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심야 노동자 과로사’ 청문회 불참

트럼프 취임식 참석 핑계…궁색한 변명

자사 브랜드 검색 순위 조작으로도 지탄

공정위, 1400억 역대 최대 과징금 부과

작년 전체 과징금의 4분의 1이 쿠팡 몫

국내 온라인쇼핑 플랫폼에서 쿠팡은 절대 강자다. 쿠팡의 지난해 매출 추정치는 40조 원이 넘는다. 한 해 전인 2023년 쿠팡은 매출 30조 원을 달성해 화제가 됐는데 1년 만에 10조 원이 증가한 것이다. G마켓과 11번가 등이 추격하고 있으나 국내 상위 10개 온라인쇼핑 플랫폼 중에 2~9위 업체 매출을 모두 합쳐도 쿠팡과 10조 원 이상 차이가 난다. 현재 쿠팡의 와우 멤버십 가입자 수는 1400만 명에 달한다. 유료 서비스인데도 이 정도의 가입자 수를 확보했다는 건 놀라운 성과다. 로켓배송으로 명명된 빠른 배송 시스템과 다양한 상품, 이용의 편리성 등 강력한 무기를 장착할 결과로 볼 수 있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CG) [연합뉴스TV 제공]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CG) [연합뉴스TV 제공] 

과로로 쓰러지는 쿠팡 택배·심야 노동자

쿠팡의 눈부신 성장 이면에는 열악한 노동 환경과 취업제한 블랙리스트 작성, 검색 순위 조작 등 불편한 진실이 있다. 최근 몇 년간 과로로 쓰러진 택배 노동자와 물류센터 직원이 한둘이 아니다. 급기야 심야에 일하다가 과로로 숨진 고 장슬기 씨 등 희생자 유족들은 지난해 10월 쿠팡의 부당한 노동 실태를 파헤질 국회 청문회 국민동의 청원을 발의했다. 많은 이들이 청원에 호응했다. 지난 21일 ‘쿠팡 택배 노동자 심야 노동 등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청문회’가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열린 경위다.

쿠팡의 위상과 사태의 심각성으로 보면 창업자인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이 당연히 국회 청문회에 나올 줄 알았다. 그는 강한승 쿠팡 대표와 홍용준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대표, 정종철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 대표 등과 함께 이날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됐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 의장은 반드시 참석해 쿠팡의 근로조건 개선에 대한 의견을 직접 밝혔어야 마땅했다.

“트럼프 취임식이 노동자 죽음보다 중요한가?”

그러나 그는 국회 청문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이유로 국회에 불출석 사유서를 냈다. 쿠팡Inc가 미국 뉴욕 증시 상장 기업이라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여당과 야당 의원들 모두 김 의장의 불참을 질타했다. 국회 청문회를 다시 소집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김 의장을 고발하자는 말까지 나왔다.

이날 청문회에서 쏟아진 여야 의원들의 발언을 요약하면 이렇다. “쿠팡의 실질적 주인인 김범석 의장이 자리에 없는 상황에서 청문회가 효용이 있겠나. 트럼프 취임식에는 가고 청문회는 안 나온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국회를 무시하는 것이다. 김 의장이 없으면 맹탕 청문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이 노동자들의 죽음보다 중요한 일인가. 노동자들의 죽음을 발 딛고 쿠팡을 만든 최고경영자답다는 생각이 든다.”

국회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임상혁 녹색병원장은 쿠팡 근무 방식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이렇게 권고했다. “쿠팡은 교대 노동을 하지 않고 야간에 고정된 노동을 하는데, 이렇게 하면 자율신경계가 망가져서 문제가 생긴다. 주야간 교대 노동 방식을 도입하거나 야간 노동의 강도를 주간노동보다 훨씬 약하게 줄이는 방법을 권고하고 싶다.” 이에 대해 강한승 쿠팡 대표 등은 시정하겠다, 사회적 대화에 나서겠다는 식의 피상적인 답변만 내놨다.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쿠팡 택배노동자 심야노동 등 근로조건 개선 및 대유위니아그룹 임금체불 관련 청문회에서 강한승 쿠팡 대표 등 참석한 증인들이 선서하고 있다. 2025.1.21. 연합뉴스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쿠팡 택배노동자 심야노동 등 근로조건 개선 및 대유위니아그룹 임금체불 관련 청문회에서 강한승 쿠팡 대표 등 참석한 증인들이 선서하고 있다. 2025.1.21. 연합뉴스

자사 브랜드 검색 순위 조작으로 과징금 철퇴

쿠팡은 열악한 노동 환경뿐 아니라 거대 플랫폼의 우월적 지위를 악용한 불공정거래 행위로도 비난받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쿠팡이 자사 브랜드(PB) 상품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여러 방식으로 검색 순위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1400억 원대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쿠팡은 2019년 2월부터 2023년 7월까지 검색 알고리즘을 조작해 자사 브랜드 상품을 쿠팡 순위 상위에 고정 노출했다. 자사 브랜드 상품 구매 후기 작성에 임직원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 결과 판매가 부진했던 자사 상품이 검색 순위 상위에 오르는 상황이 연출됐다. 반면 수십만 개의 입점 업체 제품은 판매량이 많은 데도 검색 순위 상위에 오르지 못하는 불이익을 당했다.

이에 공정위는 유통업계 역대 최고 수준의 과징금을 쿠팡에 부과했다. 하지만 김범석 의장은 사과하지 않았다. 쿠팡은 공정위 처분에 불복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납부 명령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서울고등법원에 냈다. 쿠팡은 검색 순위 조작 혐의에 대해 백화점과 할인점 등 오프라인 매장이 상품을 진열하는 방식과 같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네이버도 지난 2020년 자사 상품을 우대하는 알고리즘 조작으로 공정위 시정명령과 함께 총 267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네이버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자료 : CEOㅅ스코어. 2024년 대기업집단 과징금 상위 10곳. 
자료 : CEOㅅ스코어. 2024년 대기업집단 과징금 상위 10곳. 

쿠팡 탓에 지난해 과징금 전체 금액 26% 증가

쿠팡의 불공정 행위가 얼마나 악질적인 것인지는 과징금의 상대적 규모가 말해준다. 기업 데이터연구소인 CEO스코어는 2023년 1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공정위의 전체 과징금(과태료 포함) 부과 현황을 조사한 자료를 22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과징금 총액이 5502억 원으로 전년(4350억 원) 대비 26% 이상 증가했다. 그런데 전체 과징금의 4분의 1 이상이 쿠팡 몫이었다.

참고로 지난해 공정위 제재 건수는 124건으로 전년(111건)보다 13건 늘었다. 제재 대상 308곳 중 고발 조치도 34건으로 전년(28건)보다 6건 증가했다. 고발 조치는 법인이 26건으로 가장 많았고, 총수‧임직원이 7건, 사업자단체가 1건이었다. 전년과 비교하면 법인(19건) 고발 건수는 늘어났으나 총수‧임직원(8건)은 감소했다. 쿠팡과 쿠팡의 자사 브랜드를 담당하는 자회사 씨피엘비가 총 1401억 7800만 원을 부과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쿠팡에 이어 카카오가 725억 50만 원, 씨제이가 245억 원으로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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