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면허 준 은행이 가진 화폐 권력

수요자에 대출하면서 '새로운 돈' 창출

부동산 돈 몰리면 경기부양 효과 없어

은행, 성장 위한 자금공급 역할 회복해야

우리는 흔히 돈이란 중앙은행, 그러니까 한국은행 같은 곳에서 찍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쓰는 돈의 대부분은 그런 '인쇄된 현금'이 아니라 은행 계좌 속의 숫자로 존재하는 돈이다. 이 숫자들은 대부분 시중은행이 만들어낸, 정확히 말하면 은행이 대출을 해줄 때 새롭게 창조되는 돈이다.

예를 들어 보자. 누군가 은행에서 3억 원짜리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 은행은 그 사람의 통장에 3억 원을 입금한다. 이때 그 돈은 어디서 온 걸까? 다른 사람이 맡긴 예금을 빌려주는 걸까? 아니다. 은행은 그 사람의 통장 계좌에 숫자를 새로 입력하는 순간 그 돈을 '창조'한다. 마치 펜으로 종이에 숫자를 쓰듯, 숫자만 적으면 새로운 돈이 생겨난다. 그래서 어떤 경제학자는 이 돈을 '만년필 한 번으로 만들어낸 돈(fountain pen money)'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종이돈. 연합뉴스 자료사진
현재 사용되고 있는 종이돈.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경제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다. 흔히 교과서에서는 "중앙은행이 돈을 풀거나 누군가 예금을 하고 → 은행이 그 돈을 빌려줘서 → 돈이 늘어난다"고 가르친다.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현실을 정확히 담고 있진 않다. 실제로는 은행이 먼저 대출을 해줘서 돈을 창조하고 → 그 결과 예금이 생기고 → 나중에 필요한 준비금을 중앙은행에서 조달하는 방식이다.

은행법 제2조 1항에서는 '은행업이란 예금을 받거나 유가증권 등을 발행해 조달한 자금을 대출하는 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정의는 현재의 '대출이 돈을 창출한다'는 실제 은행의 시스템을 정확히 표현한다고 보기 어렵다. 정부에서 부여한 '은행 면허'를 통해, 은행들이 화폐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은행이 마음만 먹으면 무한대로 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은행도 아무에게나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대출은 반드시 손실이 나지 않아야 하고, 갑자기 사람들이 예금을 찾아가더라도 지급할 수 있는 여유 자산을 갖추어야 한다. 또 정부가 정한 규제를 지켜야 하며, 무엇보다 실제로 돈을 빌리려는 수요가 있어야만 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조절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금리가 낮으면 돈을 빌리는 비용이 싸지기 때문에 대출이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시중의 돈이 많아진다. 반대로 금리를 올리면 대출이 줄고 돈의 흐름도 위축된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돈의 양' 자체를 직접 조절하기보다는, '돈의 가격(금리)'을 통해 경제를 조정한다.

 

양적 완화QE) 효과의 구조
양적 완화QE) 효과의 구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주요국들은 기준금리를 거의 0까지 내렸지만 경기가 쉽게 살아나지 않았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양적완화(QE)'라는 새로운 정책을 도입했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국채나 회사채 같은 자산을 대량으로 사들이면서 새로운 돈을 만들어, 금융회사들이 거래하는 은행의 계좌에 넣어주는 방식이다. 은행은 다시 금융회사의 계좌에 그 돈을 예금으로 넣어준다. 이렇게 새로운 돈이 만들어진다.

이 돈은 일반 사람들이 대출받아 쓰는 돈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 돈은 소비자나 중소기업이 아닌, 보험사나 연기금 같은 큰 기관들의 자산운용 내부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국채를 팔고 새로 생긴 돈으로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다른 자산을 사들인다. 이렇게 자산 가격이 오르면 기업들이 더 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간접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이런 식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구조다.

중앙은행이 돈을 많이 만들어도, 그 돈이 사람들의 소비나 기업의 실제 투자를 늘리지 못하면 경기는 살아나지 않는다. 실제로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수 조 원 규모의 양적완화가 시행됐지만 물가는 별로 오르지 않았다. 그만큼 사람들이 실제로 돈을 더 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돈은 얼마나 많이 만드느냐보다 사람들이 그 돈을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쯤 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돈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가 쓰는 돈은 종이로 된 현금보다 은행 대출 과정에서 생겨난 숫자에 더 가깝다. 이 시스템은 시장의 수요에 따라 유연하게 돈을 공급하는 장점도 있지만, 동시에 불안정성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은행에 맡긴 예금은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단기 자산인데, 은행이 그 돈을 빌려주는 대출은 대부분 장기 자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택담보대출은 보통 수십 년에 걸쳐 갚아야 한다. 이렇게 단기와 장기 자산이 서로 맞지 않는 구조를 '만기 불일치'라고 부른다. 이 구조 덕분에 은행은 돈을 창조할 수 있지만, 반대로 갑자기 예금자들이 몰려와 돈을 찾으면 은행이 지급하지 못하고 파산할 수도 있다. 그래서 대부분 나라에는 예금보험제도가 있고, 중앙은행이 '최후의 대부자'로서 은행에 긴급 자금을 지원하기도 한다.

은행은 생존을 위해 자산(외형)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금을 받아 부채를 키우고, 대출로 자산을 늘린다. 외형이 커지면 리스크가 줄어든다. 예를 들어 고객 1명에게 100억 원을 받는 것보다 100명에게 1억 원씩 받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1명이 예금 전액을 찾아가는 것보다 100명이 동시에 예금을 찾아갈 확률(리스크)이 훨씬 낮기 때문이다. 대출에서도 200억 원의 기업대출 한 곳 하기보다, 2억 원씩 100명에게 아파트 입주 잔금대출을 하는 것이 관리상 이득이 크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되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합리적이다.

문제는 부동산이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사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린다. 은행은 담보가 확실한 부동산 대출에 적극적이고, 이 과정에서 계속 새로운 돈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면서 주택 가격이 오르고, 부채를 자산화하는 여력에 따라 자산 격차가 생긴다.

이 순환을 끊으려면 상상 속 시나리오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국민 모두가 일제히 대출을 갚아 버리면 집값은 내리고 부동산 시장은 과열되지 않는다. 물론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상상은 우리가 어떤 구조에 살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결국 부동산 가격의 급등은 정책 당국의 실정과 은행의 규모 확대뿐 아니라, 국민들의 대출 욕구가 만들어낸 현상이기도 하다.

 

정부의 대출규제 영향으로 서울 부동산 시장에서 거래 및 집값 상승폭이 일부 둔화한 것으로 나타난 6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및 빌라단지의 모습. 2025.7.6 연합뉴스
정부의 대출규제 영향으로 서울 부동산 시장에서 거래 및 집값 상승폭이 일부 둔화한 것으로 나타난 6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및 빌라단지의 모습. 2025.7.6 연합뉴스

이제 돈의 흐름을 바꿔야 한다.

부동산이 아니라 생산과 산업 투자를 통해 실제 경제 성장을 이루는 방향으로 돈이 흘러가야 한다. 은행도 혁신 기업, 중소 제조업, 신기술 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본래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 성숙한 시민들은 무리한 대출로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정부는 돈이 부동산이 아닌 산업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 부문의 성장(financial development)이 오히려 경제 성장을 저해하고 불평등과 금융 불안정을 초래한다는 연구들이 쏟아졌다. 전통적으로는 금융이 발전할수록 자본이 효율적으로 분배되고 생산성이 향상되어 경제성장을 유도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최근에는 금융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오히려 성장률을 낮추고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증거가 증가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생산적인 신용'과 '비생산적인 신용'의 구분이 있다. '혁신을 위한 신용(예: 기업 대출)'과 '자산 투기를 위한 신용(예: 주택담보대출)'을 구분할 때, 후자가 과도하게 팽창할 경우 경제 구조에 왜곡을 초래한다.

결국 돈이란 단지 종이 뭉치나 숫자가 아니다. 사회 전체가 신뢰로 맺은 약속이며, 그 흐름이 실질적인 경제 활동과 연결되어야만 진짜 '살아있는 돈'이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돈'이 아니라 돈의 방향을 바꾸는 실천이다. 

※ 참고로,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코스피 5000”은 경제 “거품(bubble)” 때문에 가능하지 않다. 기만이다. 그 5000이라는 숫자를 인플레이션으로 채우면 모를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