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당권 개입에 전대 불출마 선언 '백기'

정권에 난타 당했지만 수구보수 정체성 그대로

국민의힘, '제왕적 대통령의 사당화' 퇴행 가속

내부서도 "뺄셈정치 만연" "패자만 남아" 비판

민주 "정말 잔인한 대통령, 당권 장악에만 올인"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한 뒤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2023.1.25. 연합뉴스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한 뒤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2023.1.25. 연합뉴스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이른바 윤심(尹心)을 등에 업은 대통령실과 친윤계 인사들의 융단폭격에 결국 무릎을 꿇고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당권 개입에 처참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끝에 완전히 백기를 든 모양새다.

당초 나 전 의원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에 대해 사의 표명을 했을 때 대다수 언론은 "윤 대통령이 순방에서 돌아올 때까지 사표 수리를 보류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당분간 침묵을 이어갈 전망" "윤 대통령이 '무응답'을 통해 당무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 등으로 해석하고, 나 전 의원이 '해임' 처분을 당한 뒤에도 출마 결심을 굳힌 것처럼 연일 보도했지만 역시나 피상적이고 순진한 관측이었다.

윤 대통령의 당무 개입과 공포정치가 여당에 그대로 관철되는 과정이 생생하게 드러남에 따라 시민들은 기초적인 정당민주주의마저 실종된 수구보수 집권당의 현주소를 새삼 깨닫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은 제왕적 대통령의 사당화(私黨化)라는 퇴행을 가속화하다 마침내 3·8 전당대회를 통해 '윤석열당'의 완성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나 전 의원은 25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3·8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는 "우리 당의 분열과 혼란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막고, 화합과 단결로 돌아올 수 있다면, 저는 용감하게 내려놓겠다"며 "제 출마가 분열의 프레임으로 작동하고 있고, 극도로 혼란스럽고 국민들께 정말 안 좋은 모습으로 비춰질 부분이 있기에 당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솔로몬 재판의 진짜 엄마 심정으로 그만두기로 했다"고 밝혔다.

나 전 의원이 비상근 저출산고령사회위 부위원장으로서 헝가리식 출산 지원정책이라는 해외 사례를 아이디어로 언급한 건 전혀 잘못이 아니었고 오히려 소임에 부합하는 행위였다. 대통령실이 의도적인 침소봉대로 촉발한 이번 사태의 피해자임에도 나 전 의원은 묘한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며 급기야 가해자인 윤 대통령을 '솔로몬 왕', 자신을 '진짜 엄마'에 비유하는 황당한 발상을 전개한 것이다.

나 전 의원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고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저의 진심, 진정성은 어디서든 변치 않는다"면서 "대한민국 정통 보수 정당의 명예를 지켜내겠다"고 말했다. 또 "정말 어렵게 이뤄낸 정권교체다. 민생을 되찾고 법치를 회복하고 헌정 질서를 바로 세우는 이 소중한 기회를 결코 헛되이 흘려보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현 정권 실세들에게 '반윤의 우두머리' '제2의 유승민' 소리까지 듣고 난타를 당하면서 나 전 의원이 뭔가 저항의 이미지를 풍기고 '약자 코스프레'를 하기도 했지만 본래 정체성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이 이날 불출마 회견문에서조차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며칠 전에도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권이 억지로 강행하려던 종전선언을 막기 위해 미국 정치권을 설득하다 매국노 소리까지 들었다" "조국 사태에 분노한 우리 당원과 함께 절규하듯 '조국 사퇴'를 외쳤다" 운운하며 스스로 '정통 보수' '보수의 원류'라고 자부한 바 있다.

나 전 의원은 대통령실의 불출마 압박이 과한 당무 개입이라는 논란이 있었는데 입장이 어떠냐는 취재진 질문에 "제가 뭐 구태여 그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시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회피했고, 친윤계 초선 의원 50명이 냈던 비판 성명에 대해서도 "초선 의원들의 처지는 이해한다"고만 답했다. 그는 "어떤 후보라든지 다른 세력의 요구나 압박에 의해 (불출마를) 결정한 게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등 끝까지 사태의 본질을 비껴가는 공허한 레토릭으로 일관했다. 다만 "오늘 이 정치 현실은 무척 낯설다"고 에둘러 불만의 여지는 남겼다.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힘의힘 당사에서 전당대회 불출마 입장을 밝힌 뒤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2023.1.25 [공동취재] 연합뉴스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힘의힘 당사에서 전당대회 불출마 입장을 밝힌 뒤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2023.1.25 [공동취재] 연합뉴스

대통령실 개입 이전까지 국민의힘 지지층 대상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달렸던 나 전 의원은 이렇게 권력에 굴복해 중도 포기하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정치 인생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수도권 4선 의원에 원내대표까지 지낸 화려한 이력과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같은 편'에 의해 입은 치명상은 오랫동안 회복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당장 당 대표 선거전은 김기현·안철수 의원 양자 구도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이제 당내 '비윤계' 지지층이 있는 유승민 전 의원이 얼마나 선전할 것인지와,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결선 투표에서 바닥 표심이 어느 쪽으로 쏠릴지가 관심사로 남아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낙점하고 '윤핵관 중의 윤핵관' 장제원 의원이 '김장 연대'를 통해 발 벗고 밀어온 김기현 의원에게 결국 당심(黨心)이 몰릴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이 나 전 의원을 공들여 주저앉힌 목적대로, 전당대회에서 이변은 없을 거라는 게 대체적인 예상이다.

나 전 의원 불출마 선언에 대해 안철수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안타깝고 아쉽다. 출마했다면 당원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주고 전당대회에 국민들의 관심도 더 모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나 전 의원이 밝힌 '낯선 당의 모습'에 저도 당황스럽다"고 언급했다.

당권주자인 윤상현 의원은 페이스북에 "당원들의 축제가 돼야 할 전당대회에서 나 전 의원에 대한 초선 의원들의 '집단린치 사태'까지 발생했다"며 "여전히 국민의힘에 만연하는 뺄셈정치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당 대표 한 번 나오겠다는 것이 무슨 대역죄냐"고 윤핵관 측에 반발했던 김웅 의원은 "결국 승자는 없고 패자만 남은 게임"이라며 "1년 후 우리는 지난 6개월을 어찌 해명할 것인지"라는 글을 올렸다.

더불어민주당 한민수 대변인은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대통령실의 명령을 받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벌떼처럼 몰려가 나경원 전 의원을 물어뜯더니 끝내 굴복을 받아낸 것"이라며 "친윤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까지 가혹할 수 있다니 정말 잔인한 대통령"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 대변인은 "같은 당 소속 정치인에게도 이렇게 혹독하게 하니 야당과 전 정부에 대한 표적·조작 수사는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면서 "야당과 정적에게 가혹하고, 국민에게는 무심한 대통령은 경제가 어려워지고 국민의 살림이 어려워져도 만사 제쳐두고 당권 장악에만 올인하고 있다. 검찰독재 완성, 야당과 비판세력의 궤멸의 끝에 윤석열 대통령이 그리는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지 국민은 두렵기만 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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