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토화된 가자지구 주민 50만 이상이 IPC 5단계
이스라엘의 식량 통제로 빨라진 기아 확산 속도
기아 아동 달마다 2배씩 증가, 기아 가구도 5월에 2배로
가자 기아상태 부인하며 물자반입 막는 이스라엘
주요 생필품 가격 5개월 새 100배 이상 폭등
유엔이 지난 22일 발표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통합식량안보단계분류(IPC/ Integrated Food Security Phase Classification)에 따르면, 7~8월의 가자지구 내 가자지역 인구의 30%가 이미 기아상태에 놓여 있고, 50%는 식량 비상사태, 20%는 식량 위기를 겪고 있다. 그 한 달 뒤인 8~9월의 같은 지역 예측치를 보면 인구의 35%가 기아, 55%가 비상사태, 10%가 위기상태다.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가자지구 내의 다른 지역인 데이르 엘 발라와 칸 유니스도 기아상태 인구비율은 가자지역보다 약간 낮지만 전체 사정이 별로 다르지 않다.
어린이 기아상태 4주마다 2배씩 증가
그래프는 가자지역의 굶주리는 5세 미만 아동들의 비율이 매 4주마다 2배씩 늘어나고 있는 상황을 보여 준다. 6월 상반기에 4%가 되지 않았던 아동의 급성 영양실조 비율은 4주 뒤인 7월 상반기엔 8%를 넘었고, 불과 2주 뒤인 7월 말에는 16%가 기아 임계치를 넘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군은 구호물품의 가자지구 반입을 극도로 제한하면서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초토화된 가자지구 50만 명 이상이 기아상태
가자지구는 전체 구조물의 70%에 해당하는 19만 채의 건물들이 이스라엘 공격으로 파괴됐다. 가자지구 전체 가구의 62%에 해당하는 30만 가구가 초토화돼 사라졌다.
50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극심한 식량 부족, 급성 영양실조, 굶주림으로 IPC 제5단계인 기아상태에 이미 진입했다. 주민들은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다 여기는 곳으로 피난해 남아 있는 인구 대다수가 매우 좁은 지역에 몰려들어 지극히 열악한 생존조건 속에서 나날을 버텨내고 있다.
가자 주민 기아상태를 부인하는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그럼에도 가자지구에서 기아/기근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가자 완전 점령을 선언한 가운데 이스라엘군의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5일에는 가자지구 병원 공습으로 의료진을 포함해 적어도 20명이 숨졌다. 사망자 속에는 언론인 5명도 포함돼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설치해 놓은 카메라를 공격했다고 주장하지만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끝없는 전쟁에 지친 이스라엘 시민들도 전쟁 종식과 인질 석방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록밴드 U2 리드 보컬 보노 네타냐후 정권 비판성명
이런 분위기 속에 아일랜드의 유명 록밴드 U2(유투)가 지난 11일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인도적 지원 차단과 가자지구 군사점령 계획이 분쟁을 전례없는 사태로 고조시키고 있다”며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의 비인도적 처사를 비판하는 아티스트들의 성명 대열에 합류했다. 리드 보컬 보노는 가자에서 기근과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어린이들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고 40년 전 자신도 참여했던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난민 기아 구제를 위한 국제 자선공연 ’라이브 에이드(Live Aid)‘와 에티오피아 방문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중동지역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으려 했다”면서, “그러나 지금의 잔혹성과 무법상태는 전인미답의 지경에 이르렀다”며 성명 대열에 합류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심정을 밝혔다. 지역과 부족간 내전으로 대규모 난민이 발생했던 40년 전의 에티오피아 사태가 그를 그곳으로 찾아가게 만들었듯이, 그때 상황보다 더 참혹한 가자지구의 “또 다른 인위적인 기아”가 중동지역 일에는 참견하지 않으려 애썼던 그를 더는 침묵할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마스도 비판하면서 균형을 맞추려 한 U2와 보노의 성명 발표에 너무 늦었을 뿐만 아니라 미흡하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1985년 여름에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진행됐던 에티오피아 난민 구제를 위한 자선 공연 ’라이브 에이드‘를 기획했던 가수 밥 겔도프는 “지금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당장 돈 좀 기부해 주세요”라고 다급하게 호소했다. 전 세계 위성중계로 16시간 넘게 진행된 그 공연에 퀸, 믹 재거, 밥 딜런, 폴 매카트니, 존 바에즈 등 당대의 스타들이 대거 출연했고, 1억 5천만 파운드가 모금됐다. 지금 환율로 2810억 원 정도지만, 그때 그 돈의 가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컸다.
그런 열기가 지금은 사라진 듯 보인다. 오래 침묵하던 U2와 보노도 네타냐후의 이스라엘 비판에 나설 수밖에 없을 정도로 세계의 많은 아티스트들이 가자지구의 반인도적 상황과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 대열에 합류하고 있지만, 전쟁과 보호무역주의, 극우세력 준동 속에 또 다시 분열돼 가는 21세기의 세계엔 40년 전과 같은 열정이나 비전도 역량도 없어 보인다.
50만 명 이상이 “극심한 식량부족, 급성 영양실조, 기아 상태"
통합식량안보단계분류(IPC)는 가자지구에서 이미 50만 명 이상이 “극심한 식량부족, 급성 영양실조, 기아로 인한 사망”을 특징으로 하는 제5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추산했다(<이코노미스트> 8월 22일). IPC의 5단계는 안전 단계, 식량불안 경계 단계, 심각한 식량 및 생계 위기 단계, 인도적 비상사태 단계, 그리고 인도적 재앙 단계로 구분돼 있다(위키피디아).
이코노미스트 기사에 따르면, IPC 보고서는 200여 만 명의 가자지구 인구 중 50만 명 이상이 제5 단계, 곧 식량 부족 영양실조, 기아로 사망하게 되는 인도적 재앙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 가자지구 식량반입 제한 또는 차단
가자 자치구 보건부에 따르면 이슬람 무장조직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한 2023년 10월 7일 이후 지금까지 이스라엘군의 보복공격으로 가자지구 주민 6만 명 이상이 숨졌고, 14만 5천여 명이 다쳤다. 이스라엘군의 공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네타냐후 정권은 하마스 완전소탕을 목표로 내걸고 조만간 가자지구를 군사적으로 완전히 장악할 태세다. 네타냐후는 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가자지구 저항을 꺾기 위해 지금 이스라엘군이 활용하고 있는 최대의 무기가 식량반입 차단을 통한 기아/기근 전략인 듯하다. 굶어 죽지 않으려면 항복하라!
지난 3월 초부터 5월 중순까지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모든 식량지원을 막았다. 그리고 가자지구 중부와 남부에 식량배급소를 설치했지만 제대로 가동하지 않았다. 굶주림에 지친 1천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배급 식량을 받기 위해 몰려가다 이스라엘군에 사살당하거나 아수라장 속에 압사당했다. 이스라엘군은 그 모든 비극을 하마스 탓으로 돌리고 있다.
’가자 전쟁‘이 시작된 이후 굶어서 죽은 팔레스타인 주민은 270여 명이고, 이 가운데 어린이가 100명이 넘는다고 가자지구 보건부는 밝혔다. 최근 보름 사이에 구호물품을 싣고 대기 중이던 9천 대의 구호트럭 중 반입이 허용된 것은 1334대뿐이었다는 보도도 있다. 이대로 가면 인구 밀집지인 가자지역 중심으로 퍼져가던 기아는 데이르 엘발라와 칸 유니스 등 남쪽지역으로 급속히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뼈만 앙상한 아이들 사진이 세계로 전파되고 국제적인 비난 여론이 일자 이스라엘은 일부 구호물품 수송대의 가자 진입과 공수작전을 허용했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어서, 현지의 이스라엘 장군들조차 비공식적으로 네타냐후 총리에게 가자지구가 기아상태에 처해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가자지구 기아 가구 5월에 2배로 급증
유엔아동기금(UNICEF)에 따르면 지난 7월 가자지구에서 “극심한 기아”(very severe hunger)를 겪고 있다고 보고된 가구 수는 5월의 2배에 이르렀으며, 3분의 1이상의 인구가 며칠씩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지낸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식사를 거르는 경우가 많지만, 4월 이후 약 2만 명의 어린이들이 급성 영양실조(acute malnutrition)로 입원했다. 이런 기아상태가 “진짜로” 진행중이라고 도널드 트럼프대통령도 언급한 바 있다.
네타냐후와 이스라엘 극우세력은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보건부의 기아 통계수치들을 하마스의 선전용 조작으로 몰아붙이면서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는 가자지구 기아상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지난 8일 네타냐후가 가자지구 완전 점령 계획을 승인한 뒤 가자지구 주변 작전이 강화되고 있다. G20 국가들 중 브릭스를 비롯해 10개 국 이상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기 독립국가로서 공존하는 ‘2개의 국가’안을 지지하고 있고, 최근 프랑스와 호주, 영국 등도 거기에 가담하고 있지만 이스라엘 안에서 팔레스타인 지분을 말소하려는 이스라엘 극우세력의 대이스라엘 통합국가 건설 의지는 요지부동이다.
가자지역 아동의 15%가 급성 영양실조
IPC는 가자지구 주민의 3분의 1이 기근(famine, 식량 부족)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IPC가 급성 영양실조를 측정하는데 사용하는 지표 가운데 하나는 5세 미만 아동의 팔꿈치 위쪽 팔(상완)의 둘레를 재는 것인데, 측정 결과 가자지구 아동의 약 15%가 급성 영양실조 상태였다. 이는 IPC의 5단계 중 제4단계(비상사태)와 5단계(기아)에 해당한다. 이 비율 추이는 앞서 그래프에서 살펴봤듯이 지난 3개월 동안 매 4주마다 2배씩 증가했다. 지금 추세가 계속된다면 오는 9월 말까지 가자지구 어린이의 절반 이상이 급성 영양실조에 걸릴 수 있다.
지금 가자지구로 반입되는(이스라엘군이 반입을 허용하는) 식량은 필요량에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가자지구 자체 식량생산 기반이 붕괴돼 농경지의 98% 이상이 피해를 입거나 접근 불가능한 상태다. 가축도 전쟁 통에 양의 경우 26%만 살아남았고, 염소는 34%, 소는 4%, 닭 등 가금류는 1%밖에 살아남지 못했다. 해안 봉쇄로 어업은 아예 중단됐다.
주요 생필품 가격 100배 이상 폭등
그 때문에 절대 부족 상태인 식량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7월에는 25%가 더 올라 주요 생필품 가격이 2월 휴전 당시의 거의 100배, 전쟁 전의 150배로 치솟았다. 음식을 장만하는데 필요한 연료나 깨끗한 물도 턱없이 부족하다. IPC 제5 단계의 재앙적인 상황이 갈수록 더 익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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