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당무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바람직 안 해"

실제론 나경원에 십자포화, 당 대표 출마 주저앉히기

유승민 이어 장애물로 인식…친윤계는 김기현 밀어

"대통령실이 지목하니 윤핵관들 달려들어 집단 린치"

"골대 옮겨도 안 되자 자기 팀 아닌 선수 두들겨 패"

나경원 전 의원이 11일 서울 동작구청에서 열리는 신년인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3.1.11. 연합뉴스
나경원 전 의원이 11일 서울 동작구청에서 열리는 신년인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3.1.11. 연합뉴스

"저는 늘 당이라고 하는 것은 소속 의원과 우리 당원들이 치열하게 논의하고, 거기서 내린 결과는 받아들이고 따라가고, 이렇게 하는 것이 정당 아니겠습니까?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당은 정당 내부도 민주적 원리에 따라서 가동이 돼야 한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대통령으로서 무슨 당무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2일 출근길 문답에서 내놓은 발언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이준석 전 대표가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효력을 정지해달라'고 신청한 가처분이 법원에서 일부 인용되면서 비대위 재구성 문제 등을 놓고 시끄러운 상황이었다. 이에 한 대통령실 출입 기자가 "여당에서 윤심(尹心)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당 혼란을 바라보시는 심정도 착잡하실 것 같은데 당부하실만한 메시지가 있으면 한 말씀 부탁드린다"고 대통령 심정까지 걱정하며 공손하게 묻자 "당무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겉으로 내세우는 그럴듯한 명분과 실제 행동이 전혀 다른 경우가 부지기수인 윤 대통령은 당무 개입 문제에서도 겉과 속이 판이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나경원 전 의원을 향한 대통령실 및 '윤핵관'들의 융단폭격 배후에 윤 대통령이 있으리라는 것은 정치권에서 누구나 짐작하는 상식이다.

대통령실 등이 벌떼같이 달려든 표면적인 이유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던 나 전 의원이 신년간담회에서 "조금 더 과감하게 원금 부분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탕감할 수 있는 부분은 없나 들여다보고 있다"며 헝가리의 출산 지원정책 사례를 언급한 게 부적절했다는 것이다. 결혼하면 4000만 원을 대출해주고 첫 자녀를 출산하면 무이자로 전환해주며 둘째 출산시 원금 일부 탕감, 셋째 출산시 원금을 전액 탕감해주는 제도에 대해 장관급 주무 공직자가 정책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검토한다는 건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저출산 문제가 국가 존립을 좌우할 심각한 과제이고 나 전 의원 표현대로 "지금이 마지막 골든타임"인 만큼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안상훈 사회수석은 이례적으로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에게 실명 브리핑을 자청해 "윤석열 정부의 정책 기조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며 "본인의 개인 의견일 뿐 정부 정책과는 무관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나 전 의원은 정부 정책으로 결정됐다고 한 적도 없고 어디까지나 아이디어 차원에서 꺼낸 것인데도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내부적으로 조용히 조율하기는커녕 수도권 4선 의원에 원내대표까지 역임한 유력 정치인을 사실상 깔아뭉갠 것이다.

이후에도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들은 "대단히 실망스럽다" "납득하기 어려운 부적절한 처사" "행정부의 일원임을 망각한 처사" "지극히 부적절한 언행을 계속하고 있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고위 공직을 당 대표 선거를 위한 도구로 활용한 것도 문제" "어린애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행태를 보일 수 있느냐" 등의 원색적인 표현으로 불쾌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심지어 "나 전 의원 해촉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대통령실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며 "이런 혼선이 국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대통령이 결정하실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AP통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1.11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AP통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1.11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대통령실 참모진이 여권 중진을 공개적이고 조직적으로 공격하는 데 대통령 의중이 실려 있지 않다고 여기는 정치권 관계자는 여야를 막론하고 아무도 없다. 이후 "정부직을 맡으면서 당 대표를 한다면 국민 정서에 바람직한지 비판이 들어올 것"(김기현) "이런 식으로 정부와 반해서 본인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예전의 '유승민의 길' 아니냐"(김정재) "지지하는 현역 의원이 한 명도 없는 분이 지금 지지율이 조금 높다고 대통령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정치 행위라고 볼 수 없다"(박수영) 등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의 십자포화가 이어졌다.

나 전 의원의 국민의힘 제주도당 특강이 하루 전날 취소되는 일도 있었다. 이렇게 당내에서 나 전 의원을 노골적으로 따돌리고 고립시키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추세다. 이 모든 갑작스러운 '나경원 왕따 만들기' 움직임은 나 전 의원이 오는 3월 국민의힘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최근 피력했고 당선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친윤계 의원들이 이른바 '김장 연대'(김기현-장제원)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김기현 의원을 전폭적으로 밀고 '원조 윤핵관'인 권성동 의원까지 출마 뜻을 접었는데 나 전 의원이 장애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국민의힘이 차기 당 대표를 일반 국민 여론조사 없이 '당원투표 100%'와 '결선 투표제'를 통해 뽑기로 하고 당헌·당규를 전격 개정한 것은 3·8 전당대회에서 '윤심'에 충실한 당 대표를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한 정지작업이었다. 본래 당 대표 경선에 여론조사를 처음 도입한 정당은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이었고 이후 여론조사가 포함된 규정이 18년이나 유지된 것은 당심이 민심과 괴리되면 '그들만의 선거'가 돼 국민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확고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사석에서 "전당대회 룰을 변경할 거면 (당원투표 비중을) 100%로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취지로 언급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이를 전후해 국민의힘 비대위와 친윤계 당권주자들 사이에 당원투표 100%로 가야 한다는 발언이 갑자기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당 대표 적합도 국민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인 유승민 전 의원이 당선되지 못하게 하려는 포석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비윤계 당권주자와 의원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의원총회 한번 없이 '게임의 룰'을 급히 바꾸고 친윤계 당권주자도 교통정리를 해나가는 마당인데 나 전 의원이 출마할 것으로 보이자 최대 장애물로 인식한 것이다. 나 전 의원은 국민의힘 지지층만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김기현 의원, 안철수 의원 등 다른 당권 주자들을 큰 차이로 따돌리고 차기 당 대표 선호도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니 나 전 의원이 당선되거나 표 분산으로 유승민 전 의원이 당선되는 사태를 우려해 나 전 의원을 찍어 눌러서 주저앉히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다"는 텔레그램 메시지가 시사하듯 이준석 전 대표를 축출하는 과정에서도 배후로 작용한 바 있다. 내년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할 차기 당 대표를 충복으로 앉히고 국민의힘을 더욱 일사불란한 '윤석열당'으로 완성하기 위해 같은 편도 때리면서 노골적으로 당권에 개입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나 전 의원과는 대조적으로 김기현 의원을 관저로 불러 최소 두 차례 만났고 큰아들 혼사를 치른 김 의원에게 직접 축하 전화를 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과 김기현 의원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3.1.11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과 김기현 의원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3.1.11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이에 이준석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골대를 들어 옮기는 것으로 안 되니 이제 자기 팀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선수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며 "사실 애초에 축구가 아니었거든요"라고 비꼬았다.

유승민 전 의원은 "나경원 전 의원에 대한 대통령실의 여러 가지 대응을 보면 너무 폭력적이고 너무 과하다"면서 "임명직 장관급 공직자가 정책에 대해서 한 마디 한 걸 두고 대통령실이 몇 날 며칠을 두고 계속 노골적으로 거칠게 비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실에서 딱 지목하니까 윤핵관들이 달려들어서 집단 린치를 하고 왕따를 시키고 있다"며 "누가 전당대회에 출마하고 안 하고는 본인의 자유이고 본인의 결심인데 이걸 대통령실에서 대통령의 권력으로 누르려는 건 정말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당은 정당 내부도 민주적 원리에 따라서 가동이 돼야 한다. 대통령으로서 무슨 당무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은 번드레하게 했지만 현실은 3김(金) 이전 제왕적 대통령 시절로 당청 관계를 퇴행시키는 구태에 거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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