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공동 참배…강제동원 덮은 '반쪽'
공동참배 기시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 '강제동원'엔 함구
윤 "총리님 용기 있는 행동"…기시다 두둔하기에 "급급"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한·일 정상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참배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1일 오전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찾아 헌화하고 묵념했다.
지금까지 참배했던 한국 대통령은 없었으며, 일본 총리로는 1999년 오부치 게이조(1937∼2000)가 참배했다. 두 나라 정상의 공동 참배는 처음이다.
그러나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피폭된 한국인 희생자 대부분이 일제에 의해 불법으로 강제동원(징용) 됐던 분들이었음을 알고 있다면 책임 있는 일본 총리로서 전쟁 범죄인 한국인 강제동원 부분부터 사과하는 게 순서였다. 기시다는 이 대목엔 입을 꾹 다물었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는 1945년 8월 6일 미국이 전범국인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고자 역사상 최초로 원자폭탄을 투하했고, 그 원폭에 희생된 한국인들의 혼을 달래고자 1970년에 세웠다.
말 못할 사연도 있었다. 일본이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안에 공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는 오랜 세월 공원 바깥으로 밀려나 '차별'을 받고 있다가, 근 30년만인 1999년 7월 공원 안으로 옮겼다.
공동참배 기시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 '강제동원'엔 함구
위령비 비문에는 명분 없는 싸움에 명분 없이 죽음의 마당으로 향해야 했던 동포 군인, 괭이와 낫을 들고 소와 말 같이 부림을 받던 동포 징용자 등 한국인 5만 명이 히로시마에 있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한국인 사망자는 2만 명으로 기록됐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는 히로시마 원폭으로 인한 한국인 사망자를 3만 명으로 추산한 바 있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공동으로 참배한 두 정상은 인근으로 자리를 옮겨 정상회담을 했다.
기시다는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서 위령비 공동 참배에 대해 "한일관계에도,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세 번째 한일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한일관계의 진전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피폭으로 희생된 수많은 한국인이 그 시점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인 일제의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선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일제 식민 지배를 합법이라고 우기고 군대 위안부와 징용·징병 등 불법적 강제동원의 존재 자체를 극구 부인하는 일본 극우세력의 '일관된 입장'과 맥을 같이한다.
경기일보가 보도한 [끝나지 않은 원폭피해자의 악몽](2021년 2월 28일 자)에 따르면, 일제는 침략전쟁을 확대하면서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1939년 국민징용령을 제정했다. 조선에서 강제동원이 시작된 시기는 1944년이다. 이 해에만 징용이라는 '법적 의무' 아래 일본으로 20만 명의 강제 이주가 이뤄졌다. '연령징용'을 통해 징용 연령에 부합하는 사람들은 모두 차출됐다. 징용된 대부분이 당시 21세가량이었다.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은 히로시마 기계 제작소나 히로시마 조선소에 배치됐으며, 수용 생활을 하며 군수산업 물품 생산에 투입됐다. ☞https://www.kyeonggi.com/2349400
한국인, 미국 원폭·일제 강제동원 '동시 희생자'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미국 원폭의 희생자인 동시에 일본 제국주의 전쟁범죄의 희생자이기도 하다는 점을 기시다를 포함해 역대 일본 정부는 애써 감춰왔고 지금도 감추고 있다. 기시다의 한국인 위령비 공동 참배가 '반쪽짜리'인 것은 그래서다.
볼썽사나운 건 앞장서서 일본 '쉴드치기(두둔하기)'에 급급한 윤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우리가 함께 참배한 것은 한국인 원폭 피해자에 대해 추모의 뜻을 전함과 동시에 평화로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우리 총리님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 방한 시 기시다 총리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가혹한 환경에서 고통스럽고 슬픈 경험을 하게 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한 것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라며 기시다가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추켜세웠다.
지난 7일 서울 한일 정상회담 직후 이어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나 자신은 당시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이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으셨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고 했던 기시다의 발언을 지칭한 것이다.
당시 기시다는 자신의 발언을 일본 총리로서가 아니라 개인 자격임을 전제했다. 추후 꼬투리를 잡히지 않겠다는 계산에 따른 것임은 물론이다. 그 뿐이 아니었다. 그의 발언은 모호하기 그지없었다. 여기서 "많은 분이"이 한국인인지 아닌지, "고통스럽고 슬픈 일"이 '강제징용'을 뜻하는 것인지 아닌지도 밝히지 않았다. 기시다 개인의 감상 표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진실이 이러한데, 윤 대통령은 기시다의 맘속에도 없고 실제로 거론하지도 않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본인이 아전인수로 끌어내 기시다가 이들을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진정성 있게 사과한 것처럼 의도적으로 '포장'한 셈이다.
정상적인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 위령비 참배 때 강제동원 문제를 거론했어야 했다. 그동안 역대 한국 대통령이 한 번도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찾지 않은 배경에는 일제의 불법 강제동원 문제를 거론할 것을 지레 우려해 일본 정부가 거부했기 때문일 공산이 크다.
이날 공동 참배 행사는 박남주 전 한국원폭피해자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피폭자 2세인 권준오 현 한국원폭피해특위 위원장 등 한국인 원폭 피해자 10명이 뒤에서 지켜봤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히로시마 프레스센터에서 '위령비 공동 참배로 일본의 과거사 입장이 진전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두 정상이 말이 아닌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공동 참배 현장에 있던 한국인 원폭 피해자 중 강제징용 피해자 참석 여부에 "강제징용자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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