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 낮아져 자금난 몰리자 손들어

차입 의존해 인수한 MBK 책임론 대두

이마트와 롯데마트도 쿠팡 질주에 고전

도전정신·혁신 잃은 유통 공룡의 몰락

성장 멎은 재벌기업들도 경각심 가져야

홈플러스는 국내 대형 할인점 업계 순위 2위다. 이마트 다음이고 롯데마트보다 높다. 이런 홈플러스가 4일 전격적으로 기업회생(법정관리) 절차를 신청했다. 국내 최대 온라인 쇼핑 플랫폼(이커머스)인 쿠팡의 질주와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홈플러스뿐만 아니라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 대형 할인점들은 쿠팡의 역습에 고전하고 있다. 홈플러스의 몰락을 ‘강 건너 불’로만 볼 수 없는 처지다.

홈플러스는 작년 11월부터 일부 납품업체에 대해 정산을 미뤘다. 그만큼 자금난이 심각했다. 지난달 신용등급이 낮아지자 자금 조달 여건이 나빠졌고 결국 손을 들었다. 당장 숨이 끊어질 것 같으니 응급 처방을 한 것이다. 법원이 기업회생 절차를 받아들이면 금융기관 차입금에 대한 상환이 유예된다. 홈플러스는 이날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한 이유에 대해 “신용등급 하락으로 자금 관련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단기자금 상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사전예방적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홈플러스가 4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다만 모든 채널 영업은 정상적으로 진행된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한 홈플러스 매장의 모습. 2025.3.4. 연합뉴스
홈플러스가 4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다만 모든 채널 영업은 정상적으로 진행된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한 홈플러스 매장의 모습. 2025.3.4. 연합뉴스

홈플러스 점포 팔아 빚 갚은 MBK의 도덕적해이

홈플러스에 대한 경고음이 울린 건 오래됐다. 지난 2015년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영국의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를 인수할 때부터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인수 금액이 기업 가치에 비해 턱없이 높고, MBK의 인수 방식이 차입금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많았다. MBK는 7조 2000억 원에 홈플러스를 인수했는데 투자자를 규합해 모은 펀드 2조 2000억 원 외에 나머지는 홈플러스 명의로 대출받아 충당했다.

인수 당시 나왔던 우려는 현실이 됐다. MBK는 점포 수십 곳을 팔아 빚을 갚았다. 매각 후 임대해 사용하기도 했으나 아예 철수한 매장도 있다.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며 노동조합과 극심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영업이익도 대부분을 차입금에 대한 이자로 썼다. 그러다 보니 채용을 늘리거나 시설에 투자할 여력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경쟁력은 계속 떨어졌다.

 

홈플러스 금융부채 현황. 연합뉴스
홈플러스 금융부채 현황. 연합뉴스

홈플러스 3년 연속 적자 행진…존속 힘들어

연합뉴스가 민주노총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을 보면 MBK 인수 이후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지출된 홈플러스의 이자 비용은 3조 964억 원에 달했다. 해당 기간 영업이익 4713억 원보다 2조 5000억 원이나 많은 금액이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2024년 11월 말 기준 순차입금은 5조 312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194억 원 늘었다. 총차입금은 5조 4620억 원으로 차입금의존도는 60.3%에 달했다. 

올해 들어 사정은 다소 개선됐다. 홈플러스는 지난달 말 기준으로 부채비율이 462%로 대폭 낮아졌고, 직전 12개월 매출도 7조 462억 원으로 2.8% 신장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홈플러스는 2021년부터 줄곧 영업손실을 기록 중이다. 연도별 영업손실액은 2021년과 2022년, 2023년에 각각 1335억 원과 2602억 원, 1994억 원에 달했다. 작년에도 1~3분기 1500억 원 이상 영업손실을 보며 적자 행진을 이어갔다. 이대로 가면 사실상 존속이 힘들다. 신용등급이 더 낮아질 수도 있다.

 

홈플러스 기업회생 절차와 연도별 실적. 연합뉴스
홈플러스 기업회생 절차와 연도별 실적. 연합뉴스

이마트와 롯데마트도 쿠팡에 고전 중

사모펀드인 MBK의 최종 목표는 홈플러스를 매각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쟁력을 잃어가는 대형 할인점을 인수할 기업을 찾기는 힘들다. 결국 지금처럼 점포 등 자산을 팔아 차입금을 갚고 투자금을 회수해야 한다. 대형 할인점의 최대 강점은 ‘규모의 경제’에 나온다. 대량 구매를 통한 ‘바잉파워’가 있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대형 할인점의 점포 매각은 절대무기를 포기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홈플러스의 앞날이 어두운 이유다.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 대형 할인점들은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절차 신청에 신경이 곤두섰을 것이다. 동병상련을 느낄 수밖에 없어서다. 쿠팡의 역습에 대형 할인점들은 고전 중이다. 매장을 재개장하고 대대적인 할인 행사를 여는 등 이커머스로 가는 고객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쇼핑의 대세가 이미 바뀌었기 때문이다. 할인점 업체가 온라인 사업을 강화한다고 해도 쿠팡이나 네이버와 비교하면 후발 주자일 뿐이다. 실적 개선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미지수다. 이마트는 2023년 창사 이래 첫 연간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실적 반등에 성공했으나 여전히 힘든 상태다. 롯데마트 역시 매출과 영업이익이 뒷걸음질하며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홈플러스 노동자들, 폐점 매각 저지 위해 카드 끌고 거리로. 연합뉴스
홈플러스 노동자들, 폐점 매각 저지 위해 카드 끌고 거리로. 연합뉴스

백화점 전체 판매액도 뛰어넘은 쿠팡의 독주

대형 할인점과는 달리 쿠팡은 배달 노동자와 물류센터 직원의 연이은 과로사 등 불미스러운 일로 비난받는 와중에도 놀라운 속도로 성장 중이다. 작년에는 국내 유통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연간 매출 40조 원을 돌파했다. 이는 대형 할인점 전체 판매액은 물론 백화점 업계 매출을 뛰어넘는 금액이다. 전국에 물류센터를 건설해 빠른 배송시스템을 구축하고 멤버십 회원을 늘린 것이 쿠팡의 성장 동력이다. 쿠팡의 활성 고객 수는 2020년 1480만 명에서 2024년 2200만 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이제는 쿠팡을 이용한 적이 없는 사람을 찾기 힘들 만큼 국민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쿠팡에 밀려 대형 할인점이 몰락하는 모습은 ‘기업의 혁신’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성장이 멎은 재벌기업들의 현실은 대형 할인점과 겹쳐 보인다. 급변하는 시장과 첨단 기술 흐름에 맞춰 변신하지 못하는 기업은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돼 있다. 대형 할인점들은 ‘바잉파워’을 앞세워 납품업체 갑질을 일삼았다. 땅 짚고 헤엄치기식 영업으로 덩치를 키워 공룡이 됐다. 배가 부르니 도전하고 혁신할 동기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온라인 쇼핑에 열광하는 고객들을 파고든 이커머스의 강자들이 등장했다.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절차 신청은 공룡이 된 대형 할인점들이 몰락하는 서막을 알리는 경종일 수도 있지만, 도전정신이 사라진 한국의 재벌기업에 경각심을 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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