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불의 ①] 박경석 전 장군, '5·18'을 말한다

전두환 하나회의 무공훈장 심사·수여 요구 거부해

"무공훈장은 적과 교전해 전공 세웠을 때 주는 것"

소장 진급 예정에서 졸지에 전역…"정의의 길 선택"

무공훈장 삭탈 집념…"광주 시민,'적' 굴레 벗어나"

※ 편집자 주 : 5·18 민주화운동 43주년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당시 전두환 세력에게 5·18 진압 성공 등에 대한 무공훈장의 수여를 거부한 박경석 예비역 장군(90)이 당시 상황을 설명한 책을 출간해 눈길을 끌고 있다. 5·18 무공훈장 심사를 거부한 과정과 전두환 씨의 군 내부 행태를 두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박경석 예비역 장군
박경석 예비역 장군

“육군 소장 진급이 예약된 자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른 척하고 혼자서 영화를 누릴 수는 없다고 결정했습니다. 그 결정으로 군복을 벗어야만 했습니다.”

박경석 예비역 장군의 말이다. 1980년 9월, 아직도 5·18 충격이 계속되던 시기에 박경석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차장(준장)은 자신과 5·18이 연결되는 사건을 맞이한다. 12·12와 5·18 진압자들에게 무공훈장을 수여하라는 하나회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다.

박 장군은 “공수부대가 5·18 진압에 나설 당시, 육군본부 장교들은 전두환 세력이 불법적으로 정권 쟁탈에 나서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하나회 회원을 제외하고 총칼도 없는 상태에서 대항할 수도 없어 모두들 속만 태우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부당한 5·18 진압에 대해 분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먼저, 운명적인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차장을 맡게 된 것은 전두환 씨를 만나고 나서 이뤄졌다. 박 장군은 당시 전씨와의 만남 → ‘절호의 진급 기회’ → 논쟁 → 고민 → 결단 → 무공훈장 삭탈 노력의 과정을 최근 출간한 ‘정의와 불의’라는 책(역바연 출판)을 통해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박경석 에세이집 '정의와 불의'.
박경석 에세이집 '정의와 불의'.

"전두환은 대통령이 되어 경복궁 경회루 축하 연회장에서 나와 스칠 때 놀라는 기색으로 '아직도 준장이네요'하면서 동정하는 기색을 보였다. 며칠 후 나는 뜻밖에 대부분 육군 소장이 맡아오던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차장으로 영전됐다."

박 장군이 전두환 씨와 마주친 날은 1980년 9월 1일, 11대 대통령 취임식 날이었다. 취임식 뒤 오후 경축연 장소인 서울 경복궁 경회루에서 박 장군은 다른 현역 장군들과 함께 도열해 있다가 차례로 악수를 해오던 전 씨와 마주서게 된다.

장충체육관에서 간접 선거로 당선됐던 전 씨는 이날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취임식을 가진 뒤 다시 오후에 경회루에서 1200여명의 각계 인사에게서 축하 인사를 받고 경축연을 가졌다. 이어 세종문화회관에서 350여 명이 참석한 취임 축하 만찬을 가졌다. 임시공휴일로 선포된 이날 전 씨는 매우 바쁜 일정을 보냈다. 밤에는 축하 불꽃놀이도 있었다.

박 장군은 이제 진급에 대해 희망을 갖게 되었다. 사적으로도 잘 알고 있던 이희성 육군 참모총장에게서도 별도로 진급에 대한 분명한 언질을 받은 터였다.

"그런데 이 자리는 선심 쓴 직위가 아니라 함정이었다. 그 자리는 육군의 공적심사위원장을 당연히 맡도록 돼 있었다.

12·12와 5·18에 관련된 100명 가까운 정치군인에게 무공훈장 수여 심사 과제가 나에게 주어졌다. 육군 참모총장 이희성과 참모차장 황영시로부터 ‘12·12와 광주에서의 폭동 진압 작전 유공 장병에게 무공훈장을 수여하도록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무공훈장은 적과 교전하여 전공을 세운 장병에게 수여하는 것이므로 무리이다’라고 건의하자, 참모총장은 ‘폭도는 적이 아닌가?’ 라며 단칼에 필자의 건의를 묵살하였다.

얼마 후 필자의 책상에 서류 뭉치를 올려놓으며 '조속히 공적심사위원을 소집해 완결하도록 하라'라고 말하며 독촉하는 인사참모부장 김홍한의 차가운 눈초리를 받았다. 내용을 훑어보니 전두환에게 주는 태극무공훈장을 비롯해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의 대상자 명단이 스쳤다. 이에 '무공훈장은 합당하지 않으며, 꼭 이들을 포상하려면 보국훈장이어야 한다'라고 반론을 제기하자, 그는 '이미 무공훈장으로 결정이 났으니 서류만 완결하도록 하라'라는 말을 남기고 나의 사무실을 나갔다.

나는 천장을 응시하며 만감에 빠지다가 마침내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나는 반란군에게 무공훈장 수여를 결정하여 역사의 죄인으로 각인되는 길보다 정의의 길을 선택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것은 불의의 승진 대신 예비역에 편입되는 것을 말한다. 다음날 인사참모부장으로부터 차장직 해임을 통보를 받았다."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오른쪽)·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 2021.11.23. 연합뉴스 자료사진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오른쪽)·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 2021.11.23. 연합뉴스 자료사진

박 장군은 당시의 결정 과정과 이후의 삶에서 어려운 길을 걸어야만 했다. 그는 “평생 ‘조국’ ‘정의’ ‘진리’를 신조로 삼아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고 말했다. 그는 이 신조가 육사 사관생도 신조를 실천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박 장군은 “내가 임관된 이후 ‘우리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는 육사 사관생도 신조가 채택됐다”며 “이 구절이 내 성격과도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참된 무인의 길을 걷겠다는 나의 각오를 격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장군은 전역 이후 무공훈장 치탈(삭탈)에 매달리게 된다. ‘같은 군인 출신인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일부의 비난과 유혹을 견뎌내야 했다.

"나는 1981년 7월 31일. 전두환을 비롯한 정치군인들에 의해 개정된 인사법에 따라 1년 단축된 육군 준장 정년 7년을 마치고 군복을 벗었다. 군복을 벗자마자 전두환은 나를 국영기업체인 농업진흥공사(현 한국농어촌공사) 감사로 임명했지만 나는 사표를 내고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군역사 바로잡기를 위한 ‘대장정’의 험로로 향했다

나는 전역 후 시인 소설가로 창작에 몰두하면서 군사평론가로도 활동했다. 법규와 절차를 무시하고 주어진 무공훈장의 삭탈을 위해 정부에 건의서를 제출하는 한편, 검찰 소환에 응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일간신문의 시론란 또는 군사전문 월간지에 그 부당성을 지적한 글을 계속 기고하면서 극렬하게 무공훈장 삭탈을 주장하였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났다. 노무현 대통령의 역사적 결단으로 전두환의 태극무공훈장을 비롯해 그 때 잘못 주어졌던 ‘정치군인’의 무공 훈장 모두를 삭탈하였다. 또 당시 무공훈장을 수여하라고 지시한 장본인과 훈장을 받은 거의 대부분이 쇠고랑을 찼다. ‘폭도는 적이 아닌가?’라고 호령하던 정치군인의 모습이 법정으로 향하는 피의자의 초라한 꼴로 변한 모습을 보면서 역사와 훈장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로써 광주시민은 ‘적’이라는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박 장군은 1990년 자신의 지은 시 ‘망월동으로 가자 바람아’를 <시민언론 민들레>에 보내왔다.

 

망월동으로 가자 바람아

 

제철에 핀 들꽃에도

네 모습은 지천이다

여린 풀잎끼리

어깨동무 하는 걸 보면

송글송글 맺힌 이슬 보노라면

네 흘린 눈물이 보인다

 

언뜻 스치는 바람결에도

슬픈 울부짖음이

선명하게 들려오는 것은

내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리

 

눈빛 유난히 맑던 네 누이가

대낮에 사라져간 도로변

그 플라타나스 그늘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직도

네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내 뜨거운 가슴에서 반짝인다

 

바람아

그해 5월을 기억하느냐

그 많은 젊은 꽃이 사위어 간

피맺힌 사연을

 

망월동으로 가자

한 서린 내 아우들 곁에 다가가

빈 마음으로 한을 풀어주자

 

망월동으로 가자 바람아

바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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