 고립되면서 2차 가해라고 할 수 있는 정신적 피폭을 당하게 된다. 일본정부는 내부피폭자들을 대부분 원폭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수명이 100세 전후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핵물질에 의한 피해는 인간이 인지가능한 시간의 영역 밖에 있는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원폭투하를 당한 일본에서 알 수 있듯이 핵물질은 즉각적이며 단기적으로는 대량살상무기의 역할을 한다. 또한 일본을 포함해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서 확인된 것처럼 내부피폭은 장기적으로 문제를 일으켜 인간을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한다. 물론 차세대에 유전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핵물질에 의한 비극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체르노빌 원전 폐허지의 고방사능 지역에 서식하는 새들은 종양을 앓고 있다. 티모시 무소 교수 제공
체르노빌 원전 폐허지의 고방사능 지역에 서식하는 새들은 종양을 앓고 있다. 티모시 무소 교수 제공

체르노빌의 새들은 바다와 인간의 미래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대참사로 광범위하게 그 지역에 방사능이 유출됐다. 사고 당시 31명이 죽었다. 1991년 4월까지 5년 동안 7,000여명이 사망했고 70여 만 명이 치료를 받았다. 사고 지역 내의 건물을 비롯해 자연 생태계가 심각하게 오염됐고 30킬로미터 내에 거주하던 주민 13만5천여 명이 이주했다. 2017년 1월 사고발생 30년 만에 우크라이나 정부는 거대한 철재 구조물로 만든 돔으로 체르노빌 발전소를 봉인했다. 이 거대한 돔을 만드는 데 20년 이상이 걸렸고 100년 동안 방사성 물질을 봉인할 수 있다. 핵폐수를 해양투기하려는 일본정부와 비교하면 우크라이나 정부의 도덕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사우스 캐롤라이나 대학의 티모시 무소 Timothy Mousseau 교수는 진화생물학자로 2000년 이후 체르노빌에서 2011년 이후에는 후쿠시마에서 생물 다양성과 변이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오염이 가장 심각한 곳과 비오염 지역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새 2000여 마리를 추적해 방사능 오염 물질이 새들의 몸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했다.

그는 『끝이 없는 위기』라는 책에 발표한 글에서 방사능 오염이 생태계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력을 확인시켜 주었다. 체르노빌에서 살고 있는 피폭된 새들의 상태는 생태학적으로 심각한 상황이다. 현재 새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후쿠시마 핵폐수를 해양투기 했을 때 바다에 살고 있는 무수히 많은 생명체에게 어떠한 악영향을 미칠지 예측할 수 있는 하나의 증거가 된다. 글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조사한 대부분의 생물은 방사능 오염에 대한 노출 수준과 정비례해 유전자 손상률이 현저하게 상승했다. 많은 생물에게서 기형, 발육 이상, 백내장, 종양, 암 등의 비중이 증가했다. 수정 비율도 낮았다. 체르노빌의 오염이 심한 지역에 있는 수컷 새의 40%가 불임으로, 정자가 전혀 없거나 죽은 정자가 조금 있을 뿐이다. 많은 새가 수명이 짧아졌다. 그 결과 개체 수가 줄고 생장률도 떨어졌다. 가장 오염이 심한 지역에서는 멸종된 종도 있었다. 살아남은 종도 돌연변이가 발생하고 그것이 차세대에 되물려질 가능성이 있었다.…방사능이 높은 지역에는 새들이 본래 개체 수의 약 3분의 1밖에 없었고, 다른 생물도 절반 정도밖에 없었다. 어떤 것들은 개체 수가 너무 적어 집단을 유지하지 못할 정도였다.…새들에게서 일상적이지 않은 이상 증후가 발견됐다. 하얀 깃털 등 이상한 색깔, 부리와 날개와 눈 주위의 종양, 다리와 엉덩이의 비정상적인 성장 피부 반점의 누락이나 백내장 등이 나타났다.…또 체르노빌의 조류는 뇌가 작다 (티모시 무소,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생물학적 영향」)

위의 연구는 체르노빌의 새들이 겪고 있는 재앙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새들은 종양, 백내장, 유전자 변이, 불임, 뇌가 위축되는 등의 증상을 보였다. 피폭된 새들에게 일어난 이와 같은 생태적 대재앙은 바다의 생명체들이 미래에 겪어야할 일일지도 모른다.

 

티머시 무쏘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생물과학 교수가 2023년 4월 27일 전경련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그린피스 기자회견에서 발표하고 있다 ⓒ Greenpeace
티머시 무쏘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생물과학 교수가 2023년 4월 27일 전경련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그린피스 기자회견에서 발표하고 있다 ⓒ Greenpeace

그는 2023년 4월 한국을 방문해 후쿠시마 핵폐수 해양투기 문제에 대한 기자회견을 했다. 삼중수소가 다른 방사성 물질에 비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낮다고 주장한 도쿄전력을 비판했다. 그는 250건이 넘는 전 세계의 논문을 분석한 결과 삼중수소가 생물학적으로 영향을 준다고 밝혔다. 삼중수소는 물의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어패류 등이 플랑크톤을 섭취하고 그 것을 인간이 섭취할 경우 체내 유기화합물과 결합한다. 이 경우 도쿄전력의 주장과 달리 반감기는 10일이 아니라 최대 500~600일까지 늘어날 수 있다. 특히 삼중수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 중 외부피폭이 문제가 아니라 정작 중요한 것은 내부피폭의 위험성이다. 그는 삼중수소가 내부피폭을 입힐 수 있으며 유전자를 손상시켜 세대 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증거를 확인했다.

도쿄전력은 지난 5월 후쿠시마 제1원전 항만에서 잡힌 우럭에서 식품 기준치의 180배나 되는 1만8천 베크렐의 세슘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지난 4월에도 같은 곳에서 잡힌 쥐노래미에서 1천200 베크렐의 세슘이 검출됐다. 세슘은 반감기가 30년이다. 세슘을 흡수한 물질에서 300년 이상 방사성 위험물질이 검출될 수 있다. 세슘은 먹이사슬의 어떤 단계에서도 구분 없이 생태학적으로 농축된다. 인간이 세슘에 노출되면 뇌종양, 악성근육 종양, 난소암, 고환암 이외에 유전적 질환이 유발될 수 있다.

왜 도쿄전력은 다른 물질은 거론하지 않고 세슘만 검출됐다고 콕 집어서 발표했을까? 우럭이나 쥐노래미에서 세슘만 검출되고 플루토늄 등 다른 핵물질은 검출되지 않았을까? 원폭의 재료가 되는 플루토늄 239라는 물질은 독성이 강하고 암을 유발시키며 반감기가 24,000년이다. 완전히 무해한 물질이 되려면 50만년이 걸린다. 특히 이 플루토늄은 지금까지 인간이 가진 시간 개념으로는 접근 불가능한 영역에 있다고 봐해야 한다. 그러니까 IAEA가 후쿠시마 핵폐수 해양투기에 대해 책임성을 거론하는 것은 오만의 극치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일본이 플루토늄을 완전히 제거한 상태에서 핵폐수를 해양투기 하겠다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3‧11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현재까지 처리 후 저장된 폐수는 100만 톤 이상이다. 올 여름부터 일본이 바다에 쏟아붓겠다는 이 후쿠시마 핵폐수는 바다 생태계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무소박사가 삼중수소를 분석한 것처럼 몸에 축적되고 내부피폭을 시켜 바다 생명체를 죽음으로 내몰 것을 예상할 수는 있다. 또 체르노빌에 서식하고 있는 새들처럼 더 연약한 바다 생물부터 죽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바다 생명체들은 그렇지 않아도 산업 폐기물과 일회용 플라스틱이 넘쳐나는 환경에서 힘겹게 살아 내고 있다. 일본이 핵폐수까지 해양 투기하겠다는 것은 바다에 핵탄두을 투하하겠다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이제 체르노빌의 새가 바다의 미래가 되고 인간의 미래가 되는 것은 정말로 시간문제다.

유비쿼터스 방사능

인간의 능력으로는 한번 방출된 핵물질을 회수하는 것은 단언컨대 불가능하다. 또한 방사능 물질을 무해한 것으로 바꾸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모든 생명체는 이 방사능이 미칠 위협에 대해 방어할 수단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방사능은 지상의 모든 생명이 영위하는 기본 원리를 교란시키는 이물질이다. 방사성 물질이 단 한번이라도 방출되면 인간은 이를 통제할 수도 없고 지구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났을 당시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낙진현상이 발생했다. 일본 사람들은 3‧11 후쿠시마 사고 당시 바람이 바다 쪽으로 불었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들이 이 자연 현상을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할지라도 불행한 일이지만 바다가 방사능 물질로 오염됐다는 것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선 낙진이 되면 그 지역의 공기와 땅 그리고 물이 오염된다. 그 지역의 식물 및 동물들은 모두 방사능에 1차적으로 피폭 당한다.

비가 내리면 방사성 물질은 빗물을 타고 이동하면서 광범위하게 땅과 강을 오염시키고 주변의 식물과 동물들까지 피폭 당하게 만든다. 핵물질은 고준위 방사성 물질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저선량 방사성 물질로 변화하고 폭넓게 확산된다. 이때 외부피폭을 입히던 방사성 물질은 저선량 방사능 물질로 바뀌면서 외부피폭보다는 장기적으로는 내부피폭을 일으키게 된다.

방사성 물질이 들어있는 물을 마시면 내부피폭을 당하게 된다. 3‧11 후쿠시마 사고 직후 일본 정부는 한 살 이하의 유아에게 수돗물 섭취를 금지했다. 그렇다고 두 살 이상의 아이들에게 왜 수돗물이 안전한지 설명하지는 않았다. 아이에게 위험한 수돗물이 어른에게 안전할 리는 없다. 일본의 환경운동가들은 일본의 수돗물 대부분이 방사능에 오염됐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 오염된 땅에서 나고 자란 농산물 유통은 방사능 물질을 실어 나르는 통로가 된다. 이 경우 농민들은 절대적인 피해자가 된다. 피폭된 농산물을 먹은 사람은 내부피폭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배설물은 물을 타고 떠다니며 더욱더 넓게 방사성 물질을 확산시킨다.

2000년부터 일군의 과학자들이 우크라이나 원전 사고가 발생했던 지점으로부터 200km가 떨어진 지역에 있는 라우네 주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를 대상으로 선천성 이상 환자의 빈도를 측정하는 국제적인 연구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라우네 주 북부에 위치한 폴레시아는 체르노빌 사고로 인해 심각하게 방사능에 오염된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더 많은 선천성 기형아가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아래의 원문은 방사능 물질이 어떠한 경로로 인간의 몸에 흡수되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폴레시아 토양에 의해 방사성 물질의 대부분이 식물에 흡수됐고, 결과적으로 숲‧채소‧우유‧고기는 물론, 현지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것들이 방사성 원소투성이가 됐다. 또 계절성 홍수와 빈번한 산불이 확산을 가속화했다. 폴레시아에서 생산된 우유‧치즈‧감자 그 밖의 다른 음식도 토양 속 방사성 물질 때문에 오염됐다.‧‧‧전체 세대의 67%가 요리와 난방을 위해 장작을 태우고 있었다. 이 장작이야말로 방사능 연기의 근원인데, 어른도 아이도 그 연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또 나뭇재는 텃밭 비료로 사용됐기에, 집에서 기른 채소를 먹은 사람과 가축에 방사성 물질이 더욱 축적됐다. 수확기에 임신부는 마른 감자 줄기를 태우는 것과 같은 비교적 쉬운 일을 하는데, 줄기에는 세슘137과 스트론튬90이 흡수돼 있었고, 그녀들은 그 연기를 마셨다. 폴레시아 사람들은 계속 방사능에 피폭됐고, 그런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순간부터 또다시 다음 세대로 피해가 확산될 것이다. (헬렌 캘디콧, 『끝이 없는 위기』)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인해 라우네 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방사능 오염물질에 의한 피해는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검증해준다. 어떠한 경우에도 방사능 물질이 생태계의 정점에 있는 인간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은 가장 명확한 진실이다. 방사능 물질의 이동경로 역시 인간이 통제할 수 없다는 것도 명확하게 보여준다. 한번 누출된 핵물질은 방사성 물질로 언제 어디서나, 그러니까 유비쿼터스 방사능이 돼 모든 생명체의 삶 안에 지속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유전돼 차세대까지도!

세계 핵물질 보유 현황

앞서 말했지만 평화적 목적으로 이용되는 핵물질과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되는 핵물질의 안전성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핵발전소에서 이용 중인 핵물질과 정치‧군사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가 동시에 다 방사능을 유출하면 지구는 회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지구는 파멸하고 인류의 생명도 끝나고 말 것이란 상상은 허구가 아니다. 전 세계에 있는 핵탄두의 10%만 터져도 인류가 멸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핵무기와 핵발전소를 분리해서 생각하면 안 된다. 각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와 세계 원전 현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핵탄두 형태로 핵물질을 보유한 국가들의 현황이다. 미국 7,400개, 러시아 8,500개, 중국 200개, 프랑스 300개, 영국 225개, 파키스탄 100~130개, 이스라엘 80~300개, 북한 35~100개이다. 모두 합하면 최대치가 총 17,155개다.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 등의 통계는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 나라가 핵탄두 보유 현황을 기밀로 취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 나라가 핵탄두 보유현황을 이보다 축소된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그 숫자에는 큰 의미가 없을 듯하다. 핵탄두 한개를 보유하든, 백개를 보유하든 그 위험성에서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다음은 평화적 목적으로 핵물질을 이용하는 각 국의 원전 현황이다.

 

위의 현황을 보면 영구 정지된 원전이 204기인데 반해 운전 중인 원전은 그보다 배 이상이 많은 422기이다. 건설 중인 원전과 계획 중인 원전을 더하면 총 161기다. 이를 운전 중인 원전과 합하면 총 583기가 된다. 위의 도표에서 알 수 있듯이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유출된 방사능 물질은 지극히 극소량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주로 공기와 물 그리고 땅을 오염시켰다면 일본 후쿠시마 핵폐수 해양투기 계획은 인류가 처음 맞닥뜨린 문제로 바다 전체를 오염시키는 더 심각한 일이다. 자연 생태계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악영향을 미칠지 현재로서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 일어난 생태계 변화에 대한 연구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또한 방사능의 편재성과 현재 각 국이 보유하고 있는 핵물질의 파괴력을 생각한다면 기존의 사고방식대로 핵물질을 철저하게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으로만 봐서는 해답을 찾을 수도 없고 논의를 진전시킬 방법도 없다. 현재 각 국가와 시민 활동가들이 일본 후쿠시마 핵폐수 해양투기 계획을 반대하는 이유도 모두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에서 손해와 이익이라는 이분법으로만 바라보는 한계가 있다.

 

다비드 프리드리히 카스퍼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다비드 프리드리히 카스퍼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포스트휴머니즘 관점으로 보는 생태계의 피폭문제

일본 후쿠시마 핵폐수 해양투기 문제를 계기로 모든 핵물질에 대해 우리 인류는 어떠한 관점을 취해야 하는지 자기 성찰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왜냐하면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연 생태계 모두에 방사성 물질은 무차별적으로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고 우리는 이를 통제하거나 저항할 수단과 방법을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핵물질과 방사능 오염을 포스트휴머니즘 관점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포스트휴머니즘 철학은 인간의 개념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하는 것을 20~21세기의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과학‧생명공학적 기술 발전이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 배경이 됐다. 포스트휴머니즘은 그동안 인간이 맺어온 비인간과의 관계를 반성하고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과 사물’이라는 이분법을 해체하고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며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을 도모한다. 인간의 객관적 우월성은 자의적인 인간중심주의로 즉 인간의 나르시시즘으로 판명됐다고 보는 입장이다.

현재 포스트휴머니즘은 다양한 논제들을 담론화하며 기존의 철학으로는 인간에 대해 정의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들에 직면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활동 중이다. 포스트휴머니즘은 A1 등 특히 기술발달에 의해 인간의 신체 일부를 대신 하는 기계 등과 인간과의 관계 등을 성찰적으로 논의하지만 동물‧사물‧생태계‧젠더 등 전반으로 담론을 확산시키면서 활동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포스트휴머니즘의 핵심이 되는 인식론적 개념은 다음과 같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에 의해 그리고 인간을 위해 이론화되었다는) 인식적 한계를 인지하고, 비위계적 관점을 취하며 인간에게 어떤 우월성도 부여하지 않고, 비인간인 동물에서부터 인공지능, 로봇, 그리고 미지의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비인간의 경험을 지식의 영역으로 포함하는 것을 인식론의 조건으로 제시한다. (프란체스카 페란도, 『철학적 포스트휴머니즘』)

포스트휴머니즘 철학이 아니라면 우리는 체르노빌에서 살고 있는 고통과 절멸될 위기에 처한 새들과 공감이 불가능해진다. 우월한 인간에 의해 그리고 인간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과 사물로 치부됐던 나무, 바위, 흙, 공기 등을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에서 위계적 질서에 따라 이분법적으로 인식한다면 현재 당면한 일본 후쿠시마 핵폐수 해양투기 계획의 본질을 온전하게 바라볼 수 없게 된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종차별주의, 즉 특정한 종이 다른 종에 비해 우월하다는 주장을 해체시킨다. 그래서 이 인식론적 개방성은 인간 자체를 혼종적인 존재로 보는 관점이다. 또한 기존의 철학이 구축한 체계들을 해체하면서 비인간에 대해 포용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된다. 아래의 인용 글은 포스트휴머니즘 철학의 핵심이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실천인 동시에 탈-이원론적이고 탈-중심적이며, 포용적이다. 또 타자성을 인정하고 타자성 안에서 자신을 인지하며 그런 의미에서 “인정”(이 용어는 인정과 동시에 감사의 표현이라는 이중적 의미 때문에 더더욱 적합하다)…그것은 매개의 철학이다.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에서 해방되면 우리는 자유로운 시야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타자성이란 비인간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래서 기존의 이분법을 해체하면 우리는 더 자유롭게 비인간과의 관계를 상상할 수 있게 된다. 결국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 사유에 있어서 새로움에 대한 판단은 ‘관계적’이고 ‘상황적’이라고 인식한다. 포스트휴머니즘 철학에서 핵심은 탈-인간주의, 탈-인류중심주의, 탈-이원론이라는 세 층위이다.

일본 후쿠시마 핵폐수 해양투기가 실행된다면 바다는 어떻게 달라질까? 그리고 우리 인간은 피폭당할 수밖에 없는 비인간에 대해 어떻게 공감할 수 있을까? 바다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바위 틈새는 물고기들이 사는 집이고 피난처다. 해초들은 그들의 식량이고, 휴식처다. 바닷물은 그들이 사는 세계로 절대적으로 필요한 비인간적인 물체다. 이 모든 것들이 방사능으로 오염돼 생명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한다는 것에 우리가 공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지금처럼 단지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젖어서 최종적으로 생태계의 정점에 있는 인간에게 이익이 아닌 손해가 되기 때문에 핵폐수 해양투기를 반대해야 하는 것일까?

포스트휴머니즘 철학은 ‘생태적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인간과 비인간의 위계적 질서체계를 해체하면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가 수평적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이 때 필요한 개념은 ‘지구의 민주주의’가 된다. 생태적 정체성과 지구의 민주주의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인간이 건강한 지구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살아 있는 존재의 평화와 주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시바는 말한다. “우리는 지역에 기반해 있지만 전체로서의 세계, 그리고 사실은 우주 전체에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지구의 민주주의는 이 사실에 대한 의식으로부터 나온다. 보다 구체적으로 ”생태 안전은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안전이다. 생태적 정체성은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정체성이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음식이고, 우리가 마시는 물이고, 우리가 숨 쉬는 공기다. (프란체스카 페란도, 『철학적 포스트휴머니즘』)

기술발전에 기반 해 살아온 인류는 태양만이 가진 천상의 능력을 훔쳐와 핵물질을 소유하게 됐다. 정치적으로는 우주의 생명체 전체에 대해 생사여탈권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됐다. 이 문장을 달리 해석하면 인간이 비인간에 대해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할 능력을 가졌다는 말이다. 일본 후쿠시마 핵폐수 해양투기가 실행된다면 인간이 비인간에 가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산업적 그리고 경제적 효율성이 생태적 정체성과 대립해 지구의 민주주의가 아닌 인간이 비인간을 대상으로 독재를 행사하는 것과 같다. 자연적 공간으로서 지구에 살며 물과 땅과 공기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인간이 인간중심주의적인 위계질서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려는 이 계획이 얼마나 오만하고 폭력적인 행위인지 그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바다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들에 귀 기울여야

현재 우리는 방사능 오염물질이 전 지구를 오염시키기 직전에 이 아름다운 자연을 찬미했던 서정시들을 노래할 수 있는 행운을 얻은 마지막 시대의 인류가 될지도 모른다. 일본이 후쿠시마 핵폐수 해양투기를 실행한다면 우리는 지구 깊숙이까지 방사능에 오염된 공간에서 살면서 서정시를 쓸 수 있을까? 바람을 맞으며 기분 좋게 산책을 할 수 있을까? 비가 내린 후에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아름답다고 찬양할 수 있을까? 숲이 품어내는 향기를 맡고 숲 속에 자신의 몸을 맡기며 포옹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비인간으로부터 누려왔던 모든 해택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내맡기며 살아갈 수 있을까? 또한 우리는 “자연스럽다”는 이 아름다운 형용사를 지금처럼 반복해서 쓸 수 있을까? 모든 것이 회의적이고 의문투성이일 뿐이다.

바다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비생명체와 공존하며 살고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말할 것이다. 우리도 이 지구에서 온전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19세기 중반부터 자연의 권리를 위해 싸워온 선구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동물, 계곡, 강, 나무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법정에 서 비인간의 대리자 역할을 자임해 왔다. 그들이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이분법적으로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들은 사랑하는 나무 한 그루, 새 한 마리, 흐르는 계곡의 물이 하는 말에 귀 기울였고 공감하며 소통했다.

일본 후쿠시마 핵폐수 해양투기 계획을 철회시킬 방법은 바로 이것이다. 근대적 개념으로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으로만 자연을 내려다본다면 해결책을 모색할 수 없다. 포스트휴머니즘 관점에서 그동안 인간이 가졌던 위계질서를 내려놓고 생태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비인간과의 관계에서 민주적으로 공감하며 그들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때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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