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 대한 빈 살만 영향력 시험대에"
미-러 회담 이어 이란-미국 중재도
빈 살만 "팔 국가 건설 없이는
이스라엘과 국교 정상화 없다"
아랍연맹 4일 카이로서 정상회의
보름 전 미국 CNN 방송은 흥미로운 소식을 지구촌에 전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 핵 문제와 관련해 적대적인 미국과 이란 간의 '중재'를 추진한다는 내용이었다.
CNN은 지난달 16일 자 기사에서 "사우디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긴밀한 유대를 지렛대로 삼아 이란에 백악관에 이르는 외교적 다리를 제공하길 바라고 있다"고 보도했다. 공식으로 제안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대이란 관계를 강화하려는 사우디의 움직임으로 풀이했다.
사우디, 미-러 회담 주선 이어
이란-미국 핵 협상 중재 추진
백악관에 복귀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의 실세 총리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보란 듯이 '밀월'을 과시하고 있다. 취임 후 외국 정상급 중에서 제일 먼저 빈 살만과 통화했고,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등을 논의하기 위한 미국-러시아 고위급 회담도 지난달 18일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도록 했다. 또한 1기 행정부 때 사우디를 가장 먼저 방문했던 트럼프는 이번에도 사우디를 첫 방문지로 삼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을 정도다.
트럼프가 빈 살만을 아끼는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는 게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의 말이다. 인 교수는 2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걸프 아랍국가들은...트럼프에게 무엇을 주면 될지 알고 게임을 시작했다"며 "빈 살만은 이 점에서 탁월했다. 바이든과 싸웠고 (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신생 PE회사인 어피니티 파트너스에 안팎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억 달러를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다보스 포럼을 주관하는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사우디의 대미 투자액은 7700억 달러(1127조 원)이고, 1조 달러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CNN "사우디, 궁지 몰린 이란,
핵 개발 의지 강화될까 우려"
사우디가 미국-이란을 중재하려는 시점도 주목할만하다. 가자 지구와 레바논을 상대로 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군사공격을 통해 친이란 무장세력인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전력이 크게 훼손 된데다 친이란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무너지면서 이란은 큰 타격을 받은 상황이어서다.
CNN은 "사우디 관리들은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대이란 대결에 가담하지 않겠다면서 현 지역 상황을 이란과의 긴장 완화와 관계 개선을 위한 역사적 기회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또한 궁지에 몰린 테헤란은 핵 개발 의지가 더 강해질 것으로 우려한다"고 덧붙였다. 경제적 이익을 외교 정책의 최우선으로 삼은 사우디는 역내 불안정을 경계하고 있으며, 그래서 "극도로 약화된 이란"은 사우디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이슬람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는 2년 전인 2023년 3월 중국의 중재로 베이징에서 적대적이었던 시아파 수장인 이란과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다. 그해 11월 이란 대통령이 사우디를 찾았고, 심지어 이란과의 군사협력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우디-이란 발 화해 기류가 중동과 아랍 전역으로 빠르게 퍼졌음은 물론이다. CNN은 사우디는 이란과의 화해는 "대성공이었고 혜택을 봤다고 여긴다"면서 예멘 반군 후티의 사우디 공격 중단과 지난해 이스라엘-이란 간의 주고받기 공격 과정에서도 사우디는 무사했다는 사실을 대표적 수혜로 거론했다.
명실상부한 중동 맹주 사우디
다극화 세계질서 속 '균형자'
궁지에 몰린 이슬람 형제국에 손을 내미는 '대승적' 행동은 자연히 사우디를 아랍과 중동의 '명실상부한' 맹주로 그 위상을 높이게 된다. 격상된 존재감을 바탕으로 사우디는 미국,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다극화로 세계질서가 재편 중인 상황에서 '균형자' 역할을 모색 중이다.
트럼프 1기 때 중동특사였던 제이슨 그린블라트는 21일 자 아랍뉴스 기고에서 "사우디의 대화 주선 전략은 대미 관계를 강화하고 (중동) 지역 안팎에서 계속 사우디를 안정화 세력으로 성장하게 해준다"며 "사우디의 외교 지도력은 중동과 국내 전선에 주의를 집중하려는 미국 대중, 그리고 중국 등에 외교 정책의 초점을 맞추려는 (트럼프) 행정부에 좋은 징조다"라고 주장했다.
암만에서 활동하는 언론인인 오사마 알-샤리프는 18일 자 아랍뉴스 기고를 통해 사우디의 '비전 2030' 개혁 플랜 안에 분쟁 해결과 평화구축 구상이 있다면서 "오늘날 사우디는 더 안정적이고 번영하는 미래를 향해 역내 다른 나라들을 끌고 가는 기관차가 됐다"고 평가했다.
트럼프의 '약탈적' 가자 구상
미국-사우디 '밀월' 위협하나
그러나 트럼프와 빈 살만의 '밀월'을 위협하는 리스크도 있다. 바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이웃 국가로 강제로 이주시키고 미국이 장악해 소유하겠다는 트럼프의 구상이다. 트럼프 는 2월 4일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한 뒤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 가자는 미국이 무기한 소유한다. 필요하면 미군이 주둔한다 △ 가자의 주민을 주변국이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킨다 △ 가자 난민의 귀환은 불허한다 △ 가자를 재건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적 번영을 일군다 등의 내용을 담은 중동 평화‧번영 구상을 공개했다
이에 사우디의 빈 살만은 단호한 반대 의사를 표명할 뿐 아니라 아랍국가들의 단합된 행동도 주도하고 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주민 75만 명이 내쫓긴 나크바(대재앙)의 재현이 될 가자 주민의 강제 이주 방안을 단호히 거부하고 '팔레스타인국가' 건설 없이 미국이 원하는 이스라엘과의 국교 정상화는 없다는 게 빈 살만의 스탠스다.
빈 살만 "팔 국가 건설 없이는
이스라엘과 국교 정상화 없다"
그 연장선에서 빈 살만은 지난 21일 리야드로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과 이집트, 요르단 정상들을 초청해 비공식 회담을 갖고 트럼프의 '가자 구상'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이집트와 요르단은 팔 주민을 받으라는 트럼프 제안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날 논의된 내용은 4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리는 아랍연맹(AL) 정상회의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아랍연맹 정상회의는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22개 회원국 정상이 모여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이번 회의에 참석할 시리아의 아메드 알샤라 대통령도 다른 아랍 정상들과 마찬가지로 트럼프의 가자 구상을 "일어날 수 없는 매우 커다란 범죄"라고 비판했다.
양립할 수 없는 가자 구상을 놓고 트럼프와 빈 살만이 언제 충돌할지 모른다. CNN은 "리야드와 트럼프의 유대, 트럼프에 대한 빈 살만의 영향력은 가자를 미국이 장악하고 팔레스타인 주민을 내쫓는다는 논란 중인 트럼프의 계획에 의해 시험을 받게 될 것 같다"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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