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아닌 특정 기업 이익만 염두에 둔 법안 추진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세계 에너지 시장은 지금 대전환의 길목에 서 있다.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주권 확보, 에너지 비용의 지속적 절감을 위해 전 세계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친환경 에너지 체제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세계에너지기구(IEA)에 의하면, 2023년 기준 전 세계 신규 발전설비 550GWe 중 약 86%(473GWe)가 재생에너지 설비였으며, 그 대부분은 태양광과 풍력이었다. 반면 IAEA에 의하면 2023년 말 기준 신규 원전설비 증가는 7GWe였다. 2023년 전체 550GWe의 약 1.3%에 그친 것이다.

세계 에너지 추세에 크게 미달한 한국 에너지 현황

이는 재생에너지가 단순한 선택 문제가 아니라 기술과 경제성에 근거한 시장이 추세라는 사실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되어 2050년 전체 발전량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75% 이상이고, 원자력은 10% 이내에 그칠 것으로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24년 세계 에너지 전망에서 예측했다. 이는 원자력의 높은 건설 비용, 긴 건설 기간, 사고 위험, 폐기물 처리의 어려움, 사회적 수용성 부족 등 근본적인 문제에 기인한 구조적인 제약 때문이다.

 

2024년 울산시 울주군청 로비에 전시된 새울원자력발전소 모형. 연합뉴스
2024년 울산시 울주군청 로비에 전시된 새울원자력발전소 모형. 연합뉴스

국내 재생에너지 기술은 2023년 기준, 국내 태양광 모듈의 국산화율은 약 80%, 풍력은 부품 기준 약 60%에 달한다. 에너지 안보와 산업 생태계 측면에서도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와 기술 자립이 현실적인 해법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많아서 세계 시장 추이에는 한참 못 미치고 있다. 2023년 세계 발전시장에서 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은 30%를 초과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10% 이하로 세계 평균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원전산업지원특별법’이라는 이름의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이 법은 원자력 산업을 특별히 지원하기 위한 재정적·제도적 기반을 만들려는 것으로, 사실상 특혜를 제공하는 법안이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정당성과 공공성이다. 왜 지금,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 시대에, 경쟁력이 약화된 원자력 산업만을 위해 특별한 법적 보호가 필요한가?

비용은 사회 전체에 떠넘기고 이익만 챙기는 원전 사업

한국 원자력 사업자는 이미 여러 형태의 간접 지원을 받고 있다. 2023년 기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발전 6사 중 유일하게 당기순이익 2조 4천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력 도매가격(SMP)의 고정성과 낮은 연료비, 사실상의 손실 보전 구조 덕분이다.(한국전력공사, 『2023 사업보고서』) 반면 만일에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비용과 사용후핵연료 처리비용은 사회 전체가 부담하고 있으며, 핵발전소 폐로에도 기당 7천억 원~1조 원 이상이 소요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전산업에 ‘특별법’까지 만들어 추가 지원을 하겠다는 것은, 공공의 재원을 민간 기업의 이익 보전에 사용하는 조치라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정책이 특정 산업계의 요구에 따라 설계된다면, 이는 ‘공공정책’이 아니라 ‘사적 이익 대변’에 가깝다.

게다가 고용과 지역경제 효과 측면에서도 원자력은 재생에너지보다 효율이 낮다. IEA, IRENA, WNA 등이 내놓은 자료를 분석해 보면 1백만 달러당 고용유발효과는 에너지 효율 투자(7~13명), 태양광(6~8명), 풍력발전(2.5~5명), 원자력발전(1.5~2.3명)의 순이었다. 즉, 동일한 재원을 투자하더라도 원자력에 비해 재생에너지나 에너지효율 분야는 최소 3배 이상의 고용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일자리 수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경제 활성화, 기술 다변화, 중소기업 참여 기회의 확장 등 다양한 긍정적 외부효과를 낳는다. 공공예산이 투입된다면, 국민 전체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최대한 돌아갈 수 있는 분야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또한 우리는 ‘에너지 자립’을 이루기 위해 핵발전을 선택한다고 했지만, 정작 우라늄은 전량 수입하고 있으며, 한미원자력협정의 틀에 의해 원전수출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나 고속로 개발도 미국의 통제 아래 있다. 국가에너지안보를 기치로 내걸며 원자력을 개발해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최근의 민감국가 지정 등, 기술적으로도 원자력은 ‘에너지 자립’보다는 ‘종속적’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위태로울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반면 태양광·풍력은 부품 국산화와 기술 축적 등 모든 면에서 제한이 없고 오로지 우리의 자율과 의지에 전적으로 달려 있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 아닌 특정 기업의 이익만 염두에 두는 것인가

정책입안자가 산업계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이고, 국민의 안전과 경제적 지속성, 환경적 정의를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이는 특정 산업만을 위한 특혜 정책이며,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할 수 없다. 특히 원전산업지원특별법은 재생에너지와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국가의 에너지 전환 전략마저 왜곡할 수 있다. 유럽위원회에서는 유럽의 발전시장에서 핵발전이 재생에너지 성장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사시 국가를 멸절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위험한 특정 산업을 억지로 키우는 ‘보호막’이 아니라, 전환기적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공정하고 투명한 에너지 정책을 설계하는 것이다. 에너지 정책은 눈앞의 산업 논리에 의해서 뿐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 미래 세대의 재정 건전성과 환경 복지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특별법은 특별한 명분이 있을 때만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원전산업의 현재 상황은 그에 부합하지 않으며, 그 법이 국민 다수에게 실질적 이익을 안겨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국민의 이름으로’ 입안되는 정책이 특정 기업과 산업의 이해를 위해 만들어지는 현실을 마주하며, 우리는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정부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을 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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