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우연히 만나 '집단학살 중단하라' 요구

당황하며 고개 숙이고 침묵하던 하르파즈 대사

팔레스타인과 아랍서 수백만이 영상 보고 반응

두 달째 모든 식량과 구호 끊긴 지옥 같은 가자

가자의 끔찍한 상황과 세계의 외면이 낳은 현상

필자는 지난주(4월 21일)에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에서 진행한 <과학기술인들의 한국-이스라엘 과학기술 교류 동결 촉구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 함께 했다. 제58회 과학의 날을 맞아 121명의 과학기술인들이 연서명하고 6개 과학기술계 단체를 포함한 25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한 선언이었다.

참가자들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산업을 우리나라가 함께 발전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한국과 공동 개발할 기술이 전쟁과 학살에 이용되었을 때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며 "이스라엘이 휴전에 다시 응해 영구적인 휴전 협정을 체결할 때까지만이라도, 협력 사업 진행과 지원을 멈추자"라고 제안했다.

'이스라엘은 지금 당장 집단학살 중단하라'라는 구호를 반복해서 같이 외치고 나서,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종로통의 식당가로 이동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마라탕'을 파는 한 식당에서 식사를 기다리던 사람과 우연히 마주쳤다. 라파엘 하르파즈 주한이스라엘 대사였다.
 

식당에서 마주친 이스라엘 대사에게 항의하는 장면 - 유튜브 영상 갈무리
식당에서 마주친 이스라엘 대사에게 항의하는 장면 - 유튜브 영상 갈무리

그는 이스라엘 대사관 근처의 식당가로 직원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러 나온 것으로 보였다. 평소에 이스라엘 대사관은 우리가 아무리 기자회견과 집회를 해도 아무런 반응이나 답변도 없었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항의서한을 전달해도 받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장소에서 이스라엘 대사를 직접 만나서 우리의 의사를 전할 수 있게 된 셈이었다.

우리는 먼저 그에게 다가가 "이스라엘 대사가 맞으시죠?", "당신은 전쟁 범죄자가 아닌가요?"라고 물었다. 하르파즈 대사는 당황하더니 곧 손을 내저으면서 고개를 숙이고 어떤 답도 하지 않고 안경과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어딘가로 전화를 하기도 했고, 초조한 듯이 손을 떠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전달하지 못한 오늘 기자회견문을 그에게 주면서 계속 묻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단학살자는 여기서 환영받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집단학살의 공범입니다. 당신 손에 묻은 가자 어린이 3만 9000명의 피를 보세요", "팔레스타인에서는 지금도 폭격이 벌어지고 수만 명이 죽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지금도 굶고 있고 죽고 있습니다."
 

아랍 언론 '미들이스트아이'에 올라온 영상

곧바로 이스라엘 대사의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식당으로 들어와서 우리를 가로막고 압박하며 쫓아내려고 했다. "여기는 식당이니까 나가달라. 당신들은 대사를 공격하고 있다." 그는 식당 주인에게 "이 사람들을 업무방해로 신고해라"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지금 무고한 가자 주민들을 괴롭히고 공격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이다.

결국 우리는 "Free Palestine! Stop Genocide!"(팔레스타인 해방! 집단학살 중단하라!) 구호를 외치면서 식당에서 나왔다. 그날 우리가 이스라엘 대사에게 항의하는 장면은 다음날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의 SNS에 올라갔다. 그런데 팔레스타인과 아랍 지역의 언론들도 그 영상을 자신들의 SNS에 올리고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 게시물들은 곧 수백만 명이 보고 수만 명의 공감을 얻었다. <Eye on Palestine>, <Al Jazeera>, <Middle East Eye> 등의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서 총 600만 명 이상이 이 동영상을 봤고 <Eye on Palestine>의 인스타그램에서는 공감을 누른 사람만 30만 명이 넘었다. 이러한 거대한 관심과 반응은 지금 가자의 끔찍한 상황 때문이다.

이스라엘 정권은 3월 18일부터 휴전을 깨고 다시 폭격과 집단학살을 시작했을 뿐 아니라, 벌써 두 달째 가자로 들어가는 모든 식량과 구호물자를 끊어버리고 있다. 나아가 가자지구의 66%를 출입 금지 구역으로 만들어서 230만 명의 주민들을 좁은 지역에 몰아넣고서 폭격과 인종청소를 계속하고 있다. 하루 평균 40~50명의 민간인들이 살해되고 있다. 
 

가자에서는 모든 식량과 구호의 반입이 두달째 가로막혀 있다. 
가자에서는 모든 식량과 구호의 반입이 두달째 가로막혀 있다. 

지금 가자지구는 음식도, 약도, 깨끗한 물도, 전기도, 피난처도, 병원도 없는 지옥의 가마솥 같은 곳이 돼 있다. 의료 전문기관에 따르면 가자지구에서 주민들의 기대 수명은 75.5세에서 무려 40.6세로 줄었다. 네타냐후 정권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가자지구는 사람이 살 수 없게 될 것이다. 떠나지 않으면 죽는다.'

더욱 끔찍한 것은 세계가 이것을 그저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전 세계를 뒤흔들면서 계속 모든 언론의 헤드라인을 차지했을 테지만, 지금 대부분의 서방 정부와 언론은 그냥 침묵하고 외면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오히려 가장 앞장서서 네타냐후 정권의 집단학살과 인종청소를 돕고 있다.

결국, 이스라엘은 지금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가자 주민을 굶겨 죽이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편하고 맛있게 식사하려고 기다리던 이스라엘 대사를 본 우리는 항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과 아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작은 항의 행동을 보고서 반응했다. 이스라엘의 집단학살과 그것을 외면하는 세상에 대한 분노가 너무나 높기 때문이다. 
 

가자 주민들의 기대 수명은 75세에서 40세로 줄어들었다. 
가자 주민들의 기대 수명은 75세에서 40세로 줄어들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어느 곳보다 더 큰 슬픔과 추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스라엘의 폭격과 학살이 진행되는 동안에 가자지구의 성당에 매일같이 전화를 걸어 그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영혼을 위로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망하기 직전까지도 말이다.

이스라엘 대사를 우연히 마주치는 이런 기회는 정말 잘 없을 텐데, 좀 더 용기를 내서 '당장 대량학살을, 인종청소를, 전쟁범죄를 멈추라'라고 좀 더 강하게 소리쳤어야 한다고 반성과 후회가 된다. 한국 정부와 정치권도 더 이상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침묵하면서 무기를 판매하거나 기술 개발에 협력하는 행태와 학살 공모를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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