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대변인 "지나친 게 모자란 것보다 훨씬 낫다"

국민 감정과 동떨어진 인식, 지원사격에만 급급

주 69시간제 대응 등 '불난 여론에 기름 붓기' 반복

당내서도 비판…"안전 문제 심각한데 어이없어"

야권 "의도적 불안 조성하나" "컨트롤타워 없어"

"윤석열이 국민의 재난, 오세훈이 서울시민 재난"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북한이 우주발사체를 발사한 31일 오전 서울시가 발송한 경계경보 발령 위급 재난문자(왼쪽). 행정안전부는 서울시가 6시41분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이라는 문자를 보냈다. 2023.5.31. 연합뉴스
북한이 우주발사체를 발사한 31일 오전 서울시가 발송한 경계경보 발령 위급 재난문자(왼쪽). 행정안전부는 서울시가 6시41분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이라는 문자를 보냈다. 2023.5.31. 연합뉴스

서울 시민들을 새벽부터 대혼란에 빠뜨린 '경계경보 오발령 사태'에 대해 집권여당은 오히려 뭐가 문제냐며 서울시가 잘했다는 식의 반응을 내놨다. 윤석열 정권에 관련된 사안이면 어떤 심각한 오류나 실책이 있어도 덮어놓고 옹호하는 국민의힘의 맹목적 관성이 민심 이반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31일 오전 북한의 우주발사체 발사에 이은 서울특별시의 경계경보 오발령에 대해 "재난과 관련해서는 지나친 게 모자란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 대변인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오발령을 '행정재난'이라고 비판한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민주당은 '탄압 시리즈'에 이어 '재난 시리즈' 같다"고 비꼬기까지 했다.

서울 시내에 사이렌까지 울리며 출근길 시민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던 위급재난 문자는 북한이 우주발사체를 쏘아올린 뒤 12분이나 지나서야 발송돼 가장 기본적인 신속성에서부터 엉망이었던 데다, 어떤 이유 때문에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아무런 안내가 없어 '위급재난'이라는 명칭 자체가 무색했다. 그래서 스스로 상황 파악을 위해 시민들이 포털 사이트 검색에 한꺼번에 몰리면서 접속 장애까지 벌어지는 설상가상이 됐고, 결국 행정안전부가 오발령 문자를 보내자 시민들은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정부가 이날 북한 측 발사 불과 2분 뒤에 대피명령을 전달하며 "미사일 발사. 미사일 발사. 북한으로부터 미사일이 발사된 것으로 보입니다. 건물 안, 또는 지하로 피난해 주십시오"라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 문자를 발송한 조치와도 단적으로 비교돼 시민들을 더욱 어처구니없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사정이 이런 데도 여당 수석대변인은 서울시를 무조건 두둔하며 이를 비판한 야당을 조롱한 것이다. 국민의힘 대변인단은 이날 오후 6시까지 총 10건의 공식 논평을 내놨지만 오발령 사태에 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같은 당 박대출 정책위의장도 취재진에게 "경위는 자세히 봐야겠지만 우리 국민들에게 안보는 아무리 지나쳐도 지나침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안보'를 위해 오발령 문자라도 정당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과 이만희 정책위 수석부의장이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응급의료 긴급대책 당정협의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3.5.31. 연합뉴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과 이만희 정책위 수석부의장이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응급의료 긴급대책 당정협의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3.5.31. 연합뉴스

국민의힘이 전반적인 국민 감정과는 동떨어진 인식 하에 정권 엄호 및 지원사격에만 급급하는 행태를 보인 것은 '주 69시간 근무' 개편안에 관한 대응을 비롯해 여러 사례가 있다. 집권당으로서 여론에 민감하게 조응해 정무적 감각을 발휘하기는커녕 거꾸로 불난 여론에 기름을 붓는 것이다. 이는 친윤계가 당권을 장악한 상태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 목을 맨 의원들이 다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당내 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국민의힘 안에서도 현역 의원들 비판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그만큼 시민들 피부에 곧바로 와닿는 '전쟁 불안감'을 자극하는 사태였기 때문이다.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서초구청장을 지내고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인 조은희 의원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국민 안전에 관한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 오발령을 하다니 참 어이가 없다"며 "행안위 차원에서 서울시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제대로 들여다보면서 시정을 촉구해야겠다"고 밝혔다. 조 의원은 "굉장히 신중하지 못했다. 기계가 하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인데 사람이 너무 경솔했다"면서 "담당 직원들도 다시 교육을 해야 한다. 서울 시민들을 놀라게 하지 않는 방안이 책임지고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은아 의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국민께 정확히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다. 왜 '경계경보 발령'을 한 것인지, 어디로 대피하라는 것인지, 단 한 마디 설명도 없었다"면서 "서울시와 행안부가 떠넘기기 핑퐁 할 사안이 아니다. '회피'가 아니라 사과와 대책 마련이 우선"이라고 했다. 그는 "불필요한 혼란을 조성해서도, 양치기 소년이 되어서도 안 되겠다"며 "우리의 재난 안전 시스템에 무엇이 문제였고, 어디에서 잘못됐는지, 국민 입장에서 철저하게 되짚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31일 오전 6시29분께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에서 남쪽 방향으로 북한이 주장하는 우주발사체를 발사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이날 오전 서울역 대합실 TV에 관련 뉴스속보가 나오는 가운데 수학여행을 떠나기 위해 모인 학생들이 갑작스럽게 울린 경보음을 듣고 휴대전화 위급재난문자를 확인하고 있다. 행안부는 "서울특별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이라고 정정했다. 2023.5.31 연합뉴스
북한이 31일 오전 6시29분께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에서 남쪽 방향으로 북한이 주장하는 우주발사체를 발사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이날 오전 서울역 대합실 TV에 관련 뉴스속보가 나오는 가운데 수학여행을 떠나기 위해 모인 학생들이 갑작스럽게 울린 경보음을 듣고 휴대전화 위급재난문자를 확인하고 있다. 행안부는 "서울특별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이라고 정정했다. 2023.5.31 연합뉴스

야권에선 서울시는 물론 정부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성토가 쏟아졌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미 북한이 국제기구에 발사 사실을 통지했는데 이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새벽에 경계경보를 오발령하는 황당한 일이, 또 무책임한, 무능한 일이 벌어졌다"며 "정부 기관끼리도 허둥지둥하면서 손발이 맞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국민의 불안과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행동을 주의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공포 분위기 조성, 안보 불안 조성, 전쟁 마케팅으로 정권의 지지율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냐"면서 "이런 쌍팔년도식 불안감 조성으로 취할 정권의 안정은 없다. 제2 북풍 조작으로 정권의 지지율을 올리려는 얄팍한 꿈이 있다면 그 꿈 깨시기 바란다"고 경고했다. 서영교 최고위원도 "북한이 위성발사체를 쏜 것은 국제법 위반이지만 그들은 낙하지점까지 예고했다. 그런데 그것을 대한민국 윤석열 정권만 모르고 있었다"며 "솔직히 전쟁의 위험이 바로 가까이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우려했다.

정의당 김희서 수석대변인은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새 떼를 무인기로 착각해 전투기를 출격시키고, 서울 영공이 뚫렸던 안보 구멍이 한치도 나아지지 않았음을 보여줬다"며 "단 한 순간의 오판으로도 평화가 깨지고 전쟁이 즉발 될 수 있는 한반도의 현실을 실감했다. 강대강 대립 구도와 상호군사적 대응의 확대는 국민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고 했다.

기본소득당 상임대표인 용혜인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오늘의 오발령 사태는 대한민국의 처참한 재난 경보 시스템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면서 "이후 대응이 더 가관이다. 합참 본부, 서울시, 행정안전부 모두 말이 다르다"고 짚었다. 용 의원은 "이 정도면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 재난이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민의 재난"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진보당 손솔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걸 여실히 느낀 아침이었다. 존재하지 않았던 국가 안보시스템이야말로 재난"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사죄하라. 동북아 긴장 고조에 앞장서며 '힘에 의한 평화'를 외쳐대던 정부가 국민 생명과 안전이 걸린 일에는 이토록 무능하다니 헛웃음이 나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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