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 65%는 실험 개발에 쓴 사실상 용역비

용역비·연구비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평가해야

'세계 최상위 2% 연구자 명단' 우리 과학 성과

새 정부, 더 효과적인 과기 정책 수립 추진해야

대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시작 전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연구개발 예산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2023.10.24. 연합뉴스
대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시작 전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연구개발 예산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2023.10.24. 연합뉴스

최근 사회 일각에서 우리나라 주력 산업이 중국에 따라 잡히는 건 우리 연구비의 가성비가 낮아서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이 얼마나 신뢰성이 있는지는 보다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 이는 오는 6월 대통령 선거로 출범하게 되는 새 정부가 효과적인 과학 기술정책을 수립·추진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가성비가 낮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은 2024년 한국과학기술 기획평가원(KISTEP)에서 발간한 보고서를 그 근거로 들고 있다. 이 보고서는 2023년 구매력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연구비 규모가 세계 5위이며,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연구비의 비율은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라고 한다. 경제 규모 대비 많은 연구비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연구비의 65%는 실험개발비다. 즉 최종 제품이나 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일에 사용되는 비용이다. 연구비라기보다 용역비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비용의 가성비는 해당 기업의 매출 및 이익의 증가에 견줘 평가해야 타당하다.

우리나라 총 연구비 중 대학과 연구소의 박사급 고급 연구 인력이 주관하는 순수 연구비와 응용 연구비의 비중은 각각 15%와 20%에 불과하다. 이들 연구비의 가성비는 연구논문이나 특허 등, 다시 말해 용역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평가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KISTEP의 보고서에는 연구비 유형별로 이런 특성을 반영한 평가가 이루어졌다는 어떠한 증거도 발견할 수 없다. 단지 정의가 매우 모호한 연구자의 수가 인구 1000명 당 9.5명으로, 2위인 독일(5.8명)에 비해 훨씬 많아 단연 세계 최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총 연구자의 82%는 기업 소속이며, 그중 박사급 연구원은 21%에 불과하다. 이로부터 단순히 추론해 보면, 기업에 속하는 석사급 이하의 연구 인력이 전체 연구자의 65%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주로 기업의 용역 과제에 종사하며, 이들의 연구 가성비는 대학 및 공공연구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평가해야 한다.

따라서 단순히 연구자의 수만 많다고 해서 우리 나라, 특히 우리 대학과 공공연구소의 연구 가성비가 낮다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판단이다. 고급 인력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국가 연구비의 경우, 과거와는 달리 연구 실적과 연구계획서 모두에 대해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선정된다. 따라서 가성비가 낮으면 선정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면 연구비의 가성비가 높고 낮고는 대체 무엇으로 평가하는가? 공학 분야의 연구나 자연과학 분야의 특수한 응용 연구는 국제 특허의 갯수 같은 지표로 측정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이론가로서 순수연구와 응용연구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는 자세를 취해 왔기 때문에 그런 지표와 직접 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 굳이 가성비를 측정하자면, 발표 논문의 피인용 지수가 기본 지표가 될지 모르겠다.

나는 국가적으로 우선 순위가 큰 연구비를 받을 기회가 없었지만, 국가의 연구정책에 불만을 표시해 본 일이 없다. 혹자는 굳이 국민의 세금으로 국가가 원하지 않은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하고 묻지만, 역사상 위대한 과학적 성취의 상당수는 순전히 과학자의 학문적 호기심의 결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더욱이 우리 연구계는 순수 연구라 할지라도 그 결과가 국가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수 있는지를 연구계획서에 기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과학에 대한 투자의 일정 부분은 미래에 대한 투자이기도 하다.

 

25일 전남 나주시 전남농업기술원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경선 후보의 농업과학기술진흥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2025.4.25. 연합뉴스
25일 전남 나주시 전남농업기술원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경선 후보의 농업과학기술진흥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2025.4.25. 연합뉴스

한 후배 학자가 국가 차원의 응용 과제를 매우 열심히 수행하여, 최근에 국가가 요구한 3국 특허에 관한 목표를 달성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의 연구 결과에 대해 직접 설명을 들은 터라, 국가적 중요성에 충분히 걸맞게 연구 내용도 매우 독창적인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연구 성과를 창출하기까지 연구비가 없었던 상당한 기간 동안에도, 연구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은 오랜 학문적 열정의 결과라고 본다. 과학자에게 연구비 유무는 자신의 학문적 능력에 대한 일반적 평가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를 인내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열정뿐 아니라 실력도 갖춘 학자의 수와 비율이 최근 급격히 늘어나는, 이른바 '양자도약(量子跳躍, quantum leap)'을 했다. 그 결과 지금 우리 젊은 과학자들의 학문적 수준은 서구와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이에 대한 한 가지 증거로,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의 교수가 매년 엘세비어(Elsevier) 출판사의 데이타 베이스를 이용하여 발표하는 '세계 최상위 2% 연구자 리스트'를 들 수 있다. 이 명단에 포함된 우리 과학자의 수가 최근 2년간 연속 두 자리수 성장을 했으며, 이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에 해당한다. 박정희 정권이래 산업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서구 선진국의 과학 기술을 배우는데 집중하여 왔다. 그 결과 우리는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으니, 이를 위해 투자한 연구비의 가성비를 의심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제 비로소 배우는 데서 탈피하여 선도적 연구에도 투자하고 있고, 그 결과가 앞서 언급한 '세계 최상위 2% 연구자'의 두 자리수 성장으로 나타났으니 연구비의 가성비가 결코 낮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분야에 따라서는 얼마간 편차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젊은 과학자들이 10년 후에 달성할 과학적 성과는 분명 현재보다는 비교할 수 없이 클 것으로 기대한다.

수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가성비를 성급하게 논하는 대신, 그들의 학문적 열정이 뛰어난 성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연구 정책을 더욱 다듬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실시하기 시작한 지역혁신(RIS) 사업은 중앙 정부 차원이 아닌 광역 지방자치 단체가 주관하는 대규모 연구 개발 사업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지방자치단체는 이런 대규모 연구비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관리하는 노하우가 없어 매우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연구 과제의 선정과 종료후 평가 절차에 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지방 공무원의 선발과 훈련뿐 아니라, 과제 심사에 직접 투여할 박사급 전문가들의 수준에 특별히 유의해야 한다. 또한 이공계 대학원 교육에 대해서는 열린 경쟁이 필요하다.

일각에서 굳이 과학 연구비의 가성비를 거론하는 이유는 중국의 급격한 과학 기술 굴기와 관련되어 있지 않나 추측한다. 이차전지, 양자 기술, AI, 반도체 등 응용과학 및 공학의 많은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기초과학에 이르기까지 중국이 놀라운 속도로 성장을 한 것은 사실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와 같이, 그런 성취는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다. 중국의 과학도 우리의 발전과 매우 비슷한 길을 거쳐 왔다. 덩샤오핑에 의한 중국의 개혁 개방이후, 45년에 걸쳐 수많은 중국 과학자들이 서구에 유학하였을 뿐아니라, 중국 내에서도 과학자 양성에 부단히 힘쓴 결과다.

그 성과는 한 국가가 어느 정도의 부를 축척하였을 때 양자도약의 형태로 급격하게 나타난다. 중국은 인구가 우리의 26배나 많아, 자체 경쟁이 우리보다 훨씬 더 치열하다. 따라서 도약에 필요한 연구자의 양과 질에 대한 임계점 도달이 우리보다 빠른 시일 내에 이뤄졌다. 현재 우리와 거의 동시에 그러나 더욱 강하게 이를 경험하는 중이다. 중국과의 경쟁을 위해서 우리 과학자 모두가 단기간에 26배의 성과를 산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 이 거대한 상대와 힘든 경쟁해야 하는 만큼, 곧 들어설 새 정부는 우리 연구정책 가운데 개선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를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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