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침체·관세 전쟁 돌파할 묘책 찾아야

35조 슈퍼 추경 속도전…소비 불씨 살리기

대미 통상 외교 즉시 가동…관세율 낮추기

자동차· 철강 수출 타격 줄이는 게 최우선

주식시장 선진화 위한 상법 개정 즉시 추진

재벌개혁과 기본사회 구축도 중요한 과제

추락 중인 잠재성장률 높일 구조개혁 필수

이재명 대통령은 선거 운동 기간 내내 경제와 민생 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했다. 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 2일에도 민생 회복을 강조하며 당선 즉시 35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추진해 소비 살리기에 쓰겠다고 약속했다. 지난달 25일에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1호 지시로 '민생을 위한 비상경제대응전담(TF)팀' 구성을 지시하겠다고도 밝혔다.

12.3 내란 종식이 시급한데도 ‘경제와 민생’을 앞세운 이유는 자명하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의 무능과 무대책, 무책임으로 우리 경제가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충격은 고스란히 국민이 받고 있다. 경제와 민생이 이재명 정부의 ‘발등의 불’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극심한 소비 침체로 올해 들어 편의점도 줄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편의점 내부. 2025.4.14. 연합뉴스
극심한 소비 침체로 올해 들어 편의점도 줄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편의점 내부. 2025.4.14. 연합뉴스

소비 진작용 추경 신속하게 편성, 집행해야  

지금 한국 경제는 말 그대로 ‘내우외환’에 처해 있다. 3년 가까이 이어진 투자와 소비 부진으로 내수 경기가 바닥을 기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글로벌 관세 전쟁으로 수출도 뒷걸음질치고 있다. 문제는 경기 침체의 원인을 알고 있어도 당장 이를 극복할 방법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내수 경기가 살아나려면 가계 소득이 올라가고 기업 실적이 개선돼야 한다. 그래야 소비와 투자가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가계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에 눌려 있고 기업도 국내외 경기가 좋지 않아 고전 중이다. 민간 부문에서는 내수 경기의 불씨를 살릴 여력이 없다는 뜻이다.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무대책으로 일관했다. 이재명 정부는 이런 윤석열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이 대통령은 추경을 통해 확보한 재원을 지역화폐와 소비 쿠폰 등 소비 활성화에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집행된 1차 재난지원금은 민간 소비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런 점에서 소비 쿠폰과 지역화폐도 유효한 소비 진작 정책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일시적 소비 진작 효과로 끝나지 않도록 후속 대책이 있어야 한다. 물가를 안정시키고 내수 경기과 밀접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만 소비 쿠폰과 지역화폐가 소비 진작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은행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물가와 집값을 자극하지 않는 수준에서 적기에 금리를 내리는 통화정책을 병행할 필요도 있다. 

 

 KDI가 분석한 2020년 1차 재난지원금 정책 효과. 연합뉴스.  
 KDI가 분석한 2020년 1차 재난지원금 정책 효과. 연합뉴스.  

취임과 동시에 대미 통상 협상…정교한 전략·전술 절실

대미 통상 협상은 이재명 정부가 긴급하게 대응해야 또 다른 과제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유튜브 방송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상 협상에 대해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나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 일방 손해를 보는 건 외교가 아니라 약탈이다. 그건 조공 바칠 때 하는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심해도 국익을 우선시하는 원칙을 지키겠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친미 외교와는 결이 완전히 다른 인식과 태도다.

하지만 대미 통상 협상은 단순 방정식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거래’에 매우 능한 사람이다. 자칫 그의 게임에 말려들 수 있다. 협상에 나서기 전에 정교한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우리가 줄 수 있는 최대치와 받아내야 할 최소치를 정하고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다만 협상을 질질 끌어서는 곤란하다. 이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통상 수장을 임명해 즉시 대미 협상에 돌입해야 한다. 타결이 늦어질수록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 커지고 수출이 더 줄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일 워싱턴 D.C.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일 워싱턴 D.C.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열린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Make America Wealthy Again)" 행사에서 각국별 관세율을 표시한 차트를 들고 상호관세에 대한 연설을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외국 지도자를 질책할까? 세계 시장을 뒤흔들까? 아니면 적에게 복수할까? 하지만 취임 100일 동안의 혼란 속에서도 한 가지 변함없는 것은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권력을 거의 제국주의적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2025.4.2. AFP 연합뉴스

트럼프 ‘거래의 기술’ 역이용해 국익·실속 챙겨야

트럼프 행정부는 25%의 상호관세를 내달 8일까지 유예했다. 그러나 철강·알루미늄과 자동차 등 품목 관세는 그대로 부과하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한국 수출이 휘청거리고 있다. 지난달 수출 증가율은 1.3% 감소하며 4개월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관세 영향을 덜 받는 반도체 수출이 역대 5월 중 최대치를 달성했으나 대미 자동차 수출액이 30% 넘게 줄며 전체 수출이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관세 폭탄을 주고받으면 한국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도 현실이 되고 있다. 트럼프 관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대미 수출은 지난달 100억 달러로 8.1% 줄었다. 관세 전쟁으로 중국 경제가 나빠지며 대중 수출도 104억 달러로 8.4% 감소했다. 미국과 중국의 관세 전쟁이 장기화하면 우리 수출은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주력 수출품인 철강과 자동차 관세율을 최대한 낮추는 게 급선무다. 유예 상태인 상호관세도 부과되기 전에 협상을 통해 백지화하든가 세율을 낮춰야 한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폭을 줄이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관심사다. 이런 점에서 대미 통상 협상 카드로 우리 기업들이 미국 현지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미국산 농산물이나 에너지, 원자재 수입을 늘리는 방안을 제안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치적을 과시하는 것을 중시한다. 이런 성향을 역이용하면 적게 양보하면서 관세 폭탄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주요 품목 수출의 미국 관세 영향 등 [한국은행 제공] 연합뉴스
주요 품목 수출의 미국 관세 영향 등 [한국은행 제공] 연합뉴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하는 상법 개정 즉시 추진

맥을 추지 못하고 있는 국내 주식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정책도 시급하다. 현재 주식 투자자는 1400만 명이 넘는다. 많은 국민이 주식에 투자하고 있어 주가가 상승하면 소비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문제는 한국의 주가지수가 기업 가치만큼 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러 이유가 있으나 일반주주보다 지배주주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재벌기업 체제가 가장 큰 원인이다. 

재벌 총수 일가와 가까운 인사들이 이사회 멤버로 참여해 기업 경영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주도하다 보니 소액주주의 권익은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다. CNBC와 블룸버그 등 외국의 주요 경제매체들은 이구동성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를 해소하려면 한국 재벌기업의 지배구조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코스피5000 시대를 열겠다’는 제목의 대선 공약집에 이 문제를 해결할 몇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이다. 이 대통령은 당선 후 2~3주 안에 상법 개정을 끝내겠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쪼개기 상장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가 상충할 때 이사들이 일방적으로 지배주주 편을 들 수 없게 된다. 이런 점에서 상법 개정은 주식시장 선진화뿐 아니라 재벌개혁의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은 이사가 충실해야 하는 대상을 기존의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히고, 상장 회사의 전자 주주총회 도입을 의무화하는 조항 등을 담고 있다. 2025.3.13. 연합뉴스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은 이사가 충실해야 하는 대상을 기존의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히고, 상장 회사의 전자 주주총회 도입을 의무화하는 조항 등을 담고 있다. 2025.3.13. 연합뉴스

기본소득과 재벌개혁도 꼭 성과내야 할 과제

내수 살리기와 대미 통상 협상 등 긴급한 현안이 많아 기본소득은 뒤로 밀렸으나 이재명 정부가 포기할 수 없는 과제다. 기본소득은 단순히 복지 제도를 바꾸는 차원이 아니다. 먹고 사는 일로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소득에 쓸 재원도 세금이 아닌 태양과 바람, 국가 유휴지 등 공유 자원을 활용해 마련하는 게 원칙이다.

경제 살리기의 목표는 갈수록 떨어지는 성장률을 회복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역대 최저인 평균 1%대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 여파는 올해까지 이어져 성장률 전망치가 0%대로 추락했다. 이재명 정부가 소비를 살리고 관세 전쟁에 잘 대처하면 올해 1%대로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잠재성장률 3%대 진입을 목표로 인공지능(AI)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비롯해 연구·개발(R&D) 예산 증액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신기술에 대한 투자만으로 잠재성장률을 높이기는 어렵다. 우리 사회의 인적, 물적 자원이 대기업 등 한 쪽에 몰리지 않도록 경제 구조를 개혁해야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 산업 생태계를 개혁해 대기업을 위협할 만한 벤처기업들이 많이 나올 수 있게 하는 게 핵심이다. 재벌기업 체제를 깨는 구조개혁과 기본소득 구축은 당장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쉼없이 차근차근 추진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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