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 재판] 불룩해진 외투에 방청객도 '실소'
10억이랬다 20억이랬다…재판부 직권으로 추궁
공소장엔 6월이라는데 "7월까지 돈 건넸다" 거짓
불법 정치자금 수수의 핵심은 '은밀성'이다. 지난 9일 공판에서 성남도시개발공사 유동규 전 기획본부장도 이 점을 강조해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1억을 받아갔던 1차 전달 때 그냥 들고 가면 남들이 볼 수 있으니 외투 속에 넣고 가게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재판장이 "상자가 꽤 크던데 외투 속에 넣어가는 게 가능하냐"고 반문하자, 유동규는 "시연으로 보여드릴 수도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작 법정에서 이뤄진 시연은 방청객들의 '실소'만 자아냈다.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3부(조병구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김 전 부원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공판에서는 '김 전 부원장이 외투에 1억 원을 숨겨갔다'는 유동규 주장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법정에서 시연이 진행됐다.
불룩해진 유동규 외투에 방청객들도 '실소'
당초 재판부는 이날 1억 원의 무게가 약 2㎏이라는 점에 착안해 500㎖ 생수병(약 500g)을 이용해서 시연하려 했으나, 검찰 측에서 오후 공판에 현금 2억 원과 현금을 담을 골판지 상자, 종이 쇼핑백 등을 준비했다.
변호인 측 요청으로 유동규는 김 전 부원장이 1억 원을 품에 넣고 간 모습을 시연했다.
유동규는 골판지 상자에 든 1억 원을 작은 종이 쇼핑백에 담았다. 이어 양복 상의 왼쪽 겨드랑이 아래 품었는데, 누가 봐도 물건을 품은 듯 눈에 띄게 상의가 불룩해진 모습에 방청객들이 '실소'를 터뜨렸다.
이에 재판부가 "양복이어서 그렇겠다"면서 외투를 입고 시연할 것을 요청해 즉석에서 정민용 변호사 측에서 코트를 빌려 입은 뒤 재시연했다.
유동규는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코트를 입고 다시 1억 원을 첫 번째와 같은 방식으로 품었지만, 여전히 불룩하게 튀어나온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방청객들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재판부도 유동규의 모습을 보고 "(외투에) 넣어갈 수는 있는데 가져가는 걸 외부에서 인지할 수 있는 정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은밀성'이 핵심인 불법 정치자금 사건에서 중요한 조건이 한 가지 깨진 셈이다.
게다가 유동규는 1억 원을 유원홀딩스 사무실에서 '낮'에 돈을 전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낮 시간에 지역 정치인이 코트 아래 불룩하게 무언가를 품고 갔다면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추정된다.
김 전 부원장은 시연을 지켜본 뒤, "유원홀딩스는 2020년 총선을 치렀던 제 지역구"라며 "사무실 옆에서 아침에 출근인사를 했던 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가 들고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거니와, 출근 인사를 팻말 들고 했던 지역에서 가능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김 전 부원장은 유원홀딩스 사무실에 다른 사람은 "전혀 오가지 않는다"는 유동규의 주장에 대해서도 "증인(유동규)이 거기에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 거긴 굉장히 주차난이 심하기로 유명한 지역"이라면서 "폐쇄회로(CC)TV도 많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앞서 유동규는 1억 원씩 든 골판지 상자 2개를 세로로 흰색 종이 쇼핑백에 넣고 1개는 가로로 넣어 총 3억 원을 넣는 모습도 시연했다. 유동규는 현금 상자 3개를 넣어 쇼핑백이 불룩해지자 "찢어질 수 있으니 테이프로 밀봉했다"며 "무거워서 (종이 쇼핑백을) 하나 더 넣어서 들고 갔다"고 했다.
재판부는 종이 쇼핑백이 불룩해져 찢어질 정도로 힘겹게 담긴 3억 원을 보면서 "두 겹을 넣으면 일반 테이프로 안 붙지 않나" "두 겹을 붙이면 손잡이 2개로 못 잡지 않냐"고 물었고, 유동규는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역시 '은밀성'이라는 조건에는 위배된다고 볼 수 있다. 유동규는 수원 광교 자신의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3억 원을 전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CCTV가 설치된 버스정류장 인근에서 불룩하게 터질 듯한 종이 쇼핑백으로 정치 자금을 전달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는 어렵다.
재판부는 2억 원도 시연토록 했다. 유동규는 1억짜리 상자 2개를 세로로 흰색 종이 쇼핑백에 넣은 뒤 더 큰 '디오르(DIOR)' 쇼핑백에 담아 재판부에 건넸다. 재판장과 우배석 판사는 직접 쇼핑백을 들어본 뒤, "(2억 원은) 가지고 가는 게 불가능하거나 힘든 무게는 아닌 것 같다"라고 했다.
10억이랬다 20억이랬다…재판부도 직권으로 '지적'
진술의 '신빙성'이 핵심인 이번 공판에서는 유동규의 '말 바꾸기'에 대한 재판부의 직접적인 추궁도 이뤄졌다. 재판부도 유동규 진술의 신빙성에 대해 의구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재판부는 공판 초기부터 "이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은 유동규 진술의 신빙성"이라고 강조해왔다.
재판부는 이날 유동규가 10월 5일 작성된 검사의 면담 보고서에서 대선자금 요구액이 10억 원이라고 하고, 10월 8일 자필 진술서에서도 10억 원이라고 주장했다가 그 뒤 총액을 20억 원으로 바꾼 부분을 직접 신문했다. 그러나 유동규는 이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지는 못했다.
재판장(이하 '재') 증인, 처음 10월 5일 10억, 자필 진술서에서 10억, 조사 받으면서 10억이랬다가 20억으로 금액이 증가해요. 10억, 10억, 명확치 않다가 (20억으로) 증가하는 경위가 무엇인가요?
유동규(이하 '유') 10억이 다 전달되기 전에 중단됐습니다. 일단 당장 10억을 구해줬다고 진술했고 나중에 총액 20억 원을 확인시켜줬습니다.
아울러 유동규는 돈을 전달한 장소나 정황은 상세하게 진술하면서도 돈을 준 날짜, 기간 등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을 못한다고 하거나 증언이 엇갈리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재판부의 추궁도 이뤄졌다. 특히 이날 김 전 부원장과 유동규는 돈을 언제까지 전달했는지 기간을 두고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재판부의 직권 신문에 앞서 김 전 부원장은 오전 공판에서 유동규에게 "2022년 8~9월 경으로 기억한다고 했는데 언제까지 저한테 돈을 줬냐"고 물었고, 유동규는 "그건 본인이, 받은 분이 기억하시겠죠"라고 답을 하지 않았다.
이에 김 전 부원장이 "답을 달라"고 재차 요구하자, 유동규는 "기억하기론 7월까지인 거 같다"고 답했다. 이에 김 전 부원장이 "공소장에는 6월까지라고 했는데 공소장을 부인하는 것이냐"고 따졌다.
재판부 역시 오후 공판에서 7월에 돈을 전달한 사실이 있는지 재차 추궁했다. 그러나 유동규는 이 부분에 대해 '그냥 답변한 것'이라는 황당한 답을 내놨다.
재 김용 피고인이 직접 신문할 때 흥분했는데요. 그때 공소 사실과 달리 (유동규 증인이) 7월에 마지막으로 돈을 줬다고 했는데요. 7월에 돈을 준 게 있나요?
유 질문하길래 제가 그냥 답변한 것이지 특정해서 기억한 것은 아닙니다.
유동규는 정민용 변호사를 통해 남욱 변호사에게 돌려줬다는 1억 4700만 원과 관련해서도 진술이 오락가락해 재판부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유동규는 1억 4700만 원 가운데 만 원짜리는 정민용이, 3000만 원은 본인이 가져간 뒤, 나머지 1억 원만 정민용을 통해 남욱에게 돌려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동규는 오전 심문에서 김 전 부원장 측 변호인이 "나머지 돈(3000만 원)은 어디다 뒀나. 사무실인가, 집인가"라고 묻자, "갖고 있으면서 여기저기 썼다. 집에 둔 게 아니라"라고 했다. 변호인이 "어디에 갖고 있었냐"고 재차 묻자 유동규는 "차 아니면 집 깊숙한 곳에"라며 애매모호하게 답했다가, 재판부 신문에서 진술을 바꿨다.
재 1억 4700만 원 관련해서는 결국은 만 원짜리 몇백만 원 정도는 정민용 피고인에게 줬다는 취지로 기억하는 거 같고. 1억 3000만 받고 3000만 원은 차에 뺐고. 1억만 돌려줬다는 건데 3000만 원이면 5만원권 여섯 뭉치인데 차에 둘 수 있나요?
유 네, 옆에 데시방(대시보드)에 넣었습니다.
재 평소 비어 있습니까?
유 네, 거기 아무것도 없습니다.
재 아까랑 달리 진술이 굉장히 구체화되고 있네요.
재판부 역시 유동규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대목으로 읽힌다. 통상적으로 차량 대시보드는 잡다한 물건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데, 거기에 현금을 보관했다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또 유동규는 3000만 원 보관 장소를 애매하게 답하다가 재판부가 차에 둘 수 있냐 묻자 구체적으로 대시보드라고 지목했다.
게다가 유동규는 차량에 현금을 보관하지 않는다는 듯 말하기도 했다. 오전 공판에서 김 전 부원장 측 변호인이 "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있을 때 차량에서 5만원을 가져와서 현금 계산한 것을 (직원들이) 봤다는데 그런 사실 있냐"고 묻자, 유동규는 "차를 운전해주는 수행비서에게 돈 넣어둔 게 있는지 물어보라"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이날 유동규 증인 신문을 마쳤다. 오는 21일 정민용 변호사 증인 신문을 시작으로 남욱, 이몽주(남욱 측근), 유동규의 사실혼 배우자, 정영학, 김만배 등의 신문을 차례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들에 대한 신문 과정에서도 유동규의 진술 신빙성을 중심으로 추궁이 계속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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