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 강등 가능성 알고도 사채 발행 정황
증권사·투자 피해자 “MBK 법적조치 불가피”
MBK 홈플러스 투자한 펀드 보수로 1조 챙겨
국회, MBK 김병주 회장 등 불러 현안 질의
“MBK 외부자금 수혈로 홈플러스 살려놔야”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 기업어음(CP)과 단기 사채 등을 발행하며 증권사를 속였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25일 한 신용평가사로부터 신용등급이 강등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으면서도 바로 그날 수백억 원대 회사채를 발행했다는 것이다. 이는 도덕적해이 차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수사를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홈플러스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 인지한 날 사채 발행
MBK의 수상쩍은 행태는 13일 홈플러스가 내놓은 해명 자료를 바탕으로 연합뉴스가 보도한 내용에서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이에 따르면 MBK와 홈플러스는 지난 4일 기습적으로 기업 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며 신용등급 하락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짐작할 수 있는 홈플러스 보도자료의 대목을 이렇다.
“지난 2월 25일 오후 4시경 신용평가사 한 곳의 실무담당자로부터 당사 예상과는 다르게 신용등급이 한 등급 하락하게 될 것 같다는 예비평정 결과를 전달받고 재심의 신청 의사가 있는지 확인 요청을 받았다. (이에 대해 당사는) 온-오프라인 매출 모두 3년 연속 증가하는 등 사업지표가 크게 개선되고, 익스프레스 매각을 통해 재무 상태와 수익구조가 크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돼 등급 하락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어 다음날인 26일 오전 바로 재심의를 요청했다. 당사 재심의 요청에도 2월 27일 오후 늦게 신용평가사로부터 신용등급이 한 등급 하락했다는 최종 신용평가 결과를 통보받았다.”
홈플러스 측은 최종 통보를 27일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자료를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용등급이 낮아질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한 시점은 “25일 오후”라는 사실도 실토했다. 양심과 책임 있는 기업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회사채를 발행해서는 안 된다. 신용등급 하락으로 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게 뻔하기 때문이다. MBK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신용강등 가능성을 인지한 지난달 25일 자금조달을 위해 신용카드사에 납부할 이용대금채권을 기초로 820억 원 규모의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를 발행한 것이다.
MBK 경영 실패 홈플러스 회사채 투자자에 떠넘겨
홈플러스 회사채를 보유한 증권사와 투자자들은 홈플러스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됐다. 신용등급이 ‘A3’에서 ‘D’로 하락하며 홈플러스 회사채가 휴지 조각이 될 처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MBK가 법정관리를 신청했던 4일 기준 기업어음과 단기 사채 잔액은 1880억 원에 달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신영증권은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을 알고도 단기 사채 발행으로 투자자에게 손실을 떠넘겼다는 혐의로 MBK와 홈플러스에 대해 형사고발을 검토하고 있다. 신영증권은 홈플러스가 발생한 회사채를 유동화해 개인투자자에게 판매한 주관사 중 한 곳이다.
MBK와 홈플러스는 신영증권 등 투자자들이 제기한 의심에 대해 “2월 27일 오후 5시께 신용등급이 하락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2월 25일 단기채를 발행하기 전에 신용등급 하락에 대해 알았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홈플러스 보도자료에서 더 주목할 대목은 2월 25일 오후 신용평가사 한 곳에서 신용등급이 하락할 수 있다는 예비평정 결과를 전달받았다는 문장이다. 그동안 MBK와 홈플러스는 최종 통보 전에 신용등급 강등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는데 이 말과 완전히 상반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홈플러스는 법정관리를 신청하며 신용평가사들이 지난달 28일 기업어음(CP)과 단기 사채 신용등급을 ‘A3’에서 ‘A3-’로 내린 건 예상 밖의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를 법정관리 신청 이유로 꼽았다.
MBK 사기 치지 않았어도 ‘도덕적해이’ 비판 못 피해
MBK와 홈플러스가 실제로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을 알고도 회사채를 발행했는지는 좀 더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증권사 등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고발하면 수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MBK가 신용등급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해도 도덕적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어쨌든 MBK가 홈플러스 경영 실패 책임을 증권사와 회사채 투자자들에게 전가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정치권에서 홈플러스 사태를 MBK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연합뉴스에 따르면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하는 데 활용한 펀드 운용으로 1조 원 이상 벌었다고 한다. MBK는 지난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하며 조성한 블라인드 펀드로 3조 2000억 원을 조달했다. 이 펀드는 홈플러스 외에 아코디아 넥스트 골프와 오렌지라이프 등 다른 기업에도 투자했는데 수조 원대 이익을 낸 곳도 있다. MBK가 챙긴 운용 보수는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2억 5000만 달러, 성과 보수는 5억 3000만 달러에 달한다. 원화로 환산하면 1조 1000억 원대다. 투자 기간을 고려한 연평균 수익으로 1000억 원이 넘는다.
“김병주 MBK 회장이 진정성 있는 회생 방안 내놓아야”
홈플러스의 법정관리로 3만 명에 달하는 직·간접 고용인원과 1만 여개의 납품사와 외부 임대매장 점주는 노심초사하고 있다. 경영 실패 책임이 큰 MBK는 한 푼도 손해 보지 않고 열심히 일한 이들만 고통을 받게 됐다.
그런데도 MBK는 실효적인 자구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도덕적해이의 끝판왕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투자업계에서는 홈플러스 회생이 힘들 것으로 본다. 지금처럼 매출로 빚을 돌려막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자산 효율성도 크게 떨어진 상태다. 자산을 팔아 차입금을 갚기도 쉽지 않다는 뜻이다. 대주주인 MBK가 자금을 수혈하지 않으면 경영난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오는 18일 홈플러스 사태와 관련해 긴급 현안 질의를 한다. 이날 증인으로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과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 겸 홈플러스 공동 대표 등이 채택됐다. 이 자리에서는 사태의 원인과 현황, MBK 자구 노력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이때 MBK는 홈플러스 회생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지난 9일 홈플러스 대책 전담팀을 발족하며 “최대 주주인 김병주 회장이 얼마만큼 이 회생에 진정성이 있는지,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압박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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