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공익, 예술은 범죄라는 정윤석 감독 판결 유감

홍태림 미술비평가 문화연대 집행위원
홍태림 미술비평가 문화연대 집행위원

2025년 1월 19일, 내란수괴 윤석열 구속영장 발부에 분노한 지지자들이 서울 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하는 폭동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 현장을 기록하던 정윤석 감독은 폭도와 함께 연행된 후 특수건조물침입 혐의로 기소됐다. 이후 지난 8월 1일 1심 법원은 정 감독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하며, 서부지법 진입 없이도 촬영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근거를 내세웠다. 물론, 이 판결은 그가 폭도와 다른 목적으로 서부지법 경내에 들어갔다는 점이 나름대로 고려되어 특수건조물침입죄를 단순건조물침입죄로 조정하며 나온 결과다. 그러나 이 같은 판단은, 같은 장소에서 현장을 기록한 기자가 불송치 처분을 받았을 뿐 아니라 취재 영상으로 각종 상을 받았다는 점에서 여전히 문제적이다. 왜냐하면 이번 사건에서 검찰과 사법부는 언론의 기록은 공익, 예술가의 기록은 범죄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정 감독이 최후진술문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예술인권리보장법 제3조는 예술 표현의 자유를 민주주의의 근간으로 규정한다. 그럼에도 이번 기소와 판결은 이러한 법률의 취지를 무시했으며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과 예술의 자유(제22조)와 언론·출판의 자유(제21조)까지도 거듭 부정했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 현판이 떨어져 있다. 2025.01.19. 연합뉴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 현판이 떨어져 있다. 2025.01.19. 연합뉴스

범시민적 무죄 탄원에도 눈 감고 귀 막은 검찰과 법원

정윤석 감독 기소에 대한 사회적 반발은 거셌다. 영화인·언론·인권단체와 시민 다수가 무죄 탄원에 참여했고, JTBC 기자까지 선처를 호소했다. 문화연대, 21조넷, 한국독립영화협회, 블랙리스트 이후 등 16개 단체는 성명에서 “같은 현장을 촬영한 언론사 기자는 포상, 독립 예술가는 처벌”이라는 이중잣대를 “반민주적 폭거”라 규탄했다. 또한 정 감독은 법정 최후진술에서 “예술가는 무죄를 주장하지 않는다. 검찰이 유죄할 뿐”이라며 국가권력의 책임을 분명히 적시했다.

정 감독의 촬영 영상은 JTBC 특집 다큐 ‘내란, 12일간의 기록’에 쓰였고, 경찰도 폭동 가담자 채증 자료로 활용했다. 기록의 공익성을 보여주는 분명한 근거다. 그럼에도 법원은 이 기록 행위를 사실상 극우 유튜버들의 촬영과 동일선상에서 보았다. 이는 정 감독이 쌓아온 경력과 성취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판단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을 졸업한 그는 ‘Jam Docu 강정’(2011), ‘논픽션 다이어리’(2014),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2017) 등의 작품으로 부산국제영화제 비프메세나상(2013), 베를린국제영화제 넷팩상(2014) 등을 받으며 국내외에서 의미있는 평가를 받은 예술가다. 결국 법원은 검찰의 맹목적 논리를 답습한 채, 정 감독의 공익적 목적과 예술가로서의 성취를 판단에서 배제했고, 그 결과 헌법과 예술인권리보장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를 무너뜨렸다.

 

7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정윤석 감독 무죄 촉구 기자회견 광경(사진출처: 국회의원 조계원 페이스북)
7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정윤석 감독 무죄 촉구 기자회견 광경(사진출처: 국회의원 조계원 페이스북)

제도 언론은 공익 취재가 예술가에게는 무단 침입으로

이번 판결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드러낸다. 언론기관 소속 기자와 달리 정윤석 감독과 같은 예술가는 공익 기록자로서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불분명하다. 이 공백은 수사와 재판에서 곧바로 불리하게 작용한다. 같은 현장 촬영이라도 제도 언론은 공익 취재로 인정되지만, 예술가는 무단 침입이나 공동정범의 틀에 먼저 끼워 맞춰진다. 1심 재판부는 “침입 행위 없이도 다큐멘터리 제작에 필요한 영상을 어느 정도 촬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세우고, 그 가정에 기대 건물 진입을 과도한 행위로 판단했다. 그러나 폭동의 전개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려면 법원 내부 상황을 직접 포착할 필요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상식조차 외면하면, 공익 기록의 문턱만 높아지는 동시에 제도적 신분이 모호한 기록자는 언제든 범죄자로 낙인찍힐 것이다.

이번 판결이 남길 위축 효과는 분명하다. 앞으로 예술가는 물론이고 누구든 국가 위기 현장을 기록하는 것을 주저하게 될 위험이 커졌다. 그리고 이는 12.3 내란을 잠재운 빛의 혁명을 만들어낸 우리의 민주주의 역량을 후퇴시키는 상황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2심 재판부는 반드시 정윤석 감독에 대한 무죄 판결을 내려야 할 것이며 검찰도 이를 수용하여 정 감독에 대한 상고를 포기한 후 사과와 책임자 징계까지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 연출한 정윤석 감독. 2013.11.26 연합뉴스 자료사진
다큐멘터리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 연출한 정윤석 감독. 2013.11.26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편,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제도적 변화도 필요하다. 첫째, 검찰과 법원이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법적 판단을 내릴 때, 해당 분야의 전문가 의견을 반드시 청취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형사소송법에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문제를 법원, 수사기관이 심리 및 수사할 때 해당 사건의 특수성과 현장성을 고려하여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 또는 감정인의 의견을 청취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겠다. 이를 통해 예술인뿐 아니라 기자와 언론인의 취재, 집회·시위와 같은 다양한 표현 행위까지 더 두텁게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헌법에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국가의 보호 의무 명기하자

둘째, 다음 지방선거 전후로 추진될 것으로 기대되는 개헌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국가의 역할을 더욱 강조하는 내용을 추가하는 것이다. 즉 제21조 ①항은 “국가는 표현의 자유를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로, 제22조 ①항은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지며, 국가는 이를 보호해야 한다”로 수정할 수 있겠다. 이처럼 국가의 의무를 헌법 차원에서도 더 강조하고 명확히 함으로써, 국가권력이 표현의 자유를 경시하거나 축소 해석하는 상황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정윤석 감독 사건은 한 개인의 재판을 넘어,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와 표현의 자유가 어떻게 보장되는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선출되지 않은 게으른 권력이 법을 편의적, 기능적으로 해석하려는 무책임성, 그리고 예술가의 제도적 신분 보장 부재라는 장벽을 넘어설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기록자가 누락된 미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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