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폐막된 G7 정상회의 코뮈니케
중국에 대한 디커플링과 디리스킹으로 수렴
디커플링 최대 피해자는 아시아와 한국
엇갈리는 ‘현상변경’의 이쪽과 저쪽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19일부터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21일 사흘간의 논의를 끝내고 폐막했다. 논의 성과들을 정리한 20일 회의의 ‘G7 히로시마 정상 코뮈니케(성명)’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가능한 한 가장 강력한 말로 비난”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지지를 재확인”한다고 명기했다. 이번 회의는 이처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핵심 주제로 삼아 ‘법의 지배에 토대를 둔 자유롭고 열린 국제질서’를 견지하고, ‘글로벌 사우스와 연대’하며, ‘핵없는 세계’를 지향한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G7의 기득권 유지 전략
이 중에서 ‘법의 지배에 토대를 둔 자유롭고 열린 국제질서’는 G7 중심의 서방세계가 주도해 온 기존 국제질서를 앞으로도 유지해 가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와의 연대’ 또한 이를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더욱 존재감을 키워가면서 세계를 다극화하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주로 북쪽 온대지대의 부자나라들 남쪽에 분포하는 다수의 개도국 등 상대적 낙후국들)를 서방 쪽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서방의 결속과 영향력 확대를 겨냥한 이런 전략은 대결구도를 전제로 하고 있다.
대결 상대는 표면적으로 러시아로 명시돼 있지만 진짜 상대는 러시아를 ‘사실상 속국화하고 있다’는 말까지 듣는 중국이다. G7 정상회의 개최 나흘 전인 지난 15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서도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변경은 용납하지 않겠다. 법의 지배에 기초한 자유롭고 열린 국제질서를 견지해 가겠다”는 이번 정상회의의 핵심의제이자 기본방향을 밝혔다. 5월 18일 <포린어페어즈> 온라인에 실린 기고문(‘The New Meaning of Hiroshima’)에서도 기시다는 같은 얘기를 했다.
이번 히로시마 G7 정상회의는 결국 중국의 대두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중국을 어떻게 순치 또는 배제해서 서방의 글로벌 지배를 유지해 갈 것인가에 맞춰졌다고 할 수 있다.
‘핵없는 세계’ 지향은 G7 자신들의 핵무기 폐기 의사를 밝히지 않았고, 러시아와 중국을 겨냥한 ‘확장억제’ 강화 내지 유지를 전제로 한 ‘모순’적인 것이어서, G7이 처음으로 전 인류 차원의 중차대한 문제에 대한 방향설정을 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 진정한 의도와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히로시마 G7의 구체적인 조치들
히로시마에 모인 서방 정상들이 강구하고 있다고 ‘G7 히로시마 정상 코뮈니케’ 앞 부분에 명시한 ‘구체적인 조치’들은 러시아의 침략을 당한 우크라이나를 확고하게 지원하고,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해 군축·비확산 노력을 강화한다는 것 외에 다음과 같은 내용들도 담고 있다.
* 디커플링이 아니라 다양화, 파트너십의 심화 및 디리스킹에 기초한 경제적 강인성 및 경제안전보장을 향한 우리의 어프로치에서 협조한다.
* G7 내부 및 그밖의 나라들과의 협력을 통해 장차 클린 에너지경제로의 이행을 추진한다.
* 글로벌 인프라 투자 파트너십(PGII)을 통해 질 높은 인프라를 위한 자금 제공에 최대 6000억 달러를 동원하기로 한 우리의 목표를 실행한다.
디커플링과 디리스킹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 분리)과 디리스킹(de-risking. 위험 제거 또는 회피)은 유럽연합(EU)의 최근 중국정책의 근간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지난 15일에 중국과의 관계를 염두에 둔 ‘경제안전보장전략’을 6월에 새로 제안하겠다고 발표하면서도 EU의 중국전략은 디커플링이 아니라 디리스킹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에 앞서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 등의 고위관리들도 같은 말을 했다. 급기야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등 미국 고위관리들도 미국의 중국정책 역시 마찬가지라고 얘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G7 정상회의는 미국과 유럽이 한 자리에 앉아 이를 공식적으로 다시 확인한 셈이다.
디커플링과 디리스킹은 중국과 패권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요구를 어느 정도 맞춰 주면서도 중국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유럽이 첨단기술과 희토류 등 특정 자원의 지나친 중국 의존도를 낮춰 위험을 피하면서 경제적 실리를 챙기겠다는 전략의 산물이다. G7 의장국 일본은 이런 유럽과 미국의 절충점을 찾아내야 했고, 그것이 코뮈니케의 디커플링과 디리스킹에 기초한 협조로 정리됐다.
디커플링의 최대 피해자는 한국?
국제통화기금(IMF)은 디커플링으로 세계 무역이 분단상태로 가게 되면 세계 전체의 GDP(국내총생산)가 7%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감소분은 지금 일본과 독일의 GDP를 합친 것과 같은 규모라고 한다. 하이테크(첨단기술) 분야 등에서 특정국(중국)과의 디커플링이 진행될 경우 세계 전체 GDP 손실은 최대 12%에 이를 수 있다고 IMF는 추정했다.(<아사히신문> 5월 12일)
IMF는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관계가 약화되면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될 나라들은 개도국·신흥국, 말하자면 글로벌 사우스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글로벌과 자유무역의 혜택을 가장 크게 본 아시아지역 나라들이 ‘제2의 냉전’(신냉전)으로 국제적 공급망이 파괴되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한국이 대표적이다.
유럽의 입장은 자국 이익에도 치명타가 될 수 있는 미국의 마구잡이식 대중 강경책을 제어할 필요가 있었던 일본에게도 우군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말하자면 대중국 정책과 관련해 미국의 일방적인 폭주를 막는데 유럽과 일본은 이해가 일치했다는 얘기고 그것을 무시할 수 없는 미국도 타협을 했다는 것이다.
도드라진 윤석열 정부의 단선적 친미노선
이는 우크라이나 지원과 러시아 제재에서 어느 나라보다 미국의 입장을 두둔해 온 것으로 보이는 일본조차 단선적인 친미 일변도가 아니라 매우 복잡하고도 치밀한 계산을 하면서 자국 이익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저돌적인 친미, 친일 행보가 갈수록 도드라져 보이는 윤석열 정부와는 다른 점이다.
탈탄소 클린(녹색) 에너지경제로의 이행도 유럽, 심지어 미국마저도 바이든 집권 이후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됐다는 걸 이 코뮈니케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분야 정책에서도 윤석열 정부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 당장의 수지타산을 앞세운 기업 쪽 요구에 따라 화석에너지 사용비율을 줄이지 않거나 오히려 늘릴 경우, 기술변혁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는 좀비기업들을 연명시키면서 기술혁신은 물건너 가게 된다. 그 결과 국가 전체의 경쟁력이 곤두박질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최근 일본의 예로도 알 수 있다.
글로벌 사우스 끌어안기
글로벌 인프라 투자 파트너십을 통해 6000억 달러를 동원하겠다는 것(G7의 목표)은 중국의 일대일로 등에 크게 밀리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의 지지를 만회하면서 중국의 약진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목표가 실현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이는 글로벌 사우스 ‘내편 만들기’에서 서방이 중국이 뒤지고 있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나 같다. 글로벌 사우스 확보는 유엔 등 국제기구 등에서 다수의 지지를 확보해야 하는 국제정치 무대에서도 매우 중요하지만, 경제적인 이유가 더 클 수 있다. 중국의 제조업 능력과 첨단기술 발전을 저지하려는 미국 입장에서는 글로벌 사우스, 그 중에서도 특히 인도나 브라질, 남아공, 멕시코 등 글로벌 사우스 대국들의 제조업 능력을 키워 중국의 독점적 지위를 약화시키고 주요 제품이나 원료, 기술의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서방은 글로벌 사우스가 중국으로 기우는 것을 차단하고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지원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다.
현상변경의 이쪽과 저쪽
코뮈니케가 강구하겠다는 ‘구체적 조치’ 다음으로 열거한 ‘협동해서 대처하기로 결의’한 항목들 중에서 맨 앞에 나오는 것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지지하며, 힘 또는 위압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변경 시도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현상변경’이란 중국의 대만 침공 내지 합병 가능성을 겨냥한 말이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확장주의는 자국의 영토 외의 땅을 추구하는 것이다. 중국은 그렇게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는 곧 대만은 본래 중국 땅이니 설사 합병하더라도 확장주의, 말하자면 ‘현상변경’이 아니라는 얘기다. 중국정부는 지금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국제질서를 2차 세계대전 뒤 국력이 빈약했던 중국 등 개도국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본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1일 “G7이 말하는 국제 룰(규칙)이란 이데올로기로 선을 긋는 서방의 룰이고, ‘아메리카 퍼스트’와 G7이 주도하는 작은 그룹의 룰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이라는 것은 미국 등 서방이라는 일부 기득권세력의 것일 뿐 중국에게는 부자유스럽고 닫힌 인도태평양일 수 있다. G7이 주장하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은 서방에게 유리하게 짜여진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기득권자들의 전략적 구호다. 이는 중국에게는 부자유하고 닫힌 인도태평양이 지속되는 것이니 ‘현상변경 불가’에 찬성할 수 없다. 이것이 미중 패권경쟁의 본질이다. 이는 어느 한쪽이 선하고 다른 쪽이 악하다는 선악 차원에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힘 대 힘과 손익 차원에서 판단해야 할 문제다.
분단당하고 전쟁까지 치르며 엄청난 피해자가 된 한국이 ‘현상변경’을 거부하면 미국 일본 등 G7이 환호하겠지만, 한국은 남북통일을 스스로 거부하고 민족과 영토의 영구분단을 지지하는 결과가 된다. 휴전선은 신냉전이라는 국제적인 진영대결의 최전선이 될 것이다. 현상변경에 찬성한다면, 미국과 일본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아시아태평양판 나토
글로벌 사우스를 ‘내편’으로 만드는 것은 따라서 미국에게도 중국에게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미국과 G7은 이를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아시아태평양지역까지 진출시켜 인도와 동·서남아시아 나라들과, 태평양 도서국들을 서방쪽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중국은 당연히 이를 서방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나토를 아시아태평양으로 확장해서 중국을 제압하려는 아시아태평양판 나토를 만들려는 것이라며 반발한다. 중국 입장에서는 세계를 분단하고 대립시키는 것은 G7이고 서방이지 중국이 아니다.
중국의 그런 사고와 행태는 G7 등 서방에겐 위협적이고 적대적으로 비칠 수 있다. 중국 힘이 커지고 한때 절대적이었던 미국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면서 미국이 서방 국가나 그들의 가치를 더는 제대로 보호해 줄 수 없게 됐다. 나토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얘기했듯이 “빈사상태”가 됐고 유럽 국가들은 각자도생하면서 미국의 말을 듣지 않게 됐다. 신자유주의 글로벌화의 부작용으로 미국 백인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가치 파괴적인 인물이 대통령이 됐다. 서방은 더욱 분열하면서 약화됐고, 중국이 그 틈에 급성장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기존 세력균형 급변 때문에 가능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기득권을 상실할지도 모를 위기 속에서 유럽과 미국은 다시 손을 잡고 일본도 거기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기 시작했다.
히로시마 G7 정상회의는 그런 상황에서 서방 주요국들이 전열을 재정비해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의 공통분모를 안출해 내려던 자리였다. 아시아태평양판 나토 만들기가 그 결론이었을 수도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극적인 등장은 G7이 표방한 명분의 극대화에 기여했다. 한국도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과 함께 그 자리에 초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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