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은 '되는 게' 아니라 '하는 것'…다큐가 된 개그

출발은 앙시앙 레짐 무너뜨린 사회 변혁의 원동력

산업혁명-제국주의 거치며 시효 끝난 지배층 관점

민주 공화정에선 되레 독재나 파시즘으로 구현돼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12.3 계엄령에) 계몽되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변호인의 말이 많은 이들에게 경악과 실소를 자아냈다. <대한민국 보수는 왜 매국 우파가 되었나?>의 작가 이병권은 그러나 이 한마디를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계몽주의의 성과와 한계를 짚고 그 뒤에 어린 파시스트의 관점을 포착해 냈다. 대한민국의 흑역사도 담았다. 세 차례로 나눠 소개한다. 일독을 권한다. 편집자주

이병권 인문연구가
이병권 인문연구가

지난 2월 25일 헌법재판소에서 벌어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최종변론을 잠시 뒤돌아보겠습니다. 윤석열을 대리한 김계리 변호사의 마지막 변론의 압권은 단연 “저는 계몽되었습니다”라는 고백이었습니다. 해당 변론의 마지막 진술 내용은 이렇습니다. “제가 임신, 출산, 육아를 하느라 몰랐던 더불어민주당이 저지른 패악을 확인하고 아이와 함께할 시간을 나눠 이 사건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계몽되었습니다.”

김 변호사는 탄핵 심판 과정 내내 극우 집회에서나 나올법한 저급한 언동과 부적절한 인용으로 입방아에 오른 인물이죠. 심지어 엑스맨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최종변론에서도 단 하나의 영양가 있는 반박 논리나 물증도 제시하지 못한 채 오로지 북한과 중국 간첩에 의한 책동을 주장하는 기괴한 변론으로 일관했습니다. 이날 재판에 참석한 김기표 국회 탄핵소추위원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그의 황당한 주장에 대해 “공무상 재해” 수준이었다고 촌평했습니다. 음모론과 일방적 주장으로 일관한 윤석열 측 대리인단의 변론이 결국 ‘믿음’에 이르는 장면을 보여주자, 헌법재판소 브리핑룸에서 영상으로 재판을 지켜보던 기자들까지 일제히 실소를 터뜨렸다고 합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변호사냐 전도사냐”“간증하러 나왔느냐”는 비아냥이 쏟아졌고, 한 누리꾼은“국민의힘과 그쪽은 절대 정권을 잡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계몽되었다”고 적었습니다. 김종대 전 의원도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극우 세력의 분노를 자극하고 적대 감정을 끌어올렸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김계리 변호사의 ‘간증’은 한마디로 자신의 지적 수준과 몰염치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흔히 개그를 다큐로 받는다는 핀잔도 있습니다만, 섣부른 광대 짓거리 정도로 치부할 문제가 아닙니다.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은 물론 광장의 극우 태극기 부대의 구호처럼 번지면서 ‘계몽되었다’라는 발언은 전적으로 다큐의 무게를 갖게 되었습니다. 다큐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하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측 대리인단 김계리 변호사가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11차 변론에서 피청구인 변론을 하고 있다. 2025.2.25 [헌법재판소 제공]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측 대리인단 김계리 변호사가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11차 변론에서 피청구인 변론을 하고 있다. 2025.2.25 [헌법재판소 제공] 연합뉴스

태생은 매우 능동적인 사회운동

우리가 계몽(啓蒙)이라고 쓰는 단어는 영어로는 Enlightenment, 프랑스어로는 Lumières라고 쓰이는 데 모두 빛을 의미합니다. 영국의 아이작 뉴턴은 계몽을 ‘감추어진 지식에 빛을 밝히는 행위’로 정의한 바 있습니다. 모든 사상과 사회운동은 반드시 그 사상이 대항하는 대상과 추구하는 목적에 따라 성격을 달리합니다. 계몽주의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열어가던 17~18세기유럽에서 벌어진 사상운동이자 사회운동입니다. 이 사상을 이끈 주체들은 봉건 체제의 몰락과 자본주의의 발전, 근대과학의 발전이 태동시킨 새로운 경험과 이성에 입각한 사상을 추구했습니다. 신이나 왕의 일방적인 명령보다 합리적이고, 입증 가능한 경험과 이성으로 사회와 국가의 질서를 만드는 것이 옳고, 그래야 더 나은 사회로 진보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당연히 그 주체는 새로운 인식을 깨우친 지식인과 중산층, 자본가 계급이었습니다. 이들이 발견한 새로운 사상적 무기는 교회나 왕이 주도하는 법이 아닌, 만인이 협의하여 새롭게 만드는 사회계약론, 자연법, 구체제에서 벗어나는 자유주의, 군주의 독단이 아닌 헌법에 입각한 법치주의, 교회의 간섭을 걷어낸 정교분리 등이 그 내용입니다. 주어진 믿음과 진리를 의심하고, 확인하며, 사유하여 깨우친 결과를 토대로 새로운 사회의 질서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당연히 매우 주체적이고 능동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나라에 따라 다르게 전개된 '계몽의 길'

계몽주의의 성장과 확산은 자본주의와 자연과학의 발전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나라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지만, 그 전제는 인간의 주체적 이성에 대한 확신과 함께 만들 미래 역사에 대한 낙관이었습니다. 출발 지점은 자본주의가 가장 먼저 시작된 17세기 영국입니다. 뉴턴과 존 로크, 데이비드 흄, 에드워드 기번, 애덤 스미스 등이 이 계보에 속합니다. 영국의 계몽주의는 자본주의의 성장, 과학기술의 꾸준한 발전에 힘입어 비교적 안정적으로 전개됩니다. 왕과 귀족, 교회라는 앙시앙 레짐(구체제)의 지배력이 강했던 프랑스에서는 계몽사상이 강력한 사회, 정치적 변화의 논리가 됐습니다. 볼테르, 몽테스키외, 장 자크 루소, 드니 디드로 등의 사상가들은 프랑스 혁명의 동력으로 활용하였죠. 독일의 계몽주의는 영국의 자본주의 발전, 프랑스의 체제 변혁과 달리, 철학적 측면에서 전개됐습니다. 임마누엘 칸트가 그 대표적인 인물로 꼽힙니다.

18세기 독일의 계몽주의는 '보편적 인간 이성의 이념'을 추구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계몽이 사회, 정치적 계몽인 것에 반하여 독일의 계몽은 이론적, 철학적 계몽이었습니다. 독일의 시민계급이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늦게 형성된 탓에 현실 사회의 동력이 되지 못하고, 학문의 영역으로 국한된 탓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철학적으로는 크게 발전하여 임마누엘 칸트는 영국의 경험주의와 프랑스의 합리주의를 이성 철학으로 집대성해 독일뿐 아니라 프랑스를 비롯한 주변 국가에서도 철학의 신으로 추앙받았습니다. 칸트는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을 통해 고전적인 정의를 내놓았습니다. 계몽은 '인간이 자신의 잘못으로 초래한 미성년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정의하면서 인간 이성의 힘과 능력을 중심으로 자신의 철학을 정립합니다.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8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며 차에서 내려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5.3.8. 연합뉴스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8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며 차에서 내려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5.3.8. 연합뉴스

낙관적 세상을 지향했던 사회과학의 기반

계몽주의자들을 이전 시대의 철학자들과 구분시킨 핵심은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의 발전에 크게 자극받았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자연의 법칙을 인간 세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에서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했습니다. 갈릴레오와 데카르트에서 출발해 뉴턴에 이르렀고 이들이 발견한 자연법칙은 자연과학과 산업에 적용되며 자본주의 발전을 자극하게 됩니다. 이들은 과학적 지식의 진보라는 관념에 매료됐고, 이러한 생각을 인류사 전체의 연속적 진보로 확장했습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진보를 확신하는 세계관과 역사관을 탄생시킨 것이죠. 이론적으로 정립한 대표적 인물이 애덤 스미스입니다.

초기 시장경제를 주창한 스미스는 모든 자연계의 사물이 자연 법칙에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장 역시 방해가 없다는 전제로 자기 조절 체계로 작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왕이나 지주, 교회 등 막강한 권력을 지닌 이들의 인위적 시장개입을 막고 자유로운 시장 거래가 이루어진다면 인간의 이성에 기초한 수요-공급의 자기 조절 체계로 시장이 성장하고, 시장 참가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갈 거라고 낙관했습니다.

한계1, 사회 모순에 둔감 

계몽주의의 한계를 지적한 대표적 인물은 카를 마르크스였습니다. 그는 인류 역사가 일정한 방향으로 진화해 간다는 점은 동의했지만 계몽주의의 낙관주의적 역사관에는 비판을 가했습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모든 인류 사회에서는 소수의 지배계급이 경제적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그렇지 못한 다수의 피지배계급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 늘 지속돼 왔습니다. 단지 시대에 따라 지배-피지배 관계의 형태가 귀족-노예, 영주-농노, 자본가-노동자 식으로 변해왔을 뿐이라는 겁니다. 마르크스는 역사적으로 일관되게 발전해 온 것은 인간 사회가 자연 세계를 대상으로 자원을 획득하고 그걸 가공하는 생산력, 즉 산업기술과 분업방식, 기업 제도 등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19세기 들어 각 국가 간에 불 붙기 시작한 식민지 쟁탈전과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사회적 모순의 격화는 이성에 기초해 낙관적 발전론을 주장한 계몽주의의 몰락을 가져오게 됩니다.

 

촛불집회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김지선씨.
촛불집회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김지선씨.

한계 2, 엘리트주의

계몽주의는 ‘무지한 민중을 지식인이 일깨운다’라는 일종의 엘리트주의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이성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나섰던 지식인들은 사회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며 긍정적인 구실을 하였으나 다른 한편 일방적, ‘교화’적 접근 방식이 자신과 다른 생각이나 사상을 억누르고 억압하는 독재의 형태로 변모하기도 했습니다. 역설적으로 개인의 자유는커녕 전체주의로 비화할 위험을 안고 있었던 겁니다. 마르크스는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고 외치며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주창하였고, 1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나 독일의 히틀러 역시 강력한 영도력을 가진 총통이 국민을 계도하고 계몽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의 지도자들도 강력한 국가 건설과 함께 국민 계몽을 강조했습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운동 역시 농촌 계몽 운동의 일환이었습니다. 윤석열이“계엄령이 계몽령”이었다는 궤변을 통해 국민들에게 무엇을 주입하려는 것인지 모르지만 위험천만한 생각임은 분명합니다. 윤석열과 그 세력이 계몽주의를 이끌었던 지식인들만큼 시대를 발전시킬 지적 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민주 공화주의 체제에서 계몽주의는 독재나 파시즘의 또 다른 주장과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한계 3, 자신 이외의 역사 폄하

18~19세기의 계몽주의자들은 계몽주의 이전과 이후가 현격히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로마제국 흥망사>를 쓴 영국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1737-1794) 등은 계몽주의 이전 시대의 종교와 무지에서 빚어진 미개함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유럽사에서 중세 및 기독교가 중심이었던 시대를 헐뜯습니다. 중세는 ‘암흑시기’였다고 규정했죠. 대신, 기독교가 도래하기 전인 고대 그리스 및 고대 로마는 그 역사적 실체를 떠나 상대적으로 이성과 감성이 빛났던 시대로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현대 역사학은 이들의 중세 비판이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작위적인 시대구분이었다는 것이죠. 그러나 꽤 오랜 시간 정설로 강조되다 보니 지금도 많은 사람의 인식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계몽주의적 역사관'을 생각 없이 받아들이곤 합니다.

 

1일 오후 2시 129차 전국집중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2025.03.01. 이호작가
1일 오후 2시 129차 전국집중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2025.03.01. 이호작가

계몽주의 역사관은 인류 역사의 기준을 서구 계몽주의 역사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보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대주의적 역사관을 조장하기도 합니다. 강대국 흠모론이라고 할까요? 비유럽 국가들에 서구적 가치와 기준을 강요하는 잣대로 활용되거나, 자국 역사를 폄훼하는 악당이 됩니다. 제국주의 일본에 상륙하여 정착한 독일의 실증주의 역사학도 그 본보기입니다. 루드비히 리스(Ludwig Riess, 1861~1928)가 일본 역사학계에 전파한 실증주의 역사학은 제국주의 식민사학의 기초가 되는 한편, 서구 중심적 역사관을 한국에 전파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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