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일부 악랄하게 편집·조작…사람이 할 짓인가"
민주노총 건설노조와 고 양회동 열사 유가족은 22일 양 열사의 분신과 관련, '기획 분신' '유서 대필' 의혹을 제기한 <조선일보> 기자들과 건설 노조원이 분신을 방조한 것처럼 글을 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양 열사 분신 당시 폐쇄회로(CC)TV를 유출한 수사기관 관계자 등에 대해 법적 대응이 나섰다.
건설노조는 22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일보 자회사 <조선NS>의 최훈민 기자와 조선일보 최아무개 사회부장, <월간조선> 김광주 기자와 데스크 담당자 A 씨, 원희룡 국토부 장관, 성명불상의 경찰 또는 검찰 관계자를 고소·고발한다고 밝혔다.
앞서 최 기자는 16일자 <조선일보> 인터넷판 기사와 17일자 <조선일보> 지면 기사에서 건설노조 강원지부 홍모 부지부장이 분신 당시 "가만히 선 채로 양 씨를 지켜봤다"며 극단적 선택을 방치한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홍 부지부장은 양 열사에게 다른 노조원과 통화를 권하는 등 분신을 적극 만류했고, 현장에 있던 <YTN> 강릉지국 기자들도 홍 부지부장이 분신을 말렸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하지만 최 기자는 홍 부지부장과 YTN 기자들이 만류한 정황은 빼고, 소리도 없는 CCTV 장면 일부만 선택해 분신을 묵인, 방조한 것처럼 보이게 기사를 썼다.
김 기자는 18일자 <월간조선>에서 필적 감정 등 객관적인 근거 제시 없이 "양회동 씨 유서 3장 중 1장은 글씨체가 다른 것으로 파악됐다. 굳이 필적 감정을 하지 않고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확연히 차이가 났다"면서, 마치 열 열사의 유서가 누군가에 의해 위조됐거나 대필한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이 역시 왜곡 보도 정황이 뚜렷하다. <월간조선>에서 글씨체가 다르다고 지목한 유서 1장은 양 열사가 분신 직전 홍 부지부장에게 차에서 탄원서를 쓴다고 말하고 썼던 유서다. 그는 이를 사진으로 직접 찍어 분신 약 18분 전 건설노조원들이 사용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했었다.
글씨체 역시 차량에서 급하게 쓴 유서와 사후 발견된 밀봉된 유서가 일부 다를 수밖에 없고, 오히려 일부 필체의 경우 육안으로 비교해도 본인 필체로 보인다. 유서를 쓴 종이도 3장 모두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월간조선>은 최소한의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육안으로 보기에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서대필로 몰았다.
건설노조는 분신 방조 보도를 한 최 기자와 이를 승인한 <조선일보> 최아무개 사회부장 등에 대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사자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인터넷에만 게재한 김 기자와 <월간조선> 데스크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과 사자명예훼손 혐의만 적용됐다.
아울러 건설노조는 <조선일보> 기사를 그대로 인용해 페이스북에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적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사자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함께 고소했다.
최 기자에게 CCTV를 유출한 경찰 또는 검찰 관계자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사자명예훼손을 방조하고, 수사 중인 사건 자료를 외부에 누설해 공무상 비밀누설죄 저지른 것으로 보고 고소했다. 이 내부자는 개인정보인 CCTV 영상을 제3자에게 제공해 개인정보 보호법도 위반했다.
법률 대리인인 김예지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원 장관은 마치 중립적인 것처럼 언론보도를 인용했으나, 그 표현을 보면 명백히 건설노조 간부가 잔인하게 동료 간부의 자살을 종용했고, 건설노조도 대정부 투쟁을 위해 양 열사의 자살을 기획, 이용했다는 취지의 허위사실을 적시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조선일보와 원 장관, 수사기관들의 행위가 마치 지난 1991년 '강기훈 씨 유서 대필사건'을 상기시킨다며 "안타까운 죽음 이후로 특정 언론이 정부에 불리한 정치적 국면을 타개하고 분신 자살의 진정한 의미를 축소시키기 위해 허위사실을 적극적으로 보도한 것"이라고 했다.
특히 유서대필과 관련해 <조선일보> 자회사 기자들의 조직적인 왜곡 보도 정황도 일부 드러나고 있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월간조선>의 유서대필 단독 기사가 나오기 전인 5월 18일 <조선NS> 최 기자에게 전화가 왔는데 받지 않았다"며 "(최 기자가) 카톡으로 유서대필 의혹 이야기를 하면서 같은 사람이 쓴게 맞냐는 취지로 물었고 답변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최 기자의 취재 이후 <월간조선>에서 유서 대필 기사가 나오고, 이어 다음 날엔 유서대필 기사를 쓴 장본인인 김 기자가 건설노조 측에 연락했다. 건설노조에서 이들의 취재에 응하지 않았지만, 유서대필과 관련해 <조선일보> 자회사 기자들이 여러 차례 취재한 정황이 있다.
건설노조는 이번 고소장에 분신 당시 긴급하게 통화하며 만류한 증거로 홍 부지부장의 통화내역을 첨부했다. <조선일보>는 홍 부지부장이 몸에 불을 끄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 휴대전화를 조작했다며, 분신을 방조한 것처럼 기사를 썼는데 이를 반박할 자료다. 추후 필적 감정 결과도 제출할 예정이다. CCTV 정보공개 청구도 요청한 상태다.
노조는 수사를 통해 진술이 규명될 수 있도록 CCTV와 영상물, 유출 경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에 대한 증거보전 신청하고, 손해배상 청구도 조만간 제기할 예정이다.
건설노조 강한수 수석부위원장은 "죽음을 막지 못해 너무나도 몸부림을 쳤던 홍 부지부장에게 양 열사를 죽인 살인자라고 조선일보는 이야기했다. 과연 이게 사람이 할 짓이냐"면서 "영상을 일부만 편집해 아주 악의적으로 아주 악랄하게 조작한 언론과 기자, 데스크들을 절대 용납하지 못하겠다"고 분개했다.
강 부위원장은 원희룡 장관에 대해서도 "언론의 기사 내용을 확인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보도하는 데 덧붙여서 열사의 죽음을 투쟁 동력으로 이용한다는 막말을 하는 게 장관이냐"며 "이 사람같지도 않은, 도저히 인간이라 생각할 수 없는 그들에게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경찰 수사에 대해서도 "소위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상황이지만 법이 이렇기에 어쩔 수 없이 경찰청에, 파면해야 할 윤희근 경찰청장에게 사건을 맡긴다"며, 경찰을 향해 "철저하게 조사하라. 모든 사실관계 확인은 당신들 경찰이 해야 된다. 지켜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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