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라이트 해부 ① ] 그들의 뿌리와 변질 과정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뉴라이트란 무엇일까? 한국사회 한 귀퉁이에서 유령처럼 떠돌던 뉴라이트가 어느 순간 우리 옆에 와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정부와 주요 공공기관장의 자리를 꿰차고, 역사를 생뚱맞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뉴라이트 연구에 천착해 온 인문연구가 이병권 씨의 글을 연재합니다. 1980년대 역사학도로 운동권에 몸 담았던 이병권 인문연구가는 지금도 역사와 인문학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네 차례에 나눠 게재할 글은 1. 뉴라이트의 탄생과 변질 2. 모든 지원금에는 꼬리표가 있다 3. 무엇을 위한 선택이었을까 4. 자존의 길, 자비의 길입니다.
1990년대 말, 한국 정치사에 새로운 물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그 시작은 역설적으로 진보 진영의 핵심이었던 민족해방(NL) 주사파의 좌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들의 변화는 단순한 이념적 전향을 넘어 '매국 우파'로 정의할 수 있는 집단으로의 변모를 보여줍니다. 국가와 민족을 팔아먹는 세력으로 전락한 이들의 궤적은 한국 현대사의 아이러니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이들의 정신적, 철학적 퇴락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몇 가지 특징을 생각해 봅니다:
엘리트주의자들의 '양지' 찾기
민족해방과 북한 주체사상에 관한 관심과 탐구는 1986년 초, 당시 서울법대 공법학과 재학 중이던 김영환(서울법대 82학번)의 주도로 결성된 <단재사상연구회>에서 비롯됩니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단재 신채호와 정약용의 사상연구를 표방하였지만, 실체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촉발된 외세(미 제국주의)와 상대적으로 자주적 사상으로 호기심을 자아낸 주체사상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만이 한국 사회 변혁의 최고 주체라고 믿었습니다. 1986년에 본격화된 NL계 운동권과 주사파는 불과 3년 만인 1989년 전대협을 결성, 한국 변혁 세력의 중심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확신했던 변혁노선은 불과 10년도 가지 않았습니다. 깃발을 들었던 다수의 주체가 전향을 선택하고, 동지를 손가락질하며, 그 동지들을 ‘종북세력’으로 낙인찍는 데 앞장서게 됩니다. 자신들이 다시 1등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보수’에서 찾았고, 북한민주화운동이라는 정반대의 좌표를 찾게 됩니다. 혹자는 이들의 변신을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했지만, 결국 ‘뉴라이트’로 말을 바꿔 탄 20여 년 동안 그들이 보여준 것은 진정한 사회 변혁이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기득권 세력에 편승해 1등 자리를 누리고 큰소리칠 수 있는 위치를 노렸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주체'를 외친 '비주체적' 조직문화
NL주사파의 특징 중 하나가 주요 정치, 경제, 철학 주제에 대해 스스로 또는 집단으로 치열하게 토론, 학습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대중노선은 그저 주어진 텍스트를 충실히 이행하는 실천 조직이자, 실천 운동이었습니다.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수고’를 겪지 않고자 했습니다. 주사파의 핵심은 심지어 이미 만들어진 북한의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북한의 권위주의와 일인자에 대한 절대적 복종과 같은, 전근대적이고 비민주적 조직관이 스며들었습니다. 이러한 조직문화 때문에 중심축의 와해가 곧 전체 조직의 몰락으로 이어졌습니다. 1999년 김영환을 비롯한 조직의 최고 명망가들이 대거 전향을 선택했을 때, 이들을 맹목적으로 따랐던 변혁 희망자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충격이자 배신이었습니다. 한때, 한국 사회에 가장 영향력이 큰 집단 3위에 올랐던 전대협도, 한총련도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생운동은 변혁운동과 시민운동의 귀한 샘물과 같았는데, 그 물줄기가 혼탁해진 것입니다. NL계열의 학생운동조직인 한총련(한국대학생연합)은 1996년 8월 13일부터 연세대학교 제7차 범민족대회와 범청년 통일대축제 행사를 기점으로 급속히 쇠락기를 맞게 됩니다.
8월 13일부터 8월 20일까지 한총련은 당시 통일운동을 추진하던 범민련(범민족연합) 등과 함께 연세대학교에서 1991년부터 개최해 오던 범청학년 통일대축제를 개최하였고, 전국에서 2만여 명의 대학생이 연세대에 집결하였습니다. 경찰봉쇄로 진입하지 못한 1만여 명의 학생들은 여타 대학과 시내에서 별도의 행사를 개최하고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진압태도는 처음부터 강경했고 집요했습니다. 차제에 학생운동 자체를 완전히 꺾겠다고 작정하고 모든 물리력을 총동원했죠. 전국에서 5만 이상의 전경이 동원되었고, 시위 학생들을 대상으로 혹독한 폭력이 가해졌습니다. 결국 8월 20일 경찰은 연세대 학생관 진압을 마지막으로 진압을 종료합니다. 연행자만 5,884명에 이르렀고, 462명을 구속합니다. 1986년 건국대학교 사태 이후 최대 공안사건으로 기록됩니다.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저지른 수많은 불법과 인권유린 내용이 고발됐지만, 정부 당국은 요지부동으로 버텼습니다. 이 연세대 사태를 기점으로 한국 학생운동은 내리막을 걷게 되고, 사회 변혁운동 전체가 불가피한 변화의 시기를 맞게 됩니다.
지금도 이 연세대 사태를 주도했던 한총련 지도부의 선택과 투쟁노선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한총련 지도부의 정세 인식과 판단이 지극히 안이하고 기민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범민련이나 한총련 모두 동유럽 몰락 이후 변화된 국제정세를 읽지 못했고, 정부의 강경 진압 계획에 맞서 유연한 대처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전국의 조직을 한순간에 털어먹는 모험주의의 대가가 조직과 운동권 전체의 파국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비주체적’ 정세 인식의 필연으로 보입니다.
신자유주의적 인간관의 무비판적 수용
1990년대 들어 사회주의 동구권이 몰락하자, 과거 사회 변혁 세력 중에서 도식적 ‘사회구성체론(식민지반봉건사회론)’에 빠졌던 이들은 최종 승자라고 여긴 자본주의의 승리 비결을 찾는 데 혈안이 됩니다. 1980년대 미국과 영국을 휩쓸었던 신자유주의 물결은 이들에게 비밀의 방을 열어주는 열쇠였습니다. 이기적 인간관을 기초로 시장경쟁과 승자독식을 내세우는 신자유주의는 정부와 시민단체, 노동계의 간섭을 배제한 채, 세계화의 탈을 쓰고 확산됐습니다. 주사파의 탈을 벗어 던진 이들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자본주의 만세’를 외칠 구실이 필요했고,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 내면화에 앞장서는 것이 그 길로 보였을 겁니다. 승자독식, 경쟁 만능, 복지축소, 정부의 시장개입 반대 등 신자유주의 논리는 사회주의를 이긴 자본주의가 성취해야 할 당연한 권리쯤으로 여겨졌는지도 모릅니다. 더욱이 이들은 자본주의 자체에 대해 깊이 있는 탐구생활을 하지 않았기에, 자신들이 극복하고자 했던 자본주의의 실체와 해악을 구분할 식견 또한 부족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제 바뀐 게임인 시장자본주의 세계에서 승자가 되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승리를 위해 과거는 과감하게 버리자"
전향한 주사파에는 자본주의 발전만이 최고의 가치입니다. 북한보다 잘사는 것도 자본주의를 선택한 덕분이고, 그 자본주의를 이식하고 발전시킨 모두를 선구자이자 영웅으로 간주합니다. 이런 조건만 된다면 친일, 친미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는 이완용의 "조선은 원래 사대하는 나라인데, 그 대상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바뀐들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장과 일맥상통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안병직의 <식민지근대화론>이 이들의 사고를 지배한 것은 논리적으로 매우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스스로 사고할 훈련이 되지 못한 머리 좋은 비주체자들, 분야를 막론하고 무조건 최고만을 향해 달린 이카루스의 후예들, 이제는 우기고 조작하고 민족까지도 가차 없이 그들의 기득권과 맞바꾸어도 좋다고 믿는 이들이 바로 ‘뉴라이트, 매국우파’입니다.
2004년 <자유주의연대> 창립을 기점으로 '뉴라이트'라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했고, 2008년 김진홍 목사가 이끄는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출범과 함께 기독교 극우 세력과 연합했습니다. 아스팔트 태극기부대를 만들어 이명박 정부의 핵심 지지기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17년부터는 과거 총리를 지낸 노재봉 씨가 이끄는 <한국자유회의>가 그 뒤를 이어 뉴라이트의 논리 발전(version-up)과 보수정권 내 정책화에 골똘하고 있습니다. 현재 윤석열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현재 뉴라이트, 매국우파는 안병직이 설립한 <낙성대경제연구소>가 이론적 토대와 ‘인재 양성’을, <한국자유회의>가 정책화를 통해 끌고 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던 이들과 이들에게 ‘감화’된 후예들이 이제는 보수우파 정권의 이데올로그(이념가)로 변모한 것입니다.
뉴라이트의 등장과 변질, 기득권화 과정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이념의 순기능과 역기능은 무엇인가? 이념의 변질과 기득권화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읽고, 무엇을 기준으로 그 시대적 과제를 고민할 것인가? 지난 40여 년 주사파의 매국우파화 과정은 오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고통이자 재앙입니다. 한때 찬란한 변혁의 주창자였지만, 지금은 매국의 주범과 종범으로 지탄받는 이들의 모습은 얼굴을 바꿔가며 계속될 것입니다. 이제 이들의 인간적 고뇌와 탐욕, 기득권을 이해하고 그 대안을 고민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그렇기에 더 그들의 참모습을 알아야 하고 그들의 망동을 정확히 읽어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오늘 우리의 좌표와 방향을 더 명확히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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