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 점포 팔아 투자금 회수·빚 상환

대형 할인점 핵심 경쟁력 무너뜨려

과도한 차입에 인수할 때부터 불안

인수 기업 껍데기만 남기고 튀어

경영 실패하고 “대형마트 규제 탓”

노조 “김병주 MBK 회장 책임져라”

국내 할인점 업계 2위인 홈플러스가 기업 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일부 입점 업체가 대금을 제 때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가 하면, 일부 기업 제품 납품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기업 회생절차 신청 직전에 기업어음(CP) 등을 발행했던 행태에 대한 강한 질타도 쏟아진다. 이러다가 정말 홈플러스가 망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6일 열린 "홈플러스 회생은 MBK가 책임져라" 기자회견. 연합뉴스
지난 6일 열린 "홈플러스 회생은 MBK가 책임져라" 기자회견. 연합뉴스

MBK, 홈플러스 전체 인수금의 절반 이상 차입

전국적으로 수백 개 매장을 둔 홈플러스가 이 지경에 이른 책임은 최대주주이자 경영권을 보유하고 있는 사모펀드 MBK파트너스(MBK)에 있다. 지난 2015년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할 때부터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전체 인수 자금의 절반 넘게 홈플러스 주식을 담보로 대출받아 조달했고 나머지 금액도 투자처를 정하지 않고 모집한 블라인드 펀드와 채권 발행 등으로 채웠다. 사실상 MBK가 직접 투입한 자금은 미미했다. 남의 돈으로 거대한 유통기업을 인수한 셈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MBK는 홈플러스 전체 인수 비용의 절반 이상인 3조 1000억 원(홈플러스 기존 차입금 중 상환액 2000억 원 포함)을 은행권 대출로 충당했다. 2조 4000억 원은 블라인드 펀드로 모았고, 나머지 7000억 원은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발행해 채웠다. 국민연금도 RCPS에 약 6000억 원을 투자했다. 총 인수대금은 7조 2000억 원이었으나 홈플러스의 기존 차입금 1조 2000억 원을 승계했기 때문에 실제 들어간 돈은 약 6조 원이다.

 

홈플러스 금융부채 현황. 연합뉴스
홈플러스 금융부채 현황. 연합뉴스

투자금 회수와 빚 갚느라 운영자금 말라

이처럼 과도한 차입에 의존해 기업을 인수하면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투자 수익을 회수하고 투자자들에게 배당을 줘야 할 뿐만 아니라 막대한 원리금을 상환해야 하는 부담으로 정작 기업에 투자할 돈이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이다. 홈플러스는 이마트와 롯데마트 같은 유통 공룡을 상대로 경쟁해야 한다. 대형 할인점의 핵심 경쟁력은 구매력(바잉파워)에서 나온다. 바잉파워는 ‘규모의 경제’에 달렸다. 매장이 많고 개별 점포 규모가 커야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다.

오프라인 매장과 더불어 유통 부문에서 비중이 커진 온라인 쇼핑 사업을 육성할 필요도 있다. 할인점 시장을 쿠팡과 네이버쇼핑 등 온라인 쇼핑 플랫폼이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홈플러스는 오프라인 매장이 주력이지만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온라인 쇼핑 사업도 신경써야 한다.

경쟁사인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꾸준히 투자

이런 측면에서 MBK의 경영은 낙제점도 줄 수 없을 정도로 엉터리였다. 투자금 회수와 빚 상환이라는 목적 외에는 없는 듯했다. 멀쩡한 점포를 팔고 알짜 자산을 매각하는 ‘폭거’를 서슴지 않았다.

쿠팡을 비롯한 온라인 쇼핑 플랫폼의 역습 와중에도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꾸준한 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지키려고 했다. 반면 MBK는 홈플러스에 대해 ‘규모의 경제’를 허무는 경영을 했다. 영업이익 나면 배당을 주고 빚을 갚는 데 사용했고, 투자금 회수에 혈안이 돼 알짜 자산을 처분했다. 정상적인 유통 기업이었다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것이다.

대형 할인점이 매장들을 매각한다는 것은 사업을 그만두겠다는 것과 같다. MBK의 ‘거꾸로 경영’에 홈플러스 노동조합 등 직원들도 반발했다. 단순히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힘들게 키운 홈플러스가 망하는 것을 앉아서 볼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홈플러스가 4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다만 모든 채널 영업은 정상적으로 진행된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한 홈플러스 매장의 모습. 2025.3.4. 연합뉴스
홈플러스가 4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다만 모든 채널 영업은 정상적으로 진행된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한 홈플러스 매장의 모습. 2025.3.4. 연합뉴스

MBK 인수 후 홈플러스 매출 1조 이상 줄고 3년 연속 적자

그런데도 MBK는 막무가내로 자산을 팔았다. 그렇게 10년을 경영한 결과는 처참할 정도다. 홈플러스가 운영하는 할인점은 141개에서 126개로 줄었고, 슈퍼마켓 체인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371개에서 308개로 쪼그라들었다. 처분한 매장 중에는 매출이 부진한 곳도 있었으나 그렇지 않은 점포도 많았다. 유통기업의 축소 경영의 결말을 뻔하다. 매출 급감과 수익성 악화가 그것이다.

MBK가 인수할 당시 8조 원에 육박했던 매출액은 7조 원 아래로 하락했다. 매출액 감소율로 따지면 13%에 육박한다. MBK로 경영권이 넘어간 직후인 2016년 영업이익은 3200억 원이고 이익률도 4%에 달했다.

하지만 매출이 많은 점포까지 처분하며 영업이익도 급격히 감소했다. 2021년 1300억 원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하더니 지금까지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말 그대로 10년 동안 멀쩡한 기업 하나를 거덜 낸 것이다. 만약 홈플러스를 망하게 하거나 헐값에 다른 곳에 매각한다면 MBK는 껍데기만 남기고 튀는 기업 사냥꾼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홈플러스 노동자들, 폐점 매각 저지 위해 카드 끌고 거리로. 연합뉴스
홈플러스 노동자들, 폐점 매각 저지 위해 카드 끌고 거리로. 연합뉴스

MBK, 네파와 모던하우스 등도 경영 실패

MBK가 망가뜨린 기업은 홈플러스만이 아니다. 6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아웃도어 전문 브랜드 네파와 생활용품 브랜드 모던하우스, 철강 구조물 전문업체인 영화엔지니어링 등도 인수 후 알짜 자산을 매각하고 차입할 때 빌린 대출 이자를 피인수 기업에 전가하는 수법을 썼다.

MBK는 2013년 특수목적법인(SPC)인 티비홀딩스를 설립해 네파를 9970억 원에 인수했다. 인수금의 절반인 4800억 원가량을 차입으로 조달했다. 네파는 MBK에 넘어간 뒤 티비홀딩스와 합병됐다. 그 결과 MBK가 차입한 인수 자금에 대한 이자를 연간 200억~300억 원씩 부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경영 상태가 엉망이 됐다.

MBK가 2017년 이랜드그룹으로부터 인수한 모던하우스도 마찬가지다. 투자금 회수를 위한 MBK의 꼼수로 자금난을 겪고 있다. 지난 2009년 MBK가 인수한 영화엔지니어링은 경쟁력이 약화하며 결국 2016년 3월 기업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그러자 MBK는 이듬해인 2017년 이 회사를 매각하며 손을 뺐다. 알짜 자산만 빼먹고 튀는 ‘기업 사냥꾼’의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MBK는 홈플러스를 사지로 몰아넣고도 최근에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끼어들고 CJ제일제당의 바이오사업부 인수에도 뛰어들었다. 도덕적 해이가 도를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오죽하면 투자은행(IB) 업계에서 “MBK는 신규 투자를 고민하기보다는 홈플러스 사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는 볼멘 목소리까지 나왔겠나.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MBK파트너스 제공] 연합뉴스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MBK파트너스 제공] 연합뉴스

민주당 “사기나 다름없는 MBK 행태에 철퇴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조와 홈플러스지부는 지난 6일 MBK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강우철 마트노조 위원장은 “MBK는 홈플러스 인수 후 지난 10년간 기업의 경쟁력보다는 자본회수에만 혈안이었다. 저임금을 감내하고, 부족한 인력 속에서도 직원들의 희생으로 홈플러스를 흑자로 전환했는데, 흑자 전환에 대한 MBK의 답이 회사를 파국으로 몰고 가겠다는 것이냐”며 MBK에 책임을 물었다.

그는 또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홈플러스를 폐기처분하려 한다면 엄청난 파국이 될 것”이라며 “한국 최고 부자, 김병주 회장이 양심이 있다면 자산을 출원해서라도 책임을 다하라”고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도 이날 서면 브리핑에서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하기 직전까지 법인은 물론 개인투자자를 상대로 기업어음을 판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사기나 다름없는 MBK의 행태에 철퇴를 내려야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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