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롱뇽과 산개구리

김혜형 작가, 농부 
김혜형 작가, 농부 

봄 햇살 따스하니 겨우내 얼어붙었던 연못에 생기가 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물뭍동물들이 다투어 연못으로 모여든다. 바야흐로 번식의 계절이다. 산개구리는 봄기운이 돌기도 전인 2월 중하순부터 물가로 내려와 호로로롱~ 호로로롱~ 짝을 부른다. 산개구리 울음소리는 새소리처럼 곱다. 처음 들으면 개구리가 내는 소리라 믿어지지 않는다.

번식 본능으로 두려움 이긴 산개구리의 노래

개구리는 수컷만 운다. ‘운다’고 했지만 ‘울음’이라기보다 ‘노래’에 가깝다. 암컷을 향한 열정적 구애가 슬픔일 리 없다. 개구리들 사이에선 구애 소리, 경계 소리, 싸우는 소리의 패턴이 다르지만, 사람들은 그저 “개구리가 운다”고 말한다. 구분해 들을 필요가 없어서일 것이다. ‘우는’ 동물은 개구리만이 아니다. 새도 울고 소도 울고 말도 울고 닭도 운다. 사람들은 다양한 동물 소리를 ‘울음’이란 한 단어에 욱여넣는다. 사람의 울음에 담긴 서러움과 슬픔과 복받침을 제거하고 기계의 삐걱거림 같은 무의미성으로 대체해 버린다.

 

봄 연못의 산개구리와 알집.
봄 연못의 산개구리와 알집.

산개구리 몸은 겨울 산을 뒤덮은 황갈색 가랑잎 색깔이다. 연못과 수로로 밀려든 젖은 낙엽 아래서 그들은 쉽게 발각되지 않는다. 그들을 보려면 이른 봄 번식기의 울음소리를 따라가야 한다. 호로로롱~ 호로로롱~ 산개구리들이 합창하는 연못으로 살금살금 다가간다. 내 기척을 알아채고 뚝, 소리를 끊는다. 예민한 녀석들이다. 카메라 앱을 연 채 연못가에 쪼그려 앉아 숨죽여 기다린다. 녀석들이 경계를 풀고 뽀글뽀글 물방울 일으키며 올라올 때까지.

몇 분이나 지났을까.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하나둘 수면 위로 쏙쏙 머리를 내밀더니 연이어 동시다발로 와글와글 올라온다. 번식 본능은 두려움을 이긴다. 수컷들이 꽈리 불듯 양쪽 울음주머니를 봉긋봉긋 부풀리며 울다가 첨벙첨벙 암컷한테로 가서 백허그를 한다. 개구리는 교미기가 없다. 암컷이 알주머니를 낳으면 수컷이 정액을 뿌려 체외수정을 한다. 쌍쌍이 업힌 암수 개구리들로 연못 물이 펄펄 끓는다.

콩닥콩닥 가슴 뛰었던 도롱뇽과의 첫 조우

 

도롱뇽 알집
도롱뇽 알집

산개구리의 요란한 난장 파티가 끝난 후 밤이 되면 한 무리의 도롱뇽들이 연못에 나타난다. 도롱뇽의 몸은 어두운 자갈색인 데다 해가 진 후 움직이니 이 역시 포착하기가 어렵다. 도롱뇽의 거사는 소리 없이 격렬하다. 수컷들이 한데 엉겨 엎치락뒤치락 암컷을 끌어안고 산란을 유도한 후 암컷이 낳은 알집을 떼어내 정액을 뿌린다. 이른 봄, 우리 연못을 가장 먼저 차지하고 산란하는 녀석들이 산개구리와 도롱뇽이다. C자형으로 도르르 말린 도롱뇽 알집은 보글보글 덩어리진 산개구리 알집과 구분된다.

 

도롱뇽과의 첫 만남
도롱뇽과의 첫 만남

도롱뇽과 처음 마주친 건 산 아래 수로에서였다. 집 공사 후 남은 시멘트 보드를 수로에 던져뒀는데 그걸 치우려고 젖히는 순간 비좁은 틈새에 작은 조약돌 같은 게 반짝였다. 매끈한 몸매에 볼록 튀어나온 귀여운 눈, 도롱뇽이었다! ‘아, 예뻐!’ 숨을 멈추고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나타난 대형동물에 놀란 도롱뇽도 얼어붙은 채 날 쳐다봤다. 사진으로만 봤던 도롱뇽을 우리 집 뒤뜰에서 만나다니! 처음 본 도롱뇽이 너무 아름다워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조국사태’로 받은 상처 기워주고 아물게 한 비인간 생명체

생김새는 도마뱀과 닮았지만, 도마뱀은 파충류고 도롱뇽은 양서류다. 올챙이 시절엔 개구리처럼 물에서 아가미로 호흡하고 자라서는 뭍으로 나와 폐와 피부로 호흡한다. 도롱뇽과 개구리는 같은 양서류지만 다른 점이 더 많다. 요란한 울음소리로 짝을 찾는 개구리와 달리 울음주머니가 없는 도롱뇽은 페로몬으로 유혹한다. 개구리는 자라면서 꼬리가 없어지지만 도롱뇽은 꼬리가 그대로다. 개구리는 팔짝팔짝 뛰지만 도롱뇽은 느릿느릿 걷는다. 개구리는 길고 끈적한 혀로 먹잇감을 낚아채지만 도롱뇽은 혀가 짧아 입으로 덥석 문다. 입 큰 개구리와 달리 도롱뇽은 수줍어 보일 만큼 입이 작다. 밤에 다니며 잠복 사냥을 하는 점도 개구리와 다르다. 개구리가 수다스러운 개구쟁이 같다면 도롱뇽은 방해받기 싫어하는 은둔자 같다. 비활동적이고 주목받기 싫어하고 조용한 구석 자리를 좋아하는 나는 동류처럼 도롱뇽에게 끌린다.

참혹했던 해로 기억한다. 조국 법무부장관과 그의 가족이 ‘무간지옥’으로 떠밀렸던 그해, 나는 잠을 못 잤고, 숨이 안 쉬어졌고, 몸이 아팠다. 주말이면 기차를 타고 서초동에 갔다. 구석진 시골에서 도롱뇽처럼 숨어 살던 사람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 밖으로 나섰다. 끔찍한 겨울을 견딘 후 맞이한 봄날, 산 아래 웅덩이에서 도롱뇽 알들이 깨어나고 있었다. 아기 도롱뇽들이 작은 아가미를 펼치고 꼬물꼬물 수로를 헤엄치며 돌아다녔다. 쪼그려 앉아 들여다보는데 눈물이 왈칵 솟았다. 인간에 대한 분노와 슬픔으로 찢기고 사나워진 마음이 꼬물거리는 비인간 생명체로 인해 아물고 기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들이 내 숨구멍이었다.

 

아가미가 나온 도롱뇽 올챙이.
아가미가 나온 도롱뇽 올챙이.

진짜 유해하고 징그러운, 인간의 모습을 한 동물들

양서류나 파충류를 징그러워하는 이들이 있다. 애벌레나 벌 같은 곤충에 기겁하는 이들도 있다. 드물게는 새나 닭 같은 조류에 소름이 돋는 이도 있다. 동물에 대한 감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오랜 세월 유전자에 각인된 공포, 자기 보호의 본능적 감각일 것이다. 나의 경우, 공포 감각보다 관찰 본능이 강해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고 기록하기를 즐긴다. 그들은 대부분 무해하다. 오히려 인간이 그들에게 가장 두렵고 유해한 동물이다. 인간은 그들을 손쉽게 제압하며 원한다면 몰살시킬 수도 있다. 인간이 밟고 치고 죽이지 않는 한 그들이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을 피해 달아난다.

도롱뇽이나 올챙이, 애벌레나 지렁이는 하나도 징그럽지 않다. 나는 사람이 징그럽다. 대통령의 권력을 한낱 조폭의 칼로 만들고, 영구집권 탐욕에 미쳐 내란을 일으키고, 다수 국민을 살해할 음모를 꾸미고, 국가 재정을 제 주머닛돈으로 여기고, 추악한 치부를 가리려 거짓말로 성을 쌓고, 법을 빙자해 국민을 우롱하고, 종교를 참칭하며 돈 귀신을 섬기고, 폭동과 악의적 거짓말로 공동체를 교란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추악함과 잔인성과 징그러움을, 나는 인간의 모습을 한 어떤 자들에게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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