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노동은 과세, 불로소득은 비과세

월급으로 집 사려면 38년 안쓰고 모아야

인플레이션 부자에겐 기회, 서민은 위기

비정직하게 설계된 돈의 구조를 바꿔야

25일 서울 동숭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강당에서 5대 재벌 서울 시내 주요 빌딩 공시가격 관련 세금 특혜 문제를 제기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18.4.25. 연합뉴스
25일 서울 동숭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강당에서 5대 재벌 서울 시내 주요 빌딩 공시가격 관련 세금 특혜 문제를 제기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18.4.25. 연합뉴스

어릴 적부터 우리는 '정직하게 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랐다. 속이지 말고, 남의 것을 탐내지 말고, 땀 흘려 일한 만큼 받아야 옳다고 배웠다. 그런데 지금 이 사회는 이상하다. 정직하게 일하면 가난하고, 법을 잘 지키면 손해를 본다. 누구보다 성실한 사람이 벼랑 끝으로 밀려난다. 정직이 미덕이라면, 왜 그 미덕은 고통이 함께 따라오는가?

노동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는 시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기업에 취업하면 내 집 마련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 아파트 한 채 값이 평균 12억 원을 넘는다. 2030 청년의 월평균 임금 약 260만 원(2023년 기준)으로 계산하면, 월급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도 38년이 걸린다. 이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쓰는 '돈' 자체가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직한 노동은 과세 대상이 되고, 불로소득은 과세가 엉성하다. 오늘날 자산 불평등은 단순한 노력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소득은 세금으로 철저히 관리되고, 자산소득은 절세·회피가 가능하다.

월급으로 받은 300만 원에서는 소득세, 건강보험료, 국민연금, 고용보험이 빠져나간다. 반면 부동산을 갖고 있다면, 몇 년 지나 가격이 오르고 세입자가 내는 전월세로 돈을 벌 수 있다. 심지어 주식·가상자산은 일정 기준 이하의 거래는 세금 자체가 없다. 

정직하게 일할수록 세금을 더 많이 내고, 자산을 가진 사람은 세금을 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결국, 시스템은 정직한 자를 벌하고, 가진 자를 보상한다.

인플레이션은 부자에게 기회, 서민에게 위기

코로나 이후 전 세계는 유례없는 유동성 공급을 감행했다. 미국은 단 2년 만에 통화량(M₂)을 40% 이상 늘렸고, 한국도 재난지원금과 금리 인하로 시중 자금이 넘쳤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돈을 가진 사람들은 이 돈을 자산에 투자해 부를 키웠다. 반면 돈이 없는 사람은 물가가 올라 생활비에 허덕였다. 이 불평등은 수치로 드러났다. 2024년 기준, 한국은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66%를 보유했다(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부자들은 인플레이션이 기회가 되지만, 서민은 그 속에서 매일 가치를 도둑맞고 있는 셈이다.

법과 제도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는 종종 정부가 '정책을 잘못해서' 서민이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더 깊은 데 있다.

현대의 법정화폐 시스템(fiat system)은 ‘빚을 찍어내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정부는 돈이 필요할 때 국채를 발행한다. 중앙은행은 그 국채를 사들이며 시장에 돈을 푼다. 풀린 돈은 늘 자산시장으로 먼저 흘러간다.

돈이 만들어지는 구조 자체가, 가진 자에게 먼저 이익을 안기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런 구조 안에서는 정직한 노동, 성실한 절약, 착한 마음이 모두 무력해질 수 밖에 없다.

착한 사람이 망하는 구조를 바꿀 수는 없을까? 

빵집을 운영하며 매일같이 이런 질문과 마주한다. 빵집 안에서는 유통기한을 속이지 않고, 정직한 재료를 쓰고, 100g을 100g답게 담지만, 문 밖을 나서면 현실은 '원가절감'과 '비용 타협'을 유혹한다. 

그러나 나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기에 나는 빵을 굽는다. 그리고 이제는 깨달았다. 정직한 사람이 살아남으려면, 정직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정직한 돈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첫째, 누구도 멋대로 찍어낼 수 없어야 한다. 둘째, 시간이 지나도 가치를 잃지 않아야 한다. 셋째, 정직한 노동의 결과를 저장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왜 정직하게 살수록 가난해지는가? 

그 질문의 답은 결코 ‘네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 누구도 게을러서, 멍청해서, 재수가 없어서 망한 게 아니다. 우리가 쓰는 돈 자체가 비정직하게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자산 가격, 더 낼수록 손해 보는 세금 구조, 매년 통화량을 늘리면서도 "정상"이라 말하는 언론과 정부, 이 모든 것들이 정직한 사람의 삶을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갉아먹는다.

더 끔찍한 것은, 이 불공정이 너무 오래, 너무 은밀하게,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속고 있고, 또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제는 물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돈을 쓰고 있으며, 그 돈은 누구를 위해 설계되었는가?"
"정직한 삶이 보상받으려면, 어떤 시스템이 필요한가?"

이 질문은 경제학자의 연구 주제가 아니다. 매일 내가 굽는 빵 한 조각, 아이의 아침밥, 내 노후와 아이의 미래에 직결된 문제다. 그래서 이 질문을, 빵을 굽듯 기록한다. 정직한 마음으로 만든 빵처럼, 정직한 사람들이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를 위한 길을, 정직한 돈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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