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문화, 역사, 공론장에 똬리 튼 파시즘의 '진지전'

이념 공세-역사전쟁-공조직 통제-정책가 양성 거쳐

교육현장 침투, 기반 확장…리박스쿨은 그 실행 수단

"대중의 '자발적 동의' 끌어내며 슬쩍 헤게모니 장악"

그람시·아렌트·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사유 숙고를

규탄에 그치지 말고 강력한 '대항 진지' 구축할 시간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정말 파시즘으로부터 안전한 나라일까요?

2024년 12월 3일 발생한 ‘윤석열 내란 사건’을 겪으며, 우리는 더 이상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파시즘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해방 이후 80년이 지났지만, 파시즘의 어두운 그림자는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짙게 드리워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리박스쿨 어린이 합창단, 윤석열 옹호 노래 '충격'…역사왜곡에 세뇌교육까지. 2025.6.1. 더불어민주당 신속대응단 제공 영상[민들레TV]
리박스쿨 어린이 합창단, 윤석열 옹호 노래 '충격'…역사왜곡에 세뇌교육까지. 2025.6.1. 더불어민주당 신속대응단 제공 영상[민들레TV]

199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뉴라이트 세력은 한국 사회에서 신종 파시즘 집단으로 성장해 왔으며, 리박스쿨은 그 전위대이자 실행 조직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리박스쿨 문제의 본질은 단순한 교육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내부에 구조화된 파시즘적 요소와 그 작동 방식에 있습니다. 뉴라이트는 한국형 파시즘의 하나의 양상이며 리박스쿨은 그 실천 도구에 불과합니다.

교육 현장에 드리운 파시즘의 그림자

리박스쿨의 극우적 실체가 속속 드러나며 우리 아이들의 교실을 이념 도구로 전락시킨 세력에 대한 분노와 우려가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2017년 출범한 단체로 대표 손효숙 씨(1956년생)는 우정사업본부(우체국) 사무관 출신입니다.

지난 9일 MBC 보도에 따르면, 리박스쿨은 ‘늘봄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서울교육대·한국늘봄교육연합회와 협약을 맺고, 서울 소재 10개 초등학교에 강사 11명을 파견했습니다. ‘무표정 과학’이나 ‘감각 중심 그림책 수업’ 등 외형상 일반 교육 프로그램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념 선전을 염두에 둔 콘텐츠가 초등학생들의 동심을 파고들었습니다. 경향신문(6.16.) 보도에 따르면, 전국 57개 초등학교에서 총 43명의 강사가 활동하고 있었으며, 논란 이후 교육부가 자체 조사에 나선 결과 서울 지역 11명은 철수했지만, 나머지 32명은 여전히 수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늘봄교육 예산을 1조 원에서 최대 3조 원까지 확대할 계획이었고, 이는 리박스쿨이 단순한 교육 단체가 아니라 사실상 이념 선전 조직임을 보여줍니다.

 

경찰이 댓글 조작 의혹을 받는 보수성향 단체 '리박스쿨'에 대해 강제 수사에 착수했다. 사진은 4일 압수수색중인 서울 종로구 리박스쿨 사무실 앞에 몰린 취재진. 2025.6.4 연합뉴스
경찰이 댓글 조작 의혹을 받는 보수성향 단체 '리박스쿨'에 대해 강제 수사에 착수했다. 사진은 4일 압수수색중인 서울 종로구 리박스쿨 사무실 앞에 몰린 취재진. 2025.6.4 연합뉴스

리박스쿨은 늘봄교육의 주요 내용에 이승만·박정희 미화뿐 아니라, 친일 인사와 재벌 설립자까지 찬양하는 노래를 제작해 초등학생들에게 부르게 한 사례가 드러났습니다. 실제로 교육 받은 학생들이 극우 집회에 참석해 찬양가를 부르는 영상이 공개됐습니다. 일부 학부모는 “늘봄교육을 받은 아이가 집에 와서 ‘이재명은 범죄자’라고 말했다”고 증언했습니다(MBC, 6.9.). 이러한 사례는 리박스쿨이 진행한 교육이 단순한 학습 프로그램이 아니라, 정치 선전과 이념 주입을 위한 활동이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리박스쿨이 입주한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빌딩에는 ‘육사총구국동지회’ ‘전군구국동지연합회’ 등 20여 개 극우 단체가 밀집해 있습니다. 동일 건물에서 사무공간을 공유하며, 공동 사업과 관심사를 수시로 논의해 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경찰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가 더 밝혀지겠지만 이들의 조직 성격, 재정 기반(임대료 및 운영비 등) 및 배후 세력에 대한 조사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명박 정부 때는 국정원이,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과 전경련이 극우 단체의 재정 후원자였음이 검찰 수사 결과 밝혀졌습니다. 리박스쿨이 교육부로부터 막대한 예산을 지원받는 동시에 같은 건물에 입주한 극우 단체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공간 공유를 넘어 ‘조직적 허브’일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리박스쿨 하나에 그치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서 유사한 극우 네트워크가 작동하고 있음을 합리적으로 의심해야 할 것입니다.

리박스쿨 관계자들은 2020년 총선을 전후해 ‘손가락혁명단’이라는 이름으로 댓글 조작을 교육했으며 2022년 이후에는 ‘자유 손가락군대’로 명칭을 바꿔 활동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EBS 전 이사 조형곤 씨의 주도 아래 매뉴얼화한 댓글 작업을 조직적으로 수행했습니다. 경향신문 보도(6.18.)에 따르면, 하루 1인당 최소 50개 이상의 댓글을 생산, 시간대별로 배포함으로써 여론을 조작했습니다.

 

뉴스타파는 '리박스쿨' 잠입 취재를 통해 이번 대선을 앞두고 '자손군'이라는 댓글팀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띄우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비방하는 활동을 체계적으로 벌여왔다고 30일 보도했다. 뉴스타파 홈페이지
뉴스타파는 '리박스쿨' 잠입 취재를 통해 이번 대선을 앞두고 '자손군'이라는 댓글팀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띄우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비방하는 활동을 체계적으로 벌여왔다고 30일 보도했다. 뉴스타파 홈페이지

이명박 정권 시절 국정원과 기무사가 주도한 댓글 공작이 발각되어 처벌받았습니다만 그 기법이 이후 보수 진영의 전략 모델이 된 것 같습니다. 리박스쿨 관계자들이 조직적으로 실행한 댓글 공작은 공론장을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한, 명백한 ‘정치 공작’입니다.

한겨레신문(6.18.) 보도를 보면 리박스쿨 내부 문건에는 ‘2018년 우파 논리 개발’ ‘유튜브 전략’ ‘작가·기자·연예인 발굴’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6월 19일 보도에서는 “6070 세대가 2030 자유 우파를 키운다”는 문구가 담긴 장학회 계획도 확인되었습니다. 장기적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죠. 학교 교육을 넘어 언론, 문화, 역사 영역에까지 진지를 구축하려는 큰 그림 아래 리박스쿨은 교육에 특화환 진지전의 실천 조직이었습니다.

앞의 내용들을 종합해 볼 때, 리박스쿨은 네 가지 점에서 2025년판 파시즘 전략을 충실히 구현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첫째, 캠프와 같은 이념 교육체계의 구축: 전 세대를 대상으로 한 단계적 이념 주입
둘째, 댓글 여론 조작: 매뉴얼화된 온라인 여론 공작
셋째, 공교육 장소 침투: 정부 예산과 교육 제도 내에서 이념 주입
넷째, 세대별 인적 기반 구축: 청년층부터 노년층까지 아우르는 전략적 조직화

네 개의 축은 그람시의 ‘헤게모니 전쟁’ 아렌트의 ‘공론장 침식’ 푸코의 ‘담론 권력’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따라서 리박스쿨은 2025년 한국판 파시즘 전위 역할을 하는 조직이라 보입니다. 

 

뉴라이트 세력은 2000년대 이후 네 단계의 과정을 거치며 오늘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1단계] 진보 정부에 대한 반동: 뉴라이트의 등장

2000년대 초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연이은 집권은 보수 기득권층에 큰 충격이자 위기감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특히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바탕으로 출범한 노무현 정부(2003–2008)는 뉴라이트 운동의 촉발 요인이 됐습니다.

김진홍 목사를 중심으로 뉴라이트 인사들은 ‘신자유주의’와 ‘식민지 근대화론’을 결합한 새로운 보수 이념을 뉴라이트로 정리, 구축했습니다. 보수 성향 대형교회의 조직력과 결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전교조, 통합진보당, 대북 화해 정책을 주요 표적으로 삼고, ‘반공·반북·반노동’을 핵심 기치로 내세웠습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뉴라이트 세력은 보수 정권의 이념 공급기지로 자리 잡고, 이른바 ‘역사 전쟁’의 최전선에 서게 됩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대대적 확산, 진보 세력에 대한 낙인과 공격, 그리고 ‘태극기 부대’로 상징되는 극우 정치 기반의 전초기지 형성이 이 시기에 본격화되었습니다.

 

문재인, 이재명이 종북좌파라고 주장하며 적대하는 극단적 뉴라이트 인사들은 윤석열 정부의 주변이 아니라 핵심 요직들에 들어가 있다 - MBC '스트레이트'가 취재 보도한 뉴라이트 인사들 현황
문재인, 이재명이 종북좌파라고 주장하며 적대하는 극단적 뉴라이트 인사들은 윤석열 정부의 주변이 아니라 핵심 요직들에 들어가 있다 - MBC '스트레이트'가 취재 보도한 뉴라이트 인사들 현황

[2단계] 박근혜 정부 시기: 정책화와 조직화 단계

박근혜 정부 시절 뉴라이트 세력은 이념적 영향력을 정책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2013년 ‘대안교과서’ 시도입니다. 식민지 근대화론 창안자인 안병직 교수가 전면에 나서 국정 역사교과서를 대체할 이른바 ‘대안교과서’ 제작과 보급에 전념했습니다. 이들의 시도는 역사학계와 시민사회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무산됐습니다. 대안교과서는 전국에서 단 한 학교만 채택했죠. 뉴라이트 진영의 패배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를 기점으로 뉴라이트 인사들의 권력 내부 진입은 가속화되었고, 박근혜 정부 내 뉴라이트 인사들은 ‘화이트리스트’(적극 지원 대상 극우 사회단체)와 ‘블랙리스트’(정부 지원 배제 대상 시민사회단체)를 활용한 조직적 배제와 포섭 전략을 현실화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구축한 댓글 공작 시스템도 여전히 작동 중이었으며, 뉴라이트 인사들은 공공기관, 언론, 교육계 전반에 포진해 실질적인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3단계] 윤석열 정권 창출을 위한 극우 연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위축되었던 뉴라이트는 노재봉 전 총리와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주도한 ‘한국자유회의(2017년)’를 중심으로 재정비에 나섰습니다. 이 단체의 명칭은 일본 최대 극우 조직인 ‘일본회의’에서 따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국자유회의는 윤석열 정부의 극우적 성격 형성에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죠. 낙성대경제연구소는 뉴라이트 성향의 정책 전문가와 역사 해석가들을 양성하는 사관학교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그 결과 윤석열 정부와 산하기관에는 다수의 뉴라이트 인사가 포진하였고, 극우 이념은 정책 전반에 걸쳐 실질적으로 반영되며 권력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파시즘과 함께 전 유럽을 파탄으로 몰고간 독일 히틀러의 나찌즘.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파시즘과 함께 전 유럽을 파탄으로 몰고간 독일 히틀러의 나찌즘. 

[4단계] 2025년: ‘리박스쿨’의 전면화와 진지전의 실현

이제 뉴라이트 전략은 단순한 담론 투쟁을 넘어, '진지전'의 국면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그 핵심에 위치한 조직의 일단이 이번에 드러난 ‘리박스쿨’로 보입니다.

단순한 교육 사업체가 아니라, 다층적 전략을 실현하는 전위 조직으로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전략은 기존 극우세력이 의존하던 물리적 강압이나 직접적 억압 대신 ‘문화적 동의’를 조직하고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람시가 말한 ‘진지전’ 전략에 부합하는 한국형 권력 장악 방식이자, 파시즘의 보다 은밀하고 지속적인 양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삶에서 이론으로, 파시즘에 맞선 저항의 사유

파시즘은 1920년대 이탈리아, 독일, 일본에서 출현하여 수많은 사람을 학살과 억압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습니다. 이 체제의 가장 치명적인 특성은 ‘대중의 동의’라는 미명 아래 공식 국가기구를 통해 차별과 혐오, 심지어 집단 학살까지 합법화한다는 점입니다. 특정 소수 집단을 표적으로 삼아 대중의 분노와 광기를 조장하고 이를 통치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안토니오 그람시
안토니오 그람시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1937),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지식인들은 모두 인류 역사상 처음 등장한 이러한 ‘대중 동원 구조’의 형식과 내용을 분석하기 위해 분투했습니다. 그람시는 『옥중수고』를 통해,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을 통해,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비판이론 등 다양한 이론과 현실 참여를 통해 이를 규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파시즘’을 어떻게 이해하고 맞서야 할까요? 약 100년 전 파시즘과 전체주의에 맞서 고뇌했던 지식인들의 사유 발단과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직면한 대상이 같다면 해결책 또한 그 안에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토니오 그람시 (Antonio Gramsci, 1891–1937)  “이 사람의 뇌를 20년간 잠재워라.” – 재판장의 판결문 中 –

그람시는 이탈리아 사르데냐 출신으로, 평생 척추결핵(Pott’s disease)을 앓으며 고통 속에 살았습니다. 1926년 무솔리니 정권에 의해 체포되어 “이 사람의 뇌를 20년간 잠재워라”는 판결과 함께 수감되었고, 감옥에서 1929년부터 1935년까지 총 30권, 약 3,000쪽 분량의 『옥중수기(Prison Notebooks)』를 집필하며 역사상 가장 정교한 파시즘 분석 중 하나를 남겼습니다.

그람시의 질문은 이러했습니다. 왜 노동자를 포함한 대중은 저런 독재자에 맞서지 않고, 그들의 주장에 놀아나며 추종하고 기꺼이 정권을 넘겨주는가? 그는 옥중에서 이탈리아 역사뿐 아니라 유럽의 역사 전체를 탐독하며 그 이유를 찾았습니다. 어떠한 정치철학이나 혁명론에도 나오지 않은 이 역사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결과 그람시가 이론화한 핵심 개념이 헤게모니(hegemony)론입니다. 이 단어는 원래 고대 그리스어 ‘hēgemonía’에서 유래했으며, ‘지도자’ 또는 ‘지배자’를 뜻했습니다. 현대에는 ‘압도적인 영향력과 주도권’을 의미합니다. 그람시는 이를 정치학적으로 전환하여 권력이 강제력뿐 아니라 대중의 자발적 동의를 끌어내는 문화적·이데올로기적 구조를 통해 작동한다고 보았습니다.

 

1945년 11월 21일 나치 전범들에 대한 재판이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시작됐다. 사진은 1946년 9월 30일 피고들이 전쟁 범죄 재판의 평결을 듣고 있는 장면. 연합뉴스 자료사진
1945년 11월 21일 나치 전범들에 대한 재판이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시작됐다. 사진은 1946년 9월 30일 피고들이 전쟁 범죄 재판의 평결을 듣고 있는 장면.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에 따르면 무솔리니의 파시즘은 군사적 독재가 아니라 학교, 언론, 종교, 예술 등 시민사회의 모든 영역에 체계적으로 진지를 구축하며 대중의 사고와 감정을 장악해갔습니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헤게모니의 확보’로 정의하며, 권력이 물리적 폭력보다 더 강력한 방식으로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통찰을 제시했습니다.

이때 등장하는 개념이 ‘진지전(war of position)’입니다. 그람시는 ‘진지’를 단순한 상징적 은유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의 참호전을 모델로 삼아, 지배 세력에 대한 직접적 전면전 이전에 각 문화·사회 영역에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영향력을 비축하는 과정을 진지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진지는 교회, 학교, 언론 등 시민사회의 모든 공간에 존재하며, 그람시는 이를 점령하지 않고서는 어떤 전면적 사회변혁도 성공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람시가 말하는 ‘전면전(war of manoeuvre)’이 진지전의 누적된 성과 위에서만 가능하며, 파시즘에 맞선 전략은 단기적 정치투쟁이 아니라 장기적 문화투쟁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진지전에 참여할 주체로 그는 ‘유기적 지식인(organic intellectuals)’, 즉 일상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시민 지식인 계층의 역할을 중시했습니다.

그의 사유는 이후 서구의 문화운동, 교육운동, 노동운동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으며,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리박스쿨과 같은 극우 교육 프로젝트를 분석하고 해체하는 데 유효한 이론적 도구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1906–1975) “악은 평범할 수 있다.”

한나 아렌트
한나 아렌트

한나 아렌트는 유대계 독일 철학자이자 정치사상가로,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의 제자이자 연인이었습니다. 하이데거가 나치에 입당하자 결별하고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 생애 내내 전체주의와 파시즘의 구조를 분석하며 이론적·정치적 대안을 제시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1951)에서 전체주의 체제가 개인을 어떻게 파괴하고 대중을 조작하는지 규명했습니다. 특히 대중의 무관심과 고립감이 전체주의적 통치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갈파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에서는 “악은 평범하다(banality of evil)”는 개념을 통해 평범한 개인이 사유 없이 권력에 복종할 때 전체주의의 실행자가 될 수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그녀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사유하는 시민의 공적인 참여에서 해법을 찾았습니다. 정치적 무관심과 공론장의 붕괴가 파시즘의 토대라는 그녀의 통찰은 오늘날 공적 담론 회복 및 시민 참여 교육, 민주주의 재구성에 중요한 철학적 밑거름이 되고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학파, 문화와 심리의 지배구조를 분석하다

192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설립된 사회연구소(Institut für Sozialforschung)는 1930년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 1895–1973) 소장 취임 이후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 사회과학을 결합한 ‘비판이론(critical theory)’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 학파에 이름을 올린 학자들은 대부분 나치즘의 박해를 피해 해외 망명에 오른 인물들로, 필연적으로 파시즘의 탄생과 원리, 전개 과정을 설명할 책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위르겐 하버마스
위르겐 하버마스

이후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 1903–1969),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 1898–1979),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 유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1929– ) 등이 가세하며 ‘프랑크푸르트학파(Frankfurter Schule)’라는 지적 흐름을 형성했습니다.

이들은 나치즘과 파시즘의 등장을 단순한 경제 위기의 산물이 아니라 대중의 심리구조와 문화산업에 대한 조작 기제로 해석했습니다. 『계몽의 변증법』(1947, 막스 호르크하이머·테오도어 아도르노 공저)에서 저자들은 계몽주의를 이끈 이성 개념이 해방의 도구가 아니라 지배와 억압의 수단으로 전락했음을 비판합니다. 즉, 파시즘이 정한 기준만이 가장 이성적인 것으로 포장해 절대적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대중 동원의 밑그림이 그려졌다고 본 것입니다.

또한 『권위주의적 인격』(1950, 테오도어 아도르노·엘스 프렌켈-브룬스윅·다니엘 레빈슨·R. 네빌 샌퍼드 공저)에서는 나치즘이 단순한 정치 현상이 아니라 복종에 익숙한 심리적 인격 구조와 권위주의적 문화 속에서 발생할 수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또한 미국 중심 자본주의가 양산한 문화산업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문화산업이 생산한 소비 지향 대중문화가 비판적 사고를 무력화하고 일반 상품처럼 획일화된 의식을 확산시켜 파시즘의 지배를 쉽게 만든다고 분석했습니다.

■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회적 영향

첫째, 1960–70년대 신좌파(New Left) 운동의 이론적 토대

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1964)은 자본주의 체제의 억압성과 대중의 수동성을 비판하며, 미국과 서유럽의 급진적 청년운동, 베트남 반전운동, 흑인 민권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둘째,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

프랑크푸르트학파 2세대인 하버마스는 공론장 복원, 소통 합리성, 시민적 민주주의 가능성에 집중했습니다. 시민사회와 민주적 의사결정의 정당성을 철학적으로 뒷받침한 거죠. 하버마스의 분석과 이론은 한나 아렌트의 주장과 매우 유사하여, 민주주의의 지속성을 고민하는 많은 시민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셋째, 현대 사회운동의 담론 기반 제공

프랑크푸르트학파 철학자들은 이데올로기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큰 관심을 두고 분석했습니다. 진보 진영이 치중했던 기존 노동 중심의 사고를 여성주의, 생태운동, 소수자 인권운동 등으로 확장시켜 오늘날 시민 운동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제79주년 8·15 광복절인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광복회 주최 광복절 기념식에서 이종찬 광복회장 등 참석자들이 광복절 노래를 부르고 있다. 독립운동단체들은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이 '친일 뉴라이트 인사'라면서 정부가 주최하는 광복절 경축식 불참을 선언한 바 있다. 2024.8.15. 연합뉴스
제79주년 8·15 광복절인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광복회 주최 광복절 기념식에서 이종찬 광복회장 등 참석자들이 광복절 노래를 부르고 있다. 독립운동단체들은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이 '친일 뉴라이트 인사'라면서 정부가 주최하는 광복절 경축식 불참을 선언한 바 있다. 2024.8.15. 연합뉴스

지금,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

리박스쿨은 지난 20년간 뉴라이트가 내건 깃발 아래 차근차근 자신들의 진지를 구축해 온 파시즘 세력의 전위 기구이자,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문화적 진지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이를 반대하는 데 그치지 말고, 시민사회 내부에 강력한 ‘대항 진지’를 마련해야 합니다. 동시에 ‘유기적 지식인’으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기획하고 수행해야 할 때입니다. 그람시가 말했듯이, “전선은 더 이상 바깥에 있지 않고, 우리 안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오늘날 리박스쿨이 바로 그 전선의 내부자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교실, 온라인 여론장, 문화와 역사 교육의 공론장을 지켜내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공론의 공간’을 회복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입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저들의 진지가 더욱 공고해지기 전에, 시민의식을 깨우고 저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며 우리 사회의 건강한 민주주의 기반을 회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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