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도 않은 긴급사태’ 이유로 비상조치 발동

문제가 심각할수록 희망이 커지는 역설

파월 FRB의장 교체압박이 ‘트리플 약세’ 가속

트럼프의 ‘마라라고 합의’는 ‘플라자 합의 2.0’?

플라자 합의 2.0이 아니라 ‘닉슨 쇼크 2.0’

마틴 울프 “트럼프 관세는 전세계 상대의 전쟁행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일 워싱턴 D.C.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열린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Make America Wealthy Again)" 행사에서 각국별 관세율을 표시한 차트를 들고 상호관세에 대한 연설을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외국 지도자를 질책할까? 세계 시장을 뒤흔들까? 아니면 적에게 복수할까? 하지만 취임 100일 동안의 혼란 속에서도 한 가지 변함없는 것은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권력을 거의 제국주의적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2025.4.2.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일 워싱턴 D.C.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열린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Make America Wealthy Again)" 행사에서 각국별 관세율을 표시한 차트를 들고 상호관세에 대한 연설을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외국 지도자를 질책할까? 세계 시장을 뒤흔들까? 아니면 적에게 복수할까? 하지만 취임 100일 동안의 혼란 속에서도 한 가지 변함없는 것은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권력을 거의 제국주의적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2025.4.2. AFP 연합뉴스

“미국 국채 매각은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

“미국 국채를 팔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1997년 6월 23일 당시 일본총리 하시모토 류타로가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강연할 때 한 얘기다. 미국과의 통상(무역) 협상 때 부닥쳤던 미국 쪽의 불합리한 요구를 떠올리며 한 얘긴데, 그것이 당시 빌 클린턴 정부의 역린을 건드렸다. “만일 (미국 국채를) 팔면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로버트 루빈 당시 미 재무장관 주변 인사가 엄포를 놓았다.

그해 11월 노무라, 다이와, 닛코 등과 함께 일본 4대 증권사의 하나로 불렸던 야마이치 증권이 파산하는 등 거품경제 붕괴 뒤 일본 금융사들이 연쇄부도 사태를 맞고 있었으나 미국은 냉담했다. 같은 시기에 한국은 전례없던 외환위기(‘IMF 사태’)를 맞았다.

다음해인 1998년 6월에 중국을 방문할 때 클린턴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일본에 들르지도 않고 ‘패싱’했으며, 장쩌민 당시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만나 금융위기에 휩싸인 일본을 아시아의 불안정 요소로 거론했다.

그때로부터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 중국이 미국의 국채를 매각하고 있다. 지난 1월 말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잔고는 7608억(약 1084조 원) 달러로, 전년도 같은 달에 비해 369억 달러(약 53조 5천억 원)나 줄었다. 중국은 한때 1조 3000억 달러(약 1852조 원)에 달하는 미국 국채를 보유했으나 줄이고 있다. 여기에는 미중 무역분쟁 외에 대만 통일을 공언해 온 시진핑 국가주석의 계산도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대만 무력점령을 시도할 경우 미국이 중국 보유 국채를 압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라는 얘기다.

미국에게 미국 국채시장의 안정은 달러 기축통화체제의 관건이다. 지난 2월 7일 미국에 간 이시바 시게루 일본총리는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을 웃게 만들었다. 이시바는 미국에 대한 일본 직접투자액을 지금의 8천억 달러 수준에서 1조 달러로 늘리겠다고 약속했고, 중국과 달리 여전히 1조 달러대를 유지하며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일본의 미국채 보유 추이 그래프를 가리켰다.(<일본경제신문> 4월 13일)

 

국가별 미국 국채 보유잔고. 일본이 1조 달러가 넘는 1위 보유국이고 그 다음이 중국, 그리고 영국, 룩셈부르크 순이다. 중국 보유잔고는 2019년에서 2024년 사이에 3109억 달러가 줄었고, 일본도 같은 기간에 954억 달러가 줄었다.  한국은 같은 기간에 30억 달러가 늘어난 1249억 달러로 18위.(단위 10억 달러)  일본경제신문 Ask! NIKKEI
국가별 미국 국채 보유잔고. 일본이 1조 달러가 넘는 1위 보유국이고 그 다음이 중국, 그리고 영국, 룩셈부르크 순이다. 중국 보유잔고는 2019년에서 2024년 사이에 3109억 달러가 줄었고, 일본도 같은 기간에 954억 달러가 줄었다.  한국은 같은 기간에 30억 달러가 늘어난 1249억 달러로 18위.(단위 10억 달러)  일본경제신문 Ask! NIKKEI
2000년 이후 미국 국채 보유잔고의 각국별 변화추이 맨 위 연한 청색이 일본, 분홍색이 중국, 청색은 영국, 노란색은 인도, 녹색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래쪽 자주색은 러시아, 붉은색은 튀르키예. 일본은 1조 달러대를 유지하고 있으나 중국은 한때 일본을 추월했다가 2010년대 말부터 급속도로 줄고 있다. 영국 보유잔고가 크게 늘고 있다.  Ask! NIKKEI
2000년 이후 미국 국채 보유잔고의 각국별 변화추이 맨 위 연한 청색이 일본, 분홍색이 중국, 청색은 영국, 노란색은 인도, 녹색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래쪽 자주색은 러시아, 붉은색은 튀르키예. 일본은 1조 달러대를 유지하고 있으나 중국은 한때 일본을 추월했다가 2010년대 말부터 급속도로 줄고 있다. 영국 보유잔고가 크게 늘고 있다.  Ask! NIKKEI

 

미국 ‘트리플 약세’ 재료는 파월 FRB의장 교체압박

지난 4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발동 방침을 발표한 뒤 미국은 주가가 급락하고 국채가격이 떨어지고 이자율이 상승하면서 달러시세가 급속히 하락하는 이른바 ‘트리플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21일 미국 주식시장에서 다우존스 30종 산업지수(평균 주가)는 한때 1300달러 넘게 떨어졌다. 미국 달러는 약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장기 채권 이자율도 올라갔다.(채권가격 하락)

4월 2일 발표 뒤의 트리플 약세에 놀라, 상호관세 발동 예정일이던 9일 트럼프 정부는 부랴부랴 상호관세 발동을 90일간 유예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덕에 주가와 국채, 달러가 오르면서 안정세를 보이는가 했으나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시 트리플 약세로 돌아선 것이다. 다우 평균주가는 지난 주 말에 비해 971달러(2.5%) 하락한 3만 8170달러로 장을 끝냈다. 9일의 상호관세 유예조치 발표 전 날인 8일의 3만 7645달러에 근접했다.

21일은 다우 평균주가를 구성하는 30개 종목 중에서 스포츠 용품 대형주인 나이키를 제외한 29개 종목 주가가 모두 내려갔다. S&P 500종 주가지수도 구성 종목의 90%가 내려가는 전반적인 약세를 보였다. 이처럼 주가 약세를 촉발한 주요 재료는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교체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제롬 파월 미 FRB 의장.  일본경제신문 4월 2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제롬 파월 미 FRB 의장.  일본경제신문 4월 22일

“파월 의장 해임은 넘어서는 안 될 ‘루비콘 강’”

트럼프는 21일 자신의 SNS 트루스에 “‘예방적 금리인하’를 많은 사람들이 요구하고 있다”며 파월 의장을 “판단이 너무 느린 남자”라 비난하고, “지금 바로 정책금리를 인하하지 않으면 경제는 감속할지 모른다”면서 즉각 금리를 내리라고 요구했다.

트럼프는 최근 파월의 금리조정(금리인하 거부)을 정치적인 것이라며 비난하더니, 지난 17일에는 급기야 “한시라도 빨리 (파월을) 해고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케빈 해셋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도 파월을 해임할지 여부를 “대통령과 그 팀이 검토하고 있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금융정책과 재정에 대한 신뢰의 기반이다. 미국 증권사 ‘밀러 태벅’의 매슈 매리는 “미국 대통령(트럼프)이 FRB의 독립성을 해칠 가능성이, 미국 자산에 대한 국내외 투자가들의 신뢰를 손상시킬 우려를 키우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주요 통화에 대한 달러의 종합적인 힘을 나타내는 ‘달러 지수’는 21일 약 3년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고, 달러시세는 유럽연합(EU)의 유로에 대해 3년 5개월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본 엔에 대해서도 약 7개월 만의 약세를 기록했다. 최근 미일간의 금리 격차가 예상과 달리 좁혀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도 엔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이 달러 약세 때문이다.

“FRB, 그리고 미국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파월 의장의 해임은 (절대 넘어서는 안 될) ‘루비콘 강’”이라고 미국 투자은행 ‘브라운 브러더스 해리먼’의 윈 신 환전략 글로벌 책임자는 지적했다. “(파월의 해임이) 거론되고 있는 것 자체가 매우 심각하고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사태”라는 것이다.(<닛케이> 4월 22일)

이 때문에 미 채권시장에서 기준금리와 시장금리 격차가 커지고 있다. 장기금리의 지표인 10년물 국채 이자율은 한때 지난 주말 대비 0.10%p 올라간 4.42%를 기록했다. 국채 가격은 그만큼 내려갔다. 이런 국채 자산으로부터 도피한 자금들이 금 쪽으로 쏠리고 있다. 가상화폐 비트코인도 지난 17일 대비 3% 올라간 8만 7000달러를 오르내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11일 플로리다주 웨스트 팜 비치에 있는 팜 비치 국제공항에 도착해 차량에 탑승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주말을 보내기 위해 팜 비치로 향하고 있다.  2025.4.11.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11일 플로리다주 웨스트 팜 비치에 있는 팜 비치 국제공항에 도착해 차량에 탑승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주말을 보내기 위해 팜 비치로 향하고 있다.  2025.4.11. AFP 연합뉴스

트럼프의 ‘마라라고 합의’는 ‘플라자 합의 2.0’?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스 대통령(1974~1981년 재임)이 재무장관 시절에 기축통화국인 미국 달러는 “엄청난 특권”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미국이 외국에서 수입할 때 교역 상대국에 그 대금을 달러로 결제하면, 그것을 받은 상대국이 외화 준비금으로 미국 국채를 사서 보유하니, 미국은 외화 조달 걱정 없이 필요할 때는 언제고 달러를 찍어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세계최대 무역적자국이 된 미국의 대외 순채무는 2023년 말 2경 8천여억 원이나 된다.

1971년 7월에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전격적인 중국 방문계획을 발표했고, 8월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돼 온 달러와 금 태환제도를 정지했다. 그리하여 달러를 기축통화로 한 브레턴우즈체제는 사실상 무너졌으나 군사력 등을 담보로 한 미국 국가신뢰를 토대로 달러는 기축통화로 계속 군림했다.

트럼프 정권의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CEA)의 스티븐 미런 위원장은 지난 해 11월에 발표한 ‘세계무역 시스템 재구축을 위한 사용자 가이드’란 글에서 “달러는 외화준비 수요 때문에 강세를 보여, 미국의 제조업이나 무역 가능한 재화 생산자들이 그 부담을 떠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보다 높은 가치로 평가받는 달러 강세가 미국 제조업에 불리하다는 얘기다.

그리하여 너무 강한 달러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통화조정을 하는데, 1985년 9월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재무장관들이 뉴욕의 플라자호텔에 모여 달러 대비 주요국 통화 평가절상, 특히 일본 엔의 파격적인 평가절상에 합의한 것이 ‘플라자 합의’다. 단기간에 달러 대비 엔 시세가 2배 이상 뛰어오르게 만든 그 합의의 주목적은 일본의 무역흑자, 미국의 무역적자 줄이기였다.

그 플라자 합의의 현대판, 즉 '플라자 합의 2.0'이 ‘마라라고 합의’라는 얘기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 사저가 있는 플로리다의 마라라고에서 이뤄진 합의라는 얘긴데, 미 국내 제조업 부활을 목표로 삼은 트럼프의 ‘관세전쟁’도, 한편으로 달러 강세 기조를 약세 허용 쪽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상호관세의 주창자로 알려진 피터 나바로 무역 및 제조업 담당 고문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미국 제조업체엔 약한 달러가 수출에 유리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금리를 인하해야 하는데, 금리를 인하하면 그러잖아도 지금 미국의 가장 큰 근심거리 중 하나인 인플레를 한층 더 부추길 것이다. 파월 FRB 의장이 트럼프의 금리인하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운 이유가 거기에 있다. 국내 경기 진작을 위해서는 금리인하가 필요하지만, 인플레 상황에서 금리를 인하할 경우 자칫 제조업 부활계획의 기반 자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 트럼프는 금리를 내리면서 인플레도 잡고 경기(제조업)를 활성화하겠다는 상호모순된 바람(요행)을 추구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고율 관세 부과로 거둬들인 돈(세입)으로 인플레 걱정 없이 제조업을 부활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판자들은 그것이 실효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럴 경우 오히려 경기침체 속에 인플레가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1985년 9월 22일 뉴욕 플라자호텔에 모인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재무장관들. 중앙이 제임스 베이커 장관, 맨 오른쪽이 다케시타 노보루 대장성 대신.   나무위키
1985년 9월 22일 뉴욕 플라자호텔에 모인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재무장관들. 중앙이 제임스 베이커 장관, 맨 오른쪽이 다케시타 노보루 대장성 대신.   나무위키
1971년 8월 15일 미국 달러와 금 태환 정지 조치('닉슨 쇼크')를 발표하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 Yale Insights
1971년 8월 15일 미국 달러와 금 태환 정지 조치('닉슨 쇼크')를 발표하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 Yale Insights

플라자 합의 2.0이 아니라 ‘닉슨 쇼크 2.0’

그런데 트럼프의 그런 정책이 ‘플라자 합의’보다는 “1971년 ‘닉슨 쇼크’의 재현”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경제전문가 다키타 요이치 <닛케이> 객원편집위원에 따르면, 1971년의 닉슨 쇼크 때는 달러의 태환 정지로 달러가 더욱 펑가절하된 데다 수입품에 10%의 수입과징금을 동시에 부과했다. 그 수입과징금이 트럼프 관세에 해당하는 것으로, 더 직설적인 표현이라는 것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4반세기 동안 미국은 경제와 군사 양면에서 서방세계를 떠받쳐 왔으나, 방만한 달러 산포와 독일 일본 등 경쟁자들의 등장으로 경제의 독점적 지위가 흔들리면서 달러 태환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됐다. 미국 1극의 그 ‘팍스아메리카나’(미국의 평화)의 짐을 일본과 독일 등 유럽과 함께 분담하게 만들기 위해 ‘밥상 뒤엎기’를 한 것이 ‘닉슨 쇼크’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1991년의 소련 붕괴로 동서냉전이 끝나고 또 다시 미국 1극의 제2의 팍스아메리카나가 도래했으나, 불과 10여년 만에 1극 체제가 흔들리면서 2기 팍스아메리카나도 저물어 갔고, 그때 등장한 것이 트럼프 정권이었다. 트럼프 정권이 1기에 이어 2기에도 줄곧 앞세우고 있는 것이 관세다. 그것은 곧 달러 강세 시정(약세 용인)이기도 하다.

19세기 말 고율 관세정책을 편 윌리엄 매킨리와 달러 강세 시정에 나선 리처드 닉슨을 존경하는 트럼프가 1971년 닉슨 쇼크 때와 유사한 방책, 곧 ‘닉슨 쇼크 2.0’을 도입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다키타는 주장한다. 문제는 시간이다. 금과의 태환을 정지당한 달러가 안정된 힘을 키우는 데에는 냉전의 종결과 미국경제의 부활을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1995년, 그러니까 1971년의 닉슨 쇼크로부터 4반세기가 지난 시기에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은 “강한 달러가 미국의 국익”이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다시 4반세기 가까이 지난 2017년에 트럼프 1기, 그리고 2025년에 2기 정권이 등장해 강한 달러 시정과 제조업 부활을 외치게 된다.

낙관적이지 못한 전망

다키타에 따르면, 미국 역대 정권은 이처럼 ‘달러 약세 용인→달러 약세 부작용 표면화(이자율 상승과 인플레) →달러 방위(달러 강세)’라는 순환과정을 거듭해 왔고, 그때마다 기축통화 달러의 신뢰가 흔들리는 위기가 찾아 왔다.

트럼프는 미국 제조업의 부활과 기술 패권을 달성하기 위해 1971년의 닉슨처럼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그 목표가 실현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전망은 낙관적이지 못하다. 1971년의 상대는 같은 진영의 유럽과 일본이었지만, 지금은 경제도 군사도 미국만큼 덩치가 큰 중국이다. 게다가 19세기 말 세계로부터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던 매킨리 시대의 미국과,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주도해 온 21세기의 미국은 전혀 다르다. 따라서 19세기 매킨리 시대의 관세정책을 21세기에 되살리려는 트럼프의 착오가 초대국 미국의 쇠망을 오히려 앞당길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MAGA  Born to Tariff.  관세전쟁을 위해 태어난 MAGA(미국을 다시 위해하게)  파이낸셜타임스 4월 11일
MAGA  Born to Tariff.  관세전쟁을 위해 태어난 MAGA(미국을 다시 위해하게)  파이낸셜타임스 4월 11일

마틴 울프 “트럼프 관세는 전세계 상대의 전쟁행위”

닛케이가 인용한 영국 저널리스트 마틴 울프의 <파이낸셜타임스> 기사(4월 11일)는 트럼프의 상호관세를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행위”라 비판하는데, 그 표현이 한국인들에게 특히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울프는 트럼프가 다른 나라들의 무역장벽으로 자국(미국)이 심각한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있지도 않은 긴급사태”를 이유로 역누진적인 상호관세라는 극도의 증세를 단행했다면서, 이는 소득이 높은 사람일수록 더 큰 혜택을 받는 개인소득세 감면 연장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있지도 않은 국가비상사태’를 이유로 계엄령을 발동한 한국의 내란 기획자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발표한 각국에 대한 상호관세율. 위에서부터 레소토, 캄보디아, 베트남, 방글라데시, 태국, 중국(중국은 2, 3월에 부과한 20% 등을 함해 84%로 올랐다가 최종 145%로 발표됐다).... 한국은 25%.  파이낸셜타임스 4월 11일
미국이 발표한 각국에 대한 상호관세율. 위에서부터 레소토, 캄보디아, 베트남, 방글라데시, 태국, 중국(중국은 2, 3월에 부과한 20% 등을 함해 84%로 올랐다가 최종 145%로 발표됐다).... 한국은 25%.  파이낸셜타임스 4월 11일

 

레소토가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심각한 가해국?

일단 90일간 발동이 유예됐지만, 그 상호관세를 떠안게 될 70여개 국 중 최고 관세율은 중국(84%)이고 그 다음은 50%의 레소토, 49%의 캄보디아, 47%의 마다가스카르, 46%의 베트남 등이다.

울프는 상호관세 50%를 매긴 레소토가 정말로 미국에게 부당한 관세로 피해를 입히고 있는 나라 중 두 번째로 심각한 가해국이냐며 힐난한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사이트의 ‘월드 팩트 북’에 들어가 보니 아프리카 남부에 있는 소국 레소토는 국토면적이 3만여 평방킬로미터에 인구는 222여만 명이다. 국내총생산(GDP)은 60억 달러(ppp기준, 2023년), 1인당 GDP는 2600달러다. 수출 총액은 8억 9천여만 달러로 그 중 20%가 미국으로 간다. 총수입액은 20억 달러인데, 미국에서는 수입하는 게 없다.

울프는 트럼프가 산정한 비관세장벽 등을 감안한 상호관세율이 아무 근거도 없고, 심지어 매우 부도덕하고 비인간적이라고 비판한다. 그것은 이 레소토의 예만 봐도 알 수 있다. 트럼프의 논리에 따르면 레소토는 총수출액의 20%를 미국에 수출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아무것도 수입하지 않는다. 모든 나라는 수입과 수출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즉 수출과 수입의 차액이 제로(0)가 돼야 가장 공평하다고 주장하는 트럼프 논리에 따르면 레소토는 심히 불공평한 관세정책을 펴고 있는 나라고, 따라서 징벌적인 고율관세를 때려야 마땅하다. 대미 총수출액이 고작 1억 7800억 달러밖에 안 되는 나라, 미국이 연간 1억 7800만 달러의 무역적자를 보고 있는 나라 레소토에 대한 50% 고율 관세는 그런 것들을 근거로 책정됐다. 레소토는 그나마 미국으로 가던 한 줌의 그 수출품조차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됐다.

미국은 국토면적 983만여 평방킬로미터에 3억 4천만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으며, GDP는 24조 9770억 달러, 1인당 GDP는 7만 4600억 달러, 수출 3조 720억 달러, 수입 3조 8570억 달러다. 미국은 총수입 3조 8570억 달러 중 1.78억 달러를 레소토에서 수입하면서 그 나라 제품에 50%의 관세를 매겼다.

문제가 심각할수록 희망이 커지는 역설

트럼프의 상호관세에서 고율관세 폭탄을 맞은 나라들 대부분이 중국을 예외로 하면 대체로 못사는 약소국들이다.

울프는 베트남의 경우 미국이 베트남전에 개입해 저지른 과거의 만행을 상기시키면서, 어떻게 베트남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느냐고 비판한다. 서방 제국주의 식민정책에 수탈당한 캄보디아, 마다가스카르, 인도네시아(32%), 인도(26%)가 다르지 않다.

미국이 관세의 희생자라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미국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의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을 가장 앞장서서 확장했고, 낮은 임금과 싼 지대를 찾아 해외로 떠난 미국 제조업체들이 가장 큰 혜택을 봤다. 애플의 아이폰과 테슬라의 전기자동차가 중국에 거대 공장을 갖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울프는 상호관세가 트럼프가 바라는 만큼 실질적인 효과도 없다고 본다. 높은 관세로 수입이 줄면, 보호주의로 경쟁이 필요없어진 국내 산업들이 쇠퇴하고 수출도 줄어 수입과 수출 차액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고 본다. 그 실상은 대실패로 끝난 1920~30년대의 세계무역체제와 대공황,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달려간 역사가 증명한다. 그 실패로부터 얻어낸 교훈이 자유무역체제이고 그것을 선도하고 주도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미국이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올린 미국과 세계의 질서와 번영의 토대인 법의 지배, 입법부(의회)의 역할, 재판소(법원)의 역할, 과학 존중, 대학의 독립성, 자유로운(리버럴) 국제질서 모두를 파괴하고 있다. 울프는 트럼프가 결국 제국주의시대의 부활을 꿈꾸며 타국을 침략하게 될 것이라는 불길한 얘기까지 한다.

역설적이게도 울프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야말로 일종의 희망일 수 있다고 얘기한다. 트럼프의 주장대로 나라가 운영되면 대혼란을 피할 수 없고, 내년의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완패할 것이다.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파들이 미국 우파를 계속 이끌어가는 한 미국은 예측불능의 나라가 되고 심각한 폐해가 속출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중국에겐 바라마지 않던 선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불합리한 상태가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MAGA 지배는 단기간에 끝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위로임과 동시에 한 줄기 희망이기도 하다. 울프는 그렇게 생각한다.

참담하지만 역설적인 희망은 친위쿠데타 시도 끝에 임기 절반을 남기고 자멸한 내란 수괴와 그 동조자들이 처벌받고 있는 한국에서 현실이 돼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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