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이후 사회개혁 구상] 연금 고갈 대책

국민연금기금 고갈 이후 구상이 중요하다

부과식이냐, 적립식이냐 본격 논의 없어

정부 당국자 입만 열면 “더 내고 덜 받아라”

소득대체율 높여야 연금 위상과 신뢰 회복

부과식에서 후세대 ‘큰 부담’ 걱정 덜려면

자동안정장치 도입, 5년마다 보험료 조정

임항 편집위원
임항 편집위원

최근 정부와 국회에서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재개됐지만, 이에 대한 정부 고위당국자들의 발언은 연금개혁의 방향을 여전히 오도하고 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현재 대통령 권한 대행)는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누구도 과도한 부담을 지지 않으면서 국민연금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더 내고 덜 받는’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이 (연금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는 시민 대표들의 합의는 있었어도 덜 받는다는 합의는 없었다. 지난해 4월까지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공론화에 참여한 시민대표단의 다수는 오히려 ‘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개혁안을 지지했다. 제21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회의 시민 숙의단 500명 가운데 56%는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높이고 보험료율도 13%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최상목 권한대행의 발언은 지난해 5월 소득대체율을 44%까지 높이기로 한 여야 간 잠정적 의견 접근조차 무시했다. 이는 정부의 축소지향적 복지관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참여연대는 최상목 권한대행의 발언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무시한 채 국회에서도 논의조차 되지 않는 안을 제안한 것은 무책임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2.11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2.11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모수개혁부터…단, 소득대체율은 50%로 높여야

또한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 14일 국회에서 국민연금에 대한 국고 투입은 부적절하다며 보험료와 급여 수준 조정만으로 재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또한 사회보장에 대한 국가 역할이 커지고 있는 세계적, 시대적 추세를 무시한 발언이다. 참여연대는 이에 대해 “연금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들은 ‘사전적 국고투입을 통한 미래세대 부담 완화’를 80.5%라는 높은 찬성률로 지지했다”면서 “(조 장관의 발언은) 공론화 결과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은 물론 헌법이 정한 사회보장에 대한 국가 책임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게다가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의 재정을 공적 연금에 투입하고 있다. OECD '한눈에 보는 연금 2021'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 정부가 공적연금에 투입한 재정은 전체 정부 지출의 9.4%로 OECD 평균 18.4%의 절반 수준이다.

여야정 협의체는 20일 첫 모임을 갖고 추가경정예산 등 민생현안과 함께 국민연금 개혁방안을 논의했다.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가 권력 공백기이기 때문에 바로 지금이 정치인과 정당에는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국민연금 개혁의 적기라는 것이다. 현재 국민연금의 수익비(보험료 대비 급여 수준)가 과도하게 높기 때문에 연금 모수개혁(내는 돈과 받는 돈 비율을 재조정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따라서 모수개혁부터라도 지금 서두르는 게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문제는 소득대체율인데 이를 40% 남짓에 묶어두느냐, 50% 정도로 올리느냐는 쟁점이 연금개혁에서 가장, 혹은 그토록 중요한 안건은 아니다. 노인빈곤의 경감을 위해서는 쟁점인 명목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것보다는 실질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질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방안에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 등 연금 구조개혁 방안들의 조합을 어떻게 잘 짜느냐는 것에서부터 국민연금 내에서 사각지대를 줄여나가는 과제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열려 있다.

 

여야정 국정협의회 첫 회의가 20일 오후 국회 사랑재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우원식 국회의장, 권영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2025.2.20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여야정 국정협의회 첫 회의가 20일 오후 국회 사랑재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우원식 국회의장, 권영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2025.2.20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소득대체율 높아지면 보험료 체납 줄고 특수직역 연금과의 통합 쉬워져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목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국민연금의 존재감과 위상,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적정한 소득대체율을 확보해야 한다. 건강보험의 경우 국민연금보다 역사가 오래되기도 했지만, 그간 보장성과 적용 범위를 꾸준히 확대한 덕분에 오늘날 세계적으로도 본받을 만한 제도로 자리매김했다. 몇 년 전부터는 4대 암 환자에 대한 치료비 거의 전액 지원 등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다. 건강보험료에 대한 저항은 국민연금 보험료에 비해 훨씬 더 적다. 국민연금도 소득대체율을 높이면 가입 의욕이 커져서 보험료 체납자도 줄어들 것이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높아지면 장차 특수직역 연금제도와의 통합을 원활하게 만들어 줄 것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20년 이상 가입자 기준 국민연금 100만 원 대, 공무원연금 200만 원대, 30년 이상 교원과 군인 300만 원 대인 연금 간 지급액 격차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반드시 국민연금과 통합해야 한다. 이들 연금을 따로 운영하거나 더군다나 특수직역 연금의 손실을 매년 국고에서 메워주는 나라는 거의 없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을 도입할 때는 그들의 급여가 절대적으로 낮았지만, 지금은 군인을 제외한 공무원의 평균 급여 수준이 민간인 평균보다 훨씬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서 조규홍 장관처럼 국민연금에는 국고 투입이 부적절하다고 한다면 대한민국에서 공무원은 1등 국민, 이외는 2등 국민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GDP 절반에 이르는 대규모 국민연금기금, 국가 경제엔 짐 될 수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과 관련해서 또 따져 봐야 할 것이 막대한 규모의 기금적립금을 쌓아 놓는 데 따른 경제적 부담이다. 국민연금 기금적립금은 1185조 원(2024년 11월말 기준) 으로 GDP 대비 절반의 기금을 쌓아놓고 있다. GDP 대비 규모로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크다. 절대적 기금 규모도 일본 공적연금(GPIF·1987조 원)과 노르웨이 국부펀드(GPF·1588조 원)에 이어 세번 째로 크다. 물론 제도 시행의 비교적 초기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과도한 규모의 기금임에는 틀림없다.

이렇게 큰돈을 쌓아만 놓고, 연금 지급은 쥐꼬리만큼 하고 있으니 세계적으로 희귀한 경우다. 국민과 기업 및 정부로서도 큰 기회비용이 아닐 수 없다. 국가 경제는 내수 부진으로 저성장의 덫에 빠졌는데 국민연금은 원칙적으로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내어줄 수 없다. 또한 기금의 운용 수익율을 높이기 위해 해외주식 보유 비중을 높이는 등 국가 경제에 도움이 안 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국민연금기금의 포트폴리오 현황(2024년 11월말)을 보면 해외주식 35.5%, 국내채권 29.2%, 대체투자 16.0%, 국내주식 11.9% 순서로 돼 있다.

 

이 기금의 일부를 매년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 시장에서 매각하는 방식에 따라서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연금기금 규모를 조속히 줄여나가는 게 더 현명한 판단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기금고갈 이후 적립식과 부과식이냐,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연금보험료율을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낮춘다고 하더라도 기금의 고갈 시점을 약간 늦추는 것일 뿐 고갈 자체를 피할 수는 없다. 고갈 이후, 혹은 고갈 직전에 부과식으로 갈 것인지, 재정안정론자들의 주장처럼 적어도 1년치 급여지급분 정도의 적립 상태를 유지할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대부분 국가가 그렇듯이 우리도 부과식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인 것 같지만, 이에 대한 논의가 충분치 않다.

학계의 다수파인 재정안정론자들은 기금 고갈 후 부과식으로 갈 때 후세대의 부담이 너무 커진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들은 이때 보험료 수입만으로 지출을 충당할 경우 필요한 보험료율인 부과방식 비용률도 2023년 기준 6%에서 2078년엔 OECD 권고치 상한선인 33%를 넘어선 35%(근로자의 경우 17.5%)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럴 경우 1년 치 지급분 이상의 적립금에서 나오는 이자소득을 활용하면 후세대의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는 연금기금에 약간의 완충 자금만 둔 채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로 연금을 바로 지급하고 있다. 즉 부과식이다. 예를 들어 독일은 적립 기금이 GDP 대비 1.2%, 약 한 달 치 기금만을 쌓아놓고 운용하지만, 연금 지급이 밀린 적이 한 번도 없다. 영국 1.8%, 프랑스는 6.7% 수준이다. 가입자 보험료의 과도한 인상 요인이 생길 경우 연금액을 삭감하겠지만, 그 갭이 너무 크면 정부가 재정에서 일정 부분 지원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과 양대노총,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20일 국회 본청앞 계단에서 '시민의 뜻에 따른 연금개혁 3대 요구 이행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5.2.20. 연합뉴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과 양대노총,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20일 국회 본청앞 계단에서 '시민의 뜻에 따른 연금개혁 3대 요구 이행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5.2.20. 연합뉴스

정부와 재정안정론자들이 지금의 저출산과 고령화 추세를 들어 인구 구성비가 은퇴자 위주로 과도하게 치우칠 것을 걱정하는 데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기금 고갈 시점과 부과 방식 비용률 추정치는 현재의 극단적인 저출생 상황이 아주 조금만 개선된다는 전제 (2046년 이후 1.21명) 아래 나온 것이다. 2078년까지 국민소득이 지금보다 크게 높아질 경우 급여의 17.5%(근로자 몫)라는 보험료율이 과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정부는 그동안 경제성장을 포기할 것인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획기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것인가.

동아대 남찬섭 교수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인구변수를 재정계산의 외생변수로 삼는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은 국가가 개입해 변화할 수 있는 정책변수로 간주한다"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출산율을 주어진 것으로 볼 게 아니라 내생 변수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 먼 미래의 인구 추세는 지금과 판이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다.

국가재정은 현재 기초연금 전액을 충당하고 있다. 정부가 국민연금에 재정을 투입하기를 정녕 꺼린다면 부과식 비용률이 너무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가시화할 때 자동안정장치를 도입하거나 5년마다 보험료율을 인상해 가면 ‘후세대의 재앙’ 따위는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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