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g 쓰고 100g이라는 인플레 세상
부자에겐 기회, 서민에겐 생존 위협
대형 산불, 자연재해만 아닌 돈 욕심도 원인
공정한 돈 만들면 새로운 사회로 갈 수 있다
언젠가부터 나는 '빵을 굽는 일'이 단지 밀가루를 반죽하고 오븐을 돌리는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이웃의 삶을 듣고, 아이의 손에 따뜻한 빵을 쥐여주고, 말없이 기운 빠진 어르신의 손을 잡아드리는 그 순간까지… 빵집아줌마로 살아온 내 인생은 '작은 온기'의 기록이자,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었다.
요즘 나는 자주 물러서는 자신을 발견한다. 정직한 재료를 쓰면 가격 경쟁에서 밀리고, 상생하려는 마음은 거래처의 기회주의 앞에서 무기력해진다. 도대체 왜, 착하게 살수록 더 힘든 세상이 되었을까?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결국 '돈'이라는 단어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 돈이 우리가 매일 쓰는 피앗머니(fiat money, 법정 통화)일 때, 이 모든 구조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됐다.
2020년 이후, 미국은 달러 공급량(M2 기준)을 40% 넘게 늘렸고, 한국 역시 팬데믹 시기 대규모 재난지원금과 정책자금으로 전례 없는 수준의 유동성을 풀었다. 문제는 이 돈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흘러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득은 그대로인데 물가만 오르자, 서민들은 저축 대신 생존을 위해 돈을 써야 했고, 부자들은 그 돈을 부동산과 주식으로 옮겼다. 돈이 많을수록 인플레이션은 기회가 되고, 돈이 없을수록 인플레이션은 생존의 위협이 된다.
이 불공정은 데이터로도 확인된다. 2024년 전 세계에서 부자들이 가장 많이 탈출한 나라는 중국(-15,200명), 그 다음이 영국(-9,500명), 그리고 한국(-1,200명)이다.(Henley & Partners, Wealth Migration Report 2024)
정책이 잘못된 걸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흐르는가'라는 문제에 닿아 있다.
경북 지역을 덮친 대형 산불은 단지 자연재해만은 아니었다. 산림청은 '숲가꾸기'라는 이름 아래 소나무만 집중적으로 심는 단일 수종 중심의 조림 정책을 수십 년간 지속해왔다. 문제는 소나무가 송진 등 인화성 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불에 가장 취약한 나무라는 점이다.
실제로 불이 지나간 자리에 사람 키보다 큰 참나무들이 저절로 자라고 있다는 현장 보고도 있다. 그러나 산림청은 그 숲을 다시 밀어버리고 또다시 소나무를 심었다. 자연은 스스로 복원하고 있었는데, 돈은 그것을 다시 망가뜨리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숲이 회복되면, 실적이 없다. 숲을 그냥 두면, 예산이 안 풀린다. 숲이 다시 불에 타야, 다시 조림 사업이 돌아간다. 숲도 보고서의 대상이 되었고, 자연도 성과 평가의 부속품이 되었다. 이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이게 돈이 만든 현실이다.
나는 빵을 굽는다. 매일같이 무게를 잰다. 100g을 105g으로 주는 건 손해지만, 98g을 100g이라 속이는 건 양심의 파산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98g을 100g이라 우기도록 설계된 돈을 쓰고 있다. 중앙은행이 찍고, 정부가 쓰고, 시장이 따라가는 이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정직한 선택을 할수록 더 가난해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제 나는 묻고 싶다.
"우리가 쓰고 있는 돈은 정직한가?"
"정직한 사람이 손해 보지 않는 돈이란 어떤 모습일까?"
"돈이 사회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방식은 없을까?"
돈은 가치의 언어다. 그 언어가 신뢰를 잃으면, 사회는 결국 거짓말 위에 지어진 탑이 된다. 좋은 사회는 복지정책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좋은 돈, 즉 정직하고, 조작할 수 없으며, 누구에게나 공정한 돈이 우리의 행동을 바꾸고, 그 행동들이 새로운 사회를 만든다.
정직하게 구운 빵이 손해보지 않는 세상. 그게 내가 살고 싶은 나라이고, 우리 아이들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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