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경남 합천서 78주기 한인피해자 추모제 열려

근처서 휴가중인 윤, 방문커녕 추모사·화환 없고

5월 참배이후 국내 피해자 문제 아무 언급 없어

이재명 대표 추모사 보내 "유족·피해자 지원 관심"

피해자 단체들 "참배한 것은 가면 쓰고 한 것인가"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G7 정상회의 참관국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씨,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부인 기시다 유코가 21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참배하고 있다. 2023.5.21. 연합뉴스
G7 정상회의 참관국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씨,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부인 기시다 유코가 21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참배하고 있다. 2023.5.21.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한국 대통령 중 처음으로 일본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있는 한국인 원자폭탄(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참배했지만,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홀대는 여전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일인 8월6일 원폭 희생자 추모제가 열렸지만, 윤 대통령은 화환이나 추모사조차 보내지 않았다. 정작 중요한 원폭 피해자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정치적 상징'으로만 소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는 이날 오전 경남 합천군 합천원폭복지회관 위령각에서 제78주기 한국인 원폭 희생자 추모제를 거행했다. 추모제에는 국민의힘 김태호 의원(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군)과 경남도의회 장진영 의원, 김윤철 합천군수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원폭 희생자 추모제는 1945년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의해 희생된 한국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매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일인 8월 6일 열린다. 

 

김윤철 군수가 6일 경남 합천군 원폭피해자복지회관 위령각에서 열린 '제78주기 한국인 원폭 희생자 추모제'에서 헌화하고 있다. 2023.8.6 [경남 합천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김윤철 군수가 6일 경남 합천군 원폭피해자복지회관 위령각에서 열린 '제78주기 한국인 원폭 희생자 추모제'에서 헌화하고 있다. 2023.8.6 [경남 합천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일본 내무성 경보국 자료에 따르면 히로시마·나가사키에서 피폭 당한 한국인은 10만 명으로, 이 가운데 5만 명 사망했다. 생존자 5만 명 중 4만 3000명은 광복 후 귀국하고 7000명은 일본에 잔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정확한 통계는 없다. 등록 기준으로 생존한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지난 6월 말 현재 2210명이다. 특히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합천은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곳이다. 생존자 5만 명 가운데 70~80%가 합천 출신이며, 히로시마 피해자 중 한국인 99%가 합천 출신으로 추정된다. 합천 출신 피해자가 많은 이유는 병참기지가 있던 히로시마로 강제동원이 대거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전쟁 피해자이자 강제동원 피해자이지만, 원폭을 투하한 미국과 전범국 일본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해방된 고국에서조차 6·25전쟁으로 인한 가난과 사회적 냉대 속에서 살아야 했다. 한국인 피해자들은 1960년대부터 치료 등을 요구했지만, 한일역사 문제를 묻고 청구권 협정을 한 군사독재 정권은 이를 외면했다. 일본은 1994년에 와서야 피폭자 원호법을 제정했지만, 한국인을 배제했다. 2003년 피해자 곽기훈 씨가 일본 법정에서 승소하고, 2015년 9월 이홍현 씨가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승소해 치료 지원의 길이 열렸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의 노력이었다.

 

2015년 9월 8일 일본 정부가 한국에 사는 원폭 피해자에게도 치료비를 전액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일본에서 처음 확정됐다.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 제3부(오카베 기요코岡部喜代子 재판장)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 이홍현 씨 등이 일본 오사카부(大阪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일본에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료비가 전액 지급되지 않는 것은 법의 취지에 반(反)하는 것'이라는 판결을 8일 확정했다. 판결 직후 일본 도쿄 가스미가세키(霞が關)의 사법기자클럽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원폭 피해자인 강점경(왼쪽, 2010년 7월 별세) 씨와 이근목(오른쪽 2011년 7월 별세)의 사진이 전시됐다. 이 씨는 소송이 진행되는 중에 세상을 떠났고 강 씨는 사후에 유족이 소송을 제기했다. 2015.9.8. 연합뉴스
2015년 9월 8일 일본 정부가 한국에 사는 원폭 피해자에게도 치료비를 전액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일본에서 처음 확정됐다.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 제3부(오카베 기요코岡部喜代子 재판장)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 이홍현 씨 등이 일본 오사카부(大阪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일본에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료비가 전액 지급되지 않는 것은 법의 취지에 반(反)하는 것'이라는 판결을 8일 확정했다. 판결 직후 일본 도쿄 가스미가세키(霞が關)의 사법기자클럽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원폭 피해자인 강점경(왼쪽, 2010년 7월 별세) 씨와 이근목(오른쪽 2011년 7월 별세)의 사진이 전시됐다. 이 씨는 소송이 진행되는 중에 세상을 떠났고 강 씨는 사후에 유족이 소송을 제기했다. 2015.9.8. 연합뉴스

한국도 마찬가지다.  2011년 헌법재판소가 한일 청구권과 관련, 정부가 원폭 피해자의 개인 배상권을 묻지 않은 것은 부작위(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위헌이라고 결정한 뒤, 피해자들은 정부에 처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 법원은 배상을 인정하지 않았다. 입법도 문제다. 2016년 제정된 원폭피해자지원특별법은 2세 피해자 지원은 빠지고, 법이 정한 피해자 실태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유명무실한 법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가운데, 윤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를 공동참배하면서 원폭 피해자 문제가 새로운 전기를 맞는 듯했다. 그러나 원폭 피해자들은 78년 숙원을 풀었다며 환영 의사를 밝혔지만, 한국인 피해자들은 참배도 참석하지 못했다. 윤 대통령 참배 당시 한국인 원폭 피해자 14명이 히로시마를 방문했지만 이들은 입장이 허락되지 않아 인근에서 따로 망배(望拜·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는 절)를 해야 했다.

정부의 홀대는 여전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5일 재외동포청 출범식에서 히로시마에서 만난 일본 거주 한국인 원폭 피해자를 언급하며  "피폭당한 지 78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분들이 고통과 슬픔을 겪는 현장을 고국이 함께 하지 못했다" "조만간 원폭 피해 동포를 초청해 조금이나마 위안을 드리고자 한다"고 했지만, 정작 국내 생존한 원폭 피해자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국내 피해자 단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원폭 피해자 위령비 참배 뒤, 대통령실 비서관이나 행정관 등을 통해 피해자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도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경남 거제의 전통시장인 고현종합시장을 방문, 전어를 시식하고 있다. 2023.8.4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경남 거제의 전통시장인 고현종합시장을 방문, 전어를 시식하고 있다. 2023.8.4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이날 78주기 원폭 희생자 추모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윤 대통령은 경남 합천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경남 거제 저도에 머물고 있지만, 추모사는커녕 화환조차 보내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경남 거제 전통시장에서 주민들과 관광객들을 만나고, 전어를 시식했다. 원폭 피해자 문제 해결 의지가 있다면, 합천과 가까운 곳에서 휴가를 보내는 대통령이 직접 가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성의는 보였어야 마땅해 보인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지역구 의원인 김 의원이 방문했지만, 국민의힘 김기현 당 대표 역시 추모사를 보내지 않았다. 휴가 중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만 추모사를 보낸 것은 역설이다.

이 대표는 추모사에서 "원폭 투하로 희생당한 한국인 영령의 명복을 빌며, 깊은 추모의 마음을 전한다. 오랫동안 고통의 시간을 보내셨을 유족 여러분께도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며 "78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도 아픔은 여전하다"고 했다. 그는 "2017년 특별법이 시행되며 피해 지원이 시작됐고, 2019년에는 시태조사와 지자체별 피해자 지원도 이뤄지며 치유를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픔을 치유하기엔 아직 부족하다"며 "정확한 피해 실태조사, 2·3세대 후손에 이어지는 피해에 대한 지원범위 확대, 추모사업의 조기 시행 등 대물림된 원폭 2세들에게 관심과 지원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유가족들과 피해자들의 지원에 더욱 힘쓰겠다"고 했다.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은 <시민언론 민들레>와 통화에서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국내 원폭 피해자 홀대에 대해 "우리들은 원폭 피해자일뿐만 아니라 역사 보존자다. 피해자들을 이렇게 대우할 수 있는가"라며 "히로시마에 갔을 때도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은 외면 받았다. 오늘도 화환이나 추도사도 보내지 않았다. 대통령실에서 일하시는 분이라도 대신 내려보내면 될 거 아닌가. 그러면 대통령의 뜻 아니겠는가. 대통령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일본에서 참배한 것은 '가면'을 쓰고 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78주기 원폭 희생자 추모제 영상. 2023.8.6. 시민언론 더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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