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벚나무는 우리나라 산에서도 드문 존재
'왕벚프로젝트' 오대산 산벚나무 분포조사
오대산은 국내 산벚나무의 최대 자생지
우리 벚나무는 우리 얼굴, 유전자 지켜야
제주왕벚나무로 소메이요시노 대체 계획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좋은 계절, 5월 초에 오대산 가는 길은 나에게 매번 잊지 못할, 특별한 경험이다. 월정사, 상원사 등 주요 탐방로 초입부터 이미 해발 800미터에 이르는 오대산에는 봄이 늦게 오기 때문에 상춘객들은 4월에 다른 산들에서 누렸던 봄꽃의 향연을 5월에 이곳에서 다시 만끽할 수 있다. 올해에는 대선을 앞둔 정국의 소용돌이에 대한 어지러운 마음을 애써 접어두고, ‘사단법인 왕벚프로젝트 2050‘(이후 왕벚프로젝트)에서 연휴 다음 날인 7일과 8일 이틀에 걸쳐 실시한 일련의 오대산 산벚나무분포 현황조사에 참가했다. 나는 이 단체에 감사로 참여하고 있다.
2022년 2월 공식 출범한 왕벚프로젝트(회장 신준환 동양대 교수)는 전국의 공원과 공공시설 정원수와 가로수 등으로 심어진 일본 왕벚나무(소메이요시노 벚나무)를 제주산 왕벚나무로 바꿔 심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신 회장은 “전국의 일본 왕벚나무를 당장 베어내자는 것이 아니라 이제 자연 수명이 다해가고 있는 만큼 자생 왕벚나무로 교체해 나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왕벚나무 수령이 60~80년이므로 1960년대 이후 대거 심어진 일본 왕벚나무가 2050년이면 제주왕벚나무로 다 교체할 수 있다는 목표를 법인명 ’2050‘에 담았다.
왕벚프로젝트는 매년 전국의 벚꽃 명소 한두 군데를 대상으로 식재된 벚나무류 조사를 펼치는 동시에 자생 벚나무류 전국 분포 현황과 특성 조사도 병행하기로 했다. 이번 오대산 산벚나무분포 현황조사는 그 첫 시도이다.
“오대산은 남한에서 산벚나무가 가장 많은 곳”
“엽병(잎자루)에 털 있음. 잎 측맥과 주맥에 털 없음. 소화병(小花柄·꽃자루)에는 극미모(매우 적은 털). 이거 산벚나무로 할까요?”
“산형(傘形)꽃차례에 2~3개의 꽃, 소화병과 잎에 털 없음. 꽃이 드문드문 달림. 전형적인 산벚나무입니다.”
지난 5월 7일 오대산 국립공원 진고개에서 노인봉으로 향하는 탐방로. 오대산 산벚나무 조사 5팀의 현진오 왕벚프로젝트 사무총장과 강승연 조사원이 주고받는 대화는 비전문가에게는 이해하기 어렵게 들렸다.
소화병(小花柄) 또는 소화경(小花莖)은 꽃자루의 한자 이름이고, 꽃차례에서 한 개의 꽃을 달고 있는 자루를 말한다. 화경(花莖)은 꽃대, 즉 꽃자루를 하나 또는 여러 개 달고 있는 줄기를 일컫는다. 꽃차례(花序·화서)는 꽃대 축에 꽃이 배열된 모양을 말한다. 그 중에서 산형(傘形)화서는 우산모양 꽃차례로 꽃자루가 한 지점에 모여 달려 우산살 모양을 하고 있다. 산수유, 앵초, 붉은참반디 등이 이에 속한다. 산방(繖房)화서는 편평꽃차례로 꽃자루의 길이가 위로 갈수록 짧아져 꽃대 끝들이 거의 같은 높이로 나란히 정렬한다. 기린초, 팥배나무 등이 이에 해당된다.
벚나무, 산벚나무, 잔털벚나무, 올벚나무 등 벚나무류도 다른 식물들처럼 개체변이가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종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산벚나무는 잎자루에도 털이 없는 게 특징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번처럼 털이 있는 경우에도 다른 특징들이 산벚나무에 더 많이 해당하면 일단 그렇게 분류한다.
현진오 사무총장은 채집한 산벚나무 꽃자루에 루페(확대경)를 갖다 대면서 말했다. “이곳(오대산 고지대)의 산벚나무는 잎자루 등에 털이 있더라도 잔털벚나무처럼 조밀하게 나지 않는다. 꽃도 우산모양꽃차례에 2개인 경우가 많다. 그래도 미심쩍은 개체는 DNA 검사를 통해 최종 확정해야 한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소장이기도 한 현 총장은 “아직 다른 지역에 대한 체계적 조사가 다 이뤼지지 않아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오대산은 남한에서 산벚나무가 가장 많이 분포한 곳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산벚나무는 꽃 2~3개가 모여 우산모양꽃차례를 이루지만, 편평꽃차례인 경우도 있다. 꽃자루, 수술대, 암술대, 씨방에 털이 없다. 잎자루는 2㎝ 정도로 짧고, 털이 없다. 주로 높은 산에 서식하며 남한에서는 백두대간 등에 제한적으로 분포한다. 꽃과 잎이 동시에 나오는 데다 꽃이 드문드문 피는 편이라서 많은 꽃이 조밀하게 달리는 왕벚나무나 벚나무에 비해 화려하지는 않다.
벚나무는 편평꽃차례에 2~5개의 꽃이 달린다. 꽃자루에 털이 없고, 꽃대에 꽃싸개잎이 있다. 꽃받침통과 암술대에는 털이 없다. 산벚나무에 비해 낮은 산지에 자라며, 꽃대와 꽃자루가 더 길다. 잔털벚나무는 편평꽃차례에 꽃이 2~5개씩 달린다. 잎의 앞뒷면 맥에 털이 있다. 전체적으로 벚나무와 비슷하지만, 잎의 뒷면, 잎자루 및 꽃자루에 털이 있다는 점에서 벚나무와 구분된다. 주로 남부지방에서 일찌감치 3월에 꽃을 피우는 올벚나무는 연한 홍색의 꽃 2~5개를 우산모양꽃차례에 피워올린다. 꽃자루와 암술대에 털이 있다.
산벚나무는 귀한 존재, 산에 있다고 다 산벚나무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도 나도 벚꽃을 좋아하고, 즐기게 됐지만, 그에 비해 벚꽃에 대해 얼마다 알고 있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왕벚프로젝트의 신준환 회장은 “산이 있으면 산벚나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로 산벚나무는 백두대간과 바다에 가까운 고산지대 등 제한된 지역에만 분포한다”고 했다. 신회장은 “올벚나무도 남부에만 서식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문경까지도 분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자생 벚나무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내고 더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자생 벚나무류에는 산벚나무, 잔털벚나무, 벗나무, 올벚나무 외에도 한라산특산 왕벚나무와 울릉도 특산 섬벚나무가 있다. 제주 왕벚나무는 올벚나무를 모계, 벚나무를 부계로 한 자연 교잡종으로 특산종이다. 우산모양꽃차례나 편평꽃차례에 꽃이 2~5개씩 달리며 꽃자루에 털이 있고, 암술대에 털이 조금 난다. 한라산 중턱에 200여 그루가 자라고, 제주도와 해남에 3곳의 자생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제주왕벚나무를 소메이요시노벚나무와 맨눈으로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보통 소메이요시노벚나무는 겨울눈 눈비늘에 털이 빽빽하게 나 있는데 비해 제주왕벚나무에는 털이 조금만 나 있는 것으로 구별된다.
문제는 일제강점기와 1960년대에 심었던 일본산 소메이요시노벚나무가 지금도 벚나무 가로수의 주된 품종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2022년 왕벚프로젝트의 국회 및 여의서로 벚나무류 조사 결과 총 636 그루 가운데 94.3%가 소메이요시노벚나무였다. 한국특산인 왕벚나무는 한 그루도 없었다. 매년 봄 군항제가 열리는 진해에서도 2023년 조사 결과 소메이요시노벚나무는 96%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호국영령이 잠든 국립현충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총 560여 그루 중 소메이요시노 벚나무 등 일본산이 92%에 육박했다.
신준환 회장은 왕벚프로젝트 홈페이지 인사말에서 “이 땅의 산천초목도 우리의 얼굴이라고 한다면 벚꽃도 우리의 얼굴”이라면서 소메이요시노벚나무의 유전자로 오염된 우리 벚나무를 복원하고, 자생 벚나무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자생 벚나무를 더 사랑해야 하고, 그러려면 그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한다.
백두대간 노인봉~매봉 코스, 야생화의 융단
이날 5팀의 조사경로는 진고개~노인봉~소황병산~매봉~선자령으로 계획됐다. 상황에 따라 도중에 내려올 수 있도록 짜여진 코스였다. 전체가 백두대간인 코스 중 노인봉부터 매봉까지는 비법정탐방로, 즉 통행금지 구간이어서 사전에 연구·조사 목적의 탐방허가를 국립공원공단으로부터 받아야 했다.
진고개~노인봉 코스는 동쪽으로 소금강까지 이어지는 오대산 주요 탐방로 가운데 하나로 그 중 초입 구간에 해당한다. 6개 팀으로 나뉘어 각각 다른 구역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날 벚나무류 조사는 탐방로에서 20미터 이내의 개체들에 대해서 실시하도록 공지됐다. 그러나 벚나무가 많지 않은 곳에서는 이런 지침은 무시됐다. 탐방로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조사와 채집이 이뤄지는 동안 발밑을 보니 숲개별꽃 무리와 태백제비꽃, 노랑제비꽃, 얼레지 등이 마치 색색의 꽃 융단을 깐 것 같다.
소황병산으로 가는 탐방로에서는 더 많은 야생화를 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흰색의 큼지막한 흰 꽃을 꽃대 하나에 하나씩만 달고 있는 홀아비바람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많은 홀아비바람꽃을 한꺼번에 본 적이 없다.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 태백제비꽃도 끊임없이 나타났다. 4월 12일 문경 주흘산에서보다 훨씬 더 많다. 잎의 양 측면이 말아 올려져 있는 금강제비꽃, 양지꽃, 현호색, 갈퀴현호색, 피나물 등도 보였다. 산벚나무 조사가 아니었더라면 결코 갈 수 없었을 비법정탐방로의 야생화 화원이다.
물을 좋아하는 벚나무류, 흩어진 꽃잎은 물 위를 떠돌고
이번 조사에도 동참한 신준환 회장은 8일 매봉에서 소황병산으로 가는 탐방로에서 산벚나무는 물이 많은 곳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벚꽃이 예쁘게 많이 피어 있는 곳은 가을에 단풍도 곱게 물든다. 북한산 문수봉으로 향하는 삼천리골 상류 계곡이 그렇다. 산벚나무인지 벚나무, 또는 잔털벚나무인지는 모르겠지만, 봄에는 벚꽃이, 가을에는 단풍이 곱다. 자생 벚나무류를 이제 어느 정도 판별할 수 있게 됐으니 내년 봄에는 때를 맞춰 다시 가 볼 생각이다.
북한산 향로봉 밑의 폐사지인 포금정사터에는 산벚나무(혹은 벚나무)와 귀룽나무 고목이 각각 서너 그루 자리잡고 있다. 그 옆을 흐르는 작은 계곡에는 늦봄의 며칠간 흩어진 벚꽃잎과 귀룽나무 꽃잎이 떠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붉어진 벚나무속 꽃잎들이 계곡의 고인 물이나 못 쓰는 우물(폐정)을 촘촘히 뒤덮고 있는 모습은 봄 절경의 아이콘이다. 「누가 불행하다고/ 가고 있는 붐 한 철에 기대랴/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투성이니 많이 잃고도/ 하나도 잃지 않은 저기 폐정된 우물/ 들여다보면 어둑한 물 위로 낙화/ 물풀처럼 떠돈다/ 가버리면 봄이었다는 생각이/ 갈 길 새삼 낯설게 한다.」 (김명인, ’낙화‘ 중에서)
오대산 벚나무류 4그루 중 3그루가 산벚나무
5월 7일과 8일에 걸쳐 진행된 오대산 산벚나무 조사에는 왕벚프로젝트 신회장과 김창열 부회장(전 자생식물원 원장), 권영한 부회장(전 신구대 교수), 김승철 교수(성균관대), 현진오 사무총장과 동북아생물다양성센터 직원 등 18명이 참여했다. 두로령~두로봉 및 북대사 일대, 두로령~비로봉~호령봉~상원사, 신배령~조계동~내면분소 등 모두 9개 탐방로와 그 주변을 대상으로 조사가 실시했다.
조사 결과 오대산 9개 구간에서 채집된 벚나무 종류 336건 가운데 산벚나무가 252건으로 전체의 75%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잔털벚나무가 46건(14%)으로 뒤를 이었다. 벚나무는 7건(2%)이었다. 이번 조사에는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NABI)가 식물 종 조사업무에 사용하는 현장기록 시스템을 개선해서 자체 개발한 G-Note (NABI LAB)를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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